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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표선면 성읍마을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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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표선면 성읍마을을 가다
  • 김윤미 기자
  • 승인 2021.07.16 17: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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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조선시대 촌계와 제주도의 향회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1리는 마을 전체가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민속마을이다. 지난 198056일 지방민속자료 제 5호로 지정 보호되다가 198467일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 제 188호로 지정되었다.

성읍민속마을은 조선 초 태종 때 성산읍 고성리에 설치되었던 정의현청이 세종 때 이곳으로 옮겨진 이래 500여 년간 현청 소재지였던 유서 깊은 마을이다. 당시 제주도는 한라산 북쪽인 제주목’, 남쪽은 둘로 나뉘어 서쪽 대정현’, 동쪽 정의현3개 행정구역로 삼분되어 있었다. 이 구분은 이후 500년 간 지속되었다. 이 중 정의현의 현청 소재지가 바로 성읍리였던 것이다.

원래 성산읍 고성리에 축성된 현청은 동쪽에 치우쳐 행정상 불편할 뿐 아니라 태풍의 피해가 잦고 우도가 가까워 외적으로부터 침입이 빈번하여 당시 진사리(현 표선면 성읍리)로 옮기게 된 것이다. 숙종 때 기록에 따르면 민가 호수가 1436, 말이 1178, 흑우 228수를 보유할 정도로 상당히 번성했던 읍성이었다. 마을에 들어서면 성벽이 남아있는데 이 길이가 약 1200미터나 된다. 마을 입구에서 만난 장춘자 문화해설사는 이 성을 단 5일 만에 쌓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그 만큼 많은 제주 백성들이 동원되어 노역을 했다는 뜻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의현청이 들어서기 전 성읍리의 명칭은 진사리였으며, 이 일대에는 신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들어와 살았다. 정의현청이 들어오기 전에 이미 마을이 형성되어 있던 것으로 보아 그 역사는 적어도 2000여 년 이전으로 올라갈 것이라고 마을 자료는 전한다.

해안마을 표선리에서 8km쯤 올라간 곳에 자리 잡은 성읍민속마을은 대평원 속에 백약이오름·본지오름·무찌오름·장자오름 등 크고 작은 오름()들이 병풍처럼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마을 뒤에는 영주산(瀛洲山, 325m)이 의연하게 서서 마을을 굽어보고 있다. 마을 한복판에는 '천년수(千年樹)'로 이름난 느티나무가 우뚝 서 있고, 그 주변에는 훤칠한 팽나무들과 정의현청이었던 일관헌(日觀軒)이 눈길을 끈다. 이 느티나무와 팽나무는 천연기념물 제 161, 일관헌은 도 유형문화재 제 7호로 각각 지정되어 있다.

500년간 제주 3대 행정구역 중 하나인 정의현의 현청 소재지...27년 전 국가지정 민속마을로

 

이쯤에서 박경하 중앙대 교수의 강의 내용을 다시 되새겨 보자. 제주도는 촌계를 향회라 부르며 이 향회가 마을수호신에 대한 제사를 주관한다. 특색은 한 마을에서 두 개의 마을 수호신을 모신다는 점이다. 하나는 제단을 포제단(酺祭壇)이라 하며 유교식의 이사지신(里社之神)에 대해 제사를 지내며, 또 다른 하나는 제단을 본향단(本鄕堂)이라 하며 무교식의 본향지신(本鄕之神)을 치제한다. 이 본향신은 유교가 전래되기 이전부터 즉 마을이 형성되면서부터 모신 토속신을 말한다.

제주시의 촌제에서는 유교식의 이사신이 음사적 요소의 본향당을 없애거나 유교적 표피로 둘러 씌어 하나의 마을수호신으로 만든 것이 아니고, 향약에서의 이사와 촌계에서의 본향신을 함께 치제함으로써 지배계층의 유교적 이데올로기와 유교이전 부터의 기층민의 토속신앙이 대립갈등 관계가 아니라 조화융합해 나갔던 모습을 보여 준다.

제주도청 자료에 따르면, 제주도 무속은 3현 체제가 오래 지속된 영향을 받아 목안, 대정, 정의권이 제각기 다른 특징을 지닌다. 제주도내 유교식 마을제로 대표적인 것은 역시 포제이다. 과거에는 다양한 의례가 있었으나 현재 남아 있는 것은 대개 포제이다. 성읍마을에서도 오랫동안 포제를 지내왔다. 포제는 어느 마을이나 대동소이해서 지역 나름의 특성을 찾기 어려운 편이나 성읍마을을 비롯한 인근 지역의 포제는 나름의 특성을 지닌다.

지금 남은 것은 포제() 뿐이고, 제석제(帝釋祭)가 늦은 시기까지 전승되었으나 1920년경에 중단된 것으로 전해진다. ‘제석동산이라는 지명이 흔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성읍1리와 2리에서 제각기 포제를 지내고 있다. 1리와 2리의 포제는 모든 면에서 대동소이하다. 본래 한 마을이므로 유사한 성향을 띄고 있는 것이다.

1951년 초대 이장 선출, 61년부터 주민투표로 뽑아...마을규약 향약기반으로 운영

 

성읍마을은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나 마을회 운영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그리 많지 않다. 5세기 동안 정의현의 도읍지로 번성하였던 성읍은 1915년 제주도제가 시행되면서 표선면 면소재지로 격하되며 평범한 농촌마을의 길로 접어들었다. 1949년 제주4· 3사건으로 인해 중산간마을 소개령이 내려졌지만 성읍리는 유일하게 제외되었다.

