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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우 인하대 교수 “주권은 이양될 수 없고, 입법권 주체는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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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우 인하대 교수 “주권은 이양될 수 없고, 입법권 주체는 국민이다”
  • 박 철 기자
  • 승인 2020.01.08 1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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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 ❼ 직접민주주의 확대 방안
이기우 인하대 교수(지방분권전국회의 상임공동대표)가 발표를 하고 있다. / 사진=박 철 기자
이기우 인하대 교수(지방분권전국회의 상임공동대표)가 발표를 하고 있다. / 사진=박 철 기자

2019년 12월 3일 열린 국제심포지엄 ‘분과세션2’에서 이기우 교수는 ‘헌법 개정과 직접민주주의’ 발제에서 순수한 대의제 하에서 국회가 국민의 의사에 명백히 반하는 결정을 해도 국민은 어떤 조치도 취할 수가 없다며, 주권자를 무력하게 하는 정치체제, 국민을 좌절하게 하는 정치체제를 민주적이라 할 수 없고, 국민을 주권자라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이기우 교수는 국민이 직접 자신의 요구를 관철할 수 있어야 하고(국민투표), 국민이 직접 나서서 법률을 제정할 수 있어야 한다(국민발안 내지 국민입법)고 제안했다. 이에 기자는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고 존립하도록 하는 토양을 제공하는 직접민주제 도입, 더 나아가 비록 국민이 선거를 통해 의사결정권을 위임할 수 있더라도 직접민주주의를 통해 이를 언제든지 수정할 수 있을 경우에만 국민은 실질적인 주권자로서 지위를 갖는다는 것을 헌법 차원에서 제기한 이기우 교수의 제안이 실현되기 기대한다.   <편집자 주>

헌법 개정의 의미

주권은 무엇보다도 입법권 행사를 통해 구체화된다. 헌법도 입법권의 일종으로 주권의 표현이다. 과거 제정되고 개정된 현행 헌법은 제정 당시 또는 개정 당시의 주권자의 의사를 표현한다. 주권자 의사는 영구불변하는 것이 아니다. 헌법 제정 당시나 개정 당시에 주권자 의사는 시간의 경과로 달라질 수 있다. 제정 당시나 개정 당시에 충분히 표현되지 못한 주권자 의사도 있을 수 있다. 또 과거의 헌법 환경에 맞춰 제정되거나 개정된 헌법이 헌법 환경의 변화로 현재의 헌법 환경에 맞지 않게 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주권자의 변화를 고려해야 한다. 과거 주권자와 현재의 주권자 사이에는 상당한 괴리가 있을 수 있다. 국민주권 하에서도 과거의 국민과 현재의 국민이 같은 국민이 아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국민의 의사는 변화될 수 있고, 국민을 이루는 구성원도 교체된다. 주권자의 세대교체가 있게 되는 것이다. 설사 과거의 제정 당시나 개정 당시에 주권자인 국민 의사에 완벽하게 부합했다고 하더라도, 현재 헌법 환경과 헌법 제정권자의 의사에 합치되지 않을 수 있다. 이점에서 헌법 개정은 과거 주권자 의사와 현재 주권자 간 의사 불일치를 극복해 헌법이 현재 주권자 의사에 합치하도록 하는 주권 행사다. 

더구나 현행 헌법이 과거 주권자 의사조차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면, 헌법 개정 필요성은 그만큼 더 커진다. 헌법 개정은 혁명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헌법절차다. 이를 위해 헌법마다 헌법 개정 절차를 마련하고 있다. 이는 헌법의 사전적 혹은 사후적인 흠결을 현재 주권자의 의사에 합치되도록 완성하기 위해 헌법 자체가 인정하고 보장하는 절차다. 우리 헌법도 헌법 제128조에서 130조에 걸쳐 헌법 개정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직접민주주의 확대

현행 헌법은 국민주권의 실현수단으로 선거권만을 규정하고 있으나 국민의 최종적인 결정을 보장하는데 충분한 수단이 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화아카데미 헌법 개정안에서는 법률에 대한 국민의 직접 결정으로서, 국회 의결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수단으로서 국민투표와 국회가 국민의 요구를 무시하는 경우, 국민이 직접 의제를 설정하고 결정하는 국민발안제 도입에 관한 논의했다. 국회가 의결한 법률안에 대한국민의 거부(veto)로서 임의적 국민투표에 대해서는 많은 논쟁이 있었다. 이번 헌법 개정안에서는 국회가 의결한 법률안을 거부하기 위한 임의적 국민투표는 제외하고, 국민발안만 도입하기로 했다.

