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 없는 성남형 주민자치 토론회 열려

주민 대표와 사전 협의 없이 기획...주민자치 현장에 대한 이해 부족 드러내

2021-05-02     문효근 기자

 

주민자치협의회 등 주민 대표를 배제해 비판이 제기된 ‘성남형 주민자치회 토론회’가 4월 30일 화상회의 방식으로 온라인 개최되었다. ‘성남시 주민자치사태 대책위원회’가 토론회 개최 취소를 촉구하는 청원서까지 발표하면서 논란이 된 이번 토론회는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이론적이고 원론적인 문제 제기만 이어진 채 주민자치 현장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체적인 논의는 거론되지 않아 실망을 안겨주었다. 특히 성남형 주민자치회를 이야기하면서 정작 성남이 처한 주민자치 상황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의제를 찾지 못하는 모습이어서 아쉬움을 남겼다.

이번 토론회는 제목 그대로 '성남형 주민자치회'가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시 주민자치회를 대표하는 협의회에 사전 협의나 공지가 없었고, 진행과 발제, 토론 참여자 중 주민자치회의 목소리를 대변할 현직 주민자치회장은 단 한 명만 포함돼 개최 전부터 우려와 비난이 제기되어 왔다. 시민운동가와 중간지원단체 쪽으로 무게 중심이 기울여진 토론회라는 지적을 받아온 것.

실제 성남시 주민자치사태 대책위원회 역시 성명서를 통해 “전형적인 시민운동가, 주민의 자치가 아닌 중간지원조직 관련 사항을 주로 연구한 연구원 등 매우 한정적인 발제에만 의존한다면 성공할 수 있는 주민자치회를 제대로 설계할 수 없다. 결국 성남형 주민자치회는 중간지원단체가 지배하는 관변단체 위탁으로 설계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한 바 있다.

이에 은수미 성남시장이 개회사에서 “성남시 주민자치회가 주민의 개성과 마을 단위 협력의 플랫폼 역할을 다해 개인의 가치와 공동체의 가치가 연결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언급한 개인이 과연 성남시 주민을 말하는 것인지, 공동체가 주민자치회를 가리키는 것인지에 대해 의혹의 눈길도 쏠렸다. 

유창복 성공회대 교수의 발제인 ‘포스트 코로나 시대, 주민자치회의 역할’에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 안전한 대면 방식을 위한 공간으로 마을과 동네를 내세웠다. 그리고 이를 위해 로컬 텍트 및 로컬 회복력을 구현시키기 위한 로컬 뉴딜을 강조하며 분산형 공공의료체계, 마을교육공동체의 협동 돌봄, 스마트 로컬 모빌리티, 일터와 삶의 터전을 동일화시킨 지역경제 활성화 등을 제안했다. 그리고 로컬 시대라는 현재 흐름의 중심에 주민자치회가 있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정작 성남의 현실과 상황에 근거한 성남형 주민자치 실질화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유 교수는 “뜻이나 마음도 맞지 않는 이웃들과의 협의와 협력을 통한 의제 설정이 주민자치에 입각해 풀뿌리 마을 민주주의의 기초를 다져야 한다”며 “동네마다 발생하는 문제도, 논의되어야 하는 의제도 제 각각이니 이를 해결하기 위한 민주적 공론장이 바로 읍면동 주민자치회”라고 설명했다. 유 교수의 말에 의한다면 성남에 적합한 ‘제 각각’의 주민자치 그리고 주민자치회에 대한 고민이 이번 토론에서 다뤄졌어야 한다. 그리고 성남이라는 지역 내에서 안전하고 건강한 주민 대면을 위한 구체적 대안과 순환경제 중심의 주민자치회 운영 방식도 제안되었어야 한다.

