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4 17:18 (수)
글로벌 민주주의의 동요, 시민들의 자치로 넘자
상태바
글로벌 민주주의의 동요, 시민들의 자치로 넘자
  • 장훈 중앙대 교수
  • 승인 2021.08.11 15: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훈
중앙대학교 정치국제학과 교수. 노스웨스턴대학교 정치학 박사. 한국정치학회·한국정당학회장 역임. 저서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와 전망], [세계화 제2막](공저), [한국 정당정치 연구방법론](공저) 등

1. 민주주의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1980년대 이후의 낙관론은 오늘날 자취를 감추었다. 선거를 통해 집권한 세력들이 민주주의 질서를 허물고, 시민들은 민주주의 미래에 대해 뜨거운 희망을 갖고 있지 못하다. 러시아, 폴란드, 헝가리, 그리고 필리핀 등에서 권력자들은 의회를 무력화하고 사법부를 기능부전으로 만들어버리는 민주주의의 퇴행이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이에 발맞추어 시민들이 민주주의라는 제도, 삶의 양식에 대해 갖는 기대와 희망도 동시에 추락중이다.

민주주의 쇠퇴가 아시아, 남미, 중유럽 등을 휩쓸면서 민주주의를 어떻게 다시 심폐 소생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다. 어떤 이는 1980년대 이후 전세계적으로 늘어만 가고 있는 경제적 양극화의 해소만이 민주주의를 살릴 수 있다고 믿는다. 어떤 이들은 우리가 하루 종일 들여다보고 있는 스마트폰이 불러 오는 필터버블과 디지털 부족주의가 문제라 믿고 디지털 양극화, 알고리즘의 양극화를 해소해야만 민주주의를 회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또 다른 이들은 국고보조금이라는 세금으로 연명하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정당정치를 개혁해야만 민주주의를 바로 잡을 수 있다고 믿는다.

필자는 민주주의의 뿌리, 민주주의가 시작되었던 그리스 민주주의의 원형, 즉 작은 공동체의 민주주의를 되살리는 길이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민주주의 쇠퇴를 막는 길이라고 믿는다. 기초가 부실한 건물을 오래 사용할 수 없듯이, 하체 근육이 쇠퇴한 개인은 건강을 지키기 어렵듯이, 민주주의는 가장 기초 단위인 우리의 자치단위, 마을, , 로컬공동체의 민주주의 체력을 길러야만 허약해져가는 민주주의를 일으켜 세우고 더욱 튼튼하게 만들 수 있다.

이 글에서 우리는 먼저 그리스 민주주의의 원형을 간단히 살펴보고,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민족국가 단위의 민주주의의 쇠퇴를 돌아보려한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기초 체력으로서의 지역 시민자치의 중요성과 의미를 논의해 보려한다.

 

2. 2500년 전 그리스에서 시작된 민주주의는 실은 작은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민주주의였다. (물론 <민주주의의 삶과 죽음>이라는 역저를 내놓은 호주의 정치학자 존 킨은 민주주의의 원형은 고대 그리스뿐 아니라 인도, 소아시아,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도 관찰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의미 있는 주장은 아직까지 널리지지 세력을 만들어내지는 못하고 있다) 아테네 등을 비롯한 도시국가 시민들(당시에는 일정한 재산을 가진 남성들로만 국한되어 있었다)의 숫자는 많아야 몇 만 명에 불과하였으며 이들은 500명 안팎으로 구성된 민회를 구성하고, 추첨으로 재판관을 포함한 여러 공직자들을 선출하였다. (사실 추첨은 어찌 보면 재력, 네트워크, 경력 등을 가진 이들이 독과점 권력을 행사하게 마련인 대의제도보다도 훨씬 민주적일 수 있다) 모든 시민들은 공동체의 주인으로서 스스로 참여하고, 공직은 추첨을 통해 번갈아가며 공동체에 봉사하는 관념에 가까웠다.

다시 말해, 참여, 시민들의 심의와 토론, 대표자와 시민의 직접적 연계 등 오늘날 여전히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라고 일컬어지는 요소들은 당시 그리스의 조그만 공동체에서 두루 작동하던 것들이었다.