국민투표와 국민발안에서는 국민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 상향적인 의사결정을 하는데 비해, 안건에 대한 국민들의 결정을 표방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권력자의 의도를 위에서 아래로 하향적으로 실현시키려는 제도를 ‘플레비시트’라고 하여 국민투표를 의미하는 ‘레프렌덤’과 구별한다. 레프렌덤이 국민주권을 능동적으로 실질화하는 제도임에 비해, 플레비시트는 국민주권을 위협하고 국민을 수동적인 통치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직접민주주의 도입 배경

국민주권 실현 수단으로서 직접민주주의

헌법 제1조 제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라고 하여 국민주권주의를 선언하고 있다. 국민이 주권을 갖는다고 하기 위해서는, 국민이 최종적인 의사결정권을 가져야 한다. 국가의 모든 결정은 궁극적으로 국민의 의사결정에 근거를 찾을 수 있어야 국민이 주권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경우에 국민이 최종적인 의사결정권을 직접 행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에 국민들은 대의기관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에만 비상적으로 결정권을 행사하게 된다.

직접민주주의 하에서도 대부분의 일상적인 사안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결정한다. 국민에 의한 국민투표나 국민발안이 제기되지 않으면, 국회가 결정한 것이 최종적인 것이 된다. 국민이 직접 결정하지않고, 국회가 최종적인 의사결정을 하고 국민이 이에 구속받는다면, 국민을 주권자라고 할 수 있는지가 문제된다. 이 경우에도 국민이 국회의 결정에 대해서 국민투표를 통해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고, 국민발안권을 통해 입법권을 직접 행사할 수 있음에도 이를 행사하지 않는 것은 국회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로 하는 의사결정이라고 볼 수 있다.

국민투표 제기 기간 내에 국민투표를 제기하지 않는 것은, 이에 동의하는 의사표시와 동일시할 수 있다. 또 국민발안을 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로 국회의 부작위에 대해서 별도로 국민발안을 할 의사가 없음을 표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묵시적으로 최종적인 의사결정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여전히 국민은 주권자로서 지위를 가진다.

하지만 국민투표와 국민발안권을 보장하지 않으면, 국민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기관인 국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국민은 더 이상 주권자가 아니다. 이 경우에 국민은 명목상의 주권자에 불과하고, 실질적으로는 주권자가 아니게 된다. 실질적으로는 국회가 주권자가 된다. 국민이 대표기관 구성에 참여하더라도 마찬가지 결과다. 왜냐하면 선거를 통해 국민은 임기기간 동안 선택한 후보자의 모든 안건 결정에 대한 최종적인 결정권을 백지위임을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선거 행위를 최종적인 결정권의 양도인 ‘주권 양도’로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주권은 양도될 수 없다.

만약 선거가 당선된 국민 대표자에게 임기기간 동안에 국가의 최종적인 결정권을 백지위임하는 것이라면, 이는 더 이상 주권의 행사라고볼 수 없다. 그런 선거는 국민이 임기기간 동안 주권을 포기하는 노예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된다. 이점에서 루소가 영국의 대의민주주의를 가리켜 “선거일만 자유로운 노예 제도”라고 한 것은 타당하다. 비록 국민이 선거를 통해 의사결정권을 위임할 수 있더라도 직접민주주의를 통해 이를 언제든지 수정할 수 있을 경우에만, 국민은 실질적인 주권자로서 지위를 갖는다고 할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국회 결정은 국민의 최종적인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잠정적인 결정에 해당하고, 국민이 국민투표 기간 내에 제기하지 아니하는 때에 비로소 의안에 대한 최종결정이 이뤄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대의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서 직접민주주의

순수한 대의제 하에서 국민은 국회가 국민의 의사에 명백히 반하는 결정을 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냥 쳐다볼 수밖에 없다. 명색이 주권자인데 국민은 자신의 의사에 반하는 국회 결정에 대해 어떤 조치도 취할 수가 없다. 국민들은 좌절하고 어쩔 수 없는 무력감에 빠질수 밖에 없다. 주권자를 무력하게 하는 정치체제, 국민을 좌절하게 하는 정치체제를 민주적이라고 할 수는없다. 국민의 대표기관이 선처를 하도록 쳐다만 보고 있어야 하는 국민을 주권자라고 할 수는 없다.

국회가 국민이 원하지 않는 것을 결정하는 경우에 국민이 이를 거부할 수 있어야 비로소 국민이 주권자의 지위에 있게 된다(국민투표). 그래야 국민의 의사와 대의기관인 국회의 결정이 일치할 수 있다. 또 국회가 국민이 요구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경우가 국민이 직접 자신의 요구를 관철할 수 있어야 한다. 즉 국회가 국민이 요구하는 입법을 하지 않는 경우에 국민이 직접 나서서 법률을 제정할 수 있어야 한다(국민발안 내지 국민입법).

국민이 이런 결정을 하지는 않더라도, 이런 제도가 존재하고 행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장돼 있는 것만으로도 국회는 국민의 의사에 반하는 의사결정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국민이 진지하게 원하는 법률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서 입법화하려는 진지한 노력을 하게 될 것이다. 즉 직접민주주의를 도입함으로써 대의제는 비로소 대의민주주의를 실현하게 되고, 민주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자극하게 된다.

