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19:15 (금)
박 철 주민자치 편집장 “파트타임 민주주의에 풀타임 민주주의 도입 필요”
상태바
박 철 주민자치 편집장 “파트타임 민주주의에 풀타임 민주주의 도입 필요”
  • 박 철 기자
  • 승인 2020.01.08 21: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년특집] ⓫ 주민자치와 직접민주주의 관계

오늘날 다수의 학자들은 시민사회 영역에서는 대의민주주의 보완으로 직접민주주의가 작동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정부가 추진하는 ‘주민자치회’를 직접민주주의 실험장으로서 거론한다. 그러나 주민자치회는 지역 사회의 공동체·결사체 허브로서 ‘민민협의체’이자 행정과 주민들을 연결하는 ‘민관중간지원조직체’, 즉 주민자치 원리를 실천하는 주민자치주체기구가 되기에는 그 간격이 매우 커 보인다. 이에 따라 박철 편집장은 오늘날 대한민국 민주주의 변화의 핵심 가치 원리로 ‘주민자치’와 ‘직접민주주의’를 꼽고, 이에 대한 내용을 ‘주민의 자치’(박철 외2, 3부 시민·주민 도구에서 주인 되기, 소망, 2018.12.10.)와 ‘한국주민자치 이론과 실제’(박철 외9, 제2장 풀뿌리 민주주의 토대로서 주민자치, 대영문화사, 2019.04.25.)에서 발췌·보완했다고 밝혔다.   <편집자 주>

대한민국에서 직접민주주의가 떠오르고 있다. 특히 박근혜 정부가 2013년 5월 주민자치회 시범실시 이후, 주민자치회가 다스리는(주민조직형) 읍·면·동 단위는 대의제 민주주의도 보완할 겸 주민 스스로 다스리는 직접민주주의를 하자는 의견들이 학자들 사이에서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이어 주민자치 개념에 동네민주주의와 지방민주주의가 등장하면서, 이 제도들도 주민자치회 설치·운영의 목적으로 부상했다. 이어 문재인 정부가 마을협의체이자 주민대표기구로서 ‘주민자치회 설치·운영’을 국정운영과제로 선정하면서 기초지자체(시·군·구) 아래 단위인 읍·면·동은 직접민자, 그리고 시·군·구 주민자치협의체를 중심으로 현장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직접민주주의는 꼭 읍·면·동 단위의 주민자치회가 아니더라도 그동안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그 보완책으로 도입하자는 주장이 심심치 않게 토론회에서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대의제 민주주의가 발달한 오늘날 아무리 한계가 있다고 해도, 대한민국 실정에서는 국가나 지자체 단위에서 직접민주주의를 실시하기에는 주민수가 너무 많고, 범위도 너무 넓어 아래로부터의 숙의와 참여, 그리고 의사결정을 하기에는 중단기적으로는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래서 읍·면·동 단위 이하에서 주민자치회를 통해 직접민주주의를 한번 해보자는 것이다.

그 직접민주주의를 하는 방법들 중 하나가 주민자치회 위원을 주민들이 직접 선출해서 주민자치회를 구성해서, 읍·면·동 내 주민생활과 밀접하면서도 주민의 삶을 크게 바꾸는 의제를 주민들이 직접 발의·결정해서 운영해 보자는 것이 문제 제기였고 방향이었다. 물론 정부, 지자체, 전문가, 지역 리더들이 설계하는 과정에서 지금은 많이 달라지긴했지만, 기본적인 방향 중 하나인 ‘주민총회’가 행정안전부의 ‘주민자치회 표준조례안’에 명시되는 단계에 이르렀다.

직접민주주의와 주민자치의 조건

그러나 정부가 추진하는 주민자치회는 직접민주주의가 지향하는 ‘주민의 생활에 과도한 부담을 주거나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주요 정책결정권을 주민에게 보장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직접민주주의는 시민발의, 국민투표, 재발의라는 수단을 통해 시민들이 입법안을 제안하고, 법안과 헌법 등의 승인 또는 거부를 위해 찬반투표를 진행하는 것이다. 

