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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관치’ 많아 갈길 멀어...역량 키워 주민 스스로 해나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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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관치’ 많아 갈길 멀어...역량 키워 주민 스스로 해나가야”
  • 김윤미 기자
  • 승인 2021.08.31 13: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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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人터뷰) 고영철 인천광역시 연수구 주민자치협의회장

‘함께 사는 세상’. 언젠가부터 틀에 박힌 문구처럼 되어버렸지만 텍스트가 신선하지 않다고 해서 그 의미까지 퇴색된 건 아니다. 이를 실천하고 실행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은 또 다른 차원의 얘기다. 고영철 인천 연수구 주민자치협의회장을 보면 저절로 이 문구가 떠오른다. 그가 이웃과 ‘함께 사는’ 방식을 들여다보기 위해 연수2동으로 향했다.

연이은 가마솥더위 끝에 단비가 내린 8월초 어느 날, 연수2동 행정복지센터 3. ‘작은도서관깊숙이 주민자치회 보금자리가 있다. 그런데 작은도서관의 서가가 텅 비어 있고 여기저기 짐들도 많이 쌓여있다.

작은도서관은 공원 안쪽으로 공간을 옮겼어요. 잘 꾸며져 있으니 이따 꼭 둘러보고 가세요(웃음). 이곳은 맞벌이부부를 위한 아동돌봄교실로 꾸며질 예정입니다. 원래는 다른 구상도 있었는데 주민들이 돌봄교실을 필요로 하시더라고요. 공간도 사업도 주민들의 의견을 존중해서 진행해야 하니까요. 주민자치회에서 돌봄교실을 운영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새로운 사례가 될 것 같습니다.”

주민총회 실무회의 중간에 바쁘게 회의실을 나온 고영철 연수2동 주민자치회장 겸 연수구 주민자치협의회장의 설명이다. 그가 주민자치와 인연을 맺은 건 2018년 주변의 강력한 권유에 의해 위원으로 참여하면서부터다. 이듬해 주민자치회장으로, 1년 후인 2020년엔 구 협의회장으로 선출됐다.

주민자치 입문 6개월 만에 회장, 1년여 만에 협의회장이라니, 이런 초고속승진(?)도 없을 것 같지만 이웃과 함께 온 그의 심상치 않은 이력을 보노라면 그리 특별한 일로만 여겨지진 않는다.

힘없고 소외된 이웃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된다면

 

직장 때문에 인천에 터를 잡은 지 어느새 40. 직장을 다녔지만 학창시절부터 사회문제에 관심이 남달랐던 고영철 회장은 정치권과도 연결이 되어 활발히 활동하기도 했지만 결국 시선이 향한 곳은 내 주변에 있는 이웃들이었다.

특히 장애인복지에 관심이 많아 장애권익문제연구소에서 관련 정책개발, 조례 청원, 자립 지원활동 등에 열정을 쏟았다. 자연스럽게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게 됐다. 중증장애인과 결연을 맺어 병원을 함께 다니는 등의 활동으로 2000시간이 넘는 봉사시간을 기록하기도 했다. 교육청과 장애인식개선사업을 함께 하기도 했는데 이를 위해 여러 학교를 다니며 학생들을 대상으로 직접 교육에 나서기도 했다.

이런 활동 속에서 고영철 회장의 시선 안으로 들어온 것이 연수시영1차아파트에 거주하는 어려운 이웃들이었다.

영구임대아파트이다 보니까 입주자 분들 중에 기초수급자,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이 많이 계셨어요. 우연한 기회에 이분들의 여러 고충들, 안타까운 사연들을 듣게 되면서 이분들과 함께 뭔가를 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10년 전에 주민들과 함께 다시 일어서는 사람들이라는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본격적으로 마을공동체 활동을 하게 된 것이죠. 단체명이 특이하죠?(웃음) 바로 그 점 때문에 각종 공모사업 심사에서도 이름 덕을 보지 않았나 하는 마음입니다. 한 번 들어도 기억에 잘 남으니까요. 하하.”