그래도 국회가 국민의 의사와 반하는 결정을 하게 되는 경우에 국민들이 이를 거부할 수 있고, 국회가 국민의 요구를 외면하면, 국민들이 스스로 이를 실현하도록 함으로써 주권자인 국민은 주권자로서 지위를 실질적으로 보유하게 된다. 즉 직접민주주의는 대의제도를 대의민주주의로 운영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해준다. 직접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가 존립할 수 있도록 하는 전제조건이 된다. 이점에서 직접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와 모순되거나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대의민주주의가 존립하도록 하는 기반이 되고, 그 토양을 제공하게 돼 양자는 서로 공존이 가능하게 되고 불가분적인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게 된다.

대의기관에 대한 비상통제장치로서 직접민주주의

많은 논자들이 모든 의사결정을 국민들이 직접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직접민주주의는 실현가능성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기초하고 있다. 오늘날 직접민주주의는 국가의 모든 의사결정을 국민이 직접 결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대의기관인 국회가 대부분의 일상적인 의사결정을 하도록 하되, 다만 국회 의사가 국민 의사에 일치하지 않는 예외적이고 비정상적 경우에 국민이 직접 결정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 점에서 직접민주주의는 국회에 대한 국민의 비상통제장치다. 국회가 국민의 의사에 반해 의사결정을 하는 경우에 국민투표를 통해 거부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비상제동장치와 같은 역할을 한다. 반대로 국회가 국민이 필요한 결정이나 입법을 해야 함에도, 이를 하지 않는 경우에 국민이 직접 입법기관이 돼 국가를 작동하게 만드는 비상가속장치가 된다. 직접민주주의 제도는 대의기관과 국민 사이의 권력 분립장치가 돼 서로 견제하도록 만든다. 적절한 긴장관계를 형성해 권력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서로 깨어있도록 만든다.

국회도 입법기관이 되고, 국민도 입법기관이 된다. 국회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경우에 국민이 직접입법기능을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국민이 직접 나설 필요가 없도록 국회가 국민 의사를 미리 최대한 반영하도록 만든다. 국민투표와 국민발안은 국회의 기능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국회가 제 역할을 하도록 만든다. 이 점에서 직접민주주의는 대의기관 내지 권력기관에 대한 불신에 기초를 두고 있다. 주권자인 국민에 대한 신뢰에 기초를 두고 있다.

직접민주주의는 제도적으로 보장돼 있다고 할지라도 평상시에는 작동하지 않는다. 국회가 국민의 뜻에 부합되는 입법 활동을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면 직접민주주의는 행사될 필요가 없다. 국회가 국민 의사와는 무관하게 결정하거나, 하지 않는 비정상적인 경우에 비로소 작동하게 된다. 직접 민주주의는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대의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도록 하는 비상적인 통제수단이 된다. 국회에서 대변되지 못하는 소수자가 직접민주주의 제도를 통해 거부권을 행사하거나, 국민입법을 가능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직접민주주의 제도는 개별안건에 대해서 잠재적인 다수자가 현실적 다수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점에서 직접민주주의는 국회의 다수에 의해 대변되지 못하는 소수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라고 할 수도 있다. 소수자를 위한 비상통제장치가 된다.

직접민주주의의 헌법적 보장 방법

직접민주주의를 헌법에 보장하는 방법은 정치적 기본권으로 보장하는 방법이 있다. 현행 헌법은 인사에 관한 선거권만 보장하고 있으나, 사안의 결정에 관한 국민투표권과 국민발안권을 보장하는 방법이 있다. 또 국민파면권을 의미하는 국민소환권을 헌법에 규정하는 방법이다(지방분권개헌 국민행동의 개헌안). 직접민주주의를 정치적 기본권으로 규정해서 보장의 수준을 높이는 방안이라고 본다.

다음으로는 같은 직접민주주의 수단을 국회 또는 입법부를 규정하면서 국민발안과 국민투표는 입법절차에서, 국민소환은 국회의원의 지위 부분에 규정하는 방법이다(대화문화아카데미 개헌안, 국민주권회의 개헌안) 헌법 제40조는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민이 안건에 관한 결정할 능력이 없다는 주장은 주권자인 국민을 믿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전제조건을 부정하는 것이다. 민주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입법권은 주권의 표현이다. 입법권이 국회에 속한다는 것은 국회가 주권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회주권주의를 헌법이 규정한 것이다. 헌법 제2조의 국민주권주의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이는 5.16 이후에 개정된 헌법의 산물이다. 그 이전의 헌법에서는 “입법권은 국회가 행한다”로 돼 있었다.이는 입법권은 국민에게 속한다는 것을 전제로 국회가 대신 행사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런데 현행 헌법은 아예 국회에 입법권이 귀속된다고 하여 국민주권주의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선거에 의해서 주권이 국회의원에게도 이양되는 것이 아니다. 주권은 이양될 수 없다. 국민이 주권자고 입법권의 주체다. 따라서 헌법 제40조는 “입법권은 국민에 속한다. 국민은입법권을 직접 또는 그 대표기관을 통해 행사한다”고 개정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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