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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우리 마을에도 비밀이 있나요 ‘빌리지’ ‘손님’[타운 인 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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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우리 마을에도 비밀이 있나요 ‘빌리지’ ‘손님’[타운 인 무비]
  • 윤성은 영화평론가
  • 승인 2021.06.21 09: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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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영화의 배경이 ‘마을’이다. 영화 주인공들의 삶의 터전 역시 그들이 사는 마을이고 동네이기 때문이다. 스크린 속 인물들은 배경이 되는 마을, 그리고 이웃들과 때로 갈등하고 협력하며 여러 이야기들을 만들어나간다. 그 이야기의 결말은 해피엔딩이 되기도 하고 비극으로 치닫기도 한다. 앞으로 ‘마을, 사람들 그리고 영화’에서는 마을과 사람들의 케미스트리, 그들 사이의 교감과 성장, 변화를 다룬 작품들을 소개한다. 그 속에서 주민자치의 바람직한 방향, 때로 반면교사의 깨달음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자 주

*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M. 나이트 샤말란은 백인 감독들이 주도해온 할리우드에서도 수십 년째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인도 출신 감독이다. 그의 초기작인 식스 센스’(1999)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반전 영화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작품으로, 이후 그의 필모그래피는 자연스럽게 주로 스릴러와 공포 장르로 채워졌다. 모든 작품이 주목받은 것은 아니지만 샤말란의 영화들은 대체적으로 무난한 연출력과 완성도를 보여준다.

언브레이커블’(2000)부터 글래스’(2018)까지 그의 관심사는 대개 인간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내적 요소들과 그것이 타인과의 관계 혹은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것들이었다. ‘빌리지’(The Village, 2004)는 이러한 주제를 스릴러와 멜로드라마 장르로 포장해 놓은 작품이다. 제대로 섞이기 힘든 두 장르가 이 영화에서는 그럭저럭 유연하게 어우러진다.

 

입에 올려서는 안 될 그들과 아슬아슬 동거 중인 마을사람들 빌리지

숲으로 둘러싸인 조용한 마을(이하 빌리지’)에서 한 아이가 병으로 죽는다. 그런데 아이를 잃었다는 슬픔 외에도 빌리지에는 이상한 긴장감이 감돈다. 마을의 위험을 알리기 위해 달아놓은 종, 높은 망대, 빨간 꽃을 보자 땅에 묻어 버리는 여자들, 털이 뽑힌 채로 잔인하게 살해된 가축들이 음산한 음악과 함께 빌리지가 처해 있는 특수한 상황을 짐작하게 한다. 이 마을 사람들은 근처 숲 속에 살고 있는, ‘입에 올려서는 안 될 그들’(이하 괴물’)과 아슬아슬하게 동거중이다. 주민들이 숲을 침범하지 않으면 괴물도 그들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암묵적 협약 같은 것이 그들 사이에 존재하고 있다. 주민들의 단합과 협조로 몇 년째 괴물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동네 청년, ‘루셔스’(호아킨 피닉스)가 숲을 빠져나가 약을 구해오고 싶다고 한 시점을 전후해 다시 빌리지에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러나 영화는 중반 이후까지 괴물이 엄청나게 위협적이고 두려운 존재라는 것, 빨간색을 좋아한다는 것 이외의 정보를 주지 않는다. 러닝타임 30분이 넘어서야 붉은 망토를 입은 괴물의 형체가 슬쩍 보이지만 실체를 파악하는 데는 역부족이다. 괴물이 괴력을 가진 맹수인지, 영적인 존재인지, 외계 생명체인지조차 모른다는 사실은 관객들에게 지속적 호기심과 긴장감을 유발한다. 주목해야 할 사실은 괴물에 대한 관객들의 무지는 곧 빌리지 주민들의 무지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그들이 두려워하는 공포의 대상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고, 별로 알려고 하지도 않는 눈치다. 빌리지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숲에 들어가지 않으면 아무 탈이 없다는 말만 주입받으며 자란다. ‘입에 올려서는 안 될 그들이라는 긴 호칭에는 호명이 금기시되어 있었던 해리포터시리즈의 볼드모트처럼 이 괴물 또한 강력한 악이면서 알려고 하는 것조차 금지된 존재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래서 괴물에 대해 뒤늦게 밝혀지는 진실은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약이 없어 아이를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과 함께 마을 정책에 대해 의심이 생긴 루셔스만이 엄마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마을은 비밀 투성이에요.”

 

입에 올려서는 안 될 비밀품고 사는 마을에 찾아온 손님

비밀을 감추고 있는 마을이 또 있다. ‘손님’(김광태, 2015)에도 외부와 단절된 산골 마을이 등장한다. ‘빌리지에서 마을 주민이 외부로 나가려고 하면서 비밀이 밝혀지는 것과 반대로, ‘손님에서는 외부인이 마을에 들어오면서 감추어져 있던 끔찍한 과거가 드러난다.

1950년대, 떠돌이 악사 우룡’(류승룡)과 그의 어린 아들 영남’(구승현)은 영남의 폐병을 고치러 서울에 가던 중 우연히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마을에 들어선다. 마을 사람들은 어쩐지 이 초대하지 않은 손님들을 껄끄러워 하는 눈치지만 촌장’(이성민)은 자연스럽게 이들을 맞아준다. 우룡은 마을 전체가 쥐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쥐를 쫓아줄 수 있다고 큰소리친다. 촌장이 정말 쥐를 퇴치해주면 소 한 마리 잡을 돈을 주겠다고 하자 우룡은 더욱 화색을 밝히며 거사를 준비한다.

