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1-07-27 16:39 (화)
우리 마을이 닮아 있는 곳은? 베르그vs도그빌[마을, 사람들 그리고 영화]
상태바
우리 마을이 닮아 있는 곳은? 베르그vs도그빌[마을, 사람들 그리고 영화]
  • 윤성은 영화평론가
  • 승인 2021.07.16 08: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많은 영화의 배경이 ‘마을’이다. 영화 주인공들의 삶의 터전 역시 그들이 사는 마을이고 동네이기 때문이다. 스크린 속 인물들은 배경이 되는 마을, 그리고 이웃들과 때로 갈등하고 협력하며 여러 이야기들을 만들어나간다. 그 이야기의 결말은 해피엔딩이 되기도 하고 비극으로 치닫기도 한다. 앞으로 ‘마을, 사람들 그리고 영화’에서는 마을과 사람들의 케미스트리, 그들 사이의 교감과 성장, 변화를 다룬 작품들을 소개한다. 그 속에서 주민자치의 바람직한 방향, 때로 반면교사의 깨달음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자 주

*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기 한 마을을 배경으로 만든 아주 유쾌한 영화와 아주 잔혹한 영화가 있다. 둘 다 주인공이 낯선 마을로 들어가면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지만 한 편은 해피엔딩으로 끝나고, 다른 한 편은 비극으로 마무리 된다. 형식도, 전개도, 톤 앤 매너도, 등장인물들에도 간극이 있으나 명확한 공통점도 보인다. 사람이든 지역사회든 내가 직접 겪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는 것. ‘도그빌’(Dogville. 라스 폰 트리에, 2003)알로, 슈티’(Bienvenue Chez Les Ch'tis. 대니 분, 2008)는 이런 교훈을 새기는데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들이다.

 

모두 원하지 않는 그곳에 발령받은 우체국장 알로, 슈티

밝고 따뜻한 코미디, ‘알로 슈티’(대니 분, 2008)에서 우체국장 필립’(카드 므라드)은 아무도 가기 싫어하는 프랑스 최북단 베르그로 발령을 받는다. 우울증이 있는 아내 줄리’(조 펠릭스)를 위해 남부로 가기를 그토록 바랐건만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이제 주중에는 베르그에서 혼자 지내야 하는 신세다. 대체 베르그는 어떤 곳이기에 모두가 기피할까?

프랑스인들이 베르그 지역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은 영화 곳곳에서 드러난다. 필립이 베르그로 가게 되었다고 하자 줄리는 당신, 사고쳤지?’로 응수하고, 아들은 북극(베르그와 유사한 발음)은 발가락이 잘라진대요라고 보탠다. 어릴 때 그 지역에 살았다는 줄리의 삼촌도 죽지 못해 살지. (중략) 사는 게 끔찍해. 성격 이상하고. (중략) 10살 때 거기서 죽을 뻔 했어라며 필립을 겁준다. 코미디 장르로서 과장된 유머가 잘 드러나는 부분은 필립이 고속도로에서 경찰에게 걸리는 장면이다. 과속이 아니라 저속 운전으로 딱지를 떼게 된 필립은 지옥에라도 가는 것 같은 표정으로 말한다.

북부로 발령 받아서 늦게 가고 싶었습니다.”

노르 파드 칼레? 그냥 가세요.”

필립을 딱하게 바라보는 경찰의 표정에서 베르그는 살 곳이 못 된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느릿느릿 한밤중에 도착한 베르그에서 필립은 마중 나온 직원 앙투완’(대니 분)의 사투리부터 지역색 강한 음식까지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짜증을 낸다. 그러나 바로 반전이 일어난다. 2주 후 주말, 필립은 벌써 집에 다녀와야 할 때가 되었다는 사실에 놀랄 만큼 이 마을에 푹 빠져 있다.

 

독특한 세팅의 마을 속에 숨겨져 있던 집단의 추악한 본성 도그빌

덴마크의 대표적인 작가주의 감독, 라스 폰 트리에의 도그빌은 독특한 세팅을 갖고 있는 작품을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영화다. 감독은 프롤로그로 명명한 영화의 도입부 첫 장면에서 록키산맥에 자리한 이 마을의 평면도를 보여준다. ‘느릅나무 길(Elm Str.)’을 중심으로 집들이 나란히 늘어서 있는 구조가 여느 시골 마을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정체불명의 내레이터는 첫 문장에서 이 영화를 슬픈 이야기로 규정함과 동시에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본래) 선량하고, 마을을 사랑한다고 소개한다.

