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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면·동 민주화 교육을 위한 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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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면·동 민주화 교육을 위한 소고
  • 이관춘 연세대 객원교수
  • 승인 2020.12.15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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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읍․면․동 민주화란 무엇인가 - 교육 부문 - 이관춘 연세대 객원교수

읍·면·동 민주화란 무엇인가? 이 심오한 화두를 이번호 기획특집 주제로 정했다. 앞으로도 꾸준히 끊임없이 통섭적으로 연구하고 탐색해 나가야 할 이 주제를 이번호에서는 행정·정치·사회·교육 각 분야 학자들의 시선으로 살펴보았다. 행정·정치·사회·교육적 차원의 분석과 연구를 통해 읍·면·동 민주화를 위한 논의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동 민주화 교육은 읍··동 자치교육의 또 다른 이름이다. 무엇보다 읍··동의 주민자치는 국가 및 자치단체와 마찬가지로 본질적으로 민주제이며 민주제여야하기 때문이다. 또한 민주화 교육과 자치교육은 교육의 주체와 대상 및 내용의 본질 면에서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원뿔을 밑에서 보면 원으로 보이지만 옆에서 보면 삼각형으로 보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철학자 알튀세르가 마르크스를 위하여에서 사용한 개념을 빌리면 문제설정(problématique)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동일한 현상을 놓고도 문제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그 문제를 사고하고 답을 구하는 방식은 달라진다. 주민자치교육의 핵심인 자율과 관계성을 민주적 시민성이란 문제로 설정하고 접근할 때 그 의미와 중요성은 새롭게 살아난다. 주민자치로 접근할 때 보이지 않던 본질을 포착할 수 있게 된다. 역으로 민주시민교육을 주민자치교육의 관점에서 접근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런 점에서 읍··동 민주화 교육을 위한 논의는 주민자치교육에 대한 사유의 지평을 확대할 수 있으리라 본다.

··동 민주화에 대한 논의는 국가나 지자체 차원의 민주화에 대한 논의와는 그 본질 면에서 차이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주목할 만한 차이가 있다면 읍··동 같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지역 공동체에서는 직접민주제의 적용과 그 효율성이 더 나은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주민의 다양한 집단적 사회활동으로서의 지역정치는 주로 일상생활과 직결되는 문제를 결정하는 행위가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직접민주주의는 주민 개개인의 참정의식 혹은 민주적 시민성이 뒷받침 되지 못할 경우 주민행정의 공백이나 혼란 같은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 결과 고대 그리스 민주정이 보여준 중우정치나 정치적 무관심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동 민주화에 시민교육이 필요한 이유이자 시민교육에서 고려해야 할 요소라 할 수 있다. ··동 민주화를 위해서는 정치행정적 선행조건이 요구되나 본고에서는 시민교육의 관점에서 논의를 진행하기로 한다.

 

교육 없는 민주화는 없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즐거운 학문에서 자유는 그 누구에게도 기적의 선물처럼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한다. 굳이 국내외 역사를 돌아보지 않더라도 민주화는 기적의 선물이 아닌 투쟁의 선물이다. ‘민주화하면 우선 국가차원의 민주화를 떠올리기 쉽지만 현실적으로 더 중요하고 어려운 과제는 읍··동 같은 상대적으로 작은 시민공동체의 민주화를 실현하는 일이다. 가정의 민주화가 쉽지 않듯이 어찌 보면 작은 사회일수록 민주화가 어려울 수 있다.

··동의 민주화는 민주주의자로서의 시민을 전제로 한다. 지역 구성원인 주민 개개인이 민주적 의식과 태도를 갖춘 민주주의자가 될 때 실현될 수 있다. 문제는 민주주의자가 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라는 데 있다. 민주적 의식과 태도는 근본적인 변화(change)’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 및 우리가 살고 있는 읍··동이란 세상을 보는 방식에 있어서의 극적이고 근본적인 변화다. 이런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현실적이며 절대적인 힘이 바로 교육이다. 학교와 같은 형식적 교육에서부터 읍··동 성인교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교육활동을 통해 변화는 가능하기 때문이다. 교육이란 개념은 본질적으로 학습을 자극하고 강화하며 변화를 유도하는 활동이다. 결국 읍··동의 민주화 실현을 위한 현실적이며 필수적인 전제조건은 지속적이며 체계적인 교육이다.

그렇다고 교육을 통한 변화가 쉬운 일은 아니다. 일상적으로 필요한 지식이나 정보 혹은 직업교육 같이 특정한 인지능력을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시키는 지식정보 교육의 경우, 이를 통한 변화는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그러나 민주적 의식과 태도와 같은 정의적 측면의 교육은 내면적 변화(내면화)를 전제로 하기에 쉽지가 않다. 도덕교육을 받았다고 모두가 도덕적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닌 이유다.

