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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이슈] 지방자치와 주민자치, 그리고 제도-“오늘날 다원주의 시대에는 공동-거버넌스 체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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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이슈] 지방자치와 주민자치, 그리고 제도-“오늘날 다원주의 시대에는 공동-거버넌스 체제로”
  • 이문재 기자
  • 승인 2019.11.07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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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태 명예교수의 ‘거버넌스 시대의 지방자치권론’에 담긴 지방자치 사상과 주민자치 탐색
김석태 경북대학교 행정학부 명예교수.
김석태 경북대학교 행정학부 명예교수.

지난 8월 26일 개최된 ‘2019년도 한국지방자치학회 하계학술대회’ 제2회의 2분과에서 발표된 김석태 경북대 명예교수의 ‘거버넌스 시대의 지방자치권론 : 고유권과 홈룰에 대한 재조명과 권한공유 모형 탐색’ 논문은 현재 한국에서 새롭게 주도적 의견으로 떠오른 지방고유권론, 지방분권, 지역주권, 주민주권의 제도화에 대해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김석태 명예교수는 발표 마무리에서 “이 논문은 21세기 거버넌스 시대의 계층적 중앙-지방사이의 바람직한 모습을 19세기 중반 네덜란드의 토르베커의 공동-거버넌스 체제에서 찾고자 했다”고 밝혔다. 왜냐하면 기존 이론은 오늘날 다원적 사회에서 중앙-지방 관계를 반영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석태 명예교수는 일본의 신고유권설로 발전한 서구에서의 18세기 말 투레의 지방권이나 19세기 후반 기르케의 자치권 이론도 오늘날 다원주의 시대에서는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이에 기자는 오늘날 다원주의 시대에 적합한 통치이론을 설파한 김석태 명예교수의 ‘거버넌스 시대의 지방자치권론’에서 ▲지방자치 사상 ▲국가와 개인 중간에 있는 주민자치 조직의 독자 권한 체제 당위성 ▲또 최근 일부 학자들의 주민자치 조직 설치·운영의 정당성을 주민주권론에서 찾고자 하는 경향이 과연 타당한지에 대해 알아보고자 했다.

양해를 구할 것은 김석태 명예교수 발표 논문에서 미국의 ▲홈룰(주-지방 관계에서 지방의 문제에 있어 자치라는 의미)의 배경과 유래 ▲홈룰 모형(임페리오형, 포덤의 입법형)은 본고에서는 지면관계상 다루지 못했음을 밝혀둔다. <기자 주>

서구에서 18세기 말부터 국가 헌법상에 나타나기 시작한 지방자치권에 대한 이론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매우 더디지만 발전해 왔다. 프랑스 혁명 당시의투레의 지방권이나 19세기 말 독일의 기르케의 자치권 이론은 근래 일본의 신고유권설로 변모했다. 한편,19세기 말 미국 홈룰의 임페리오형은 20세기 중반에 넘어와서는 입법형으로 발전해 주-지방 사이에 입법에 대한 권한 공유의 길을 열었다. 하지만 이들 자치권론을 오늘날 다원주의 시대에 맞는 지방자치권으로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이 논문은 기존 지방자치 이론의 발전을 재조명한 후, 19세기 중반 네덜란드 토르베커의 공동-거버넌스 체제에서 국가-지방이 통치권을 공유하는형태를 오늘날 거버넌스 시대에 보다 적합한 모형이라 주장한다. 그리고 이 체제의 논리적 근거가 될 수 있는 국가와 개인 사이의 중간에 있는 공동체에 대한 이론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한다.

다원적 민주주의 시대에 맞는 지방자치 프레임 찾고자 연구
오늘날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전통적인 ‘국가주권론’ 아래에서 ‘전래권설’이 지배적인 가운데, ‘지방자치권’ 확대를 위한 방편으로 ‘지역주권론’이나 ‘주민주권론’이 주장되고 있고, 국가의 권위가 압도적인 가운데 중앙-지방협력회의가 제안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18년 ‘지방자치법 전면개정안’에는 이 법 제9장 명칭을 ‘국가의 지도·감독’에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관계’로 변경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변화는 우리의 전통적 계층적 중앙-지방 관계를 시대에 맞게 다원적 구조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움직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가 일본을 통해 도입한 유럽대륙계의 국가-지방 간의 법체계는 헌법-법률-명령-조례-규칙이라는 국가-지방 간의 일사불란한 계층적 구조다. 이런 일원적(monistic) 구조에서 지방자치권은 투레나 기르케 등이 주장한 ‘지방의 고유한 권한’이 아니라, ‘국가가 준 권한’이라 해석될 수밖에 없어 자치권이 매우 제약돼 있다. 이에 대한 반발로 일본에서 나온 신고유권설, 지역주권론, 주민주권론이 우리나라에서도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다.

