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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알지 못하는 ‘선진 한국’의 사회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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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알지 못하는 ‘선진 한국’의 사회자본
  • 이관춘 연세대 객원교수
  • 승인 2021.08.12 13: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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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춘의 마을·자치·교육]

어쩌다 선진국은 없다

제품의 포장이 그렇듯 텔레비전 오락 프로그램도 이름 짓기가 중요하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기억나는 내용은 없는데 이름만은 맴도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내게는 어쩌다 어른이 그렇다. 난생 처음 어른이 된 사람들이 뒤를 돌아보며 회고적으로 사용하는 말이 어쩌다인 것 같다. 그런데 이 말은 본래 의미와는 상관없이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세상사의 인과성(因果性)을 생각하게 해준다. 어른이 된 것이건, 어쩌다 길에서 어릴 적 친구를 만난 것이건 반드시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철학에서 말하는 인과율(causality)은 어떤 상태[결과]는 필연적으로 어떤 상태[원인]에서 비롯되었음을 강조한다. 인과란 자의(字意)에서 보듯 원인과 결과는 떼놓을 수 없다. 낱개의 말이 아니라 분리될 수 없는 짝말인 것이다. 시간적으로 원인은 결과에 선행한다. 물론 모든 현상이 뒤에 일어나는 현상과 인과적 연관을 맺는다는 말은 아니다. 밤이 아침에 선행한다고 아침의 원인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아가 대표적 경험론자인 데이비드 흄의 말대로 원인과 결과의 관념은 단지 마음의 습관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경험은 개인적 삶이나 사회현상에서 인과성을 무시할 수 없음을 말해주고 있다.

대한민국이 또 한 번 세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지난 7월 어느 신문의 기사 제목이다. 우리나라가 공식적으로 선진국으로 진입했다는 뉴스가 뒤를 이었다. 지난 72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서 한국의 지위가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이동했다는 소식이다. 1964UNCTAD가 설립된 이래 지위가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인정받은 것은 우리나라가 최초라고 한다. 참으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치 전교생 200백 명이 넘는 학교에서 꼴등하던 학생이 뒤늦게 공부를 파고들어 10등 안팎으로 성적이 향상된 것과 다를 바 없는 사건이다. 웬만한 노력으로 이루기 어려운 일이다. 그나마 개인의 학교 성적으로는 가능한 일이지만 국가 차원에서는 이루기 어려운 현상이다. 세계 최초라는 말이 이를 입증한다.

그러니 세계 역사의 한 페이지 장식이란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한국전쟁의 휴전이 선언된 1953년 일인당 국민소득이 67달러였음을 상기해보면 더욱 그렇다. 작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31755 달러였다. 코로나19 타격으로 1.1% 감소했지만 2017년 이후 계속해서 3만 달러를 웃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눈여겨볼 만한 의미는, UNCTAD의 지위 변경은 단순히 경제 규모만 크다고 결정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싱가포르는 한국보다 잘 사는 아시아의 부국이다. 2019년 기준 싱가포르의 1인당 GDP는 약 65천 달러로, 한국(32천 달러)보다 높았지만 아직도 선진국으로의 지위 격상이 이뤄지지 않았다. 경제력만이 아니라 이 나라는 이제 선진국이다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하는 모양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그룹 이동에는 'K-방역 성과'도 한몫했다고 말한다. 국내에서의 정치적 편견과 상관없이 국민들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과 존재감이 달라졌음을 느끼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쩌다선진국 반열에 올라서게 된 것일까? 한 국가의 발전에는 어쩌다가 없다. 지금까지 한국사회가 걸어온 길에서 우리가 흔히 지나치기 쉬운, 그러나 외국인들의 눈에는 놀라움과 경탄을 자아내는 몇 가지 현상들을 되돌아보자.

