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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자치, 민주화 그리고 ‘가벼운 공동체’를 향한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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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자치, 민주화 그리고 ‘가벼운 공동체’를 향한 실험
  • 공석기 서울대 교수
  • 승인 2020.12.15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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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읍․면․동 민주화란 무엇인가 - 사회 부문 - 공석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교수

읍·면·동 민주화란 무엇인가? 이 심오한 화두를 이번호 기획특집 주제로 정했다. 앞으로도 꾸준히 끊임없이 통섭적으로 연구하고 탐색해 나가야 할 이 주제를 이번호에서는 행정·정치·사회·교육 각 분야 학자들의 시선으로 살펴보았다. 행정·정치·사회·교육적 차원의 분석과 연구를 통해 읍·면·동 민주화를 위한 논의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민선 7기의 전남 도지사는 2022년까지 마을공동체 사업을 2000개로 늘리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물론 행정력을 동원하여 시·군구에 마을공동체 지원센터를 만들 수 있다. 실제로 나주시의 경우에도 중간지원조직을 활용하여 풀뿌리단위에서 30개의 마을공동체 센터를 만들라는 할당량이 내려왔다. 행정은 마을공동체센터 개소 목표치의 달성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에 풀뿌리 지역은 누가 어떻게 마을 공동체를 견인할 수 있는가라는 역량강화에 초점을 맞춘다.

광역과 기초지역의 목표가 불일치할 때 심각하게 영향을 받는 것은 풀뿌리 민주주의이다. 지역이 중앙지원 정책을 따라가다 보면 지역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사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지역에 멋들어지게 세워지고 있는 다양한 공공시설이다. 지방 행정이 하드웨어 구축에 초점을 맞출수록 결국 토건세력의 주머니만 채워주게 된다. 심지어 사업선정과 집행과정에서 불의한 방법이 동원되었다면 지역 민주주의는 더욱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지방자치 민선 1~6기까지 당선된 단체장 중에 364명이 기소가 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이 수치는 4명중 1명꼴로 기소된 것으로 지역 선거정치가 불법, 무책임, 불투명성으로 점철되었음을 보여준다(이일균 2020).

지방분권, 지역 민주주의, 거버넌스 등에 대한 주민의 신뢰는 매우 낮다. 지역 민주주의가 이익집단의 로비와 이해관계자간 갈등정치로 변질되고 2년마다 치러지는 선거정치는 지역 내 갈등의 골을 더 깊게 만든다(윤일성. 2018). 새로운 자치단체장이 들어서면 또 다른 사업을 시작하기 때문에 기초 행정단위에서는 새로운 사업에 맞는 전문성을 갖추기 보다는 소극적으로 참여하는 정도이다. 그저 중앙에서 내려 보내는 일을 수행하는 대리자로 전락한다(공석기·임현진 2020).

최근 지자체에서 시범 운영하고 있는 주민자치회에 주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높은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그런데 운영과정에서 주민자치회 구성을 행정이 주도하면서 여전히 주민자치의 본질이 흐려지고 있다. 주지하듯이 지방 자치와 분권은 분명 다른 이슈이다. 지방분권이 행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지방자치는 지역 주민 혹은 시민의 아래로부터의 참여를 강조한다. 즉 주민이 시민으로 성장하는 것은 실질적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과정이다(공석기·임현진 2017).

 

