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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인 김용덕 교수의 역사관과 향약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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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인 김용덕 교수의 역사관과 향약연구
  • 박경하 중앙대 교수
  • 승인 2021.08.11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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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하 교수의 향약이야기①

‘조선시대 향촌사회의 자치규약’. ‘향약’의 사전적 의미이다. 여기에 바로 이어지는 것은 ‘덕업상권’‘과실상규’‘예속상교’‘환난상휼’ 등 학창시절 역사시간에 달달 외웠던 ‘향약의 4대 강목’이다. 다분히 정형화되고 박제화 된 향약에 대한 인식을 바꿔준 것이 바로 조선시대 기층민들의 상부상조 자치조직 ‘촌계’이다. 오늘날 주민자치의 한 원형과 단초를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이에 조선시대 향촌사연구 전문가로 사단법인 한국자치학회 부설 향촌사회사연구소장인 박경하 교수의 향약이야기를 이번 호부터 새로 연재한다. 전통시대 향약·촌계를 재조명함으로써 오늘날 주민자치에 주는 의미와 시사점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편집자주]
우인 김용덕 교수

해방 후 조선시대 연구자로서 지방사 연구에 주목한 1세대 연구자로 중앙대학교 사학과의 우인 김용덕 교수를 들 수 있다. 특히 김 교수는 1980년대 이후 지방자치의 성격을 가진 향약연구에 집중하였다. 따라서 ‘향약’이야기 시리즈를 연재하는데 있어 김 교수의 역사관과 향약연구 성과를 서론으로 먼저 소개하고자 한다.

 

‘식민사관의 극복’ 해방 후 한국사 연구자들의 과제

김 교수는 1922년생으로 개성에서 출생하였다. 1940년대 초반 경성제대 법문학부에 입학해 역사학을 전공하던 중 일제에 의해 학병으로 징용하였다. 해방 후 1945년에 미군정 하에 경성대학을 졸업하였다.(미군정 시 경성제대가 경성대로 명칭을 변경하였다가 이후 서울대학교로 개편하였다) 이후 5, 60년대에는 조선후기 제도사, 특히 실학사상사를 연구하였다.
해방 후 한국사 연구자들의 연구의 관심은 일제 관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식민사관의 극복에 있었다. 일제의 식민사관은 식민지 지배의 정당성을 역사적으로 증명하기 위한 논리였다. 19세기 말의 조선은 스스로 근대화할 수 있는 역량이 없으므로 근대화를 위해서는 근대화된 나라의 도움을 받아야 된다는 주장이다. 즉 타율성(他律性)의 논리이다.
이 논리가 근거를 갖추기 위해서는 조선후기가 후진적이며 정체적(停滯的)이라는 것을 역사적으로 증명해야 했고 이를 위해 일본의 관학자들이 동원돼 연구가 이뤄졌다. 이런 타율성과 정체성의 논리가 성립된다면 일제의 조선 지배는 침략이 아니라 후진적․정체적인 전근대로부터의 구제를 의미하며, 일제의 지배는 구속이 아니고 시혜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일제의 지배는 조선의 근대화를 위해서는 침략의 손이 아무리 피비린내 난다고 해도 필요악이다”라는 논리로 비약된다. 
이 논리는 일본의 독창이 아니고, 영국이 인도를 지배할 때의 식민지배 논리를 베낀 것이다. 여하튼 이 논리에 일본인들 스스로 마취되어 오늘날 한국의 발전에는 식민지배하의 조선의 근대화가 기초된 것인데 한국인들은 고마움을 모르는 배은망덕한 민족으로 많은 일본인들이 치부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정부의 역사교과서는 제대로 된 사실을 아예 언급하지 않거나 왜곡시켜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일본 역사교과서의 왜곡문제를 우리나라가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실학사상’을 ‘자본주의 맹아’로, ‘당쟁’은 경제와 균형의 ‘붕당정치’로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연구자들은 조선후기를 정체적이고 후진적으로 파악하는 식민사관을 극복하기 위하여 조선후기 ‘실학사상’을 자본주의는 아니지만 자본주의의 맹아, 즉 싹이 있었다고 보고 이 연구에 집중하게 되었다. 1972년에 김용덕 교수도 초정 박제가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외에 정치사, 제도사, 사상사 분야의 다양한 연구를 하였다. <붕당정치 비판>에서는 식민사학자들이 당쟁을, 조선 사람은 둘만 모이면 싸운다는 민족성에서 유래한다고 보는 시각을 비판하며, 당쟁이 아니라 견제와 균형의 붕당정치임을 밝혔다. <소현세자 연구>에서는 소현세자가 독살되었다는 주장을 하였다. 실학연구에서는 실학의 시작을 16세기의 율곡으로 끌어 올려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리고 이 때까지의 연구를 《조선후기 사상사연구》(을유문화사, 1977)로 정리하여 일단락 지었다. 
197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규장각의 읍지들을 활용한 지방사 연구로 관심을 돌려, 당시 지방자치 지방행정 조직으로서 연구의 불모지대인 향청에 주목하여 《향청연구(鄕廳硏究)》(한국연구원, 1978)를 펴냈다. 1983년에는 《한국제도사연구》(일조각, 1983)로 그간의 연구를 정리하였다.
우인이 향약연구에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는 뇌혈전으로 반년 가까이 병원에 누워 지내면서도 우리 역사에 있어서의 여러 기본적인 문제들을 사색하면서 조선후기의 농촌생활이 공동체적이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마을에서의 공동체적인 생활, 즉 상부상규 하던 동리 주민 상호간의 도움, 협동과 자치야말로 오랜 전통을 가진 관습이요 이것이 가난과 전쟁으로 뒤덮인 유구한 역사를 이겨낸 민족적 생명력의 샘이요 우리 역사의 관건이 바로 여기 있다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김용덕,「향약신론」,『신한국사의 탐구』, 범우사, 1992, 242쪽) 이 시기에 우인은 앞으로의 한국사의 연구 방향은 중앙사에서 지방사로, 정치사에서 생활사로, 남성사에서 여성사로 나아가야 함을 제시하였다.  

