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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과 시민 사이’ 연결 플랫폼으로서의 주민자치회[기획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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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과 시민 사이’ 연결 플랫폼으로서의 주민자치회[기획특집]
  • 공석기 서울대 교수
  • 승인 2021.02.10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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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이 32년 만에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행정안전부가 제출한 원안에 포함됐던 주민자치회 관련 조항이 삭제돼 별도 법률안 제정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한국주민자치중앙회를 중심으로 지난 20대 국회에 발의되었다가 회기만료로 자동폐기된 ‘주민자치회법(안)’이 성안되어 국회 발의를 앞두고 있다. 이에 정치학 행정학 철학 사회학 교육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학자와 전문가들이 ‘주민자치회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의 의미와 기대효과를 분석해 기획특집으로 싣는다.

 

거시와 미시적 차원의 중첩 위기 극복은 풀뿌리에서 시작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전지구적 확산을 통해 초국적 차원에서 풀뿌리 지역으로까지 모든 사회가 스스로 정책을 결정할 수 없을 정도로 민주주의는 심각한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 풀뿌리민주주의를 구현하는 장소로서의 지역의 기능이 상실되고 있다. 주민은 지역 공동체에 대한 확고한 소속감과 지역 주민으로서의 정체성이 희미해지고 있다. 풀뿌리 주민이 지역 경계를 넘어선 시민성을 갖춘 시민으로 성장하기 보다는 오히려 자기 권리와 이익만을 추구하는 각자 도생을 추구하는 개별화된 주변인으로 전락하였다.

이 같은 거시와 미시의 중첩적 위기는 개인에게 능력주의와 경쟁주의로 더욱 무장시키고 있다. 주민은 이를 내면화하면서 지역공동체보다는 국가에 모든 해결책을 요구한다. 사실 세계자본주의 경제체제에 깊숙이 편입한 한국사회는 급변하는 초국적 사회경제적 맥락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응전하는데 많은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 산업화, 도시화, 기계·자동화, 금융 세계화 그리고 디지털 세계화를 통해 초연결 사회를 경험하면서 연결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초국적 통제와 감시망에서 더욱 더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쉽게 연결되어 있기에 마치 우리의 삶을 계획하고 통제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한다. 이제는 구글, 아마존, 네이버, 카카오 등 거대 정보플랫폼 기업이 빅데이터를 축적하여 개인을 소비 대중으로 전락시켜 그들의 활동을 관찰 및 분석하여 소비 욕구를 유인 및 통제할 정도로 연결된 개인은 강제적 소비에 노출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쉽게 연결되지만 능력이 없는’(easily connected but incompetent) 개별 소비자로 전락하고 있다. 거시적 차원에서 조정과 통제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동시에 미시 차원에서는 개인주의와 능력주의로 무장하여 각자 도생의 전쟁터에 무방비 상태로 놓여 있는 것이다. 중첩적 위기의 터널 속에 갇힌 우리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아래로부터의 도전과 전환을 꾀하기 더욱 어려운 상황을 마주하고 있다. 과연 주민은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발굴할 수 있을까?

필자는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실마리로 주민과 시민 사이를 연결하는 플랫폼으로서 주민자치회를 주목하고자 한다. 주민자치회는 개인이 지역의 경계 안에서 활동하지만 그것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열린 협동과 네트워크의 플랫폼으로서 새롭게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거시와 미시를 연결하면서 동시에 국가주도의 획일적 해답을 찾기보다는 풀뿌리 현장, 즉 장소의 중요성을 주목한다. 일정 범위의 공간(마을) 안에서 주민들이 대안을 발굴하고 협력하여 그 대안을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주체로 서는 것이 핵심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마주하는 장애물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법과 제도적 접근이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사람이 중요하다. 부연하면 중장기적으로 주민에서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지속적으로 견인하는 새로운 플랫폼으로서 주민자치회를 재조명하자는 것이다.

