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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있는 사람들의 땅, 마을[마을이 있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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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있는 사람들의 땅, 마을[마을이 있는 풍경]
  • 박소원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6.21 09: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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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있는 풍경’은 ‘마을’의 속살을 가만가만 들여다보고 소곤소곤 소통하는 코너입니다. 더 없이 가깝고 밀착돼 있지만 적지 않은 이들에겐 대체로 멀기만 한 마을의 이야기를 때론 지직거리고 둔탁한 확성기로 때론 고성능 마이크의 ASMR로 들려드립니다.[편집자주]

구례에서 누가 돈 주고 오이를 사먹어?’

내가 애정하는 독립언론 셜록의 박상규 기자는 아버지의 레시피라는 글을 브런치에 연재하고 있다. 구례에서 살고 있는 그가 쫄면을 만들다가 모든 재료는 다 준비되었는데 딱 하나 오이가 없어서 차로 20분이나 달려 시내에 오이 사러 나가는 이야기가 최근 에세이에 담겨있다.

20분 걸려 달려간 구멍가게에는 오이를 팔지 않는다. 맙소사! 그래서 돌아서려는 그에게 가게 주인이 던진 말이다. ‘구례에서 돈 주고 오이 사 묵는 인간은 평소 어떻게 살았는지 돌아봐야 혀!’ 그리곤 자신의 부엌 냉장고에서 오이 두 개를 꺼내 그의 손에 얹어준다, 공짜로.

꽤 여러 해 전의 일이다. ‘언니네 텃밭이라는 여성 농산물 생산자 커뮤니티에 가입해 언니(?)들이 생산하는 농산물을 한 주에 한 번씩 꾸러미로 받아먹은 적이 있다. 그 꾸러미에는 누가 생산한 부추, 누가 만든 두부, 누가 수확한 사과…… 이렇게 이름을 붙여 보내준다. 나는 부추전을 만들어 먹으면서 , 그 언니 참 부추를 연하게 잘 키웠네이런 소감을 품는다. ‘두부 만드는 언니, 청국장도 띄우려나?’라고 궁금해 하기도 한다. 왠지 그 농장이 눈앞에 그려진다. 물론 소식지를 통해 언니들의 얼굴을 직접 볼 때도 있다. 그래서 언니네 텃밭의 슬로건은 얼굴 있는 생산자와 마음을 알아주는 소비자이다.

생산자이름이 붙여진 농산물이 주는 효과

대형 식품회사의 생산품에도 언젠가부터 생산자의 이름이 표기돼 있다. ‘이름을 걸고 만든다는 마음 자세를 표현하는 것일 테지만 혹은 그에게 책임을 물기(?) 위함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름 하나 걸려있다고 언니네 텃밭의 그 언니들처럼 생산자가 손에 잡힐 듯 친근해지지는 않는다.

언니네 텃밭에서 온 농산물은 먹는 입이 몇 안 되는 우리 집에서 다 소화할 수는 없다. 그래서 늘 이웃과 그 농산물을 나눠 먹었다. 나의 이웃들은 은근히 언니네 텃밭에서 꾸러미가 오는 날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혹자는 다 못 먹을 거면서 왜 그렇게 많은 양의 농산물을 정기구독 하냐고 의아해하기도 했다. 그래도 꽤 꾸준히 꾸러미 정기구독을 한 이유는 얼굴 있는 생산자와 연결돼 있는 그 안도감을 계속 누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나는 모든 방학을 외가댁에서 보냈다. 농사를 짓는 외가에는 곳간이 빌 때가 없었다. 땅은 계절을 따라 소출을 내니까 봄에는 보리를 봄, 여름에는 온갖 야채를, 가을에는 밤과 감과 벼를 수확했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저녁이 오면 할머니는 우리들을 불러모아 밭으로 파견을 보낸다.

소워이는 고추 하고 부추 따온나. 방앗간 뒤에 있데이.’

