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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원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특임교수 “시민적 공화주의 실현하는 현대직접민주주의 제도화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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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원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특임교수 “시민적 공화주의 실현하는 현대직접민주주의 제도화 하자”
  • 박 철 기자
  • 승인 2020.01.08 16: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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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 ❹ 주권자 민주주의 변화 요구를 현실로
임채원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특임교수가 발표를 하고 있다. / 사진=박 철 기자
임채원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특임교수가 발표를 하고 있다. / 사진=박 철 기자

2019년 12월 3일 열린 국제심포지엄 ‘전체세션’에서 임채원 교수는 ‘촛불혁명 이후 직접 민주주의 진화와 한계’ 발제에서 시민들의 직접 참여를 통한 촛불혁명은 간접민주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형태의 주권자 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어 임채원 교수는 촛불혁명 과정에서 발화한 시민적 공화주의를 실현하는 주권자 민주주의 정책 수단으로서 현대직접민주주의를 제안했다. 이에 기자는 정치 패러임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는 오늘날 시민적 요구를 담아내고, ‘내가 나를 대표한다’는 주권자 민주주의를 어떻게 하면 현실화시킬 수 있을지를 갈파한 임채원 교수 의견과 제안이 의사결정권자들 테이블에 올려지길 기대해 본다.   <편집자 주>

2016년에서 2017년까지 대통령탄핵 과정을 주도했던 시민들의 직접 참여를 촛불혁명이라고 한다면, 그 혁명은 시민 참여를 통한 레짐변화의 제도적 변화가 수반돼야 그 의미가 살아난다. 시민들의 요구가 제도적 변화를 통해 기존 정치체제를 넘어설 때 비로소 혁명은 혁명다워진다. 그리고 이런 혁명은 궁극적으로는 헌법 개정을 통해 시민들의 정치 참여를 제도화할 수 있다. 

촛불혁명은 미국 독립 전쟁, 프랑스 대혁명, 영국의 청교도 혁명과 명예혁명 이후에 나타난 근대 대의제 민주주의라는 간접민주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형태의 주권자 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있다. 이 주권자 민주주의는 대의제를 바탕으로 하지만, 국민주권이 실현될 수 있는 방법으로 직접민주주의를 수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본고는 촛불혁명 과정에서 발화한 시민적 공화주의를 실현하는 주권자 민주주의의 정책 수단으로서 시민발의와 국민투표의 현대직접민주주의를 제안한다.

시민적 공화주의 등장

공화적 에토스가 분출한 2016년 10월 말부터 2017년 3월 초까지 광장에서는 매주 거의 100만명이 직접적인 시민행동에 참여했다. 시민행동의 직접적인 원인은 권력자의 부패 때문이었다. 대통령과 그 주변 인물들이 사익(self-interest)을 추구하기 위해 공적 가치(public value)를 훼손했다. 공공의 것(res publica)이 권력자의 사적인 것(res privita)에 종속됐다.

매주 시민대집회에 나온 100만명과 이들을 지지하고 공동체적인 일치감과 시민의식을 자각한 흐름을 한마디로 압축한다면, 이를 ‘시민적 공화주의’라 할 수 있다. 시민적 공화주의는 개인주의적 자유주의 또는 소유적 개인주의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공공성을 기반으로 개인이 사적으로 누려야 할 권리의 확보보다는 시민으로서 갖춰야 할 덕성(virtues)의 고양을 강조하는 정치적 아이디어다.

매주 100만명이 시민대집회에 참여한 이유는 민주공화국의 근간이 공공성이 권력자로부터 심각하게 침해받고, 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시민 행동을 실천해야 한다는 사회적 책임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런 시민적 책임성을 시민적 공화주의에서는 시민적 덕성이라고 한다. 사적 이해관계를 떠나 공동체 일에 헌신함으로써 인간은 자아를 실현할 수 있다는 믿음이 시민적 덕성에는 전제돼 있다. 시민적 공화주의자들은시민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정치적 동물로서 개인보다는 정치 공동체인 폴리스에 대한 헌신과 봉사를 시민적 책임으로 믿고 있다. 주말마다 광장으로 나온 시민적 힘의원천은 이런 시민적 덕성이 분출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유주의와 공화주의 논쟁

2017년 한국의 시민대집회에서 공화주의가 주목을 받은 이유는 김영삼 정부 이후 추진돼 온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로서 공공성과 시민적 덕성에 기반한 시민 참여의 확대에 대한 시민적 요구 때문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한국 사회의 자유주의 흐름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사회적 공동선에 대한 시민적 요구라고할 수 있다. 지난 30년 동안 1980년대까지 한국 사회를 지탱했던 평생 직장 개념은 무너졌고, 개인의 실패는 나태하거나 무능한 개인의 책임이며, 경쟁과 효율성이 모든 가치를 판단하는 첫 번째 기준이 됐다. 2017년 시민대집회는 직접적으로는 부패한 권력을 심판하는 것이지만, 지난 30년간의 신자유주의적인 흐름에 대한 근본적 반성을 요구하고 있다.