 

한국 시민사회 그리고 시민사회운동의 대응과정에 대한 성찰

한국 시민사회운동이 거시와 미시적 위기 대응과정에서 노정한 한계를 성찰하는 것은 중요하다. 한국 사회는 지역공동체가 붕괴하고, 가족 간의 사회안전망도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정도로 각자도생의 개인주의 사회가 급변하고 있다. 여기서 과거와 같은 지역공동체를 회복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전통적으로 한국사회에서 자리 잡고 있는 공동체, 주민자치의 경험이 왜곡, 축소 더 나아가 좌절된 것을 재조명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그것을 기억하고, 꾸준하게 계승된 공동체와 협동의 경험을 재발견하고, 더 나아가 현재 상황에 창의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한국사회의 큰 도전과제가 아닐 수 없다. 앞서 강조한 것처럼 디지털 시대의 도래, 글로벌 도시화, 초국적 연결시대를 맞아 산업체계와 작동방식이 급변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과연 한국 시민사회운동은 주민 혹은 시민이 지역 구성원의 다양성, 포용, 공생 및 참여의 가치를 우선시 하고, 서로를 인정하고 협력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하였는가?

그러나 현실은 매우 반대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전통과 가치보다는 과학기술과 합리성을, 생활세계보다는 경제우선주의를, 공동체보다는 대중소비사회를, 장소보다는 일반화된 효율성을, 설득과 합의보다는 다수결의 논리를, 그리고 과정보다는 경쟁과 결과를 중시하고 있다. 이웃을 배려하고 이해하고 포용하기 보다는 국가를 동원하여 통제하고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파편화된 사회로 변하고 있다. 소위 이러한 가치전쟁은 마을, 지방 그리고 공동체보다는 중앙, 대도시, 국가 중심의 접근전략을 강화시키고 있다. 한국 시민사회운동 역시 이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 예컨대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사회적 양극화가 강화되면서 다양한 격차현상이 편만하고 있다. 일자리 부족, 저출산과 초고령화, 사회복지 감소, (gig) 경제와 플랫폼 노동의 급증, 노동자의 안전망 축소 등이 사회적 이슈로 급부상하였다. 여기에다 젠더, 가부장주의, 세대, 지역을 둘러싼 전통적 가치전쟁이 각각의 이슈를 더욱 더 고차원의 방정식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물론 코로나19 사태의 초기 위기관리 과정에서 한국 시민사회는 자발적 참여, 헌신, 협력과 연대의 모습을 보이면서 그 동안 잠재되어 있던 시민사회 내의 전통적 공동체 의식과 실천의 힘은 전 세계에 모범사례가 되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해를 넘겨 장기화되면서 시민은 지쳐가고 있으며, 아래로부터 답을 찾기 보다는 국가에게 모든 책임과 해결책을 요구하는 모양새이다. 이것은 한국 시민사회가 여전히 중앙주도 혹은 국가 중심 전략을 선택한 결과를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왜 풀뿌리 주민은 시민성(civility)을 갖춘 시민(citizenship)으로 성장하지 못할까? 시민사회운동의 위기대응 과정에서 주목되는 특징을 거버넌스와 파트너십의 현주소, 시민사회운동단체의 정체성 위기, 지역 간 경쟁적 벤치마킹, 그리고 상호 인정과 소통 없는 자기 확증 현상으로 요약할 수 있다. 특별히 이를 관통하는 중앙 중심의 엘리트주의가 풀뿌리 단위로까지 무비판적으로 확산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성찰 과정을 통해 얻은 교훈을 토대로 주민자치회를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위로부터의 계몽 아닌 아래로부터의 참여 플랫폼의 중요성

먼저 정부-시민사회 거버넌스와 파트너십의 현주소를 성찰해 보자. 시민사회운동 단체는 중요한 사회이슈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전략으로 거버넌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대표적으로 정부와의 시민사회 파트너십 제고를 위해 각종 위원회에 참여하여 의제설정, 정책논의, 그리고 정책구현까지 협력하는 파트너십 모델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파트너십의 현실은 이 목표에 다다르지 못했다. 의제설정보다는 정책 결정과정에만 형식적으로 참여하는 것에 머물렀다. 뿐만 아니라 정책 구현과정에는 권리와 책임을 부여받기 보다는 정부 정책 프로젝트 수탁자로서 사업을 수행하는 대행자(agency)로 전락하는 장면을 반복하였다. 한 여성운동 단체 고위간부의 자조적 멘트가 큰 찔림을 준다.