19세기 중반에 제시된 토르베커의 국가-지방 간 모형은 국가유기체 논리에 입각해 단일국가를 단순한 ‘분권국가’의 수준을 넘어서서 독자적 권한을 가진 ‘지방의 합의를 구하는 국가’라고 해, 오늘날 다원주의 사회에서 회자되는 공동-거버넌스(co-governance) 모델을 이미 제시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Toonen1990). 공동-거버넌스 체제에서는 국가와 지방이 통치권을 공유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지방분권형 헌법 개정’ 등 국가-지방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려는 시도가 있어 왔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지방자치 이론이나 규범적 연구는 부족한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지방자치권의 본질에 대한 규명은 교과서 수준의 내용이 되풀이 되는 수준이고, 근래에 일본에서 빌려온 지역주권론이나 주민주권론(김순은 2012 ; 김병국·최철호 2012)은 뒤에서 기술하는 바와 같이 논리상 문제가 있다.

이런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 이 논문은 지방권과 홈룰(홈룰은 본고에서는 다루지 못함)을 재조명한 후, 토르베커 체제를 소개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 시대에 맞는 지방자치권론을 탐구하고자 한다. 지방자치를 법적 현상으로만 파악하는 것은 변화된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보고, 오늘날 다원적 민주주의 시대에 맞는 지방자치 프레임을 찾고자 한다.

■지방고유권
로마제국의 멸망 후 중앙 권력이 쇠퇴하면서 지방으로 권력이 분산된 중세 서유럽은 지방, 특히 도시의 길드를 중심으로 지방자치가 발전했다. 중세의 분권적인 체제를 타파하고 중앙집권적 국민국가가 등장하게 되는데, 이 때 지방에 일정한 권리를 인정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 ‘지방자치제’다. 지방의 전통적 고유권 주장은 18세기 말 프랑스와 19세기 후반 독일과 미국에서 각각 찾아볼 수 있으며, 신고유권 주장은 20세기 일본에서 찾아볼 수 있다.

투레의 지방권 :지자체를 제4의 권력으로 인식
프랑스혁명 첫 해에 지롱드파(Girondin)의 투레(Thouret)는 앙시앵 레짐 때 지방의 권리를 박탈하고, 중앙집권화한 프랑스를 개혁하고자 하는 1789년 헌법 제정회의에서 지방권(Pouvoir Municipal) 개념을 제시했다. 지방자치권을 최초로 개념화한 것이다. 투레는 헌법 제정의회 연설에서 “모든 나라에 있어서 그 시작은 다수의 소집단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1789년 제헌안의 제4조는 “지방기관은 두 가지 형태의 임무를 가진다. 첫째는 지방의 권리에 고유한 것이고, 둘째는 국가행정에 속하는 것으로 지방기관에 위임된 것이다”고 규정해 국권(pouvior national)과 구별되는 지방권을 제시했다.

이는 지방자치권을 국가로부터 전래된 것으로 보지 않고, 지방자치단체의 기본권으로서 입법·행정·사법의 3권에 더해, 지방자치단체가 본래부터 향유하는 ‘제4의 권력’으로 인식한 것이 다. 이 규정은 이념적인 측면에서 획기적인 지방권을 제시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Yoshida 1996 : 12∼13). 하지만 이 규정에서 지방기관의 임무가 국가로부터 위임받은 사무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진정한 지방권이 존재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있었다.

투레의 주장은 자연법에 근거한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상적 이기는 해도, 지방과 국가 권리의 이론적인 분리를 분명하게 서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아울러 지방정부는 국가 성립 이전부터 존재하던 것으로 이미 일정한 권한을 갖고 있다고 선언한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투레의 지방권 주장은 당시 프랑스의 현실에서 단명했다. 지방분권과 연방주의 체제를 희망했던 지롱드당과 단일한 중앙집권국가를 주장했던 자코뱅파(Jacobian)와의 대결에서 자코뱅이 이념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승리했기 때문이다. 자코뱅의 승리로 프랑스는 ‘프랑스 공화국은 하나고, 나눠질 수 없으며, 국가주권이다’는 원칙이 확립됐다. 이 원칙은 나폴레옹에 의해 더욱 강화됐다.

