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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과 함께 주민들의 꿈도 익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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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과 함께 주민들의 꿈도 익어갑니다
  • 여수령 기자
  • 승인 2020.09.11 1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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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 힘으로 포도농가를 와인마을로
- 김진혁 강원도 영월군 예밀와인 대표(김삿갓면 주민자치위원장)

시작은 ‘관심’이었다. 주민 대부분이 포도농사를 짓던 평범한 농촌마을이 전국에서 주목 받는 와인마을로 거듭난 것은, 고생해서 키운 포도를 헐값에 팔아야하는 주민들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됐다. 강원도 영월군 예밀2리 예밀촌마을(대표 김진혁) 이야기다. 

“마을에서 생산되는 질 좋은 포도로 와인을 만들어 보자.” 김진혁 대표의 제안에 처음엔 모두가 반신반의했다. 지금처럼 와인 대중화가 이뤄지기 전인데다, 국산 와인에 대한 인식도 현저히 낮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도 농사도 짓지 않는 김 대표가 농가를 위해 발 벗고 나서자 주민들의 마음도 열렸다. 주민 30여 명이 참여해 2009년 설립한 영농조합법인을 기반으로 2011년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 지원금 5억 원을 투입해 와인가공시설을 완공했다.

그 해 처음으로 와인을 만들어 본 이후 4년간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무엇보다 와인 맛을 꾸준히 유지할 수 있는 품질관리가 시급했다.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을 초청해 자문을 받고 충북 영동과 경북 영천 등 국산 와인을 생산하는 지역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노하우를 배웠다. 

다행히 예밀2리는 일교차가 크고 배수가 잘되는 석회암지대라 포도 생육이 좋고 당도가 다른 지역보다 평균 2브릭스 이상 높다는 장점을 지녔다. 천혜의 떼루아(terroir, 포도 생산에 영향을 주는 토양 기후 등의 조건)를 갖춘 셈이다. 또 마을에서 주로 재배하는 캠벨얼리종(種) 포도는 껍질이 두껍고 타닌이 많아 와인 만들기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기에 캠벨얼리종 포도에 맞는 효모를 유럽에서 수입하고, 본연의 색과 향이 우러나도록 매일 두 차례씩 포도를 교반하는 주민들의 정성이 더해졌다. 

드디어 2015년, 그간의 노력이 ‘예밀와인’으로 결실을 맺었다. 국산 포도와 기술로 빚은 와인이 출시되자 언론은 주민들의 힘으로 일궈낸 성공스토리에 주목했고, 전문가들은 수준 높은 와인의 품질에 찬사를 보냈다. 특히 장밋빛 색과 향을 자랑하는 로제와인은 2018년 광명동굴 대한민국 와인페스티벌에서 은상을, 드라이 레드와인은 2019년 대한민국 주류대상 와인부문 대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김진현 대표는 “전문가들이 예밀와인의 독특한 풍미를 높이 평가하는데 그 중에서도 ‘한국 와인에 대한 평가를 전환할 수 있는 와인’이라는 시음평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그간의 노력을 인정받는 값진 성과”라고 소회를 밝혔다. 

첫 해 1톤가량이던 와인 생산량은 해마다 3톤, 5톤, 10톤으로 증가해 지난해에는 15톤(2만 병)을 기록했다. 품목도 레드와인(드라이・스위트)과 로제와인, 화이트와인으로 확대되면서 매년 ‘완판’을 기록할 만큼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권형신 예밀와인 힐링족욕 체험센터장은 “와인을 시음해보신 분들은 한결같이 ‘깔끔하다’, ‘국산 와인이 이렇게 맛있는지 몰랐다’고 말씀해주신다”며 “예밀와인은 개성이 강하고 유럽 와인 못지않은 품질을 자랑하기에 자신 있게 권해드릴 수 있다”고 말했다. 

