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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우선 대의민주주의 문제부터 해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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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우선 대의민주주의 문제부터 해결하자”
  • 박 철 기자
  • 승인 2020.01.08 1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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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 ❽ 개혁 순서에 대해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가 발표를 하고 있다. / 사진=박 철 기자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가 발표를 하고 있다. / 사진=박 철 기자

2019년 12월 3일 열린 국제심포지엄 ‘전체세션’에서 최태욱 교수는 토론에서 시민들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끼치는 대부분의 결정들이 통상의 대의제 기구에서 이뤄진다며, 선거 제도 개혁과 권력구조 개편 등을 통해 대의제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즉 현대 민주주의 체제의 기본골격은 대의제며, 직접민주주의는 보완 역할을 할뿐이라고 강조했다. 즉 정치엘리트 카르텔 구조 하에서 기득권자들과 잠재적 수혜자들이 직접민주주의를 찬성할리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항 없이 직접민주주의 강화 방안이 채택될 수 있도록 하려면 권력공유형 합의제 민주주의로 전환시키는 것이 앞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기자는 직접민주제에 앞서 대의민주제부터 바로서야 한다며 정치 개혁에도 순서가 있다는 최태욱 교수의 제시안이 정치권에서 심도 있게 논의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골격이 바로 서길 기대해 본다.   <편집자 주>

직접민주주의 강화는 어느 나라에서나 필요하다. 아무리 발달된 대의제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정부(입법부 및 행정부)의 사회경제적 갈등조정 및 관리 능력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대의제 민주주의 자체에 심대한 흠결이 있는 경우라면 직접민주주의 강화에 앞서 우선, 그 대의제부터 개혁해야 할 것이다. 많은 경우 그 한계는 직접민주주의 강화를 통해 극복할 수 있다. 특히 헌법이나 그에 필적할만한 주요 법률의 개정, 그리고 주권의 일부 위임이나 포기를 의미하는 조약의 체결 등과 같이 국가 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문제’를 결정할 때는 반드시 시민 발안이나 시민투표 등의 직접민주주의 기제를 가동해야 한다. 

오늘날 거의 모든 대의제 민주주의 국가가 추진하고 있는 지방분권개혁의 궁극적인 목적은 시민자치정부 실현 혹은 ‘마을공화국’ 건설을 통해 ‘권력을 시민 곁으로 이동시키는’ 데 있다. 국가가 무수한 마을 공동체로 나뉠 경우, 그 기초 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문제’도 반드시 주민이 직접 결정해야 한다. 결국 거의 모든 민주국가가 직접민주주의 강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직접민주제는 대의제 보완역할

그러나 현대 민주주의 체제 기본골격은 역시 대의제며, 직접민주주의는 거기에 적절히 결합돼 보완역할을 할뿐이라는 점이다. 전국 차원에서 노동자와 자본가, 대기업과 중소상공인, 정규직과 비정규직, 청년과 노장년, 여성과 남성 사이 등에서 벌어지는 주요 사회 경제적 갈등은 일차적으로 대의제 민주주의 기제를 통해 조정되고 관리돼야 한다.

그러므로 사회 경제적 갈등은 매우 심한데, 그 관리 능력은 형편없는 한국 같은 나라에선 일차적으로 대의제 민주주의 흠결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대의제 민주주의 핵심 기능은 주요 갈등 주체들에게 정치적 대표성을 두루 제공하는 것인 바, 제대로 된 대의제 민주주의라면 그 주체들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이념과 정책으로 구조화된) 다당제, 그리고 그런 다당제를 정착시킬 수 있는 비례성 높은 선거 제도, 그리고 다양한 갈등 주체들을 대표하는 정당들이 정치권력을 공유할 수 있는 (합의제형)권력 구조가 필요하다.

그런데 한국의 주 선거 제도는(정책과 이념으로 구조화된 다당제가 아니라) 지역과 인물 중심의 독과점 정당체계를 부추기는 소선거구 일위대표제며, 권력구조는 (정당의 행정부 참여를 어렵게 하는) 제왕적 대통령제다. 선거 제도와 권력구조 모두 (이념이나 정책 중심의 권력 공유형 합의제 민주주의가 아니라) 인물이나 지역 중심의 승자독식형 다수제 민주주의를 촉진하는 정치 제도들이며, 따라서 ‘정치엘리트 카르텔’ 구조를 고착케하는 배제적인 성격의 것들이다. 한국에선 선거 제도 개혁과 권력구조 개편이 급선무인 까닭이다.

‘가장 중요한’ 사안은 시민이 직접 결정해야 하겠지만, 그보다 수적으로는 훨씬 많은 ‘보통 중요한’ 사안은 의회가, 그리고 그보다 또 훨씬 더많은 ‘일상적’ 사안은 의회 또는 행정기관이 결정한다. 시민들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끼치는 대부분의 결정들이 통상의 대의제 기구에서 이뤄진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봐도 선거 제도 개혁과 권력구조 개편 등을 통해 대의제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 급선무인 것이다.

시민사회와 정치사회 이중점검장치 필요

그렇다고 한국의 직접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해선 안 될 것이다. 가능하고 급한 것부터 서서히 도입할지라도 직접민주주의전체를 보여주는 종합설계도는 미리 갖춰놔야 한다.

직접민주주의를 설계함에 있어서는 그 발동 요건과 조건, 그리고 범주 등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보 습득, 의견 교환, 대안 공유 등이 이뤄지는 숙의 과정을 충분히 확보하는 일이다. 그래야 (포퓰리즘에 흔들리지 않는) 시민사회의 집단지성이 제대로 형성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선 시민이 직접 결정하는 의제의 수를 ‘가장 중요한 것’ 몇 가지로 최소화하고, 그 대신 각각에 대한 숙의 기간은 (시민에게 과부하가 걸리지 않는 정도에서) 최대한 길게 잡아야 한다.

숙의 과정에는 반드시 정당, 의회, 행정부 등의 대의기관 참여가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발의 적격성을 기존 대의제 기제를 통해 또 한 번 점검하는 일은 행여 포퓰리즘으로 흐를 가능성을 미연에 방지한다는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시민사회와 정치사회의 ‘이중점검장치’가 필요하다는 의미인데, 직접민주제와 대의제의 이런 결합 절차를 구비한 스위스의 준직접민주제를 ‘상호작용적 직접민주주의 모형’이라고 한다.

정치개혁에도 순서가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직접민주주의 발전에 앞서 대의제 민주주의부터 바로서야 한다. 정치개혁에도 순서가 있다는 것이다. 골격이 바로 서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보완재도 별 효과를 낼 수 없다. 선거 제도나 권력구조 등 한국 대의제의 골격을 이루고 있는 정치 제도들은 인물이나 지역 중심의 승자독식형 다수제 민주주의를 부추기는 것들이며, 따라서 ‘정치엘리트 카르텔’ 구조를 온존시키고 있는 제도들이다. 이 제도들이 건재하는 한 그 기득권자들과 잠재적 수혜자들이 ‘권력을 (자신들로부터) 시민 곁으로 이동시키는’ 직접민주주의 강화에 찬성하거나 좌시할리 없다.

선거 제도 개혁과 권력구조 개편을 통해 정당체계를 완전히 바꿔놓음으로써 한국의 대의제를 이념과 정책 중심의 권력공유형 합의제 민주주의로 전환시켜야 기존의 (인물과 지역 중시의) 정치인 카르텔이 붕괴될 것이고, 그래야 커다란 저항 없이 직접민주주의 강화 방안이 채택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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