이를 우리나라 정부가 추진하는 읍·면·동 내 지역 사회에 적용해 보면, 우선 주민투표라는 수단을 통해 주민들이 기존 조례에 대해 주민조례개폐를 청구하고, 조례의 개정 또는 폐기를 위해 주민표결을 진행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주민생활과 밀접하면서 삶에 큰 변화를 주는정책이나 제도에 대해 주민발의라는 수단을 통해 조례 제정 및 정책추진을 위해 승인 또는 거부를 위해 주민표결을 진행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주민자치와 직접민주주의 조건은 개인의 자유가 평등해야 가능하다. 현재 행정안전부나 서울시가 추진하는 주민자치회가 읍·면·동이나 통·리 단위에서 주민총회 운영, 추첨제로 위원 선정, 그리고 주민참여예산제를 운용한다고 해서 직접민주제라고 하지만, 엄밀히 따져서 일반 주민의 입장에서 보면 직접민주주의라고 볼 수 없고, 작은 대의민주주의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정부가 추진하는 주민자치회는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우선 주민자치주체기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즉 지역 사회에 대한 의사결정권(주민들의 공의에 입각한)을 부여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즉 공론장을 형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민자치회는 읍·면·동 단위의 민민협의체는 될 수 있지만(사실 이것도 현재 행안부나 서울시 정책으로 보면 어렵지만), 구 주민자치사업단과 동 주민자치지원관을 통한 행정의 관리·감독 상황 하에서 운영되는 주민자치회는 민관 중간지원조직은 될 수 없다. 고로 주민생활을 크게 변화시키는 정책결정권은 사양하더라도, 하다못해 아래로부터 주민에 의한 정책발안권이나 조례발안권, 특히 이 발안권의 토대가 되는 지역주민들의 공론장조차 주민자치회가 만들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렇다면 주민자치와 직접민주주의는 무엇이며, 왜 오늘날 필요한지 알아보기로 한다.

주민자치 본질과 현실

지방자치와 풀뿌리 자치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풀뿌리 자치조직들(지역 공동체·결사체 등)이 전국 각 지역 사회에서 활발하게 작동돼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주장하는 바다. 그 활발한 작동을 위해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는 주민자치라는 용어가 대세를 이룬다. 이는 그동안 사용돼 오던 지방자치 유형으로서의 주민자치보다는 지역 사회(엄밀히 말하면 읍·면·동 범위 내)에서의 주민단체(주민자치위원회, 주민자치회)를 지칭할때 사용하는 횟수가 매우 많아졌다는 의미에서의 ‘대세’다.

주민자치는 분명히 단체자치(제도자치)와 함께 국가 영역인 지방정부(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의 운영방식의 한 축이지만, 오늘날 지역 현장에서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는 ‘주민자치’라는 용어는 지방정부와 행정기관, 즉 행정의 상대적 영역(그렇다고 시민사회 영역도 아닌)에서 주민대표기구를 설치·운영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유형의 주민자치를 말한다. 즉 1999년부터 읍·면·동에 설치·운영되고 있는 주민자치위원회나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주민자치회(주민대표기구이자 마을협의체라고 함) 운영 원리 혹은 주민자치위원회나 주민자치회 자체를 주민자치라고 부르고 있는 실정이다. 이 지점에서 주민자치라는 용어가 혼란에 빠져 정체성이 모호해졌다.

학술적으로 보면, 일본의 헌법 제92조에 규정된 지방자치는 단체자치와 주민자치의 양자가 불가분의 요소로 어느 한쪽이 결여돼도 지방자치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해석된다(네이버 : 21세기 정치학대사전). 주민자치가 정치적 의미에서의 지방자치인 것에 대해 단체자치는 지방자치의 법률적·제도적 의미다. 즉 주민자치는 지방자치의 한 유형인 것이다.

또 학술적으로 주민자치는 주민들이 조직한 지방단체에 의해 지역사회의 공적 문제를 스스로 결정하고 집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주민자치는 지방 주민이 주체가 돼 지방의 공공사무를 결정하고 처리하는 주민 참여에 중점을 두는 제도를 말한다(네이버 : 행정학사전). 이 행정학사전이 말하는 주민자치 의미를 좀 더 분석해보면, 주민자치는 지방 주민이 주체가 돼 지방자치단체를 조직하고, 그 지방자치단체가 지방의 공공사무를 결정하고 처리하는 과정에 주민이 참여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제도를 말한다. 즉 행정학사전이 의미하는 주민자치는 대의민주제인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지방자치 유형으로서의 주민자치보다, 읍·면·동주민자치회의 운영 원리 혹은 주민자치회 자체를 주민자치라고 부르길 좋아한다(필자의 개인적 의견으로는 이름 자체에 주민자치라는 용어가 붙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그러면서 정부와 시민활동가들(중앙정부와 서울시 주민자치회 관련 활동가)은 주민자치회 설치는 정부에서 주도해야 된다고 주장하며, 운영도 중간지원조직을 통해야(정부와 시민활동가들은 관치가 아닌 마중물 역할이라고 주장) 한다고 말한다. 게다가 현재 주민자치위원들이나 대다수 학자나 연구자들도 주민자치회 설치는 정부에서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단, 운영은 주민들 혹은 주민자치위원들이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이 주장하는 주민자치회 구성원이자 운영 주체인 ‘주민’의 정의가 모호하다. 즉 주민은 현직의 관(행정)과 정치가들이 아닌 것으로만 정의한다. 엄연히 법적(법률, 조례)으로 보면,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과 활동하는 사람들, 그리고 법인(시민사회단체 포함)도 주민이다. 그러나 이들은 공무원이나 관변시민단체는 주민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중앙정부나 지자체, 관변시민활동가, 주민자치위원, 학자와 연구자들이 말하는 읍·면·동 단위 이하에 설치·운영되는 주민자치회와 그 실천 원리인 주민자치에 대한 정의가 갈 길을 잃고 방황의 늪에 빠져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렇다면 주민자치회가 주민자치주체기구가 되기 위한 주요 조건은 무엇인가.