 

자정까지 컴퓨터 앞에서 정부 정책 프로젝트 기획안을 작성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것은 정부 담당 공무원이 해야 할 일인데 왜 내가 하고 있는가? 시민사회운동단체의 역할은 각 사안에 대해 보다 비판적 관점을 가지고 심도 있는 분석과 경험을 토대로 정책결정 과정에서 치열한 토론과 설득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권한도 책임도 갖추지 못한 채 사업 수행자로 전락하고 있는 현실이 슬프다.”

 

이 같은 솔직한 고백은 정부-시민사회 파트너십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중앙의 현실은 지역으로 내려가면 그 관계는 더욱 심각해진다.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는 정부 프로젝트를 위탁 수행하는 동안에 10급 공무원이 되는 느낌을 받는다고 고백한다. 물론 10급 공무원일지라도 사업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권한과 책임을 부여 받는다면 파트너십은 크게 위축되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정부는 보조금으로 시민사회단체를 보이지 않게 조정 혹은 활용하고자 한다. 이런 왜곡된 파트너십을 바로잡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실 이런 정책 수행자로서 전락하는 것이 와일드카드’(wildcard)로서의 시민사회단체의 정체성에 위기를 초래하는 것이다. 시민사회단체의 목표가 공공성의 제고라고 한다면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정부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과 갈등 그리고 경쟁자로 자리매김을 해야 한다. 그렇지만 위의 사례는 시민사회운동 단체들이 수동적 대행자(agency)로 전락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과연 시민사회 운동이 시민성을 갖춘 시민을 길러내기 보다는 소수 엘리트 중심의 정책파트너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아닌가?

뿐만 아니라 거버넌스 구축과정에서 시민사회운동의 역량이 크게 약화되고 있다. 그것은 중간지원조직의 제도화가 과도하게 추진되는데 연유한다. 시민사회 활동가들이 대거 중간지원조직으로 이동함으로써 중간지원조직은 시민사회운동의 역량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었다. 혁신적 네트워크의 플랫폼이 되어야 할 중간지원조직은 정부 혹은 중앙주도로 기획되면서 주민을 시민으로 성장시켜야 할 시민사회운동단체를 약화시키는 악재가 된 셈이다. 역량 있는 활동가들이 주도하는 중간지원조직 역시 소수의 활동가 주도로 주민을 계몽하고 참여시키는 위로부터의 접근은 아닌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비슷한 맥락으로 국가 중앙주도의 시민사회발전 혹은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법적 제도적 장치 마련 그 자체를 궁극적 목표로 삼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기초부터 광역에 이르기까지 시민사회발전 및 공익증진을 위한 각종 시민사회발전센터와 거버넌스형 위원회가 구축될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하드웨어가 설치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외부 전문가로 채워진다면 또 다시 운동 엘리트주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풀뿌리 구성원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고 그들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는 민주적 원리를 구체적으로 구현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여기서 제도인가 사람인가라는 양자선택의 문제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고려하지만 제대로 된 제도가 마련되기 위해서는 이를 만들어내고 견인하는 사람을 준비시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국 시민사회는 아직까지 국가 중심적 접근 전략 즉 위로부터 계몽적 차원으로 접근하는 것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시민사회 운동 역시 위로부터 제도마련을 통해 풀뿌리 단위까지 변화를 추동하겠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최근 국가 주도로 추진된 사회적경제 활성화 경험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지역, 현장, 풀뿌리의 구체적 필요를 간과한다면, 시민사회 역시 지역과 무관한 제도와 정책을 무비판적으로 동원하는 한계를 노정할 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주민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플랫폼, 주민자치회를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둘째, 시민사회단체가 각종 정부지원 사업에 참여하면서 경쟁적 벤치마킹 전략에 빠지는 한계를 보인다는 점이다. 시민사회의 다양한 영역이 지방정부의 각종 정책 지원사업-로컬푸드, 사회적기업, 도시재생, 귀농귀촌-에 경쟁적으로 참여하였다. 지역의 오랜 전통에 대한 발굴보다는 지역특색 없는 사업추진으로 인해 비슷한 사업들이 전국에 우후죽순 진행되었으며 그 결과는 키치’(kitsch) 현상을 방불케 할 정도의 질적 수준이하가 다수이다. 주민의 자발적이고도 주체적 참여가 생략된 채 정부 혹은 외부 엘리트 주도로 사업이 진행된 결과이다. 아래로부터 지역의 전통, 문화, 가치, 그리고 사람들이 재발굴 되지 못하였다. 대신에 중앙정부 예산을 획득하기 위한 경쟁주의, 성과주의, 능력주의가 초래한 세금 낭비가 반복되었다. 풀뿌리 주민의 창의성, 자발성, 협동과 연대가 주목받기 보다는 속도전을 방불케 하는 양적 성과만을 주목한 탁상행정의 결과이다. 만약 오랜 주민자치의 경험이 있었다면 주민들의 창의적 기획과 상호토론, 협동과 연대로 이어질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역에서 이러한 주민 혹은 시민이 준비되어 있는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앞서 거시와 미시 맥락의 위기를 통해 지적된 바 있다. 자본주의 세계경제체제로 편입된 한국 사회는 개인주의가 팽배해지고 각자도생의 경쟁공화국으로 급변하였다. 공정하지 못한 체계에 대한 문제제기보다는 과정에 대한 공정만을 강조한 채 능력 있는 자로 살아남아서 자기 것만 챙기는 능력주의를 강조한다. 조금이라도 과정에서 공정이라는 원칙에서 벗어난다면 남을 배려하거나 약자나 소수자를 결코 품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기에 자신의 생각과 입장이 다른 사람들과는 소통하기를 거부한 채 자기 주장만 옳다는 소위 자기확증성을 강화한다. 시민사회운동 역시 이런 비판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태극기 부대 사람을 꼴통보수로 치부하면서 그들과 소통하려는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는다. 물론 상대방도 마찬가지로 이런 분리와 단절을 이어보고자 노력하지 않았다. 이제 청와대 민원게시판을 약자나 소수자만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온 국민이 동원하고 있다. 지역 공동체내에서 주민 스스로 풀어갈 수 있는 문제를 다 청와대로 가져오는 형국이다. 1인 미디어 시대는 이러한 자기 확증과 불통의 시대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그 동안 시민사회 운동영역이 중앙 혹은 국가차원의 민주화 달성에 온 힘을 쏟은 채 스스로의 민주화를 가볍게 여긴 것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 시작은 풀뿌리 차원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시민사회 단체 내 소통의 정치는 과연 민주적이고 수평적인가? 정부와 거버넌스가 수평적이지 않고 비민주적이라고 비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스로를 먼저 점검하는 것이 중요하다. 비슷한 맥락으로 주민자치회 역시 지역주민을 제대로 대표하고 있는가, 정부와 협치를 구현하는데 주민과의 소통의 정치를 제대로 운영하고 있는가를 지속적으로 성찰해야 한다.