그런데 평면도를 보여주는 듯 했던 카메라가 ’(폴 베타니)의 집을 향해 점점 내려가면서 이것이 지도가 아니라 도그빌의 세팅 전부임이 드러난다. , 이 영화는 주차구역을 표시한 것 같은 선들 및 글자가 벽과 문을 비롯한 실물을 상당부분 대신하고 있고, 집 내부도 이야기에 꼭 필요한 가구나 물건들로만 채워져 있다. 거대한 입체적 연극무대가 있다면 이와 유사할 것이다. 배우들은 문이나 물건이 실제로 있는 것처럼 마임 연기를 하지만 관객들은 문 안에 누가 있고,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볼 수있다. 이처럼 일종의 투시력을 부여받은 관객들은 등장인물들보다 많은 정보를 갖고 영화를 감상하게 된다. 후반부로 갈수록 이러한 설정은 중요해지는데, 인물 개개인의 천박하고 비윤리적 행위들을 여과 없이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조용한 마을을 흔들어놓는 것은 총소리와 함께 등장한 그레이스’(니콜 키드먼). 베일에 쌓인 그녀가 갱단에 쫓기고 있다고 하자 톰은 선뜻 이 마을에 머물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말한다. 작가 지망생인 톰은 때때로 주민회의를 소집해 도덕 강의하기를 즐겨왔는데, 다음날 그는 주민들 앞에서 낯선 방문객, 그레이스야말로 이 마을의 도덕성과 수용성이 어느 정도인지 판단하는 시험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렇게 2주간의 유예기간을 얻게 된 그레이스는 마을 사람들의 노동을 도와주며 신뢰를 쌓는다. 성실하고 착한 그레이스는 이름 그대로 이 곳에 조건 없이 굴러 들어온 은혜와 같은 존재다. 도그빌 사람들은 그녀의 도움을 받으며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더 나은 삶을 살게 된다. 오랜만에 축제다운 축제일을 맞은 주민들은 그녀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레이스에게 거액의 현상금이 걸려 있다는 것을 알고 난 후부터 주민들의 태도는 180도 변해버린다. 좋은 친구이자 이웃과도 같았던 그들은 그야말로 수퍼 갑이 되어 그레이스를 학대하더니 종국에는 끔찍한 폭행까지도 서슴없이 저지른다. 아슬아슬하게 감춰져 있던 집단의 추악한 본성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그 과정과 결과를 잔인하리만치 적나라하게 보여주는데, 지붕도 벽도 없이 헐벗은 이 영화의 세팅이 주민들의 잔혹함을 더 강렬히 체험하도록 만든다.

 

우리 지역 사회는 자본의 논리 앞에서도 도덕적으로 건강한가?

한 커뮤니티의 도덕성, 포용력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만큼 도그빌에는 주민들이 다 함께 모여 회의를 하는 장면이 여러 번 등장한다. 리더의 말과 제안에 무조건 반대하는 사람과 리더를 맹신하는 사람, 이타적인 사람과 이기적인 사람, 판단이 빠른 사람과 느린 사람, 자신이 다수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과 소수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 등 다양한 인간군상을 볼 수 있는 주민회의는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다양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커뮤니티가 건강하다는 증거이며 발전 가능성이 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경제적 이권 앞에서 도그빌의 다양성은 무너져 버리고 만다. 더 잔악무도하게 한 개인의 인권을 탄압하는데 모든 아이디어가 집중될 뿐이다. 여기서 가난이라는 마을의 굴레가 그레이스에게 행복과 불행을 순차적으로 가져다 준 동일한 요인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과연 우리 지역 사회는 자본의 논리 앞에서도 도덕적으로 건강한가? 도그빌 주민들의 모습이 우리 안에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방인과 한 마을의 운명이 양극단으로 갈려

이런 질문들이 불편하다면 다시 긍정적인 커뮤니티의 모델로 돌아가자. ‘알로, 슈티의 베르그는 북쪽에 있지만 생각보다 춥지 않으며 사람들도 온화하고 정이 많다. 새로 부임한 상관, 필립이 무례하게 굴어도 직원들은 그를 나쁜 사람으로 단죄하거나 따돌리지 않는다. 대신 그가 베르그에 적응할 수 있도록 언어와 문화를 가르쳐주고 기다려준다. 필립은 사투리를 익히면서 급속도로 직원들과 친해지고, 이 지역과 주민들에 대한 그의 선입견은 금세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필립과 직원들은 상사와 부하의 관계가 아니라 빌루트’(친구를 일컫는 베르그 말)로서 친밀한 감정을 쌓아간다. 남편이 이상한 곳에서 고생하고 있다는 오해 때문이기는 하지만 필립이 베르그에 온 후로 줄리의 우울증이 나아지기 시작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이처럼 베르그는 필립 가족에게 활력과 치유를 가져단 준 긍정적 공간으로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거기서 그치는 것은 아니다. 영화 중반쯤부터 필립은 도움을 받는 사람에서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변하게 되는데, 앙투완은 그 최대 수혜자라고 할 수 있다. 삼십 대 중반까지 엄마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해 사랑하는 여자도 잃게 된 앙투완은 필립의 격려에 힘입어 자립하는데 성공한다.

임기가 끝나자 필립은 그토록 바라던 지역으로 발령을 받지만 베르그를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쉽다. 베르그는 처음 올 때 울고, 떠날 때 또 우는 곳이라는 지역 속설에 그도 예외는 아니다. 자기 지역사회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마을을 만들고자 노력하지 않을까? 이것은 도그빌 주민들은 철저히 실패했던 바로 그 지점이기도 하다. 이방인과 한 마을의 운명이 양극단으로 갈리는 알로 슈티도그빌’. 즐겁고 통속적인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전자를, 보다 미학적인 스타일로 통렬한 교훈을 얻고자 한다면 후자를 찾아보길 권한다.

 

사진=프레인글로벌콘텐츠판다/코리아픽처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읍면동의 기초자치단체화, 지방행정체제 개편-기능배분의 새 판 짜기"
  • 사회적 자본으로 접근한 지역사회 분석, 한국적 현실에 적합한 지표 개발돼야
  • 현장의 노력으로 결실 맺어가는 아산시 주민자치연합회
  • 부산 100년 번영의 초석 놓겠다는 마음으로 ‘월화수목금금금’
  • 돌파구 찾은 춘천시 주민자치사태, 마을자치지원센터 운영 등 시와 협의 중
  • 건물 안 작은 마을 [마을이 있는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