주민자치, 다양성포용성대표성개방성 견지해야...소통혁신 필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읍··동 단위에서 주민자치의 현실은 어떠한가? 주민자치위원회의 역할이 단순 자문기구에 그쳤다면, 주민자치회는 주민대표로서 주민생활 관련 계획 수립 및 예산편성과 집행 등의 실질적 권한과 책임까지 갖게 된다. 주민자치의 꽃은 구성에 있어서 다양성, 포용성, 대표성, 개방성을 견지하는 것이다. 지역 주민이 지역의 다양한 문제를 스스로 발견하고, 함께 실마리를 찾고, 정책대안을 발굴할 수 있는 실질적 민주화의 공간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새롭게 구성된 주민자치회의 위원과 기존의 주민자치위원회 참여자가 비슷한 얼굴이라면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이다. 구성과정과 결과는 어떤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시범사업으로 지정된 읍··동 단위의 주민자치회 구성과정은 과거와 큰 차이가 없다. 시범적으로 운영하는 나주시의 사례를 보자. 기득권자들이 외부 사람을 내치는 형국이다. 추첨으로 정해지는 주민자치회 25명 위원 중에 새로운 얼굴이 등장하면서 주민자치회 운영이 새로워지고 역동적으로 바뀔 것을 내심 기대했다. 새로운 얼굴 중에는 수도권에서 주민자치 경험이 있는 귀촌 주민이다. 그런데 주민자치회 모임이 거듭될수록 기존의 강한 연줄망에 의한 강한 블록을 목격하게 되었다. “위원 스스로 안건을 만들고 함께 논의를 해야 하는데 공무원에게 자료만 요구하고, 고압적 자세로 사안 설명을 요구한다. 위원으로서 책임을 다하기보다 권한만을 내세운다. ‘내가 이런 장애물 속에서 왜 이런 일을 하고 있지?’라고 실망감을 토로하며 곧 그는 그만두었다.”

이 빈자리는 예비위원이 채우고 시간이 경과되면서 교체율이 높아지면서 소수를 제외하고는 주민자치회의 새얼굴들이 계속 바뀌게 된다. 주민 스스로 합리적 대화와 투명한 의사결정을 통해 정책을 세우고 이를 지역 사회에 구현하기 위해 노력을 하였지만, 보이지 않는 벽에 막히고, 민주적인 절차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형식적 공간임을 확인하고 좌절하는 것이다. 주민자치회가 실질적으로 민주적 공간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피, 즉 새로운 인물에 대해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다양성이 보장되고 소수의 목소리에게도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혁신적 아이디어와 도전에 응원과 지지의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나 주민자치회 내부에서도 이런 열린 자세와 소통이 자리 잡지 못하니 지역사회에서는 더 어려운 상황이 된다.

최근 지방의 많은 도시들이 혁신도시 유치, 귀농귀촌정책, 다문화가족 증가 등으로 인구가 조금씩 느는 것을 환영하면서도 이들의 주민자치회 참여에 대해서는 소극적 자세를 견지하는 모순적 모습이 나타난다. 이처럼 풀뿌리 민주주의를 가로막은 장애물이 존재하며, 대표적으로 선주민의 텃세, 강한 연줄에 기초한 기득권을 유지하는 비민주적 태도가 있다.

주민자치회는 풀뿌리 현장에서의 실질적 민주화를 학습하고, 공동으로 구현하는 훈련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사람이 바뀌지 않고서는 결코 주민자치는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물론 행정도 지역의 강한 연줄에 의존하여 익숙한 사람과 조직과 일하는 것을 선호하는 소위 형님정치방식에 안주하려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주민자치가 지역의 다양한 장애물로 인해 막혀 있다면 그것부터 비판적으로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에서 주민자치를 구현할 수 있는 기초체력부터 키우는 것이 우선이다. 지역 주민들 스스로 과연 학습 자세, 열린 태도, 듣고 토론 훈련, 협동과 협력의 경험을 얼마나 갖추고 있는 지를 점검해야 한다. 또 다른 형태의 위로부터 베끼기 전략과 형식적 민주주의라는 모조품 장식에 만족하게 된다.

 

주민자치 구현할 수 있는 기초체력키워 다양한 장애 극복해야

갬슨(William Gamson)은 미시적 공간에서 민주주의를 학습하고 공동으로 경험하기 위해서는 소통의 정치’(talking politics)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Gamson 1992). 주민 간 소통이 없으면 주민자치의 소중한 열매-다양성, 포용성, 개방성, 유연성, 창의성, 호혜성, 이타성, 투명성, 책무성-를 결코 맛볼 수 없다.