기르케의 공동체 고유권 :국가-국민 간 공동체 이론 발전시켜
19세기 중반 사회적 혼란 속에서 전제적인 통일 국가(state)와 자유를 갈망하던 시민사회(society) 간의 갈등과 대립으로 시민혁명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을 때, 지역 공동체는 이런 갈등을 예방할 수 있는 국가와 국민 사이의 중간단위로 여겨졌다. 이런 중간단위를 국가나 개인과 마찬가지로 법인격을 가진다는 논리를 발전시킨 사람 중의 하나가 19세기 후반 기르케(Otto Gierke)다.

기르케는 독일 역사법학파의 2세대 대표주자인 역사학자, 정치학자, 법학자로서 중세 이래 독일의 고유한 제도를 연구한 4권으로 구성된 ‘독일 단체법’이란 대작을 내 놓았다. 이 책에서 그는 독일의 역사를 중앙세력과 지방세력, 사회조직 간의 권력의 다툼과 갈등의 역사로 봤다. 그는 독일의 역사를 정반합의 변증법의 논리에 따라 중앙정부와 지역 및 사회 공동체 사이의 끊임없는 갈등의 연속으로 규정했다. 그는 집권적 단일 체제 다음에는 분권적인 연맹 체제가 나타나고, 분권적인 체제 다음에는 집권적인 체제 나타난다고 했다. 그리고 20세기는 단체, 즉 시민시회의 시대라고 주장했다. 기르케의 주장이 20세기에는 맞지 않았지만, 21세기는 그의 주장에 가까워지고 있다.

기르케는 국민국가 형성과 더불어 등장한 국가주권의 절대성과 자본주의 발전에 따른 개인주의에 근거한 자유주의 사상에 대한 대안 논리로 국가와 국민 사이에 있는 여러 공동체 이론을 발전시켰다. 그는 “중세 독일의 공동체에 대한 역사적·법적·정치적 연구에서 지방자치단체는 국가 성립 이전부터 지역 공동체 이익을 위해 형성돼, 지역 공동체에 고유한 문제를 자율적으로 처리해 왔다”고 하면서 “지방자치단체는 사회의 영역에서 국가 이전부터 존재하는 주민들의 자연적인 결합체”라고 했다(Harris 2006 : 1436-1437). 공동체는 자연인과 마찬가지로 본래적인 권한을 갖는다고 하는 소위 ‘법인 실체설’을 주장한 것이다. 따라서 지방자치단체는 보편적인 권리를 가진 주체로서 독자적인 예산권과 조세권을 가진 존재이기때문에 국가로부터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데, 그 근거를 두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국가와 국민만이 주권적인 존재라는 자코뱅식 주장에 따른 중앙집권적 국가 형성에 반대해, 지방 중심의 개혁을 주장하며 제기한 기르케의 고유권 주장도 ‘지방의 권리는 국가에서 전래된 권리에 불과하다’는 옐리네크(Georg Jellinek) 등 주류 법학자들의 반대에 직면, 힘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기르케의 지방자치권은 바이마르공화국 헌법을 기초한 그의 베를린 대학 제자들에 의해 127조에서 선언적으로 규정됐다. 제127조(1)은 “시·읍·면 및 시·읍·면 조합(Gemeindeverbände)은 법률의 제한 내에서 자치권을 갖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본의 신고유권설 :주민주권은 국민주권의 주권 개념과 달라
전통적 고유권설이 인정받지 못하고 제도적 보장설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일본에서 신고유권설이 나타났다. 일본은 메이지 시대에 프랑스와 독일의 예에 따라 지방자치를 도입했는데, 프랑스식의 강한 중앙정부 통제방식과 독일식의 권한 위임방식을 혼합한 제도였다. 제2차 대전 후 미군정 당시보다 민주적인 미국식 지방 제도로의 개편을 강요받았지만 내무성 관료들의 강력한 반대로 프랑스와 독일 제도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결과 매우 집권적인 전통을 이어 오고 있었다. 일본은 지방세나 지방 지출의 비중 등 지표상으로 보면, 다른 선진국에 비해 매우 분권화된 것으로 보이나 실제로는 중앙집권적인 국가로 평가된다. 이런 겉과 속이 다른 일본의 제도를 집권적 분산제도(centralized-deconcentrated system)라 한다.