주민자치회보다는 주민자치주체기구

현재 중앙정부나 지자체, 더욱이 주민자치위원회나 주민자치회 자체도 전국 3500여 개 읍면동에서 지역의 주민들에게 ‘주민자치 원리에 의한 주민자치회 설치운영’에 대해 숙의와 협의를 통한 의사결정을 물어본 적이 없다. 그래놓고 아전이수(我田引水)격으로 주민자치라고 한다. 게다가 중앙정부나 지자체는 이제 한 발 더 나아가 주민자치회의 주민자치 사업 재원으로 주민세 활용을 추진하고 있다. 그것도 ‘주민자치 활성화’를 위해 주민세를 환원한단다. 필자는 중앙부처나 지자체들이 말하는 주민자치가 무엇인지, 그리고 주민자치회의 정체성과그 운영방식이 어떤 원리인지 몹시 궁금하다.

한편으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것은 주민자치를 실천할 주민자치주체기구를 만들 때, 지역 사회의 ‘의사결정’에 중점을 둘 것인가, 혹은 ‘사업’(마을 만들기)에 중점을 둘것인가, 아니면 이 둘을 조화시킬 것이냐다. 단, 조화시킬 때는 민민협의체, 민관협업를 위한 중간지원조직체 역할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고도의 설계가 필요하다.

주민자치(主民自治)는 主民의 自治로 주민이 주권=주체=주인으로서 자기통치를 하는 것이다. 즉 주민의 주권에 의해 자기 지역(=시민사회 영역)을 통치하고, 또 통치를 받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시민사회 영역에서 작동되는 주민자치는 일반주민의 뜻에 의해 구성되고, 일반주민의 요구에 의해 운영되는 주민자치주체기구의 실천(작동) 원리인 것이다.

또 생각해야 할 것은 현재 행정의 틀에서 행정의 시각으로 논의되고 있는 주민자치회보다는 근본적으로 주민자치 원리를 실천하는 주민자치주체기구의 작동 원리에 입각해서 접근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중앙정부나 광역시·도에서 추진하고 있는 주민자치회는 행정에의 참여와 사무(업무, 일)에 방점을 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주민자치(혹은 주민집단의 자기통치)는 단지 행정에의 참여와 지역의 일을 하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주민자치 원리는 개인에서 출발해 주민, 시민, 결사체(공동체), 주민자치주체기구, 지방자치단체(지방의회 포함) 관계까지 포함해서 논의해야 한다.

직접민주주의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

누구나 주지하다시피 오늘날 직접민주주의 도입에 대한 요구는 그 어느 때보다 높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에서 직접민주주의는 과연 대의민주제를 대체하는 것인가, 아니면 대의민주제를 더욱 활성화시키는 기제로 작용할 것인가.