행정의 성과주의는 주민자치의 성숙한 열매를 맺지 못하게 만든다. 정부 주도의 지역공동체 활성화 사업을 부처 및 자치단체가 경쟁적으로 추진해 온 것이 사실이다. 마을 만들기, 지역공동체 활성화 및 도시재생, 공익활동지원, 사회적 경제 부문에 대해 지원 사업이 문자 그대로 위로부터 쏟아지고 있다. 위로부터 지원사업이 지역공동체를 활성화했고, 지역주민이 지역정책의 주체로 설 수 있도록 얼마나 기여했는가? 정책과 프로그램의 이름은 다양했지만 결국 지역의 수혜자는 동일하였고 그들의 역량은 답보상태의 아이러니가 반복되고 있다. 주민이 주체라기보다는 수혜자로 더욱 더 기울고 있지 않는가? 요컨대, 풀뿌리 민주주의를 강화하기 위해 각종 지원 사업이 추진되었지만 결과적으로 실질적 민주화를 후퇴시키는 역설을 초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새로운 민주주의는 어떻게 가능할까? 여기서 지역주민이 주체로 다시서기 훈련장으로서 풀뿌리 차원의 가벼운 공동체라는 공동의 실험을 제안하고자 한다.

 

행정 성과주의위로부터 지원사업, 주민 주체성 저해...새 공동체실험 제안

한국사회는 안팎의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 저출산과 초고령화 시대에 접어든 인구절벽의 위기가 도래했다. 동시에 산업화, 도시화, 근대화, 정보화, 전지구화를 거쳐 이제는 디지털 혁명을 통한 초연결 디지털시대가 도래하면서 새로운 기회와 도전이 동시에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이정전 1999). 이런 거시적 변화를 무시한 채 미시라는 공간에서만 답을 찾는 것은 가능하지도 타당하지도 않다. 거시와 미시를 연결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한 유력정치인이 코딱지만 한 나라에서 무슨 지방자치를 생각하느냐라며 지역 주민의 실질적 민주화 과정에의 참여를 불신했다. 지방분권을 찬성하지만 지방자치는 반대한다는 주장은 여전히 행정에 기반을 둔 접근법이다. 한국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거시와 미시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역주민부터 건강한 민주주의를 체득해야 한다.

어떤 이는 지방이 붕괴하니 지방을 몇 개의 거대 광역도시를 중심으로 헤쳐 모이게 하자는 주장도 한다. 그것 역시 행정주도의 접근법이고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지역주민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이다. 지금도 도시계획, 부동산, 지방세 등이 중앙에서 법으로 정해지고 있으며, 정책 집행은 대부분 지방의 중소도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주민의 참여가 사실상 어려운 형국이다.

우선, 많은 정책결정과 서비스가 읍동 단위로 내려와야 한다. 주민 스스로 풀뿌리 민주주의를 경험할 수 있도록 생활정치를 강화해야 한다. 주민자치회는 실질적 민주주의의 학습 및 훈련장으로서 기능해야 한다. 이 생활정치 공간에서 다양한 정책이 궁리되고 창의적 도전과 실험이 구현되도록 행정도 풀뿌리로 내려와야 하는 것이다. 행정체계가 읍동 단위로 전환되어야 주민들이 자신의 정책제안, 결정 그리고 구현을 구체적으로 경험하면서 정치 참여 효능감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행정체계 읍동 단위로 전환돼야 주민 정치참여 효능감 높일 수 있어

그러나 현실은 책임질 수 있는 행정단위가 중소도시에만 머물고 있기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거버넌스는 오히려 풀뿌리 민주주의와 지역 공동체 참여활동을 주저하게 만든다. 다시 말해 읍동으로 공무원이 내려와야 하며, 가벼운 공동체라는 혁신적 실험에 주민과 공무원이 함께 참여해야 한다.

그렇다면 가벼운 공동체(light community)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현재 한국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안팎의 위기 속에서 마을공동체는 새롭게 만드는 것이 아닌 재발견하고, 디지털 혁신과 플랫폼 공유경제를 적극적으로 응용한 가벼운 공동체라는 새로운 실험을 함께 도전하는 것이다.