70년대 이후 환경 문제 해결 등에서 지방권한 강화의 규범적·현실적 필요 때문에 나타난 신고유권설은 개인이 자연권으로서 기본권을 향유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방자치단체도 이와 비슷한 권리를 갖는다는 견해다. 이들은 지방자치권 통설이던 제도 보장설 한계를 극복하고, 고유권설 근거로 일본 헌법상에 중앙기관이나 지방기관 모두가 인권 보장을 위해 존재하므로, 인권 보장과 자치권 보장이 분리돼서는 안 된다고 한다(Yoshida 1996 : 32). 이런 주장에 힘입어 1990년대 지속적인 분권화가 추진됐고, 2000년에는 기관위임사무가 폐지됐으며, 지방재정에서 3위1체(지방세, 지방교세, 국고보조금) 개혁이 마무리 됐다.

하지만 이런 개혁은 미완의 개혁이라 평가받고 있는 가운데, 2000년대 들어와서는 ‘지역주권론’이나 ‘주민주권론’이 등장하게 됐다. 일본의 지역주권론(local sovereignty)은 지방자치(분권)의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한 개념으로 2009년 10월 지방분권개혁추진위원회가 3차 권고안을 총리에게 제출하면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됐다. 즉 ▲지방정부의 권한 강화와 재량권 확대 ▲주민의 정치 참여기회 확대 ▲지방의회 개혁 ▲전국에 9~13개의 광역 도주제를 설립해 연방제의 주정부에 준하는 분권을 염두에 둔 개혁이다. 여기서 ‘주권’ 개념은 국민주권이나 국가주권에서의 주권 개념과 같은 것으로 보기 어렵다.

지방고유권론의 한계 :주민주권·지역주권론은 주권 개념 왜곡
사실 자연권이나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지방고유권이론은 근대 법치국가의 실정법이나 판례와 합치되지 못하고, 지방자치 수호나 확대를 위한 규범적 이론에 그쳤다고 할 수밖에 없다. 또 지방권을 헌법상의 기본적 인권과 같이 해석하려는 신고유권설도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자치권이 자연인의 기본적 인권과 유사하다는 논리는 기르케의 ‘단체도 자연인과 같이 본래적인 인격을 가진다’는 법인 실체설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치권을 인권과 같은 것이라 주장하는 Yosgida(1996)에서는 이를 찾아 볼 수 없다.

주민주권이나 지역주권론도 주권의 개념을 왜곡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주권개념 그 자체에도 문제가 많다. 국민주권으로서 통치권을 정당화하는 원리로 보는 입장은 국가권력의 정당성이 국민에게 있고, 국가의 통치권은 논리적으로 국민의 의사로 귀착시킬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국민은 다양한 개성과 능력과 이해관계를 갖는 무수한 인간의 집단이다. 국민을 정치적 통일체라 보고 대표들은 그들의 통치권을 국민의 의사로 정당화하려는 것은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

기르케 이래 다원주의자(pluralist)들은 국가주권의절대성을 부정했다. 따라서 규범적 주장이나 새로운 법 해석의 방식만으로 자치권 확대를 주장하는 데는한계가 있다. 이런 한계를 넘어서는 예를 미국의 홈룰에서 찾을 수 있다.

2019년 6월 28일 정부세종청사 16동에서 열린 제41회 중앙·지방자치단체 정책협의회 모습이다.
2019년 6월 28일 정부세종청사 16동에서 열린 제41회 중앙·지방자치단체 정책협의회 모습이다.

■미국 홈룰의 의의와 한계
법적으로 자치권 확대,반면 주 선점권 행사는 자치권 위축

미국의 홈룰은 주-지방 관계에서 지방의 문제에 있어 자치라는 의미다. 홈룰을 법적 측면에서 보면 지방에 입법상 이니셔티브를 부여하고, 주의회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우며, 주법원은 지방의 재량에 유리한 쪽으로 판결함을 그 요소로 한다(ACIR 1993). 이로서 홈룰은 지방 문제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게 할 뿐만 아니라 주의 지방 문제 해결 부담을 덜어준다.

홈룰은 자치권에 대한 법 해석의 한계를 넘어 입법적으로 자치권의 확대를 보장했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 또 주의 사무와 지방사무의 구분의 어려움을 입법형으로 해결하고 주-지방 간의 입법권한 공유를 인정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주의 선점권의 적극적인 행사는 자치권을 크게 위축시킬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주의 선점권 행사를 제약하고, 지방의 자치권을 보장하는 방법의 하나로 주의 선점권 행사 시 지방의 동의를 받도록 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는 주와 지방 간의 사무의 구분을 없앤 것과 마찬가지로 주와 지방 간의 권한 구분을 없앤다는 논리다. 즉 통치권을 주와 지방이 공유하도록 하고, 양자 간에 마찰이 생기는 경우 상호협의로 결정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런 구상은 공동-거버넌스 체제에서 발견할 수 있다. 다음은 공동-거버넌스 논리를 발전시킨 네덜란드의 토르베커 체제를 살펴본다.