시민적 공화주의는 정부 정책과 기업윤리로서 신자유주의를 넘어서 근본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자유주의적인 것이 아닌 다른 대안을 묻고 있다. 자유주의는 근대의 주인공이었던 부르주아 계급의 철학적 기초였다. 봉건적인 신분제의 사슬을 끊고 모든 인간이 자연권의 소유자로서 인간은 본질적으로 사적 개인이라는 것이다. 자유주의는 정치는 반드시 개인적 자유와 개인의 재산을 보호하는 역할에 그쳐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주의는, 개인이 사적 이익을 추구할 때 그 재산권을 보호하고 재산 소유를 정당화하는 소유적 개인주의다. 이들은 공익을 허구라고 봤다. 세상의 이익은 개인들의 사적 이익을 총합한 것에 불과하며 개인을 넘어선 공적 이익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사적 영역의 강조로 공적 영역이 무시됐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인간의 피폐화에 대한 한국 사회의 자기반성이 광화문 촛불집회에서 시작되고 있다. 시민들이 대통령 탄핵이라는 공적 문제에 대해 적극적 참여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2017년 시민대집회는 아렌트적인 공적 영역의 부활이라고 할 수 있다. 시민들은 가족과 보내던 주말생활이 아니라 광장에서 적극적으로 그들의 공민(公民)으로서 의무와 책임을 자발적으로 수행하기 시작했다. 이 시민대집회의 정치적 의미는 대통령 탄핵이라는 소극적인 것에서 벗어나 사적 영역을 넘어서는 공적 영역에 대한 적극적 참여로 해석돼야 한다.

■소극적인 직접민주주의 제도화

직접민주주의와 주권자 민주주의

촛불혁명은 대의제 민주주의라는 정치 패러다임을 주권자 민주주의(sovereignist democracy)로 바꾸고 있다. 촛불혁명 당시 광장에서는 “이게 나라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 순간은 근대 민주주의 패러다임이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주권자 민주주의로 진화한 순간이었다. 촛불혁명은 500년간 철옹성처럼 버틴 ‘시민의 대표는 대리하는 것이 아니라 위임받았다’는 근대 대의제 민주주의의 명제에 근본적 반성과 성찰을 던지고 있다. 대의제 민주주의는 선거로 뽑은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이 민의를 정치에 잘 반영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주권자 민주주의의 방점은 직접민주주의와 간접민주주의의 혼합형이라는 데만 있지 않다. ‘내가 나를 대표한다’ 게 핵심이다. 주권자 민주주의는 일방적으로 권한을 위임하는 일은 그만두겠다는 선언이다. 주권자 민주주의가 도시 공화정의 직접민주주의, 시민혁명의 대의제 민주주의에 이은 문명사적 전환으로 평가받아야 할 이유다. SNS를통한 트럼프식 트위터 정치는 새로운 정치의 장을 열었다. 국민을 제대로 대표하지 못하는 의회와 이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언론은 정치적 기제로서 역할이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트럼프식 정치보다 SNS를 통한 정치보다 더 근본적인 문명사적 전환이 진행 중이다. 촛불혁명과 주권자 민주주의는정치 패러다임을 근본부터 바꾸고 있다.

현대직접민주주의 제도화 필요성

촛불혁명의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요구에도 한국에서 직접민주주의 요구는 제도화되지 못하고 있다. 직접민주주의는 청와대 청원에서 나타나고 있다. 국민적 이슈는 대의제 기관인 의회에 수렴되는 것이 아니라, 청와대 청원제도로 몰려가고 있다. 20만 이상의 국민청원이 있는 경우에 청와대는 답변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이 제도는 직접민주주의가 제도화됐다기보다는 기존의 청원제도가 활성화된 수준에 그치고 있다.

촛불혁명 이후 한국에서 도입이 필요한 현대직접민주주의 제도는 핵심적으로 시민발의(citizens’ initiatives)와 국민투표(referendum)다. 전근대적 직접민주주의는 비밀투표가 보장되지 않았던 것에 비해, 현대직접민주주의는 비밀투표를 보장한다. 지역 사회 단위에서 여전히 이용되고 있는 타운 홀 미팅 등 회합민주주의는 비밀투표가 아니라, 공개적인 발언에 의해 사실상 공개투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직접민주주의는 비밀투표를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전통적 직접민주주의와 차이가 있다.

한국에서도 현대 직접민주주의는 제안될 수 있다. 시민발의는 스위스 사례를 참고해서 유권자의 2%를 요건으로 하는 제도로 도입될 수 있다. 2017년 대통령 선거를 기준으로 할 때, 4247만명으로 2%은 84만명 정도가 된다. 유권자의 2%(2017년 기준 84만명)이 시민발의를 하면 자동적으로 국민투표에 붙여지고, 그 결과를 국회가 형식적인 입법을 통해 새로운 법률로 효력을 발휘하는 제도를 도입할 수 있다. 시민발의 사안들을 모아서 1년에 1차례 혹은 2차례의 국민투표를 실시할 수 있다.

현대 직접민주주의는 근대 시민혁명의 산물인 대의제 민주주의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것이다. 이 제도가 도입되더라고 입법을 주도하는 것은 여전히 국회가 된다. 그러나 이 제도가 도입되면 국회의원들은 더 긴장해서 시민 참여적이고 적극적인 입법 활동을 하게 된다. 또 다른 장점은 국회의원들이 직접적인 이해당사자가 되는 법안에 대해 대안적인 입법수단을 국민들이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선거법, 선거구 획정 등 국회의원이 직접적인 이해당사자가 돼 합의를 보기 힘든 사안에 대해 시민발의를 통한 국민투표가 대안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촛불혁명 이후 국민적 요구는 직접민주주의의 대안적 방법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제도권 정치는 이를 수용하는 데 한계를 보이고 있다. 촛불혁명의 제도화는 시민적 공화주의와 주권자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해석할 때 직접민주주의를 통한 헌법 개정이다. 이를 통해서 촛불혁명의 제도화는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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