 

한국만의 네 가지 현상

월드컵 경기가 열릴 때마다 국내에서 벌어진 시민의 단결된 응원은 외국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다. 과거 한일 월드컵 경기 때는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세계의 언론은 수많은 인파가 몰려든 서울시청 앞 광장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연일 흥미 있게 보도하였다. 시민의 수도 수지만 하나같이 붉은 유니폼을 입고 응원에 열광하는 모습, 승패에 따른 폭력사태나 무질서가 없는 광경, 경기 후 관중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광장의 휴지 한 장 없는 풍경 등 다른 나라에서라면 으레 있을법한 무질서와 폭력, 쓰레기가 없는 이른바 ‘3무 월드컵에 전 세계 시민은 놀라움과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시청 앞 응원 모습을 본국으로 생중계하던 호주의 채널9 TV 방송국 기자는 똑같은 현상이 시드니에서 벌어졌을 경우 과연 어떠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는 말로 한국인의 수준 높은 의식과 행동에 찬사를 보냈다.

한국 역사에서 외국인에게 한국인의 이미지를 가장 깊게 각인시킨 사건이 있다면 아마도 IMF 위기극복을 위한 금모으기 운동이었을 것이다. 특히 그 몇 해 전 재정위기에 빠진 그리스에서 긴축정책에 항의하는 격렬한 파업과 시위가 벌어진 것과 비교되면서 새삼 화제가 되었었다. 블룸버그 통신의 한 칼럼니스트는 “1998년 한국에서 있었던 금모으기 운동은 지금까지 목격한 가장 감동적인 장면 중 하나였다라고 밝혔다. “나라의 위기를 이겨 내기 위해 시민들이 그렇게 노력한 것은 현대사에서 전례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언론은 한국인들과 비교하여 한국은 금을 모았고, 그리스는 돌을 던졌다고 평가하였다. 한국은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에 부딪힐 때마다 가장 빠르게 회복한 국가 중 하나로 평가받았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에서 장기간 체류하고 있는 외국 기업인들이 한결같이 궁금해 하는 현상이 있었다. 강성노조로 노사관계가 극한대립으로 치닫기도 하는 반면에, 회사경영이 어려울 때는 임금을 자진 반납하면서까지 구사운동을 하는 임직원들의 태도였다. 철저한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한 서양인의 눈으로 보면 마냥 신기한 사건인 셈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서양 컨설팅회사의 합리성에 바탕을 둔 기업평가에서 재기 불가능판정을 받은 기업을 한국인 근로자들이 살려 낸 사례도 종종 있었다. 특히 IMF 금융위기로 경제가 휘청거리던 1990년대 후반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외에도 부도로 인해 폐업 직전에 있던 회사를 노사가 합심해서 혹은 근로자가 직접 인수·경영해 회사를 정상화시킨 사건은 비일비재하다.

과거 한국의 공공장소 화장실은 불결함의 대명사였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판이하게 다르다. 고속도로 휴게소를 포함한 공공장소, 음식점, 카페 등의 개인 시설을 포함한 대부분의 화장실 청결 상태는 괄목할 정도로 개선되었다. 서구의 유수한 어느 문화도시보다 더 청결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유럽을 여행해 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정부 행정기관의 지시나 혹은 시민단체의 제안이 있었다 하더라도 어떻게 이런 변화가 단시일 내에 일어날 수 있는가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외국인들이 많다.

사회적 자본인 응집력

위의 네 가지 사례는 과거 한국 사회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사례들 중 일부일 뿐이다. 언뜻 보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단편적 사회현상으로 치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회현상은 그 사회구성원들의 내면적 작용, 내면적 가치와 선택에 의해 일어난다는 사회심리학적 명제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서양에서는 흔치 않은 이런 한국적 사회현상을 결코 우연한 혹은 일시적인 것으로만 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한국적 사회현상 저변에는 한국인만이 가지고 있는 특정한 사회 문화적 동인이나 에토스가 자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대표적인 것이 사회적 합의 혹은 사회적 응집력을 도출해 내는 역동적 동인이다. 즉 사회가 합리적 목표를 설정하고 구성원들이 그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게 되면 신속하게 결속할 수 있는 판단력과 실행능력이다.

