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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기층민 향촌조직 ‘촌계’, 생활ㆍ노동공동체로서 주민자치적 기능 수행"[한국정책학회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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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기층민 향촌조직 ‘촌계’, 생활ㆍ노동공동체로서 주민자치적 기능 수행"[한국정책학회①]
  • 김윤미 기자
  • 승인 2021.04.16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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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책학회 주민자치세션①] 박경하 교수, 조선시대 향촌자치조직 ‘촌계’ 조망...현대 주민자치에 주는 의미와 시사점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향촌자치조직 향약 중에서도 기층민들과 밀접한 ‘촌계’가 상당히 수평적인 주민자치 공동체로서의 기능을 수행했다는 발표가 나왔다.

16일 오전 신복룡 건국대 명예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한국정책학회 춘계학술대회 한국주민자치중앙회 기획세션 1섹션에서 박경하 중앙대 교수는 ‘조선 후기 주민자치 조직과 향회의 성격 변화’라는 제목으로 주제 발표를 진행했다. 이날 토론자로는 차인배 연세대 연구교수, 장희흥 대구대 교수, 채진원 경희대 교수, 차세영 한국행정연구원 부연구위원 등이 참여했다.

신복룡 건국대 명예교수
신복룡 건국대 명예교수

박경하 교수는 발제에서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향촌자치조직 ‘향약’의 성격은 크게 △향규 △동계 △주현향약 △촌계로 구분할 수 있다. ‘향규’는 기본적으로 상천민들과는 무관한 것으로, 향안(鄕案, 지금으로 치면 지방의회)에 오른 향원(鄕員) 중심으로 향촌사회를 이끌었는데 이들 간의 규약이 ‘향규’다. ‘동계(洞契)’는 왜란 후 나타나는 현상으로 지역주민 모두가 의무적으로 참여하며 사족(士族)의 동민(洞民) 지배기구로서의 성격을 가졌다. ‘주현향약(州縣鄕約)’은 수령이 앞장서서 운영하던 지역사회의 상하 전 주민을 의무적으로 참여시키던 동계의 확대판이다. 동계가 촌민의 지배를 위한 사족에 의해 운용되는 것이라면 촌계(村契)는 상민마을에서 주민상호 간 협동을 위한 자치조직이며 그것은 향규, 주현향약, 동계 등과 공존 또는 그 하부구조로 포섭되면서 얼마간 변질되었지만 용해되거나 해소되어 버리는 일 없이 존재한 조직으로 본다. 향약 중 촌락민 자치조직, 즉 주민자치 조직으로서의 촌계의 규모와 기능을 검토해 기층민의 존재양태를 좀 더 생생히 밝히고자 했다”고 발표했다.

이어 박 교수는 “전통시대의 향약을 흔히 덕업상권(德業相勸), 예속상교(禮俗相交), 과실상규(過失相規), 환난상휼(患難相恤)하는 상호부조(相互扶助)적인 것으로 알고 있으나 실제 역사에서는 지배층이 하층민을 지배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했던 측면이 강하다. 상천민간에 상부상조하는 조직은 30~50호 내의 자연촌락에서 촌계, 동계라는 이름으로 광범위하게 존재했다. 호남에서는 주로 촌계라 칭했다”라며 “촌계 조직에서의 기능은 크게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정월대보름 마을 굿을 수행하는 사신공동체(祀神共同體)의 성격 △노동공동체적 기능으로 두레, 황두 등의 조직 △일상생활 속에서 서로 돕고 의지하며 사는 생활공동체로서의 역할 등이다”라고 설명했다.