■네덜란드 토르베커 공동-거버넌스 체제
네덜란드는 분권적인 단일국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Toonen(1990)은 이 나라가 단순한 분권적인 국가만은 아니라고 한다. 그는 네덜란드를 중앙과 지방사이의 다양성과 상호 의존성, 그리고 다이나믹한 상호작용이 있는 ‘공동-거버넌스 체제’라고 규정하면서 재상 토르베커(Johan Rudolph Thorbecke)가 만든 헌법(1848년)과 지방법(1851년)의 근본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토르베커 체제는 19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중앙-지방 관계 모형이지만, 21세기 지방분권화를 추진하는 국가에 의미 있는 시사점을 준다.

토르베커는 독일 역사법학파의 영향을 받은 학자 겸 정치가로 네덜란드 통치체제의 역사와 관습에 맞는 분권적인 법체계를 도입했다. 그는 유기체적 국가론자로서 국가를 지방으로 구성된 하나의 유기체로 보고 양자의 관계를 상호 의존적인 전체와 부분의 관계로 봤다. 여기에서 우리는 단일국가 안에서의 주권 공유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있다. Toonen(1990)이 제시한 토르베커 체제의 요소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유기적 복합체로서의 국가 : 상위단위 권한은 하위단위에서 승인
토르베커 등 국가유기체론자에 의하면, 국가는 역사적으로 발전된 하나의 온전한 실체로서 각기 살아있는 부분으로 구성된 유기체다. 다른 말로 국가는 조립이나 분리가 가능한 부품으로 구성된 기계적인 존재가 아니라, 각 부분이 상호 의존적인 ‘진화적인 유기체’라는 것이다. 토르베커에 의하면, 국가는 중앙정부 하나로 대표되는 것이 아니라 중앙, 광역, 지방의 복합체다. 유기체의 각 부분은 전체라는 틀 안에서만 생존할 수 있지만 또한 전체는 이를 구성하는 부분이 없이는 (마찬가지로) 생존 내지 발전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는 구성요소가 각각의 의사와 역할을 가진 존재로 본다. 이렇게 유기체의 구성단위를 독자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전체와 개별 단위 간의 상호의존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그는 당시의 다른 국가 유기체론자와 차이가 있다(Toonen 1990 : 284 상단).
토르베커는 유기체의 전체와 부분 간의 관계는 계층적인 지시·명령의 관계가 아니라 수평적으로 협력·조정하는 관계로 본다. 상위단위 권한은 일방적으로 위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위해서 하위단위에서 승인하고 인정하는 것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국가적 통합(unity)은 계층적인 지시·명령의 관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위단위 간의 갈등 조정, 합의 추구, 상호조정을 통해 이뤄진다고 본다(ibid : 284 하단). 즉 국가적 통합은 일사불란한 법체계와 중앙에서의 지시·명령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의사를 가진 하위단위 간의 차이를 해소할 수 있는 의사결정구조 존재에서 이뤄진다는 것이다.

지방의 포괄적 권한
토르베커에 의하면, 지방정부는 ‘살아 있는’ 물체로 국가의 창조물이 아니라, 유기체로서의 지방정부는 그 자체로서 자율성과 독립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런 자율성과 독립성은 무한정인 것은 아니다. 국가라는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른 부분과의 조화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방정부가 국가 전체의 견지에서 국법으로 인정이 되면, 지방자치단체로서 모든 법적·정치적 지위를 갖게 되고, 그 자체로 ‘내적 힘’을 갖게 된다고 한다(ibid : 285).
토르베커는 지방자치를 중앙정부로부터 통제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에서 찾은 것이 아니라, 지방의 일을 스스로 창의적으로 할 수 있는 것에서 찾았다. 지방이 하고자 하는 일을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권한을 보유하는 것이 그가 만든 1848년 헌법이나 1851년의 지방법에 일반적 권한(general competence) 조항으로 나타나 있다. 하지만 그도 한 지방이 다른 지방에 해를 끼치는 경우에는 국가가 이를 통제할 필요가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이 경우 통제의 권한은 지시·명령하는 권력이 하니라 하위단위간의 갈등을 조정하는 권한이라 보고 있다.