청각장애로 인한 소통부재로 퇴거 위기에 놓인 주민을 돕고, 풍물동아리, 컴퓨터교육, 지역축제, EM만들기, 실버택배 등 다양한 사업과 프로그램을 개발, 행정의 지원과 주민들의 적극적 참여를 이끌어냈다. 이 같은 공동체 활동을 통해 아파트 분위기가 달라지고 주민들의 자긍심 또한 높아지는 경험은 고영철 회장에게 자꾸자꾸 또 다른 시도와 도전을 하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2016 공동체 한마당전국 경진대회에서 행정자치부장관상 수상 등 더욱 힘을 내게 하는 계기들도 많이 생겼다. 입주민 중 청각장애를 지닌 주민들과의 소통을 원활히 하기위해 만든 수어(수화언어)를 배우는 모임은 1년 만에 전국대회에 나가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어 각 지역축제에 초청받아 무대에 서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늘 배우는 자세로 더 많은 주민 속으로

 

아파트 주민들의 커뮤니티 복원에 힘쓰던 고영철 회장은 주민자치회에 참여하면서 더 많은 주민 속으로 들어가게 됐다. 지금도 어렵지만 처음 주민자치에 뛰어들었을 땐 고충이 더 많았다. 고 회장 특유의 도전정신이 발휘됐다. 모르는 게 있다면 전임자들에게, 또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하는 이동일 연수구 주민자치사업단장(전 연수2동 주민자치위원장)에게 묻고 또 묻는다.

여전히 배울 게 많고 아직 역량이 부족한 점들이 있지만, 그래도 관에서 홀로서기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관치적 측면이 많습니다. 갈 길이 한참 멀죠. 행정에 얘기도 합니다, 언제까지 뒤에서 자전거를 잡아줄 거냐고요. 우리 스스로 가야 하는데 현장은 그렇지 못한 부분이 많네요.”

행정에서는 도와준다고 하는데 막상 현장에서 바라보는 관점은 다르다. 연수구와 연수2동은 꽤 여러 해 전부터 주민자치가 잘 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구와 동이고 나름 의미 있는 성과도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상존한다. 최근엔 주민자치회 지원조례를 만드느라 T/F팀을 꾸려 행정, 의회와 협의 중이다.

가장 큰 어려움은 역시, 이젠 단어를 거론하거나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지치게 되는 코로나19’의 영향이다. 대면 활동이 어려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의제발굴을 위해 곳곳에 30개씩 배치한 의제함 앞에 비치된 볼펜을 안 잡을 정도다. 물론 여기에 굴할 고영철 회장은 아니다. 이전과 같은 방법으로 되기 힘들다면 온라인 화상회의(ZOOM) 방식으로 공론장을 만드는 등 이런저런 다양한 방식으로 기어코 의제를 발굴해냈다.

올해는 오프라인에서 할 수 있겠지했던 마을총회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유튜브중계를 활용한 온라인 숙의총회로 열어야 할 상황이다. 힘들지만 어떻게든 해 낸다. 팬데믹 상황에 적응은 해나가면서도 오프라인으로 하면 더 잘 할 수 있는데하는 마음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이다.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는 또 있다. 인천시 주민자치 광역조직의 재건이다. 문제제기는 지난 3월 열린 주민자치 활성화 정책 토론회를 계기로 이루어졌다. 주최 측(인천시의회, 한국마을자치센터연합)이 인천 주민자치 광역조직인 인천시 주민자치연합회에 토론회 공지도 초청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고영철 회장은 가장 강하게 문제제기하며 열흘 후 긴급 간담회 개최를 이끌어낸 것이다. 이를 계기로, 현직 주민자치회장, 구군 협의회장을 소외시킨다는 지적 등 기존 조직에 대한 문제점이 재기되며 조직 개선, 재건에 대한 여론이 커지며 처음 문제를 제기한 고영철 회장의 어깨가 점점 더 무거워지고 있다.

그는 인천 155개 읍면동이 내년엔 전부 주민자치회로 전환될 예정이다. 인천의 주민자치가 새롭게 거듭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서 광역조직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유명무실한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새롭게 각 구 협의회의 의견을 결집하고 이를 강력하게 대변할 수 있는 새로운 주민자치 조직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수구 이동일 주민자치사업단장(오른쪽)과 함께 포즈를 취한 고영철 회장
연수구 이동일 주민자치사업단장(오른쪽)과 함께 포즈를 취한 고영철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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