개인은 이기적이지만 공적 연대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 ··동이란 생활세계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지역의 정치 권력체계 및 생산체계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에 대한 인식과 행동의 변화는 개인의 관점 혹은 의미체계의 전환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읍··동의 민주화 교육은 삶의 터전인 지역에서 생활세계에 밀착된 다양한 평생교육과 체계적 학습의 프로세스를 통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만 하는 과제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제까지 읍··동 지역에서 민주시민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어느 정도였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민주적 역량을 발휘할 줄 아는 시민의 양성이 시민교육이나 주민자치교육의 핵심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얼마나 가졌는지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동이란 사회생태계의 시민교육

같은 곳에 살면서 상호의존적인 유기체 집단이 독립된 체계를 이룰 때 이를 생태계라 부른다. 이렇게 본다면 읍··동이란 사회 역시 하나의 생태계로 볼 수 있다. 시민교육도 마찬가지다. 서울대 한숭희 교수는 시민교육을 포함한 교육현상을 일종의 생태계적 차원에서 검토할 필요성이 있음을 제안한 바 있다. 생태계의 특성이 긴밀한 상호 유기적 관계성에 있듯이 읍··동이란 사회생태계도 집단과 집단, 개인과 개인 간의 필연적인 상호작용을 특징으로 한다. 따라서 지역의 민주화를 위한 시민교육은 이러한 실존적이며 운명적인 관계성의 중요성에 대한 근본적 인식의 변화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래야 개인의 사적 이익은 결국 공동체적 연대를 통해 풀어갈 때 보장될 수 있다는 인식과 태도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운명적 관계성이라 하는 이유는 지역 내 주민들은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던 간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변화가 이루어지는 의존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상호작용이 아니라 교육학자 존 듀이가 말하는 교변작용을 하는 것이다. 상호작용은 주체와 대상이 따로 떨어져서 별도의 시공간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로 볼 수 있다. 반면에 교변작용은 읍··동이란 사회생태계의 주체들이 각각 떨어져서 별도의 시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실체라는 전통적 관점을 넘어선다.

지역 주민들은 진공 속에 사는 것이 아니라 일련의 상황들 속에서 살고 있다. 매일 매일의 상황 에서 산다는 것은 사과상자 에 사과들이 있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지역이란 환경 속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식물이 태양과 토양 에 있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 경우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이중적 활동을 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 들어있지 않은 개인은 있을 수 없다. ··동이란 생활세계 속에서 주민 각자는 대상(개인, 정치, 행정)에 대하여 무엇인가를 행하는 능동적 요소와, 그 결과로 대상이 주민 각자로 하여금 무엇인가를 당하도록 하는 수동적 요소의 결합 속에 살아간다. 이 두 가지 요소가 특수하게 결합된 것이 지역사회이자 시민공동체이다.

지역 주민 개개인의 사적 이익이 읍··동이란 사회생태계의 공동체적 연대를 통해 풀어 나갈 때 가능하다는 인식이 선행될 때 시민성의 중요성에 대한 이해와 교육은 설득력을 얻게 된다. 지역 공동체의 민주화를 위해 요구되는 시민성의 특성은 다양하다. 레니 존스톤은 다음의 네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포용적(inclusive) 시민성이다. 공동체가 위기에 처하는 것은 경제적, 사회적으로 배타성을 지닐 때이다. 지역사회에서 각자의 역할은 다르지만 누구나 공통의 이해관계를 지니고 있음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시민교육이 필요하다. 주민센터를 포함한 다양한 평생교육기관을 이용한 개인학습이나 집단학습을 통해 주민 개인으로서의 권리와 삶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둘째, 다원적(pluralistic) 시민성 교육이다. 포용적 시민성에 기초하지만 이를 넘어서 다양성과 문화적 복합성을 포용하는 시민성이다. 특히 읍·면 지역에 다문화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면서 더 이상 똑같음에 기초한 시민성이 아니라 다름틀림이 아니라는 세계시민의식과 태도에 대한 교육이 요구된다. 우리문화에 강제적인 동화아닌 수용’, ‘통합아닌 공존의 시민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셋째, 반성적(reflective) 시민성 교육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자신의 인식과 신념에 대한 반성적이며 자기 비판적인 시민성이다. 지역 공동체에서 개인의 권리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만큼이나 문제가 되는 것은 그 권리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아울러 권리에 대한 책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넷째, 행동적이며 적극적인(active) 시민성이다. 앞의 세 가지 시민성을 적극적으로 그리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시민성이라 할 수 있다.