그 과정에서 우룡은 촌장에게 한국전쟁 때 피난을 떠났다 돌아오니 마을에 남아 있던 문둥병자들과 무당이 쥐떼에 당하고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 황당한 이야기는, 물론, 거짓말로 밝혀진다. 문둥병자들과 무당이 과거에 자신들을 사람 취급조차 하지 않았던 마을 사람들을 순순히 받아주지 않자 촌장을 비롯한 주민들이 그들을 모조리 살해해 버린 것이다. 이것은 입에 올려서는 안 될마을 전체의 비밀로, 주민들은 이 사실이 밖으로 새 나갈까 노심초사 긴장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주민 대부분은 최고 권력자인 촌장이 마을을 완전히 고립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또 다른 비밀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다. 한국전쟁이 끝났다는 것, 모두가 신내림을 받은 줄 아는 미숙’(천우희)이 사실 무당인 척 연기하고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촌장은 쥐가 난폭해진 것은 무당을 죽였기 때문이라는 논리와 함께 미숙의 신내림이 그들을 구원해줄 것이라는 신화를 만들어낸다.

빌리지와 마찬가지로 손님에서도 공동체를 유지한다는 명목하에 거짓말이 불어나게 된 것이다.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를 각색한 손님은 한국형 판타지 호러를 표방한 작품으로, 우리 사회의 근원적 공포를 근대사에서 찾고자 한다. 쥐를 내쫓고도 대가는커녕 빨갱이로 몰려 끔찍한 폭행과 함께 아들까지 잃게 되는 우룡의 이야기는 한국전쟁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그래서 우룡이 마을 입구를 봉쇄하고 최후의 심판을 단행하는 결말은 통쾌하다기 보다 애처롭다. 우룡이 마을 밖으로 내보낸 아이들, 곧 사회의 주축이 될 그들이 아버지 세대와는 다른 역사를 써 내려갈 것이라는 희망을 품기엔 영화 전반의 분위기가 너무 무겁다.

 

마을 밖은 위험해라는 신화의 무겁고 비극적 결말...희망은 있을까?

빌리지에서 로맨스의 주체는 루셔스와 눈 먼 처녀, ‘아이비’(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 어릴 때부터 서로 좋아했지만 아이비 언니와의 삼각관계, 괴물의 위협 등으로 가까워지지 못했던 두 사람은 네가 위험한 게 세상에서 제일 두려운 일이라는 루셔스의 고백과 함께 결혼을 약속한다. 그러나 정신 질환이 있는 노아’(애드리언 브로디)가 루셔스에게 중상을 입히자 아이비는 마을 밖으로 나가게 해달라고 아버지를 설득한다. 노아의 정신 이상 또한 약이 없어 고치지 못했다는 의혹까지 겹치면서 이 마을의 비극은 사람들이 숲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고 있음이 분명해진다.

아이비의 아버지는 딸에게 약을 구해오는 일을 허락하며 비밀을 털어놓는다. 오래 전, 아이비의 부모님, 루셔스의 엄마 등 빌리지 원로들은 소중한 사람을 인간의 우발적 범죄로 잃고 폭력과 고통이 없는 곳을 꿈꾸며 이 숲 속으로 들어와 정착한다. 괴물과 괴물의 행적은 주민들이 이 커뮤니티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원로들이 모두 꾸며내고 조작한 것이다.

그러나 빌리지 안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 그들 스스로 만들어낸 그 비밀이 빌리지를 낙원으로 만드는 대신 바깥세상에서 더 불행하게 만들고 있음은 아이러니하다. 또한, 그들은 인간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예기치 못한 사건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도 무시하고 있다. 노아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없었다 해도 루셔스가 무사했으리라 장담할 수는 없다.

빌리지의 결말은 손님보다 더 암울하다. 원로들은 그들이 추구한 유토피아가 허상이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괴물이 없다는 사실을 계속 감추기로 한다. 이는 전쟁이 끝나지 않았으니 마을 밖은 위험하다고 말하는 촌장 부자와 정확히 겹쳐진다. 빌리지에서 아이비는 사랑의 힘으로 무사히 약을 구해 돌아온 성녀로 기록될 것이며, 그녀가 숲에서 죽인 노아는 신화 속에서 진짜 괴물로 둔갑해 원로들을 지지해줄 것이다.

애초에 원로들을 이토록 강퍅하게 만든 것은 인간의 폭력에 대한 강한 트라우마다. 그것을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뾰족한 트라우마를 외부로 돌린 채 눈과 귀를 닫는 그들의 우매함이야말로 이 영화에서 가장 소름 끼치는 대상이다.

엔딩 이후의 희망적인 가정 하나, 아이비가 아버지를 배신하고 괴물 따위는 없음을 천명할 수 있을까. 총명하고 결단력 있는 아이비의 성격상 불가능한 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비밀을 폭로하는 데는 그것을 만들고 지켜온 사람들보다 훨씬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사진=브에나비스타코리아/CJ엔터테인먼트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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