중앙-지방 간의 상호 의존성
유기체적 국가론자는 입법기능과 집행기능 간 구분의 어려움을 인지하고 ‘권한의 분리’를 비판했다. 이는 분리원칙 그 자체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 실제 적용상의 어려움을 지적한 것이다. 입법과 집행이 상호 의존적인 것으로 어느 하나가 없이는 다른 것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ibid : 286-287).
이렇게 양자의 구분이 어렵다고 두 기능이 하나의 기관에서 수행되는 것을 이들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오히려 양자의 기능을 수행할 기관을 분리함으로써 행정을 민주화할 수 있다고 본다. 다른 말로 중앙에서 정책 수립과 관련된 입법을 하고, 지방정부에서 이를 집행하게 함으로써 주민과 멀리 떨어진 얼굴없는 대규모 국가관료제가 형성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집행권까지 중앙정부에 귀속되는 경우 중앙집권화의 폐해가 더 크게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중앙에서 정책 수립을 하고 지방에서 이를 집행하게 하는 것도 하나의 국가 권한의 공유(powersharing)방식이라 볼 수 있다. 특히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의사를 가진 유기체로서 지방에서 집행을 담당하는 것은 중앙과 지방이 상호 의존적인 관계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공동 거버넌스 : 독립적 단위 간의 다이나믹한 상호 작용
토르베커의 국가구조는 한마디로 다중심적 체제(poly-centric)다. 중앙정부가 정점에 있고 지방은 그 대리인(agent)인에 불과한 체제와는 정반대다. 전자가 중심이 없는 체제로서 협력에 의해 국가가 운영된다면, 후자는 일사불란한 계층적 체제로서 지시·명령에 의해 통치가 이뤄진다.
토르베커 체제의 지방정부에는 영국에서의 월권(ultra vires) 금지의 룰이나, 미국에서 딜런 룰에 따라 의회가 정한 서비스만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제약은 없다. 지방정부는 법적 제약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을 대체로 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중앙정부는 보충성의 원칙에 따라 독일이나 스위스 등의 예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 역할이 제한되는 것도 아니다. 네덜란드 중앙과 지방의 관계는 사전적 엄격한 룰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단위 간의 다이나믹한 상호 작용이다(Korthals Altes 2002 : 1443).
토르베커가 말하는 국가는 하나의 실체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또 이끌어가는 단일적인 구조가 아니라, 중앙-광역-지방으로 구성된 복합체로서 이들 사이의 관계는 사전적 엄격한 룰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단위 간의 다이나믹한 상호 작용인 공동-거버넌스 관계인 것이다. 여기에서는 중앙정부의 우월적 지위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정부간 관계에서 다양성과 통일성을 조화시키기 위한 각단위의 권한의 정당성이 더 문제가 된다.

■공동-거버넌스 공유 권한 모형 적합성
세계역사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창의적인 논리로 토르베커는 19세기 중반에 이미 오늘날의 공동-거버넌스라는 체제를 만들었다. 이런 거버넌스 체제에 대한 요구는 20세기 후반 국민국가 중심의 통치체제가 세계화, 지방화, 시민사회의 성장, 정보화로 약화되면서 더욱 증대되게 됐다. 특히 정보화, 최근의 웹(Web) 기반 블록체인(block chain) 기술의 발전으로 다수가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돼 이해관계자 모두가 참여하는 공동결정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따라서 일원적이 아니라 다원적 거버넌스 논리가 이 시대에 더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규범적 요구 : 국가는 여러 공동체로 구성
국민과 국가만이 권력의 주체라는 주장(국민주권이론)은 계몽주의 시대에 군주주권론에 대항하는 논리로 근대민주국가 형성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법적 주체로서 국가와 개인만이 절대적 존재고, 그 중간에 있는 사람들 공동체에 고유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오늘날 다원주의 사회에 맞지 않다. 국가 일원적 체제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사용된 홉스나 루소의 국민-국가 주권론은 오늘날 다원주의 시대에는 그 사명을 다한 것으로 봐야할 것이고, 이를 전제로 한 지 방자치권 이론도 마찬가지다.

반면, 오랫동안 망각됐던 알투지우스나 기르케의 다원주의적 주장은 부활될 필요가 있다. 알투지우스는 공생체로서 가족, 커뮤니티, 도시, 주, 국가가 각기 영역별 주권을 가진다고 했고, 국가의 주권은 그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것으로 봤다. 기르케도 공동체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으로 각기 주권을 가진다고 하는 법인 실체설을 주장했다. 국가는 하나의 유기체로서여러 공동체로 구성돼 있으며, 국가도 이런 모임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가르침이다. 여기서는 국가와 지방의 관계는 계층적 상하관계가 아니라, 수평적 파트너 관계다. 지방도 독자적인 의사를 가진 단체이기 때문에 국가는 지방의 의사를 존중해야 하고, 지방의 자유내지 이니셔티브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권국가 개념은 국가-지방 사이의 계층적 구조를 전제로 하고, 지방은 종속적이라는 것을 당연시한다. 이런 논리가 민주적 구조가 아님은 분명하다. 민주적 구조는 다원적 체제다. 지방이든 사회단체든 독자적 권한을 가진 국가 구성체의 한 부분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중앙-지방이 각각 국가 구성체로서 통치권한을 공유하고, 지방자치권은 여기서 나온다는 논리가 보다 적합할 것이다.