이어진 최준규 경기연구원 연구위원의 ‘성남시 주민자치회 활성화를 위한 정책 운영방안’ 발표에서 “현시점에서 주민자치의 형태가 강조되는 것은 주민의 욕구와 행정의 욕구가 맞닿아 있기 때문이며 행정 입장에서는 ‘누구에게 어떻게 권한을 부여할 것인가’ ‘주권자로부터 받은 권력을 어떤 주체에게 나누는 작업을 할 것인가’ 고민할 것”이라며 “이것은 대표성의 문제로, 주민자치회의 당면과제는 대표성 확보에 있으며 주민자치회 운영의 자율성에 대한 문제는 곧 수탁권의 문제다. 따라서 주민자치회는 부여 받은 권한을 민주적 절차를 통해 운영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더불어 “주민자치회에 부여된 제한적 대표성이 주민총회를 통해 이해되어야 하고 대표성 확보를 위한 제도적 사안들이 하나의 틀로 연결되는 큰 순환고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민자치회의 대표성, 자치성, 민주성의 핵심가치는 주민참여의 적극적 개방성과 주민자치회 회원들의 지속적 학습을 통해 이뤄지며,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 확립에 따른 공론의 장에서 논의되어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원론적인 내용이다. 그리고 이미 주민자치회 관련 토론회 등에서 수 없이 언급된 사안이기도 하다. 성남형 주민자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자기지역형 주민자치를 수립해 지역 의제를 공론화겠다는 골자의 내용을 이리저리 돌려 말하며 자기복제적 이론만 주장하는데 그친 것이다.

토론에 나선 안현찬 서울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미 실패한 주민자치 정책인 서울형 주민자치회 실행 평가를 언급하며 주민자치회의 자치역량과 실무역량 구분, 형식 보다 실속에 우선, 단기성과에 집착하기보다 주민자치의 기초체력을 키우는데 집중해야 한다는 역시 원론적 발언에 머물며 성남형 주민자치회에 대한 실질적 대안 제시에는 다가가지 못했다.

이은숙 마을과사람 대표는 주민자치회가 지역의 구심점이자 주민 간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면서도 중간조직과 지원조직 설립 필요성을 내세워 지역 주민이 아닌 시민단체에 의한 주민자치를 제안한 것과 다를 바 없는 내용을 제시했다. 

하경환 행정안전부 주민복지서비스개편추진단 과장은 주민자치 정책의 주체를 논하며 “주민과 더불어 성남시청 역시 주민자치의 정책적 주인이 되어야 한다”며 자치 아닌 관치로 일관하는 행정 당국의 면모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주민자치에서 행정은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말아야 된다는 전제를 망각한 발언이라 하겠다. 그리고 “성남형 주민자치가 무엇인가”라고 자문하며 “주민의 의사와 지역 특성에 맞는 성남형 주민자치가 필요하다”는 교과서 같은 설명에 그쳐 아쉬움을 줬다.

이창환 성남시마을공동체센터장은 성남시에 속한 시민단체의 성과에 치중한 발언을 이어가며 결국 마을공동체라는 이름만 다른 표기인 시민단체가 주민자치에 참여해야 하는 당위성을 내세우는데 급급했다.

윤수진 단대동 주민자치회장은 현장중심의 원칙에 근거해 마을의 속도와 시간에 맞춰 주민자치가 이뤄져야 하고 행정의 지원이 시행되어야 하며, 주민자치 역량 강화를 위해서는 주민과 행정이 공동으로 학습해야 하고, 동에 자치권한과 책임을 부여해 주는 법제도 및 정책 시행, 다시 말해 제대로 된 주민자치회법 제정 필요성을 언급해 주민자치 현장의 목소리를 전했다.

되레 실제적 대안에 대한 질문은 온라인으로 회의에 참여한 참석자에게서 나왔다. “진정한 지역의 문제, 주민의 문제와 불만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인지, 주민자치는 주민이 주체라고 하는데 생업에 바쁜 주민이 과연 어느 정도의 책임과 권한을 가지고 주민자치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토론회에 참석한 패널 중 명쾌한 답변을 하는 이는 없었다.

이날 토론회가 망각한 점은 온라인 채팅창을 통해 또 한번 여지없이 지적되었다. “현재까지의 성남시 주민자치위원회에 대한 문제점 파악과 세밀한 진단이 있어야 이를 극복하면서 주민자치회로 갈 수 있는데 그런 논의는 전혀 없다. 성남형 주민자치회를 이야기하면서 성남의 상황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야기 하지 않는다”라는 날선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성남을 빼고 성남시 주민을 배제한 채 성남형 주민자치회를 논한다면 과연 주민자치회에 대해 얼마나 실효성 있고 발전적인 의견이 개진될 수 있을까? 성남시가 처한 주민자치 현실을 세밀히 살피고 주민자치회 현장의 목소리를 귀 담아 듣고, 주민의 대표와 함께 고민해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주민자치회 운영 대안을 제시하는 제대로 된 성남형 주민자치회 토론회가 아쉬운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