이정옥 대구 가톨릭대 교수에 의하면, 스위스 직접민주주의는 대의제민주주의와 보완적이다. 이정욱 교수는 ‘직접민주주의로의 초대’(부르노 카우프만롤프 뷔치나드야 브라운 지음(원제 The iri guidebook todirect demoracy), 리북, 2008.12.15.) ‘편역자 서문’에서 스위스 내각사무처 선거담당부처 대표인 한쓰 우르쓰 윌리 씨는 스위스 직접민주제의 두 축인 시민발의를 자동차의 액셀러레이터, 국민투표를 브레이크, 정부는 핸들로 비유하고 있다고 말한다. 2008년 10월 1일부터 3일까지 스위스 아르가우 주 아라우 시에서 열린 ‘제1회 세계 직접민주주의 대회’에서 칠레 산티아고대학의 정치학 교수인 데이비드 알트만은 직접민주주의를 좁은 의미로 규정하면서 시민발의와 시민발의에 의한 국민투표(referendum)가 제도화돼야만 비로소 직접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따라서 주민소환제, 위로부터 기획된 국민투표(plebiscite), 또는 주민참여예산제는 직접민주주의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유럽 최초의 현대 직접민주주의 싱크탱크인 IRI(the Initiative and Referendum Institute)에 의하면, 직접민주주의는 사회에서 어느 부분이 가렵고 아픈지를 잘 드러내 주며, 직접민주주의 체계는 만족해 하는 패자들을 만들어낸다. 또 직접민주주의는 정치를 교란하는 요소로 작용하기보다는 오히려 정치에 생기를 불어넣고 활성화되도록 만든다. 그리고 단순 의회에서보다 사회의 전 부분에 대해 기대치가 훨씬 높아진다. 특히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실천에 옮겨지는 직접민주주의로부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에 대해 IRI는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첫째, 직접민주주의는 보다 균등한 정치권력의 배분을 뜻한다. 그것은 정치에의 평등한 참여의 원칙을 강화하고, 정치인과 시민을 더욱 가깝게 하며, 그 관계에 새로운 질을 부여한다. 직접민주주의 권리는 시민의 지위를 ‘비상근 정치인’으로 끌어올린다.

둘째, 직접민주주의는 소수파들에게 공청회권을 부여하고, 그것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제공함으로써 갈등이 벌어질 때 폭력에 의존하게 될 위험을 줄여준다. 그것은 미해결된 사회 문제와 갈등의 감지기 역할을 해 정치적 결정의 정당성을 높임으로써 사회 통합을 복돋는다.

셋째, 기본권과 인권에 대한 존중은 어느 민주주의든 기본 전제다. 직접민주주의적 권리의 행사는 민주적 태도와 시민적 품성을 높인다. 그렇게 함으로써 인권을 보호유지하게끔 한다. 민주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도록 훈련된 사람들은 권위주의적 정치의 유혹에 잘 빠지지 않는다.

넷째, 직접민주주의는 시민들이 정부와 의회를 보다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게끔 하고, 정치 제도와 정치 과정, 주요한 정치 문제라는 세 가지 기본적 차원에 있어서 정치인들에게 그들 독자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하고 정치를 혁신하게끔 한다. 직접민주주의는 과두체제로의 표류에 저항하고, 정치 제도들이 외부세계에 대해 스스로 문을 닫는 것을 막는 역동적인 요소다.

다섯째, 직접민주주의는 정치를 보다 더 활발하게 대화하는 정치로, 정치결정을 보다 더 투명하게 만들고, 일체의 행위와 거래들을 평가와 감시의 대상에 포함시킴으로써 공공 영역의 질을 높인다. 인민에 대한 인민의 제안으로서의 시민발의는 대화의 이념을 체내화한 것으로 여기에는 행정부와 의회도 포함된다.

여섯째, 잘 발달된 직접민주주의는 권리와 절차를 시민의 손에 쥐어줌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단순한 저항이 아니라 건설적인 도전과 개혁의 길로 나아가게 한다.

일곱째, 효율성을 속도와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의사결정 기반이 넓으면 넓을수록 주요한 정책결정의 과오로부터 안전하다. 그리고 결정에 주어지는 합법성이 크면 클수록 이행에 있어서 더욱 효율적인 길을 깔아준다. 직접민주주의는 모든 정치 시스템의 제도적 합법성을 강화하는 하나의 수단이다.

직접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를 보완

21세기에는 과거의 파트타임 민주주의가 물러가고, 그 자리에 시민이 중요한 문제에 결정권을 행사하는 ‘풀타임 민주주의’가 들어설 것으로 IRI는 예견한다. 이것만이 대의제 민주주의로 하여금 진정으로 민의를 대변하게 만드는 길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IRI는 장자크 루소의 사상인 “공공생활을 다스리기 위해 인민들은 법을 필요로 한다. 만일 모두가 그 법을 만드는데 관여하게 되면, 결국 누구나 자기 자신에게만 복종하면 된다. 그 결과는 누가 누군가를 지배하는 것이 아닌 ‘자율규제’다”라는 것을 끌어온다.