"민주적 구조는 다원체제, 지방과 사회단체는 독자적 권한 가진 국가 구성체"

현실적 필요 : 지방분권에서 공유로
국가의 기능이 국방이나 외교, 치안에 한정됐을 때는 국가가 이들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공공의 기능이 사회복지, 교육, 경제 등의 분야로 확대되고도 서비스 질의 심화가 요구됨에 따라 국가 홀로 이런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없게 됐다. 뿐만 아니라 공공사무의 증대에 따라 국가와 지방의 기능 구분이 점차 불명확해짐에 따라 국가-지방 간 협력의 필요성이 증대됐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여기에 더해 평등 관념의 확산에 따라 공공사무의 처리방식도 종래의 지시 내지 명령의 계층적 관계에서 협의 내지 합의의 수평적 관계, 즉 권한 공유의 관계로 변모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독일에서는 연방-주 사이의 협력적 연방제 형태에서 연방-주-지방 간의 공동 정책결정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고 한다(Hesse 1987).

연방-주가 주권을 공유하는 연방제 국가 내에서도 통합을 추진하는 중앙집권 지향 국가보다 수직적 권한 공유로 지방의 다양성을 포용하는 국가에서 정부의 질이 높다는 연구가 있다(Charron 2009). 따라서 단일국가에서도 연방제의 연방-주 간의 주권 공유와 유사한 방식으로 통치권한이 국가-지방 간에 공유돼야 한다는 인식이 확대돼야 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되면, 국가가 가진 본래적인 권한을 지방에 나눠준다는 ‘지방분권’ 의미가 없어질 것이다. 따라서 통치권한의 분권에서 공유로 초점이 옮겨져야 할 것이다. 계층적 논리에 바탕을 둔 전통적 지방자치권론으로는 이를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권한 공유의 예와 형태
연방국가에서 주 사이의 권한 공유가 일찍부터 나타난 예는 재정 분야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독일의 경우 주들이 과세권을 공유하는 공동세가 있는데, 그 세수는 연방정부의 관여 없이 주들이 수평적으로 배분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지방재정 조정 제도에서는 내국세 수입에 대한 권한을 국가와 지방이 공유하고 있다. 지역 간 경제력의 격차가 큰 상황에서 국세 수입에 대한 지방이 권한을 인정하는 것은 공유의 현실적 필요성을 인정한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최근 우리나라 헌법 개정과 관련해 ‘국회헌법개정특별위 자문위 지방분권분과(안)’에서 독일의 예에 따라 국회와 지방의회가 입법에 대한 공동권한을 규정한 것이다. 국회가 국가 존립이나 전국적인 사무에 대한 입법권은 국회가 갖지만 그 외의 사무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각각 입법권을 갖는다고 한다. 그리고 중앙정부의 법률은 지방정부의 법률보다 우선하지만, 지방정부는 지역 특성을 반영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중앙정부의 법률과 달리 정할 수 있다고 한다(2018 : 261).

공동 거버넌스에서는 참여자들이 서로 권한을 공유하지만 그 정도는 차이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거버넌스 이론에서 참여자들 간의 권한 관계를 직접적으로 규명한 연구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Provan and Kenis(2008)는 네트워크 구조(shared, lead, administrative)에 따라 참여자의 권한이 다름을 암시한다. 독일 공동세의 경우 참여자들의 권한이 대등(shared)한 것이라면, 우리나라의 지방재정 조정은 중앙정부 주도(lead)적이다. 제안된 입법권 공유에서도 국회가 더 큰 권한을 갖는다.

2019년 7월 25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개최된 ‘자치분권을 위한 풀뿌리 자치활성화 방안 토론회’에서 권미혁 국회의원은 개회사에서 “진정한 자치분권은 지자체, 의회, 주민이 함께 풀뿌리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스스로의 자치역량을 제고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고 말했다.
2019년 7월 25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개최된 ‘자치분권을 위한 풀뿌리 자치활성화 방안 토론회’에서 권미혁 국회의원은 개회사에서 “진정한 자치분권은 지자체, 의회, 주민이 함께 풀뿌리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스스로의 자치역량을 제고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고 말했다.