만찌니(Ezio Manzini)는 현대사회의 변화 맥락 속에서 과거와 같은 방식의 공동체를 부활하기보다는 좀 더 유연하고(flexible), 열려 있고(open), 약한 연결고리(light ties)에 기초한 가벼운 공동체(light community)를 통해 개별화되고 분리된 각자도생의 삶의 방식을 극복하자고 제시한다(Manzini 2019).

우리가 꿈꾸는 지역공동체는 전통적 형태로 회귀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대신에 거시와 미시가 수직적으로나 수평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된 사회를 지향하면서 풀뿌리 구성원 스스로 가벼운 마음으로 쉽게 들어가고 적응하고 또 필요에 따라서는 쉽게 다른 공동체로 옮겨 갈 수 있는 가벼운공동체를 의미한다.

가벼운 공동체를 구성하는 과정은 지역 그리고 마을 속에서 협동과 호혜의 자원 재발견 (Exploring), 주민 간 협동과정을 통한 공동체의 소속감 강화(Collaborating), 주민이 능동적으로 실천하기(Acting) 그리고 기존 관습적 활동의 경계를 창의적으로 넘어서기(Transgressing)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지역사회에서 혁신적 변화를 추동하기(Transforming)를 공동으로 경험 한다 (Manzini 2019). 이 과정 속에서 공동체 구성원은 당연히 소통하게 되고 공동의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다. 그 과정은 투명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을 다하게 된다. 부연하면 가벼운 공동체를 이루는 과정은 지역단위의 실질적 민주화를 구현하게 되며 그것이 주민자치라는 형식으로 제도화될 수 있는 것이다.

 

가벼운 공동체지역단위 실질적 민주화 구현-주민자치로 제도화

앞서 강조했듯이 한국사회 특별히 지역사회는 가벼운 공동체를 실험하는 과정에서 많은 장애물을 노정하고 있다. 전통적 장애물로 텃세, 이익집단, 토건주의, 주기적 지방선거로 인한 편 가르기 등을 들 수 있다. 정부의 각종 지원 사업 중에 사업간, 조직간 그리고 사람간의 칸막이 현상이 강화되고 있으며 성과 경쟁이 심각할 정도이다.

또 지역 주민 간 소통을 왜곡시키는 황색 저널리즘도 경계해야 한다. 이외에도 디지털 세계화로 공유경제가 확산되는 장점도 보이지만 동시에 이로 인해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노동착취와 공동체로부터 배제되는 어두운 면도 있다. 지역사회가 긱(gig) 노동자를 어떻게 지역공동체 내로 포함하는가가 중요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Ravenelle 2019).

이와 함께 코로나19 대응 속 뉴 노멀사회에 대한 성급한 진단과 처방에 대한 경계가 필요하다. 가벼운 공동체는 일상정치 즉 정상사회의 회복을 지향한다. 뉴 노멀 시대의 출현이 아니라 정상사회로 돌아가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주목하는 것이다. 가벼운 공동체 안에서 주민이 함께 만나 소통하고 궁리하고 대안을 창의적으로 만들어 대응하는 과정 속에서 코로나19 극복 대안을 발굴하고, 주민들을 공동으로 구현하고 이를 기억하는 무한반복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주민자치, 민주화 그리고 가벼운 공동체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시너지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참고자료>

공석기·임현진, 2020. 마을에 해답이 있다: 한국사회에서 지역 되찾기, 진인진.

공석기·임현진, 2017. 주민과 시민사이: 한국시민사회의 사회적경제 활동 톺아보기, 진인진.

윤일성. 2018. 도시는 정치다: 도시정치, 도시재생, 도시문화 읽기, 산지니.

이일균. 2020. 지방에 산다는 것, 피플파워.

이정전. 2019. 초연결사회와 보통사람의 시대, 여문책.

Gamson, William. 1992 Talking Politics, UK: Cambridge University Press.

Manzini, Ezio. 2019. Politics of the Everyday, New York: Bloomsbury.

Ravenelle Alexandrea J. 2019. Hustle and Gig: Struggling and Surviving in the

Sharing Economy. Oakland, CA: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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