발제 박경하 중앙대 교수
발제 박경하 중앙대 교수

계속해서 박경하 교수는 “조선총독부의 촌제 보고서에서 제의 전에 열리는 마을회의의 내용을 보면, 제관을 선정하는 일만 협의하는 것이 아니라 비용의 할당과 거출문제를 다루기도 하고 날짜 선정, 제물 준비 등 촌제 집행에 관한 일들을 협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마을회의는 촌제의 전 과정을 협의하며 결정한다. 또 촌제 후에 열리는 마을회의에서는 촌제의 결산 이외에 마을의 도로 교량의 보수, 농사 공동작업에 대한 협의 등 일년 간의 공동사항에 관한 것을 더 많이 다루었다. 이와 같이 지역에 따라 명칭은 다양하지만 마을 자치조직으로서 촌계가 광범위하게 존재하였고 이 조직에서 촌제를 주관하고 촌제 전후에 걸쳐 회의를 열어 촌제 뿐 아니라 마을의 공동사를 협의해 생활해 나갔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노동공동체로서 촌계의 기능’에 대해서는 “‘두레’를 조직 운용하여 이앙법에서 요구되는 집중적인 노동력 수요에 적응하였다. 두레는 기본적으로 마을 단위의 조직이었으며 지주층의 참여와 간섭을 배제하는 노동조직이었다. 촌계에서 두레를 주관하였음은 두레의 모임일자가 정월 대보름과 7월 백중百中을 전후하는 시기로 촌계서 주관한 촌제 치제시기와 거의 일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생활공동체로서의 역할’에 관해 박 교수는 “촌제 전후에 촌회를 열어 마을의 임원을 뽑고 동사(洞舍, 마을회관), 도로‧교량‧제언 등의 수리, 도정(淘井)이며 사산(四山)의 금양(禁養)을 위한 작업을 협동하여 수행하였다. 또 주민사이의 분쟁을 조정‧징계하고 특히 상장(喪葬)을 중요시하였다. 기타 환난을 당한 자는 동리에서 힘을 모아 도와주고 고아나 노약자를 돕고 혼기를 놓친 노처녀의 혼처를 주선하는 데 이르기까지 동리는 공동체적 우애와 협동의 질서가 뿌리 내리고 있었다. 특히 남을 도울 만 할 때 돕지 않고 방관하거나 남에게 물건 등 꾸어줄 만한데 그렇지 않은 자에 대한 벌칙이 대개의 촌약에 규정되어 있었으며 그 중 힘이 미치는데도 남의 환난을 좌시한 자는 비교적 무거운 중벌에 처해지는 것이 예사였다. 이러한 시벌과 선행자에 대한 시상 등 상벌의 실시는 촌계의 중요한 기능이었다”고 발표했다.

박경하 교수는 “조선후기의 촌계는 사족의 동계와 지방관에 의한 주현향약 등의 하부조직으로 흡수 편입되기도 하였으나 끊임없이 기층민의 입장을 반영하면서 그 독자성을 유지해 왔다. 또 19세기 중‧후반 촌계에서의 두레조직이 지배층의 수탈에 저항한 농민 항쟁의 일부세력으로서 참여하기도 했다. 이는 민의 사회의식의 성장과 아울러 끊임없는 저항을 통해 자치성을 확보해 나가는 면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기층민의 조직인 촌계는 생활공동체로서의 자생적인 필요를 바탕으로 오랜 전통을 유지해 왔다”고 의미를 설명했다.

이렇듯 지역에 따라 시대에 따라 다양한 양태를 보이던 향회는 1894년 갑오개혁으로 근대적 제도 개혁이 이뤄지면서 1895년 신분제 폐지와 함께 마을 대표를 주민들이 직접 선출하는 내용을 담은 ‘향회조규’가 실시되었다. 이 혁명적 제도는 이후 일제강점기로 짧게 명멸해 아쉬움을 남겼다.

박 교수는 “향회조규의 반포는 근대적 측면에서는 한계를 가지지만 일정 부분의 주민 자치권 부여, 주민 참여, 국왕의 법률적 승인 등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전통시대에 있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이웃 간에 서로 의지하고 돕는 촌계에서의 주민자치의 생활방식은 정체가 아니라 수많은 자연재해와 지배층의 수탈 속에서 민족적 생명력을 지탱해 주었던 삶의 지혜였다”고 발표를 마무리했다.