현미는 당근 대 여섯 개 뽑아오고, 은미는 성재 삼촌 밭에 가서 파 몇 뿌리 뽑아 온나. 성재 삼촌집 앞에 들러서 삼촌요, 파 몇 뿌리 뽑아갑니데이 해라. 알긋제?’

문대 아재 마당 평상에 가지 씻어 놨다 카더라. 홍준이는 그거 가져 오거래이.’

우리는 하루 종일 동네를 쏘다니며 놀다가 벌건 얼굴을 하고 먹거리 수거작업을 하러 간다. 할머니의 명을 받드는 일은 왠지 뿌듯했다. 우리의 노동이 더해져서 푸짐한 밥상이 마련된다는 생각에 저녁식사가 늘 살뜰했다.

모든 반찬에 이름이 붙는다. 우리 할매 밭의 부추무침, 성재삼촌네 파 겉절이, 문대아재네 가지찜…… 이웃이 이웃의 먹거리에 참여한다. 보탠다. 나눈다. 그런 살가운 기억이 언니네 텃밭, 그 이름 있는 생산자를 탐닉한 것이다.

할매 밭 부추무침 · 성재삼촌네 파 겉절이 · 문대아재네 가지찜...이름 붙은 반찬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처럼 우리가 누군가에게 가서 꽃이 되려면 이름을 달고 있어야 한다. 이름으로 불려야 한다. 물론 ‘701호 분이시죠?’ 라고 이름을 부른다, 지금도. 어떤 이야기도 담겨있지 않은 주소의 일부로 부른다. 호수로 불리는 그 이름도 때론 꽃이 되어 의미가 되어 다가오기도 한다. ‘로얄층에 사는군!’ 하는 부러움을 불러일으키거나 우리 집 아래층인데 층간 소음을 겪는 건 아닐까?’라는 불안감을 유발시키거나 하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 대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나누는 이름이라고 보기 어려운 숫자에 불과한 것이다.

마을을 생각할 때 나는 늘 이름을 같이 떠올린다. 마을은 그 이름 이름의 복합체, 그 이름들이 품고 있는 이야기의 복합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어떤 이름은 가슴 밑바닥을 휘저으며 아린 기억을 소환하고 어떤 이름은 마냥 얼굴을 묻고 싶은 넓은 품을 열어준다. 누구네 밭, 누구네 집, 누구네 방앗간, 누구네 가게, 누구네 농장…… 심지어 들판을 마음대로 뛰어다니는 강아지 이름도 마을 사람들이 다 알아서 불러준다.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마을은 이제 사라진 걸까? 가상공간에서 난무하는 이름은 마을의 정체성을 만들던 그 이름의 역할을 해낼 수 없는 것일까? 한 사람의 인생에 맥락으로 관여하는 그 이름들을 우리는 이제 어디서 찾아야 할까?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고 한다. 그 명제는 사실 세상이 엄청 빠르게 변하는 것 같지만 별로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다. 성경은 누가 누구를 낳고 누가 누구를 낳고 누가 누구를 낳고…… 구구절절이 이름을 나열한다. 이름뿐 아니라 그 이름의 의미, 그들의 삶을 기록하고 있다. 이름이 이름을 낳는 과정에 개연성이 작용하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역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마을, 이름들이 품고 있는 이야기의 복합체

요즘 스토리펀딩이라는 방식이 성행하고 있다. 물건 하나를 만들어도 이야기가 있다. 그 물건을 만드는 사람, 그 물건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에 사람들이 공감하고 힘을 보탠다. 서로의 삶에 참여하고 개입한다. 그렇게 이야기가 모이는 공간, 사연으로 서로에게 관여하는 방식 등을 통해 여전히 마을이 꾸려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마을이라는 아날로그적 공간으로서의 공동체는 희미해졌는지 모르지만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전제를 적용해 볼 때, 우리는 여전히 이름, 의미, 가치, 이야기 등으로 존재하면서 마을을 꾸려가고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사람들은 각자의 존재감으로 어울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구례에서는 얼굴을 내밀면 그 얼굴의 이름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서로 오이를 나누며 살아가고 있다.

 

박소원 씨앤씨티에너지 마케팅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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