■맺음말
우리의 전통적인 계층적 중앙-지방 관계에 대한 이론의 변화를 모색하는 가운데, 이 논문은 21세기 거버넌스 시대의 이들 사이의 바람직한 모습을 19세기 중반 네덜란드의 토르베커의 공동-거버넌스 체제에서 찾고자 했다. 시대의 요구에 따라 자치권 이론이 발전해 왔지만, 기존 이론은 오늘날 다원적 사회에서중앙-지방 관계를 반영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주민주권 개념은 성립하기 어려워
서구에서 18세기 말 투레의 지방권이나 19세기 후반 기르케의 자치권 이론은 일본의 신고유권설로 발전했다. 하지만 자연권이나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지방 고유권 이론은 근대 법치국가의 실정법이나 판례로 수용되지 못하고, 지방자치 수호나 확대를 위해 그쳤다고 할 수밖에 없다. 또 자치권을 헌법상의 기본적 인권과 같이 해석하려는 신고유권설도 아직 큰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최근 일본이나 우리나라에서 회자되고 있는 주민주권론이나 지역주권론도 주권의 개념을 왜곡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우리 헌법 제1조 제2항에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국민주권을 규정하고 있다. 이 논리에 따라 주민주권을 규정하면 ‘지방자치단체의 모든 권력은 주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의미가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물론 대부분의 자치 선진국에서도 주민으로부터 자치권이 나왔다고 실정법에 규정돼 있지 않다. 따라서 주권의 통상적 개념에서는 주민주권이라는 개념은 성립하기 어렵다. 국민주권론에 근거한 규범적 주장이나 새로운 법 해석의 방식만으로 지방권을 주장하는 데는 한계가 있고, 이분법적인 논리에 근거해 자치권이 주민으로부터 나왔다고 실정법을 해석하는 예는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21세기에 적합한 다원주의적 통치이론
이런 가운데 중앙-지방 관계를 독자 권한을 가진 ‘지방의 합의를 구하는 공동-거버넌스 체제’라고 해석되는 토르베커 체제는 19세기 중반에 나왔지만 21세기 중앙-지방 관계 모델로 여겨질 만하다. 20세기중반을 넘어서면서 국민국가 중심의 통치체제는 세계화, 지방화, 시민사회의 성장, 정보화로 약화되면서 일극 중심에서 다원적 체제로 변모했기 때문이다.

사실 공동-거버넌스 체제가 오늘날 사회적 난제를 해결하는데 보다 적합하다는 것은 오늘날 성행하는 거버넌스 이론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계층적 관계와 비해 거버넌스 체제에서는 일의 추진이 복잡하고 또 결과가 불확실하다. 하지만 민주주의 기본원리가 권력의 분립과 균형이라는 사실과 사회의 어떤 부분도 소외돼서는 안된다는 규범에 비춰보면 거버넌스체제에서 생길 수도 있는 비효율을 감내해야 할 것이다.

‘미국 민주주의’에서 토크빌(A. Tocqueville)은 대혁명 후의 프랑스와 달리 독립혁명과 건국 후 세계 최초로 민주주의가 정착 및 발전할 수 있었던 원인을 중간조직, 즉 지방자치단체, 시민 조직, 종교 조직의 존재에서 찾았다. 국민주권이란 이름 아래 국민과 국가만이 절대적 존재고, 이들 중간조직의 독자성을 무시하는 논리는 국가에 대한 견제장치로서 이들의 가치를 무시해 파시즘이나 나치즘 같은 전체주의로 귀결됨을 역사에서 봐왔다. 따라서 국가와 국민 사이의 중간조직으로서 지방자치단체를 포함한 사회 조직의 고유성에 대한 재인식이 필요하다.

국가의 절대성을 부인하고, 국가도 단체 중의 하나라는 토르베커의 공동-거버넌스 체제의 소개와 몇개 예만으로 국가와 지방이 통치권을 공유한다는 주장을 받아들기에는 부족한 점이 없지 않을 것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국가주권론에 밀려 근대국가 형성의 논리로 인정받지 못한 체 소수의 의견으로 무시당한 17세기 알투지우스나 19세기 기르케의 이론, 즉 국가와 개인 사이의 중간단위의 독자성에 대한 이론이 널리 알려질 필요가 있다. 21세기에 민주화되고 다기화된 사회에서는 이들의 다원주의적 주장이 더 적합한 통치이론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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