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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익은 경험과 생활 자치의 지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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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익은 경험과 생활 자치의 지혜를
  • 김종득
  • 승인 2020.11.11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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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글] 김종득 한국주민자치중앙회 상임부회장
김종득 상임부회장

한국의 주민자치 역사 20여년, 각 지역 주민자치(위원)회를 거쳐 간 위원 수가 무려 70만 명이다. 이 중 여성위원들이 어림잡아 10만 명이다. 이 숫자를 언급하는 이유는 한국주민자치원로회의와 여성회의의 존재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서다. 이 70만 명의 ‘전직’ 주민자치위원들은 여러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갖고 있다. 그런데 그 소중한 경험과 노하우는 위원회를 떠나는 순간 과거로 묻히고 그 지혜는 활용되지 못한다. 

주민자치는 주민들이 스스로 마을 일을 기획·결정·집행하며 마을을 경영하는 것이다. ‘현직’ 주민자치위원만 참여하는 게 아니다. 그렇기에 70만 주민자치위원들의 경험을 살리고 이들이 바람직한 주민자치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주민자치원로회의의 존재 이유다. 

또 직장과 주거가 분리돼 있는 한국의 특성상 남성들이 지역사회 보다 직장생활에 몰두해 있을 때 지역 생활이나 대소사에 더 깊숙이 관여돼 있는 이들은 여성이다. 주민자치에 필요한 일들을 여성들이 더 많이 경험하고 또 담당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 주민자치(위원)회에는 남성들의 비중이 훨씬 높다 보니 행정적인 면에 치우치는 면이 많았다. 주민자치가 주민들과 밀착된 생활 중심으로 나아가기 위해 여성들의 감성, 생활 경험이 필요해 만들어진 것이 주민자치여성회의다.

한국주민자치중앙회는 현재 추진 중인 주민자치 실질화의 가장 큰 핵심을 ‘관치가 아닌 진정한 주민자치 실현’에 두고 있다. 이미 해외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오래 전부터 이러한 주민자치가 이뤄져 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경우는 특별히 출발점에서부터 관치적 요소가 개입된 변형된 주민자치가 시행되어 왔다.

그 결과 1998년 이후 전국적으로 주민자치위원회가 읍·면·동 마을마다 설치돼 운영되고 있고 일부 지자체에서는 지난 2013년부터 행정안전부 표준조례에 의한 시범주민자치회를 시행, 2017년에 이르러선 ‘서울형 주민자치’ 같은, 시민단체가 개입된 기형적 형태로까지 진화해 왔다.

이러한 읍·면·동 주민자치위원회, 시범 주민자치회 사업은 행안부가 기획하고 추진하면서 공무원에 의해 기획 운영되어 관치적 요소가 매우 강하게 내포되어 있다. 결국 주민자치는 말뿐이지 실제는 행정기관의 기획으로 이뤄진 동정 자문기구 내지는 주민자치프로그램 운영을 위한 심의위원회로 전락하고 말았다.

한국주민자치중앙회는 이러한 주민자치를 행정관청이 아닌 선진 주민자치의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우리나라의 기형적인 주민자치제도를 근본적으로 뜯어 고쳐 행정으로부터 독립된 ‘주민의,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주민자치’ 즉 민주주의 개념에 철저히 기초한 풀뿌리민주주의 최소 단위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주민자치로 만들어 가자는데 뜻을 두고 있다.

그렇다면 ‘풀뿌리민주주의의 최소단위’란 어떤 의미인가? 마을의 일을, 주민 스스로, 전체 공동의 이익을 위하여, 주민 의사의 충분한 수렴·반영을 통해 기획·계획해 추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예가 바로 스위스의 직접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게마인데(Gemeinde)’, 영국의 ‘패리쉬(parish)’, 조선후기에 등장한 ‘향약’과 같은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주민자치의 현실은 행안부가 기획·실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면서 진정한 의미의 주민자치가 아닌 ‘사이비 주민자치’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 결국 주민자치가 정치권 및 시민단체의 개입, 행정의 간섭, 주민의사 배제 등으로 왜곡되어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읍·면·동 주민자치 차원에서는 절대로 대응하기 어렵고 행안부를 설득할 능력도 부족한 게 사실이다.   

한국주민자치중앙회는 이러한 왜곡된 주민자치를 경계하고 바로잡기 위해 20년 이상 주민자치관련 전문가, 교수, 현장 활동가 등을 중심으로 수많은 토론회와 정책연구 등을 통해 대응을 해 오고 있다. 오로지 정부의 지원이나 외부의 간섭 없이 순수한 민간출연으로 그 임무를 수행해 오고 있다. 

주민자치 실질화와 선진 주민자치 실현을 위해 현 읍·면·동 주민자치(위원)회의 역량만으로는 불가능한데, 이는 이들 모두 해당 행정기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올바른 말을 하고 싶어도 하기 어렵고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중앙회는 일찍이 이러만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광역시(도) 별로 시·군·구협의회장들로 구성된 시·도 주민자치를 창립시켜 주민자치회를 통해 역량을 키워 조직적으로 관치에 대응토록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 결과 일부 지역에서는 많은 변화를 가져왔으나 각 시·도 주민자치 여건과 사정으로 기대하는 만큼의 성과를 이뤄내지 못한 부분도 있다.

이러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지난해 3월부터 본격적으로 전직 주민자치 위원들을 조직화하여 시·도 원로회의를 출범시키고 여성들만의 특별한 역할을 살리기 위해 ‘주민자치여성회의’ 조직구성을 추진하게 되었다. 원로회의 조직은 풍부한 주민자치 경험과 리더십을 갖춘 분들이며 얼마든지 행정기관에 대고 할 말을 하면서 견제할 만한 역량이 갖춰진 분들이다. 이러한 원로들이 현직을 보완하고 제 목소리를 낸다면 충분히 변화를 가져 올만한 힘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회의도 마찬가지이다. 섬세하고 꼼꼼한 여성 주민자치위원들이 조직화 되어 역량을 키우고 제 목소리를 내는 것이 관치에 대응하는데 또 다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중앙회와 현직, 원로, 여성 주민자치(위원)회 4개 단체가 상호 협력하고 똘똘 뭉치면 어떠한 난관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광역시(도)별로 원로회의와 여성회의가 출범하여 주민자치 실질화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올해 새해 첫 국회 ‘주민자치회법(안)’ 발의와 4월 실시된 21대 총선에서 주민자치 실질화 후보협약식에 큰 역할을 보여주었으며, 21대 ‘주민자치회법(안) 재발의’에도 큰 역할이 기대되고 있다.  

하지만 현직이 아니라는 이유로 주민자치 원로회의, 여성회의 조직구성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일부 미추진지역의 시·도 주민자치회장 및 시·군·구 주민자치협의회장님들의 적극적인 협조와 충분한 이해로 전국 시·도 원로회의, 여성회의 조직 활성화가 빠른 시일 내에 완성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오늘도 진정한 주민자치가 이뤄질 때까지 끊임없이 노력을 다할 것을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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