IRI는 “유럽과 세계 여러 나라의 직접민주주의의 미래는 ‘표현의 자유’와 ‘시민권의 공정한 사용’에 달려 있다”며 그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최소 요구조건들이 충족돼야 한다. 첫째, 시민들은 스스로 시민발의와 국민투표를 추진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어야 한다. 둘째, 국민투표의 결과는 구속력을 가져야 한다. 구속력이 없는 단순한 자문은 문제를 풀기보다는 문제를 한층 더 모호하게 하고 때로는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낸다. 셋째, 최소 투표율 정족수 규정은 철폐돼야 한다. 기권의 전술적 사용과 결과의 무효선언도 정족수 규정 때문이다.

직접민주주의는 이론이나 실천에 있어서 늘 논쟁의 대상이다. 직접민주주의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어떤 합의도 없다. 따라서 IRI는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기준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첫째 기준, 직접민주주의는 사람에 대해서가 아니라 ‘이슈’에 대해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따라서 직선제나 주민소환은 직접민주주의에 속하지 않는다. 둘째 기준, 직접민주주의는 시민들에게 결정권을 준다. 직접민주주의적 절차는 곧 ‘권력 배분’의 절차다. 따라서 넓은 의미에서 직접민주주의는 시민의 권력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직접민주주의의 기준을 이렇게 하면, 직접민주주의가 반드시 ‘시민의 정치 결정권’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시민들이 시민투표를 요구할 권리는 갖고 있으나, 결정권은 갖고 있지 못할 경우라도 넓은 의미에서의 직접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직접민주주의는 절차상 주민투표와 주민발의, 역발의 3가지 형식으로 구성된다. 매 절차마다 다양한 세부 절차들이 정해질 수 있고, 그만큼 이를 제도화하고 있는 방식도 다양하다. 직접민주주의에서 IRI가 가장 주목하는 것은 직접민주주의가 대의제 민주주의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IRI는 “직접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것이며, 잘 디자인되고 잘 시행되고 있는 직접민주주의는 대의제 민주주의를 더욱 대의적이게 만든다”고 강조한다.

직접민주주의 동력 주민자치

필자는 본고에서 나의 삶을 쥐고 흔드는 권력 독점의 부당함과 나의 삶의 변화를 결정할 수 있는 법제도와 정책 의사결정권(결정권력)이 내근처로 오게 하는 조건으로 ‘주민자치’(主民自治), 이에 더해 시민사회영역에서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함과 동시에 더욱 발전시키는 제도나 사상으로서 ‘직접민주주의’(direct democracy)를 말하고자 했다. 주민자치는 참여에 중점을 둔 정치적인 원리로서 ‘직접민주주의 동력’으로 작동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나의 삶을 쥐고 흔드는 의사결정권을 내가 투표로 뽑은 대의자(혹은 대리자)에게만 맡기거나 가중시킬 것이 아니라, 그 의사결정권을 내가 직접 행사할 수 있고, 또 그에 대한 책임을 내가 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가 영역 중심으로 체계화된 정치권력과 사회권력, 그리고 시장경제 영역의 자본권력이 일반주민(필자는 거주민으로서의 주민과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배자에 대한 피지배자’ ‘의사결정 테이블에 앉지 못하는 자’로서의 주민을 ‘일반주민’으로 표기한다) 생활을 지배했다면, 그 틈을 비집고 시민사회 영역에서 일반주민권력이 생성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시민사회 영역에서 각 지역 사회 내 일반주민의 자치를 위한 공공의 장(혹은 시민의 자치를 위한 공공의 장)이 구축돼 국가영역이 달라지면, 국가권력과 정치권력, 사회권력과 자본권력의 절대성은 파괴돼야 한다.

필자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그동안 절대적이고 보편적이라고 생각했던 중앙집권적인 권력이 달라지고 있고, 일반주민들이 행정 질서와 정치 질서에 대한 눈높이가 높아지고 폭도 넓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직접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논의가 학계는 물론 정치계 전반에서 활발히 논의될 필요가 있다. 즉 대한민국에서 대의민주주의 자유민주주의·공화주의·법치주의를 보완·강화시키려면 ‘한국형 직접민주주의’는 어떤 형태여야 하는지, 그리고 정부가 추진 중인 주민자치회는 어떻게 직접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 동력으로서 작동될 수 있을 지를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충주시 살미면 신매리 향약
  • “주민자치 새 역사” 전국 최초 종로 주민발안 조례, 전폭적 주민동의 후 구의회로!
  • 주민자치위원, 나와 남에게 모두 이익되는 자리이타(自利利他) 자세 가져야
  • 지역재생과 공동자원: 일본 오키나와현 쿠다카 마을의 도전
  • 커뮤니케이션과 리더십이 시군구 협의회 지위와 위상 결정해
  • 인간존엄성·보조성·연대성·공동선 원리로 분석한 행안부 표준조례 문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