 

중앙사→지방사로 정치사→생활사로 남성사→여성사로 연구 방향 전환 제시

1980년대 초반 중앙대 역사학과 대학원에 5, 6명의 전업 대학원생들이 들어 와 우인의 향약연구가 본격화 되었다. 몸이 불편하던 우인을 대신하여 필자는 규장각을 비롯, 전국의 대학 도서관과 향교, 서원 등의 소장 향약 자료 수집하였고, 당시 대학원생 이규대(후에 강릉원주대 교수)는 강릉지역의 알려지지 않은 향촌자료들을 수집하였다. 이 외 대학원생들도 경쟁적으로 전국의 향촌사회사 자료들을 찾아 다녔으며 이 자료를 가지고 수업시간에 강독을 하고 방학 중에 우인이 논문을 저술하여 그 다음 학기에는 그 논문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지도교수나 학생들이나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고 주목받지 못한 새로운 역사를 복원 재조명한다는 점에서 신명이 나서 자료 수집과 연구에 매진하였다.
이에 힘입어 우인은 1983년에 향약연구회를 결성하여 향촌사회사 연구에 도움을 줄 민속학, 경제학, 사회학 등의 전문가와 특히 이해준(목포대, 후에 공주대 교수), 정진영(영남대 민족문화연구소, 후에 안동대 교수) 등의 향촌사회사 연구자들과 교류하여 많은 도움을 받았다. 당시 이우성 이태진 임원택 정만조 신용하 김인걸 노명호 김필동 선생 등 각 학문 분야의 쟁쟁한 분들이 발제를 해주었다. 87년부터는 대우재단 이용희 이사장의 배려로 대우재단 세미나실에서 경비를 지원받으며 30차까지 콜로키움도 가졌다.
이 콜로키움의 연구 결과로 1990년 《조선후기 향약연구》(민음사)를 발간할 때는 향촌사회사연구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 책의 서론인 <향약신론>에서 김 교수는 향촌사회사의 연구가 도래할 지방자치에 기여해야 함을 기대하며 다음과 같이 썼다.

“향촌사회사연구회는 편향된 논리나 구태적 타성에 벗어나 민중의 생활사, 특히 자치적 사회생활을 밝혀 다가오는 우리 지방자치의 성공적 정착을 위하여 응분의 공헌을 하였으면 한다. 또 연구방법론에 있어서도 문헌에만 의존하는 방법의 한계성을 인식, 민속학이나 문화인류학과의 밀접한 연계 아래 역사민속학적인 성과를 거두었으면 한다.”

우인은 <향약신론>에서 “그 동안의 연구에서 얻은 나의 결론은 첫째 이름은 같은 향약이지만 내용을 검토하여 우선 이것이 크게 성격이 다른 향규(鄕規), 동계(洞契), 주현향약(州縣鄕約), 촌계(村契)의 넷으로 나누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향약의 성격 4가지로 구분...이중 기층민 자치조직 ‘촌계’, 집중 재조명해야할 연구 분야