 

수동형 주민을 능동형 시민으로 성장시키는 플랫폼 주민자치회

마을, 사람, 그리고 소통정치 공간으로 주민자치회를 구체적 사례를 통해 그 시사점을 도출해 보고자 한다. 여기서 소개하는 제주 화순리의 마을정치 경험은 지역 문제를 거시적 차원과 연결시켜 대안을 주민이 공동으로 모색한 사례이다. 이 과정에서 주민에서 시민으로 조금씩 성장하는 과정을 엿볼 수 있으며, 그 핵심 기제가 마을총회라는 플랫폼을 적극 활용하였다는 점에서 주민자치회 구현에 유의미한 함의를 제공한다.

제주 화순리는 주민 주도권 하에 재생에너지 사업을 통해 에너지 전환을 지향하는 대표적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보통 마을의 경우, 매립장, 소각장, 발전소가 지역에 들어오면 해당 마을에 보상금이 지급된다. 대부분의 경우는 마을회관을 짓거나 임대사업 혹은 관광사업에 이 보상금을 활용한다. 그러나 화순리 마을 주민은 달랐다. 마을 내부에서 충분한 사전 검토와 토론을 거친 후에 외부 전문가에게 사업 타당성을 문의하는 것은 참으로 신선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난개발 사업이라도 돈이 된다면 지역주민들이 찬성하곤 한다. 그런데 화순리 주민들은 지역발전 차원에서 마을 주민총회를 통해 새로운 사업을 발표하고 상호 설득하고 동의를 구하는 소통의 정치(talking politics)를 체득하였다.