토론에 나선 차인배 연세대 법학연구원 연구교수는 “조선후기 향회가 기존에 알고 있었던 내용보다 상당히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재지적 기반을 두고 향촌사회를 지배하고 운영했다는 점에 많은 공부가 됐다”라며 “다만 향회가 가진 자체적 처벌이 어떠한 절차로 진행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성주의 역할과 권한이 어떠했는지, 재지사족의 향안을 둘러싼 갈등의 소지가 점차 증가했는데 향전에 대해 향약 및 향회의 내부적 자정이나 이와 관련된 규정이 마련되는 사례가 궁금하다”고 제기했다. 

차인배 연세대 연구교수
차인배 연세대 연구교수

장희흥 대구대 교수는 “첫째, 16, 17세기 재지사족 중심의 향규와 동계의 실시 과정에서, 혹은 17세기 이후 수령 중심의 향약 운영, 임진왜란 이후에 나타나는 동계와 촌계의 실시과정에서 어떤 지역적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다. 또, 향회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향규와 향안 작성을 통한 지역 세력들 간의 알력, 조선후기 향약과 향회를 통해 오늘날 도시 공동체와 지역 공동체의 운영에 주는 시사점 등도 궁금하다”고 질문했다. 

장희홍 대구대 교수
장희흥 대구대 교수

채진원 경희대 교수는 “우리나라에 주민자치 전통 있었다는 것을 이해했으나 그 한계에 대해서도 명확히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갑오경장 자체도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아닌 위로부터의 톱다운 방식이고 헤게모니는 수령 아니면 재지사족에 있었기에 촌계의 헤게모니는 관철되지 않았다는 느낌이다. 서양의 주민자치기구와 비교해 봤을 때 향약, 촌계의 전통을 살려 현대화된 주민자치기구의 성격으로 가져갈 수 있는 것인지 평가해봐야 할 것 같다”고 평했다. 

채진원 경희대 교수
채진원 경희대 교수

끝으로 차세영 한국행정연구원 연구위원은 “교과서에서부터 배우는 향약이 오늘날의 주민자치의 성격을 가진 조직이자 규약으로 향촌사회의 질서라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주민자치라는 현대의 렌즈로 향약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여서 더욱 의미 있다”라며 “관권의 우위를 인정하긴 하나 필요하다면 실력 행사가 가능한, 즉 향약과 수령권의 공존이 이루어지는 다이나믹스가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는데 두 주체간 갈등이 발생할 경우 그 협의나 조정, 중재의 과정이 궁금하다. 또, 오늘날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한 주민자치의 조건들을 생각해볼 때 과거로부터 내려온 전통과 함께 병존하고 있는 큰 차이점들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 같다. 단순히 공동의 지역기반을 조건으로 하여 공동체 단위를 꾸리는 것은 현재에는 매우 실효성이 떨어지는 접근이 될 수 있다. 젊은 세대의 참여를 독려하고자 한다면 더더욱 물리적인 지역기반에 제약받지 않는 ‘목적계’의 성격을 갖는 자치조직 단위가 현재로서는 보다 현실성 있는 단위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차세영 한국행정연구원 부연구위원
차세영 한국행정연구원 부연구위원

이번 섹션의 좌장을 맡은 신복룡 교수는 “향촌사회의 복원은 불가능한가? 이를 화두로 꺼내 질문을 던지고 싶다. 현재 지방자치는 제대로 되고 있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자치로 가야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다섯 번 정도 선거를 하면, 혹은 최악의 경우 열 번 선거를 하면 향촌사회 지방자치가 자리 잡지 않을까, (바람직한) 우리의 모델이 정립되지 않을까”라고 피력했다.

사진=이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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