‘향규’는 향촌의 재지사족들이 향촌사회를 지배하기 위한 규약으로 오늘날의 지방의회와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 ‘동계’는 사족이 거주하는 동단위에서의 상천민들을 양반중심으로 지배하고자 하는 조직이다. ‘주현향약’은 수령이 직접 한 군현을 통치하기 위한 목적의 향약이다. 이와는 다른 성격으로의 ‘촌계’는 당시 7, 80%의 상천민이 사는 민촌에서의 공동체적 생활을 위한 조직으로 조선시대 이전에도 존재한 자생적 조직이다. 일상생활에서의 제사공동체, 노동공동체, 생활공동체로서의 기능을 갖고 있었다. 촌계연구가 진전이 안 되는 점은 기층민의 자치조직인 촌계에 대한 자료가 거의 문서로 남아 있지 않다는데 있다. 
똑같이 향약이라 부르지만 이렇게 네 가지로 그 성격을 구분해 분석해야 할 것을 우인은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향규, 동계는 재지사족의 향촌지배를 위한 조직이고, 주현향약은 지방관의 향촌통치를 위한 것이었다. 촌계는 기층민의 주민자치적 자율 조직이었다. 우인은 그 중에서 특히 거의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는 촌계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하고자 했으나 지병으로 1991년에 작고하여 뜻을 이루지 못했다.
돌아가시던 해에 필자의 박사학위 논문의 연구가 제대로 진척되지 않아 오래간만에 찾아뵌 적이 있었다. 점심식사 후 도산공원을 걸으시며 우인은 “박군, 내가 죽더라도 80주년, 90주년 기념논총 같은 것을 만들지 말고 《조선후기 촌계연구》라는 책을 출판해 주게”라고 하셨다. 이 말이 선생님의 유언이 되었다. 곧 정년을 맞는 필자에게 이 말씀은 항상 빚으로 남아 있다. 이제부터라도 촌계연구에 좀 더 천착해야겠다. 우인의 ’70년대 이후 향촌사회사 연구 목록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향청연구》(한국학연구원, 1978), <향약과 향규>(《한국사상》 16, 한국사상사연구회,1978), <향규연구>(《한국사연구》 54, 한국사연구회, 1986), <동계고>(《두계이병도박사구순기념논총》, 지식산업사, 1987), <김기향약연구>(《조선후기 향약연구》, 향촌사회사연구회, 민음사, 1990), <향약신론>(《조선후기 향약연구》), <조선후기의 지방자치>(《신한국사의 탐구》, 범우사, 1992), <촌회와 향회-공동체적 가치의 현대적 실현을 위하여->(《신한국사의 탐구》) 

<촌회와 향회> 논문은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에 필자를 비롯한 소장 연구자들이 1년 전에 창립한 ‘한국역사민속학회’의 연구발표회에서 발표한 마지막 유고이다. 위의 논문들을 제자들이 《신한국사의 탐구》(범우사, 1992) 유고집으로 펴냈다.
지금까지의 연구 관점은 주로 향규와 동계를 통한 사족의 향촌지배, 주현향약을 통한 중앙의 향촌통치에 대한 관심과 연구였다면, 이제는 주민자치의 촌계연구에 중심을 두고 조선 후기 기층민의 생활사를 복원 재조명해야 할 것임을 강조했다. 

조선시대 향약의 상부상조 전통을 엿볼 수 있는 제주도 성읍마을의 민속재연(검질매기) 모습
조선시대 향약의 상부상조 전통을 엿볼 수 있는 제주도 성읍마을의 민속재연(검질매기) 모습

전통시대 촌계, 현대 주민자치에 정신적 가치로 계승 적용할 사례

우인 김용덕 교수의 40여 년 전의 바람과 전망대로 현 사회에서는 주민이 중심이 되는 지방자치, 주민자치의 요구가 활발하고, 전국의 지자체에는 완전한 형태는 아니지만 주민자치(위원)회가 설치되어 주민의 의사가 일정 부분 반영되고 있다. 최근 (사)한국자치학회가 부설로 ‘향촌사회사연구소’를 개설하여 정년을 맞이하는 필자를 소장으로 하여 오늘날 주민자치의 전신인 촌계연구를 진행토록 하고, 주민자치위원들에게 각 지역에서의 향약〮·촌계의 사례와 정신을 보급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사)한국자치학회 회장이자 한국주민자치중앙회를 이끌고 있는 전상직 회장은 10여 년 전부터 고 김용덕 교수와 중앙대 역사학과에서의 향약연구를 유심히 리뷰하고 있었다. 전통시대 촌계에서의 협동 상호부조 하는 공동체정신과 생활양식이 현대의 주민자치에 정신적 가치로 계승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가 과거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현대에 계승 적용할 수 있는 사례라는 점에서 향약·촌계연구는 역사적 의미뿐 아니라 그 현대적 가치가 크다고 할 것이다. 

 

박경하

중앙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한국자치학회 부설 향촌사회사연구소장. 한국역사민속학회인문콘텐츠학회장 역임. 중앙대 문학박사. 저서 [한국전통문화론], [한국 역사 속의 문화적 다양성](공저), [동서양 역사 속의 다문화적 전개양상](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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