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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군구의회, 주민자치회 설치 및 운영을 시민단체가 통째로 장악하도록 허가했다 알고도 당한 것일까 모르고 속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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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군구의회, 주민자치회 설치 및 운영을 시민단체가 통째로 장악하도록 허가했다 알고도 당한 것일까 모르고 속은 것일까
  • 전상직 사단법인 한국주민자치중앙회장
  • 승인 2021.07.29 16: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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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군수구청장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관련법인 또는 단체 등으로 하여금 주민자치 회의 설치·운영을 지원하게 할 수 있다.”

주민자치회를 시범실시하고 있는 시군구는 모두 채택하고 있는 조항이다. 바로 이 조항이 주민자치회를 시민단체가 합법적으로 치밀하게 지배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끔찍한 독소조항이다. 그것을 조례로 통과시킨 시군구의회는 알고도 당한 것일까? 모르고 당한 것일까? 모르고 속은 것일까? 모르고 속았다면 알아서 개선할 수 있는 일이지만 알고도 당했다면 실무가 아닌 정치적 판단의 문제다.

시민단체가 중간지원조직이라는 허울로 지배하는 절차와 조건은 매우 허술하다.

시장군수구청장이 마음먹으면 언제든지 주민의 동의도 의회의 동의도 필요 없이 시장군수구청장이 원하는 법인이나 단체에 주민자치회의 설치와 운영을 전부 독단적으로 포괄적으로 위탁할 수 있다.

위탁을 하고나면 시군구의회도 유효한 개입을 할 수 없고 공무원도 개입을 할 수 없고 주민들의 통제를 벗어난다.

실제로 주민자치회의 설치에서부터 운영에 이르는 전 과정을 위탁하고 행정적 권한과 재정적 권한까지 위탁하여 주민자치회를 철저하게 지배하고 있다.

시군구의회가 물론 모르고 했거나 속아서도 했겠지만 가장 치명적인 과오는 첫째 민간위탁의 필요를 판단할 때 주민의 동의를 받거나 의회의 동의를 받도록 하는 것을 포기한 것이다. 주민자치회 설치·운영은 주민들의 권리여야 하는데 시군구의회가 이를 지켜주지 못했을 뿐 아니라 시장군수구청장에게 주민들의 권리까지 양도해 버리기까지 한 것이다. 둘째 위탁법인이나 단체를 선정할 때 주민의 동의를 받도록 하거나 의회의 동의를 받도록 하는 것도 포기해 버린 것이다. 주민자치의 고유한 권리인 선택권을 시군구의회가 빼앗아 시장군수구청장에게 선물해 버렸다. 민의를 대변한 것이 아니라 민의를 정면으로 배신한 것이다. 셋째 위탁을 하더라도 주민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제외하고 지원이 필요한 범위로만 제한해야 했으나 시군구의회는 주민자치회의 설치와 운영 전부를 포괄적으로 맡겨 버렸다. 

그렇게 하여 시민단체는 주민자치회의 지배자의 위치에 설 수 있게 되었다. 시민단체가 시장군수구청장으로부터 설치와 운영의 전 과정에 걸쳐 행정적 권한과 재정적 자원을 위임받아 전방위적으로 집행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명백하게 지배적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전상직 한국주민자치중앙회장은 “주민자치회에서 주체인 주민들을 배제하고 객체인 시민단체에게 주민의 권리를 행사하도록 위탁하는 매우 기형적이고 모순된 구조”라고 밝히면서 모순이 초래할 결과를 짚었다.

주민자치회의 속성은 먼저 주민으로 구성된 주민회이고 주민들이 결정하고 집행하는 자치회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시군구 조례는 주민이 주민자치회의 회원이 되지 못하게 하였고 몇 안되는 위원마저 추첨으로 정하여 주민자치회를 거의 완벽하게 무력화 하였다. 무력화된 주민자치회에 행정적·재정적 권한까지 위탁 받은 시민단체가 전과정을 포괄적으로 지배한다면 주민자치회는 명칭만 주민자치회일뿐 더 이상 주민회가 아니라 주민들과는 유리된 시민단체의 조직이 될 수밖에 없고, 더 이상 자치회가 아니라 주민들의 생활과는 거리가 있는 시민운동의 하청기구가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상태로 가면 시군구의회는 주민자치회 조례로 주민자치회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민자치회를 숙주로 하는 막강한 시민단체를 만들게 될 것이다. 주민자치는 주로 생활영역에서 소박하게 포용적으로 활동을 하지만 시민단체는 기본속성이 주도성이고 배타성이라서 머지않아 주민들과도 갈등을 만들고 공무원들과도, 의회와도 갈등을 만들 것이다. 주민자치회를 운동가들이 주도하여 확실하게 근거를 확보하면 시민단체의 속성상 시민단체의 존립과 발전을 위해 시군구와 맞서고 의회와 맞서는 것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주민자치회에서 주민을 소외시키면서 무력화하고 시민단체가 지배한다면, 지방자치의 두 축인 단체자치와 주민자치 중에서 주민자치는 없어지고 만다. 주민자치가 없는 지방자치가 정치적인 시민단체의 영향력과 야합을 하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이다. 

김용민 부산시 주민자치회장은 “시군구의회에 간곡히 부탁드린다”면서 의견을 밝혔다. 그는 "주민자치를 위해서는 여도 야도 진보도 보수도 하나가 되어야 한다. 시장군수구청장이 필요하다고 강력하게 요청하여도 시군구의회는 주민의 편에 서서 필요성을 살피고 살펴 독소가 될 수 있는 것들을 삭제하거나 바로잡아야 한다"라며 "주민자치회 조례중에서 '시장군수구청장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관련 법인 또는 단체 등으로 하여금 주민자치회의 설치·운영을 지원하게 할 수 있다'를 즉시 삭제하여 주시기 바란다. 이미 위탁한 것도 즉시 중지하여 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한국주민자치중앙회장 전상직 회장은 “만약에 모르고 조례를 통과시켰던 주민자치 독소조항을 시군구의회가 순기능이 되도록 개정한다면 큰 박수로 환영하겠다”라며 “당연히 개정해야하는 독소조항을 그대로 존치한다면 주민자치의 미래를 위해 주민자치회원들에게 정치적 판단을 해달라고 호소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마포구 김종선 의원은 “자치(自治)라는 두 글자가 무척 어렵다”라면서 “지금까지는 몰라서 잘할 수 있는 것도 잘하지 못했다”고 솔직하게 의견을 밝혔다. 김종선 의원의 말씀에서 어렵지만 밝은 미래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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