해마다 예밀와인을 맛보려는 관광객이 늘어남에 따라 체험프로그램도 다양화되고 있다. 그간 와인체험장에서 시음과 와인라벨 만들기, 와인염색 등을 진행해오다 올해 5월에는 30여 명이 동시에 체험 가능한 ‘예밀와인 힐링 족욕체험센터’를 개관했다. 예밀촌마을이 ‘기업형 새농촌 선도마을’에 선정돼 2억 원의 상금을 수상한 덕분이다. 족욕체험센터에서는 와인소믈리인 권형신 센터장의 안내로 시음과 족욕 등을 체험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정식 개관식은 미뤄졌지만 SNS나 블로그에 ‘인증샷’이 속속 오르며 방문객이 점차 늘고 있다. 

지난 10년 간 쉴 새 없이 달려온 김진혁 대표는 또 다른 도전을 꿈꾸고 있다. 판매량이 늘어난 만큼 공장을 증설하고 와인 증류주인 브랜디를 생산할 시설도 갖출 예정이다. 와인 요리를 선보일 레스토랑도 개업을 준비 중이다. 김 대표는 “아직은 투자 단계라 농가수익 측면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면이 있다. 하지만 마을 특산물인 포도를 매개로 주민들이 서로 믿고 의지하며 다양한 사업을 펼칠 수 있게 된 것이 더 큰 소득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마을사업의 성공 비결로는 ‘투명성’을 첫 손에 꼽았다. 김진혁 대표는 “주민들이 마음만 모으면 못 할 사업이 없다. 마음을 모으는 가장 밑바탕이 신뢰다. 우리는 마을회의에서 사업 내역과 경비를 낱낱이 공개하고 언제든 볼 수 있게 공시한다. 신뢰가 쌓이면 사업은 저절로 이뤄진다. 주위에서 마을사업 실패 사례를 종종 보는데 대부분 재정 문제에서 비롯된 신뢰 부족이 원인이 경우다 많다”고 설명했다. 

다음으로는 끊임없는 교육을 강조했다. 예밀촌마을 주민들은 국산 와인 생산지를 견학하거나 와인페스티벌에 참가할 때면 오가는 버스 안에서도 끊임없이 토의한다. 그저 ‘보고만 오는’ 견학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각 지역의 장단점은 무엇인지, 마을에 적용할 수 있는 사례는 무엇인지 꼼꼼히 살피고 기록한다. 

김진혁 대표가 이정운 강원도 주민자치회 대표회장과 와이너리를 둘러보고 있다.
김진혁 대표가 이정운 강원도 주민자치회 대표회장과 함께 와이너리를 둘러보며 포즈를 취했다.

신뢰와 교육이라는 두 가지 원칙은 주민자치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김삿갓면 주민자치위원장이기도 한 김 대표는 “제도적 한계도 있지만 그간 일부 구성원들의 주먹구구식 운영으로 위원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위원회마다 자체적인 운영세칙을 마련해 투명하게 운영하고 위원들 스스로 역량을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면 주민들의 신뢰는 절로 쌓이게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 역시 위원장에 선출된 직후 운영세칙을 만들어 회의록을 작성하고 13개 리에서 위원들을 고르게 선출하는 등 기초를 다지는 일부터 시작했다. 또 주민자치회 전환을 앞두고 위원들 교육도 강화할 방침이다. 

김 대표는 “주민자치란 주민들의 꿈을 그려내는 것이다. 꿈을 현실화 시킬 수 있는 주체는 주민이다. 행정기관이 주도하고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서툴고 오래 걸리더라도 주민들이 하나하나 이뤄나갈 때 비로소 꿈은 이뤄진다”며 전국적으로 더 다양한 마을사업이 이뤄지길 바란다는 기대를 밝혔다.

예밀촌마을 취재에 동행한 이정운 강원도 주민자치회장은 “예밀촌마을은 주민들이 마음을 모으면 마을이 이렇게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모범 사례”라며 “주민자치위원들이 마을사업의 노하우를 배워 자신의 마을에서 적용해 볼 수 있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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