한 국가의 경쟁력은 과거에는 엘리트 중심의 경쟁력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했다면, 21세기 다원화 및 다양화된 세계화시대에는 구성원 모두의 총체적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한다. 총체적인 국가경쟁력에는 지적 및 창의적 능력, 기업가정신과 같은 개인적 차원의 요인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사회적 합의를 용이하게 이끌어 내어 효율적 정책 수행 및 시너지 효과를 창출해 낼 수 있는 사회문화적 요인 또한 필수적이다. 이른바 경제성장의 주요 요소로서 경제학자들이 내세우는 사회자본(social capital)이 요구되는 것이다. 경제학 이론에서 규정한 경제성장의 요인을 모두 갖추고도 성장이 지체 또는 퇴보되고 있는 남미 등지의 국가들이 있다. 반면에 한국과 같이 그런 요인들이 부족하지만 성장과 발전을 이루고 있는 나라들도 존재한다. 이런 상이한 현상에 대한 원인 분석에서 주요 요인으로 제기되고 있는 것이 바로 사회자본이다.

사회자본이란 말은 1980년대 프랑스 사회학자인 피에르 브루디외(Bourdieu)가 경제자본과 문화자본에 대비되는 개념으로서 체계적으로 분석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이후 제임스 콜만이 인적자본과 관련하여 사회자본을 연구하였고, 1990년대에는 로버트 퍼트넘이 일련의 연구를 통해 관심과 논의를 확대시켰다.

사회자본이란 물적자본과 인적자본의 상대적 개념으로서 개인과 조직사이의 사회연결망이나 이를 통해 발생하는 각종 가치와 규범, 상호호혜, 신뢰, 협력과 연대, 공정, 참여, 공동체정신 등을 통칭하는 개념이다. 앞에서 소개한 사례는 단순한 해프닝이나 일회적 사건에 그치는 현상이 아니다. 한국사회 저변에 자리 잡고 있는 사회자본으로서의 사회적 합의 및 사회적 응집력을 여실히 입증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사회자본은 교육이나 학습에 의해 쉽게 형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막스 베버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강조하듯 사회 자본은 오랜 기간 역사와 문화 속에서 형성되는 암묵적 지식이자 역량인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사회의 사회적 합의사회 응집력사례들은 어쩌다현상이 아닌 한국만의 독특한 사회적 자본이라 할 수 있다. 최근 한국이 선진국으로 공인된 역사적 사건 이면에는 바로 이러한 사회적 에토스가 떠받치고 있었던 것이다.

 

과거는 그렇다 해도 지금은?

그렇다면 과거는 그렇다 쳐도, 과연 지금도 그런 사회적 합의나 응집력이 우리 사회에 남아있는가? 진영논리가 판을 치고 때로는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정치현실을 볼 때 이런 의문은 설득력이 있다. 공동체의식은 사라지고 각자도생의 이기심이 지배적인 현실에서 사회 응집력으로서의 사회자본을 주장하는 것은 마치 흘러간 옛 노래처럼 들린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충분히 동의할 수 있는 주장이다.

사회적 합의와 응집력에 기반 한 공동체의식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물결에 밀려 약화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프로테스탄트 윤리에 기초한 사회적 에토스가 서양 자본주의 정신을 불러왔다고 주장한 막스 베버 역시 이 점을 지적하였다. 다시 말해 프로테스탄트 윤리로 무장한 도구적 이성은 합리성과 그로 인한 부의 축적 및 자본주의 발달을 가져왔지만, 그 종교적인 금욕의 에토스가 부에 밀려 퇴색되면서 인간의 소외 및 비인간화현상이 심화되었다는 분석이다.

베버에 따르면 본래 돈과 물질은 서양 사람들에게 언제든 벗어던질 수 있는 얇은 외투였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심화되면서 그 돈과 물질은 강철같이 튼튼한 우리(iron cage)’가 되어 사람들을 쇠창살에 가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현대인들은 영혼이 없는 전문가, 즉 니체가 말하는 최후의 인간들이 되어간다고 비판한다. 한국 사회도 베버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한 사회의 문화 혹은 사회적 에토스는 외형적 변화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강한 지속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데 많은 학자들은 동의한다. 이익과 경쟁, 효율성이 중시되는 현재의 한국사회에서도 구성원 간의 조화와 협동, 타인을 배려하는 문화가 뿌리깊이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목격하게 된다.

 

또 다시 빛을 발한 사회적 힘

앞서 언급한 대로 전문가들은 한국이 선진국 그룹으로 이동하게 된 데에는 'K-방역 성과'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이런 평가는 개인의 감각적 승인 혹은 거부감에 기초한 정치적 편견에서 벗어나, 위기에 직면했을 때 나타나는 한국 사회의 합리적인 사회적 응집력의 관점에서 해석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사회적 자본이 여전히 역동적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은 대부분의 외국 언론이 공통적으로 보도하고 있는 평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외신이 한국의 코로나19 대응 방식에서 주목하는 점은 한국사회의 사회적 자본인 바로 그 응집력이다.