1951년 일제강점기부터 시행해 오던 구장제를 이장제로 전환하여 초대 이장을 선출하였다. 1961년 이정 사상 처음으로 이장 경선 주민투표를 실시하였으며 1976년 행정조직을 5개동 18개 반에서 7개 반으로 재편하고 반장과 새마을지도자를 선출하여 반장 책임 하에 운영하도록 했다. 1977년 향약을 제정하였으며 이 해에 중요 민속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1984년에는 국가 지정 문화재인 중요 민속문화재 제188호로 지정되고 1987년 사단법인 성읍민속마을보존회가 창립되었다.

성읍민속마을은 문화재보호위원회, 마을회관 이설추진위원회, 마을지 발간 추진위원회, 마을운동장 조성추진위원회 등 마을 현안이 있을 때마다 그에 맞는 위원회를 구성하여 해결하고 있다. 이 외에도 ()성읍민속마을보존회, 제주성읍민속마을취타풍물단이 구성되어 지역주민들이 전통문화 보전과 마을 발전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성읍1리 마을회는 이장과 농··축산위원회, 시설·복지·교육위원회 및 관광·문화·환경위원회 등 총 22명으로 구성되며, 8개 반에 반장과 노인회, 부녀회, 청년회를 구성하여 성읍1리 마을을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성읍1리의 마을규약의 이름은 다름 아닌 향약(향촌규약)’이라는 것이다. 이 규약에는 마을회의 구성 및 구역, 구성원(이민)의 자격 및 의무와 권리, 기구 및 임원의 구성, 회의 및 총회, 사업 및 재정까지 꼼꼼히 명시되어 있다. 이에 대해 박경하 교수는 매우 체계적이고 세부적으로 만들어진 규약으로 타 지역에서 벤치마킹해 만들어도 좋은 만한 내용이라고 평했다.

김철홍 성읍1리장은 성읍마을은 성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현재 약 84가구가 살고 있고 평수로는 약 3만평이다. 또 성밖에 약 24만평 정도 있고 약 304가구가 조용히 살고 있다. 우리 마을은 이장을 비롯해 임원진 23명이 마을을 운영하고 있고 민속마을이기 때문에 민속보존회가 있다. 우리 마을엔 초가집, 천연기념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다 참여해 1년에 한 번씩 정의골 축제를 하고 있고 이게 벌써 26회에 접어들었다고 설명했다.

김철홍 이장은 또 마을에 총 8개 반이 있는데 한 반에 한 종목 씩 예전에 즐겨하던 종목을 하나 씩 해서 전 주민들이 민속놀이도 즐기고 있다. 고을 원님이 살던 마을이다 보니 원님행차 행사도 크게 하고 있다. 아쉬운 점은 사람이 살아야 민속마을인데 실질적으로 사람이 살기 힘들다는 것이다. 우리 마을도 1984년에 민속문화재로 지정이 됐지만 집도 작고 방도 작고 불편하니까 젊은 사람들은 자꾸 마을을 빠져 나간다. 정부 당국에서 방도 좀 내고 집도 주민들 삶의 편의를 제공할 수 있도록, 민속 보존도 하면서 주민들 편의도 지킬 수 있도록 해주시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실제 주민들이 살고 있는 민속마을’...민속도 지키며 편의도 확대됐으면

 

성읍민속마을은 전통 초가집과 우물, 돼지를 키우는 우리, 각종 생활용품들이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은 만큼 아직도 그 초가집에서 불편함을 무릅쓰고 살고 있는 주민들이 있고 그렇기에 (예전 마을의 모습을 보존-복원시켜놓은 유사한 민속마을이나 문화재에서처럼) 아무(?) 집이나 들어가 보거나 벌컥벌컥(혹은 살며시) 문을 열어봐서는 안 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직접 마치 도슨트문화해설사처럼 방문객들을 맞아 안내를 하는 모습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현재는 무료로 입장이 가능한데 내년부터는 입장료가 생길 수 있다고 마을 주민은 살짝 귀띔했다.

맛깔스런 설명으로 마을의 주요 포인트를 다니다보면 그 옛날 그 시절 제주 생활이 눈앞에 그려진다. 아쉬운 점은 장춘자 문화해설사의 설명처럼 코로나로 인해 매월 열렸던 마을 공연이 작년부터 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방역수칙을 잘 따른다 하더라도 외부 단체 관광객을 맞는 것이 이전 같지는 않고 조심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유명한 제주도 해녀를 비롯해 제주도는 여성의 활동과 생활력이 유독 강하고 활발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성읍마을도 부녀회가 활발하고 마을 안내에 있어서도 부녀회원들의 활약이 눈에 띄었다. 이런 지적에 대해 김철홍 성읍1리장은 마을이 형성되고 운영되려면 청년회, 부녀회가 주축이 된다. 그 다음 주민자치에서 도와주는 거다. 주민자치(위원)회는 한 단계 위의 조직이라며 주민자치(위원)회 조직은 현재 읍면 단위에서 구성되어 있는데 각 리들이 면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서 마을 대표자가 참여예산 등 이슈가 있을 때 함께 참여하고 협조하는 체제로 하고 있어서 주민자치로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 김윤미 기자 citizenautonom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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