 

3. 이야기가 복잡해지기 시작한 것은 18~19세기 무렵에 걸쳐 유럽에서 민족국가를 단위로 한 민주주의가 서서히 진전되면서부터였다. 베스트팔렌 조약을 통해 정치공동체의 기본단위로 등장한 민족국가의 규모는 적어도 백만 혹은 수백만의 인구를 거느린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이었다. 상업, 산업자본의 발달과 더불어 등장한 시민계급은 민족국가를 단위로 하는 정치공동체의 양식으로서 민주주의를 도입한 주역이었다.(‘시민 계급 없이 민주주의 없다는 민주주의 출현을 설명하는 오랜 명제이다)

인간들은 수천 년 만에 민주주의를 다시 정치적 삶의 양식으로 되돌려놓았지만 이는 공동체의 크기를 둘러싼 중대한 전환이었다. 인구 수만 명의 도시국가의 민주주의와 인구 수백만의 민족국가의 민주주의는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었다. 가장 앞서서 시민민주주의를 실현하려 한 (이때도 여전히 시민은 재력, 학식을 갖춘 남성으로 한정되어 있었으며 오늘날의 보통민주주의에는 근본적으로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다) 민주주의의 중대한 전환, 즉 공동체 규모의 전환을 이루었다는 것이 현대 민주주의 이론의 거장 로버트 달의 관찰이었다.

민족국가에서 민주주의는 시민들의 대표를 선거를 통해 선출하고 이들에게 일정 기간 권력을 맡기는 대의제민주주의였다. 그 이후의 스토리는 우리가 이미 충분히 알고 있는 바이다. 선거권은 점차 확대되고 보통민주주주의가 자리 잡게 되었으며 동시에 대의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일반적 양식으로 정착되었다. 하지만 민족국가의 정치적 대표자들(의원)과 이들의 조직인 정당은 시간이 갈수록 동맥경화에 빠져들었다. 자신들 조직의 이익이 시민의 이익에 우선하고, 이를 통해 대의민주주의에서 민주주의는 점차 사라지고 대의만 남게 되었다.

 

4. 오늘날 전지구적으로 폭넓게 관찰되는 민주주의의 위기 혹은 쇠퇴를 되돌리기 위해 정당개혁을 말하는 것은 한편으로 그럴싸하지만 실현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이미 정당들은 시민들의 당비보다는 국고보조금이라는 편리한 재정기반을 확보한 채 시민들을 겉으로나마 대표하는 모양새를 얼마든 취할 수 있다. 또한 정당정치에 뛰어드는 시민들의 운동과 세력을 막기 위한 정당법의 진입장벽은 이미 충분히 높아서 새로운 시민들이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등장하기는 한국의 실정에서 거의 불가능하다.

민주주의 회복, 혁신을 이제는 대의제라는 틀, 정당정치의 틀 바깥에서 생각하고 실천하는 사고의 전환이 절실한 시점에 우리는 서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보여주었던 것처럼 시민들이 주권의 주인이면서 스스로의 정치적 운명을 결정하는 민주주의의 터전은 시민들의 작은 공동체이다. 마을, , 로컬이 민주주의가 본래의 매력과 기쁨, 활력을 뿜어낼 수 있는 최상의 터전이다.

장훈 중앙대 교수

작은 공동체, 가까이 있는 공동체의 민주주의 중요성은 이미 수없이 강조되어왔다. 그러나 최근 우리 사회의 일련의 움직임은 이러한 작은 민주주의, 우리 옆의 민주주의를 흔드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민족국가의 힘, 관료제의 힘은 여의도와 세종시에서만 거침없는 것이 아니다. 이들의 힘은 마을, , 우리 가까이에서도 강력하다.

민주주의는 우리가 양보할 수 없는 삶의 방식이다. 민주주의의 삶의 방식은 우리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곳에서부터 지키고 가꾸어야만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공공성(公共性)’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연구세미나95]
  • 문산면 주민자치회, 주민 지혜와 협의로 마을 발전 이끈다
  • 제주 금악마을 향약 개정을 통해 보는 주민자치와 성평등의 가치
  • 격동기 지식인은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연구세미나94]
  • 사동 주민자치회, '행복한 끼'로 복지사각지대 해소 나서
  • 남해군 주민자치협의회, 여수 세계 섬 박람회 홍보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