미국 데일리 비스트(Daily Beast 3.13)다른 나라들과 달리 한국은 코로나19 대처에 성공을 거두는 중이다. 그 중요한 요인은 한국인들의 절제력과 사회 전체의 응집력이라고 단언하였다. 다른 외신들도 공통적으로 한국사회의 사회적 응집력이 민주주의에 기반 한 공동체의식으로 드러나고 있다고 평가한다.

독일 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Frankfurter Rundschau 3.13)는 한국의 바이러스 대처 성공을 전하면서 그 원인은 방역 대책에 협조하는 절도 있는 시민들때문임을 강조하였다. 같은 맥락에서 독일 슈피겔(Spiegel)한국인들은 민주주의가 바이러스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그 해법은 바로 월등한 의료기술과 함께 투명성, 공동체의식으로 실천하는 사회적 거리두기라고 분석하였다. 미국의 더 힐(The Hill)이나 영국 텔레그래프(Telegraph), 호주의 데일리 텔레그래프(The Daily Telegraph) 역시 공동체의식에 기초한 모범적인 사회적 거리두기가 감염률을 낮추는데 큰 효과를 보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영국 BBC의 분석은 좀 더 구체적이다. BBC는 많은 한국인들과의 인터뷰 결과를 소개하면서 한국인들이 나 자신에 대해 걱정하지 않더라도 다른 이들을 위해서 마스크를 착용할 것이라고 말한 점을 강조하고 있다. BBC 방송은 단언한다. “한국에서는 확실히 많은 사람들이 공동체 책임의식을 느끼고 있다.”

 

한국적 사회자본을 위한 교육

우리의 인식여부와 관계없이 외국인들은 한국사회의 응집력과 공동체의식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실제로 그 공동체의식이 현재의 선진국으로 평가받게 된 중요한 사회적 동인이었던 것이다. 1980년대 이후 서양 학계에서는 자유주의는 한계에 달했으며 그 대안으로 새로운 시민공동체에 대한 인식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지속되고 있다.

마이클 샌델을 포함한 공동체주의자들은 서양의 위기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나는 서양의 극단적 자유주의 즉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이며, 다른 하나는 극단적 집단주의, 즉 전체주의적 권위주의이다. 이 두 가지 사회적 에토스가 시민의 자유공동체를 파괴하고 피폐하게 만들고 있으며 여기에서 현재의 정치·경제·사회적 난제가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서양사회가 지향해야 할 것은 결국 공동체주의라고 강조한다. 한국사회가 서양의 자유주의를 동경하는 동안 서양은 우리의 공동체의식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유주의에 한계가 있듯 공동체의식에 기초한 사회적 자본에는 어두운 민낯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연고주의(緣故主義)의 어두움이다. 공동체적 연대와 응집력, 타인에 대한 배려와 나눔은 프란시스 후쿠야마가 말하는 소중한 결속형 사회자본임은 분명하다. 반면에 끼리끼리식의 혈연, 지연, 학연 혹은 직장연 등에 한정된 집단의 범주를 넘어서야 한다는 과제를 생래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의식의 전환 없는 공동체의식은 21세기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사회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법과 정의의 잣대를 철저히 선택적으로 들이대는 법조인들을 보면서, 지위를 이용해 철저히 자신과 가족의 이익만을 챙기는 일부 국회의원들을 보면서,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동인이 되었던 사회적 자본의 어두운 면을 확인하게 된다. 이제는 그 어두운 면을 몰아내자는 사회적 합의와 사회적 응집력이 필요한 때이다. 투명성과 공정성에 기초한 사회적 응집력은 선진 한국의 역동적 힘이자 교육적 과제이다. 주민자치교육의 과제이기도 하다.

 

이관춘

연세대학교 객원교수. 평생학습타임즈 논설위원. 전 한국성인교육학회장. 호주 시드니대 철학박사. 저서 <거리의 파토스><호모키비쿠스><니체, 세월호 성인교육을 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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