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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자치 전신 ‘촌계’ 연구 심화 “새롭고 설레는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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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자치 전신 ‘촌계’ 연구 심화 “새롭고 설레는 도전”
  • 김윤미 기자
  • 승인 2021.08.11 15: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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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人터뷰] 박경하 한국자치학회 부설 향촌사회사연구소장

‘호기심천국의 의인화’라면 바로 이 분이 아닐까? 한국자치학회 부설 향촌사회사연구소장 박경하 중앙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얘기다. 향촌사 연구를 위해 그 옛날 대학원생 시절부터 전국 곳곳을 누비며 답사와 취재, 자료수집에 몰두해 온 박경하 소장은 지금도 주변의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도 허투루 보지 않는다. 사진작가이기도 한 박 소장의 카메라 렌즈와 셔터는 늘 바쁘게 움직인다. 지난 6월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 자리 잡은 향촌사회사연구소는 조선시대 지방자치 조직이자 규약인 ‘향약’ 그 중에서도 기층민조직이었던 ‘촌계’ 연구에 집중한다. 이를 통해 현대 주민자치가 살려야 할 가치와 시사점을 찾는데 주목하고 있는 박경하 향촌사회사연구소장을 만났다.

소위 주입식교육의 힘은 정말 세다(‘쎄다라고 좀 더 강하게 쓰고 싶을 정도다). 처음 배운 지(정확히는 암기한 지) 개인에 따라 사반세기 혹은 3,40년이 훌쩍 지났을 수도 있고 잠깐 생각조차 할 일 없던 것들이 툭 던져지면 바로 튀어 나온다. 예컨대 이런 것들이다. 조선 왕 계보(------...), 원소주기율표(-----...) 그리고 향약 4대강목(덕업상권-과실상규...) 같은.

주입식교육에 의해 뇌리에 단편적으로 그러나 강렬하게 박힐 만큼 향약의 힘도 센 것일까? 아마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학창시절 이후 거의 생각도 언급도 할 일 없던 단어일 것이다. 그 단어의 의미가 박경하 향촌사회사연구소장을 거치면 한층 새롭고 흥미롭게 다가온다. 올해 8월 정년을 맞은 그는 26년간 정든 흑석동 연구실을 떠나 인사동 연구소에 새둥지를 마련하며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기대에 차 있다.

정년이요? 시원섭섭합니다. 실은 여러 책임에서 벗어난다는 시원함이 약간 더 앞섭니다(웃음). 중앙대부속고등학교-중앙대 학생과 교수로 50년간 흑석동에서 지내서 그곳을 떠나야한다는 섭섭함이 없지는 않지만 향촌사회사연구소 운영으로 새로운 도전, 기대감이 더 큽니다. 기쁜 건 제 전공인 조선후기 향촌사회사, 지방자치적 성격의 향약, 주민자치적 향약인 촌계를 30년 이상 연구해왔는데, 연구소를 맡게 되면서 오늘날 주민자치의 전신인 촌계 연구를 심화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역사가 과거 속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적 가치를 살리고 계승 적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정년과 함께 향촌사회사연구소서 새로운 도전...촌계의 가치 현대적 계승

 

잠깐 TMI 한 도막. 박경하 소장이 향약과 촌계, 더 거슬러 올라가 역사학과 연결된 것이 광해군을 소재로 한 월탄 박종화의 장편 역사소설 자고 가는 저 구름아의 무의식적(?) 영향이었던 것 같다고. 중학교 시절 어머님이 매일 밤 잠들기 전 머리맡에서 읽어주시던 소설이 바로 이 작품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또 있다. 중앙대에서 역사를 전공했지만 당시 성공한 사업가였던 아버지의 바람과 기대에 부응해 졸업 후 연세대 행정대학원에 입학했다는 것이다. 역사학자로는 드물게 행정학 석사이기도 한 특이한 이력의 시작이다. 그는 재학생, 졸업생들 중에 공무원, 경찰서장, 국회의원이 많았는데 내가 잘 되도 이들처럼 되겠구나싶고 젊은 혈기에 그 분들의 모습이 좋게 느껴지지 않았다. 스스로도 그렇고 주변에서도 역사가 적성에 맞는 것 같다는 얘길 많이 들어서 다시 역사학과 대학원에 진학했다고 말했다. 석사학위가 2개인 셈이다. 지금이야 특이사례가 아닐 수 있지만 1980년대 초반엔 흔치 않은 일이었다.

대학원에 입학해 스승인 우인 김용덕 교수와 만났다. 조선후기 사상사의 대가인 김용덕 교수가 마침 그 당시에 지방사연구로 방향을 전환해 향약 연구를 막 시작할 때였다. 몸이 불편해 현장조사를 다니기 어려운 스승의 손과 발이 되어 전국 향교를 다니며 향약 자료를 수집했다. 해석이 어려운 자료도 많았지만 스승, 동학들과 함께 강독을 하며 연구에 빠져들었다.