그렇다면 화순리 주민은 어떻게 소통의 정치를 이루어낼 수 있었을까? 그것은 주민들이 오랫동안 토론과 설득의 문화를 발전시켜 왔기 때문이다. 이 토론문화가 마을의 갈등을 풀어가는 데 큰 지렛대가 되었다. 화순리 주민은 감귤 농사와 어업을 통해 풍족하였기에 특별히 마을 공동체 사업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화순리가 해군기지 예정지로 지정되면서 마을 내 찬반 갈등이 발생했다. 사실 화순리도 관광지로서 매력적 장소이기에 부동산 개발 유혹을 받았고 개발 프로젝트가 나올 때 마다 주민 사이에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 때마다 마을 주민 간 토론문화가 존재해 갈등을 완화시켰다. 특별히 마을기금 활용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소통과 토론의 경험들은 순기능을 하였다.

소통의 정치는 마을 주민간의 신뢰를 높이게 했다. 놀랍게도 화순리 이장선거는 지난 20여 년 동안 직선제로 운영되었다. 경선과정을 통해 각 후보는 상대방을 설득하는 논리를 개발하였고 토론 방법을 배웠다. 마을 어르신들은 오래전부터 마을 내 토론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해 워크숍과 강연을 통해 학습하였다. 그 결과 화순리가 비록 작은 마을 단위임에도 불구하고 공론화 정치를 통한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 화순리의 마을총회 분위기는 어떨까? 혹여 여느 마을처럼 이장과 더불어 대위원이 연장자 중심으로 의견을 내고 마을 주민들은 그저 거수기 역할에 그치는 것은 아닐까? 화순리 마을 총회는 빨리 끝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거수기는 없으며 보통 저녁 7시에 시작하면 930분이 넘어도 끝나지 않는다. 청년회, 부녀회, 지도위원 등 100여명의 주민들이 참여한다. 이견이 있는 주민에게는 항상 발언할 기회를 준다. 비록 총회 전에 임원회의, 개발위원회 등을 통해 총회 안건을 거르는 과정을 거치지만 다양한 목소리, 특히 젊은 세대, 마을 청년회 소속 회원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인다. 이처럼 소통의 정치와 마을총회라는 플랫폼이 제대로 작동하는 것을 청년들은 일찍부터 학습하게 된다. 물론 화순리가 에너지 자립마을로 올바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많은 장애물이 존재하지만 소통의 정치와 주민총회라는 플랫폼을 통해 이런 장애물을 슬기롭게 극복할 것으로 기대한다.

최근 한국사회는 일본과 같이 지역균형, 지방회생, 지방자치를 논의하면서 일자리를 주목한다. 일자리가 늘면 인구도 늘고 지역도 활성화된다는 논리를 핀다. 그러나 문제는 일자리가 아니라 지역의 마을과 사람의 변화를 주목하는 주민자치이다. 지역 공동체의 회복은 각종 사업과 개발을 통해 일자리를 늘리는 것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제주 화순리 사례는 보여준다. 지역이 살만한 장소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지역을 지탱하는 사람과 마을이라는 구체적 장소에서 소통의 정치가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과잉 성장한 한국 시민사회운동에 대한 성찰을 통해 얻은 교훈은 주민자치회의 구현과정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주민자치회는 그 풀뿌리 정치를 구체적으로 경험하고 체득하는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이 플랫폼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주민이 시민으로 제대로 성장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국가, 지역 및 전지구적 차원의 민주주의도 성숙해 질 수 있다. 이제 민주주의는 마을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 안에서 주민은 배우고, 설득하고, 참여함으로써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참고자료>

강수돌. 2020. 경쟁공화국, 세창미디어.

공석기·임현진, 2020. 마을에 해답이 있다: 한국사회에서 지역 되찾기, 진인진.

공석기·임현진, 2017. 주민과 시민사이: 한국시민사회의 사회적경제 활동 톺아보기, 진인진.

야마시타 유스케, 2019. 지방회생: 인구감소와 수도권 초집중 극복의 길, 변경화·이윤정·

헌춘 공역, 이상북스.

이정전. 2019. 초연결사회와 보통사람의 시대, 여문책.

하승우. 2020. 신분과 피라미드 사회: 능력주의가 낳은 괴물, 이상북스.

Gamson, William. 1992 Talking Politics, UK: Cambridge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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