 

··동 시민교육의 프로세스

이러한 적극적 시민성은 읍··동 지역의 생활 밀착형 문제해결을 위한 시민교육을 통해 길러질 수 있다. 개인의 일상적인 이해관계와 직결된 문제일수록 적극적 참여와 행동을 위한 동기부여가 되기 때문이다. 이에 관련된 다양한 활동들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읍··동의 행정 감시 모니터링이나 행정에의 참여 같은 주민자치활동, 지역의 교통이나 꽃길가꾸기 등의 환경개선 문제, 대구 YMCA에서 시작된 담장허물기 사업같은 특화된 마을 만들기, 광주 YMCA좋은동네만들기 운동’, 지역의 문화예술 활동, 주민자치학교를 통한 취미교실 교육활동, 생활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 자원 활동 같은 대안 경제 활동, 사회복지적 접근의 나눔 활동 등이다.

중요한 점은 지역공동체의 의사결정은 대화와 토론, 타협과 조정 등의 민주적 의사결정원리가 작동될 때 조화롭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지역 생활정치의 성패는 민주적 공론(公論)을 만들고 발전시키는 방법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적 의사결정에 대한 교육 역시 일방적 강의와 지식 습득에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주민 스스로 문제점을 찾고 질문하고 대화하며 답을 찾아가는 실천과정이 되어야 한다. 핵심은 자기주도적인 학습의 경험을 통해 주민들의 의식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의식화 과정이 되도록 하는 데 있다. 프레이리가 강조한 대로 의식화의 초점은 주민들의 비판정신이고 각자의 이기심을 공동체의 협동과 단결을 통해 승화시키는 데 있는 것이다.

민주시민교육의 관점에서 지역 문제에 대해 공론을 만들고 민주적 협의와 합의를 이루는 방법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의가 가능하다. 필자는 메지로(Mezirow)나 프레이리(Freire)가 비판적 성찰을 핵심요소로 하여 관점 전환을 위한 학습으로 제시한 단계별 방법이 효과적이라 생각한다. 본래 10단계로 이루어져 있지만 가장 핵심적 구성요소는 네 가지이다. 즉 경험, 비판적 성찰, 성찰적 담화, 그리고 행동이다.

지역의 특정한 문제에 대한 의사결정의 첫 단계는 특정한 사건 혹은 현상에 대한 경험이나 경험을 공론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학교 앞 취약한 도로 상황에서 예상치 못하게 어린이 사망사고를 당하거나 목격한 경험, 태풍이나 홍수로 인한 직접적 피해를 입은 경험 등이 공론화될 수 있을 것이다. 직접경험을 한 주민의 사례는 물론 다양한 방법을 통한 대리 경험이나 공동의 경험 등이 포함될 수 있다.

둘째 단계는 사건을 당하거나 피해를 입은 주민들은 물론 주민들은 그때까지의 교통, 홍수대책 등에 대해 무관심했던 각자의 의식과 태도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나름대로의 대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때의 생각과 대안은 주관적이고 가변적일 수밖에 없다.

셋째 단계는 개인의 주관적인 생각이 합리적이고 현실적인지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구하고 대화(discourse)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화 혹은 담화는 개인의 생각과 주장에 대해 공통의 이해와 판단을 찾는 과정이다. 개인의 주장에 도움이 되는 증거와 반대되는 증거를 각각 검토하며 각 주장들의 기반이 되는 가정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이다. 이 과정은 다른 사람들과의 토론을 통해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마지막 과정은 행동(action)이다. 문제의 성격에 따라 행동의 방식은 달라지겠지만 중요한 것은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효과적인 읍··동 시민교육을 위하여

··동이란 생활세계 혹은 생활정치의 민주화는 주민 개개인의 변화를 통한 집단 및 지역공동체의 변화를 지향한다. 하지만 주민들과 가장 근거리에 있고 밀접한 읍··동의 장을 주민들이 선출하지 못하고 단체장이 임명하는 공무원이 맡고 있는 상황에서 주민들의 민주적 의사결정에 기초한 읍··동의 민주화는 그 자체로 모순에 직면하게 된다. 주민들의 생활세계가 주민들에 의해 통제되도록 행정체계를 개편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이유다.

··동은,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은 지역사회지만 전통적인 공동사회보다는 이익사회의 성격이 강한 것이 현실이다. 주민들은 자신의 이해와 관심사항을 표현하고 실현하는데 더 집착한다. 특히 경제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에서 스스로 지역을 선택한 경우가 적고 많은 사람들이 유목민처럼 살아가는 것이 현실이다. 이 경우 사람들은 조너선 색스(Jonathan Sacks)의 말대로 지역사회를 공동체 아닌 호텔로 보는 인식을 가질 수 있다. 호텔의 주인이 아닌 투숙객은 호텔에 대한 애착도 소속감도 없으며 호텔을 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협력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 이런 현상을 극복하고 사회연대감을 형성하는 것이 읍··동 민주화의 중요한 도전이다. ··동 민주화를 위한 시민교육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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