중앙 정치사 연구를 해야 뭔가 되도 되니까 지방사 연구는 안할 때였어요. 연구의 불모지였어요. 그렇게 향약 연구를 하면서 성격에 따라 4가지(향규/동계/주현향약/촌계)로 구분을 했는데, 앞의 3개가 모두 지배층의 하층민 통치 도구의 성격이었다면 촌계는 기층민들의 생활사적 조직, 자치조직, 상부상조조직이었어요. 물론 지방마다 이름도 다르고 차이가 있었지만 이게 바로 주민자치다주민자치의 전신이었던 것이죠. 상부상조하는 생활공동체, 두레로 대표되는 노동공동체적인 측면, 제사공동체 즉 오늘날로 말하면 축제공동체로서 동네 주민 간 화합, 일체감, 소통 등의 기능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아쉬운 점은 기층민, 즉 상·천민의 조직 촌계는 불문율, 당연시되는 관습법에 의해 운영되었기에 문서로 남아있는 게 거의 없다는 것이다. 박경하 소장은 밝혀야할 부분이 많다. 90%에 달하는 조선시대 민중들의 쓰여지지않은 역사를 복원해야 한다. 이 부분 연구자들이 많지 않다. 문서, 자료가 있어야 논문을 쓰는 데 그게 없기 때문이다라며 “90% 기층민들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더 많은 현장조사가 이뤄져야 하고, 민속학·문화인류학 연구방법론을 도입해 공백을 복원하고 이를 주민자치로 연결해야 하는 의무가 나에게 있는 것 아닌가하는 사명감이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90% 기층민조직 촌계’, 문서 남아있지 않아 연구 어려워...쓰여지지않은 역사 복원 사명감

 

박경하 소장에 따르면, 1930년대 초반 1500개 마을에서 정월대보름에 제사를 지냈다는 조사 결과가 있었다고. 그 지역에 가면 문서는 없어도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의 얘길 통해 촌제의 전통을 조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문서가 남아있지 않다고 해서 역사적 사실이 없는 게 아니다. 쓰여지지않은 역사를 찾아 복원하는 게 역사가의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이제 막 첫걸음을 시작한 향촌사회사연구소를 통해 박경하 소장이 하고 싶은 또 다른 역할은 촌계의 주민자치 정신, 즉 의리와 협동 등을 알리는 운동을 하는 것이다.

각 지역 주민자치위원 분들이 향토사가가 되어야 합니다. 고장에 대한 애향심을 가졌을 때 주민자치가 되거든요. 고장에 대한 역사적 자부심을 심어주는 강연을 하고, 고장 자료들을 찾아서 연구소에 제공해주시면 그것으로 연구도 하고, 지역 위원들에게 고장 연구를 할 수 있는 역량을 배양시키는 연구방법론 강의도 하고픈 마음입니다. 향토사는 지역 분들이 제일 잘 알거든요.”

현장(Field)이 선생이다박 소장의 좌우명이다. 현장에서 연구자료도 찾고 삶도 배우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현장이 답이다’.

박경하 소장이 촌계연구를 심화시키고자 하는 이유에는 스승 김용덕 교수의 각별한 유지(遺旨)도 있다. 별세 직전 김 교수는 나중에라도 칠순 팔순 논총 내겠다는 말 하지 말고 조선후기 촌계연구라는 이름으로 책은 한 권 내달라고 말했다. 박 소장은 “30년 가까이 교수 생활을 하면서 이 말을 가슴에 새기고 있고 모든 걸 떨치고 뛰어들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사료가 남아있지 않아 쉽게 뛰어들기 어려운 분야라 장기적 관점의 연구가 필요하다는 고충도 털어놨다.

 

개인주의적·이기적 사회에서 주민자치가 갖는 의미는?

 

한국자치학회 부설 향촌사회사연구소가 개소되기까지 전상직 한국자치학회장과의 인연은 박경하 소장에게는 신기한 경험이다. 2년 전 학술대회 발제를 의뢰받으며 시작되어 1년에 2번 이상 특강을 해 왔다. 마침 촌계 연구를 강화하려고 하던 차에 전 회장과 만났는데 이미 김용덕 교수의 10여 년 전 논문부터 자료들을 다 읽어 향약, 촌계에 대한 관심 범위가 상당히 넓은 것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박 교수는 현재의 주민자치회는, 자치단체의 자문기구에서 출발했고 자치위원도 지자체장이 임명하는 등 제도적 한계가 있다. 조선시대 촌계는 양반들의 간섭을 안 받았고 주민 스스로 대표를 뽑았다. 주민대표를 주민 스스로 선출하는 게 중요하다. , 행사가 있을 때 주민들이 똑 같이 비용을 대고 권리를 요구하는 시스템도 갖춰야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그 과정 속에서 공동체적 삶으로의 변화도 생기지 않을까 싶다고 제안했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의문이 생긴다. 소위 먹고사니즘에 지쳐 점점 더 개인주의적이고 파편화되는 이기적인 사회 속에서 상부상조’‘공동체의식’‘협력과 소통의 가치가 중요한 주민자치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박 소장은 상식적인 얘기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개인화된 사회 같지만 우리는 공동체 속에서 살고 있다. ‘난 간섭도 도움도 주지도 받지도 않고 싶다고 하지만, 이러면 우리 삶이 어려워진다. 당장 아파트의 층간 소음 갈등은 누가 해결하나? 개인끼리? 관리소장이? 우리는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살아야 하고 이를 위해 뭔가를 합리적으로 찾아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건 조례로 해결되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다수결의 원칙? 다수결이 항상 옳진 않다.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다수결에 따르는 합리성이 있어야 하고 중간지대라 할 수 있는 주민자치회에서 지혜를 짜야 한다고 제시했다.

그 사람에 대해 부정적 평가, 안 좋은 얘기를 할 상대라면 아예 만나질 말아야한다. 가까이 만나는 지인이 있다면 그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얘기를 하지 말아야 한다.’ 박경하 소장의 인간관계론이다. ‘무슨 무슨 사람 필요하면 말씀하세요그에게 자주 듣는 말이다. ‘도와 줄 수 있을 때 힘닿는 데까지 도와주자는 지론을 실천하는 스타일인 만큼 박 소장 주변에는 그를 도와주려는 지인들도 많다. 상부상조, 절로 떠오르는 사자성어다.

연구실 벽에 붙은 그림과 고문서들
연구실 벽에 붙은 그림과 고문서들

 

김윤미 기자 citizenautonomy@gmail.com

사진=현동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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