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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분권은 내용이 아니라 ‘관점’ 전환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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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분권은 내용이 아니라 ‘관점’ 전환의 문제다”
  • 이국운 한동대학교 법학부 교수
  • 승인 2017.10.04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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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분권대학 무엇을 배우고 가르칠 것인가
이국운 한동대학교 법학부 교수
이국운 한동대학교 법학부 교수


자치분권대학은 지난 8월 8일 한국프레스센터 프레스클럽에서 ‘자치분권대학,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를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지정토론 및 종합토론’에서 이국운 교수는 ‘자치분권 무엇을 배우고 가르칠 것인가’라는 주제로 교재 발간을 위한 논의에 대해 발제를 했다.

이 교수는 “이번 세미나는 그동안의 성과를 되새기면서 자치분권대학에서 우리 모두가 무엇을 배우고 가르칠 것인지를 논의하는 자리로 본다”며 자치분권대학의 교재 발간을 위한 제안을 한다고 밝혔다. 이에 본지는 대한민국 자치분권 실현에 도움이 되고자 이국운 교수가 제안한 내용을 게재키로 했다.


본인은 시흥시의 자치분권대학 구상을 듣고 기획 모임에 참여했던 것은 작년 9월의 일이다. 그 이후 앞장선 분들의 수고로 일이 잘 진척돼 여러 곳에 자치분권대학 캠퍼스가 마련됐고, 성황리에 1학기 종강이 이뤄진 것으로 안다. 본인도 서울 도봉과 경기 오산캠퍼스의 초대를 받아 참여한 시민들과 말을 나눌 기회가 있었다. 여러 캠퍼스에서 구체적으로 진행된 사항을 잘 알지 못해 세세한 부분까지 말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지만, 본인이 경험한 범위에서 평소 자치분권과 관련된 특강을 다니면서 느꼈던 점들을 중심으로 이야기 하고자 한다.


문제방식을 탑-다운 아닌 바텀-업으로

자치분권에 관련된 특강을 다니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많은 분들이 이 문제를 내용중심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내용중심으로 이해한다’는 말은 한 마디로 자치분권하면, 지금까지 일상적으로 다뤄지던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문제들과 내용적으로 구분되는 새로운 ‘콘텐츠’가 있을 거라고 전제한다는 의미다. 자치분권대학은 일단 이 태도부터 문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워낙 중앙집권주의의 타성이 깊어, 심지어 자치분권을 위한 기존 제도나, 이에 대한 개혁 담론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보니 자치분권에 관한 필수적 지식들 가운데는 내용적 측면에서 분명히 새로운 콘텐츠들도 존재한다. 현재의 지방자치제도나 이에 관련된 헌정사, 그리고 지방분권형 헌법개정 담론의 여러 내용들을 예로 들 수 있겠다. 그래서 흔히 자치분권에 대한 아카데미는 이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콘텐츠들을 중심으로 커리큘럼을 짜고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경향이 있다. 본인 경험에비춰볼 때, 관변에서 준비하는 행사로 자치분권 교육과정이 진행될 경우에 이런 경향은 더욱 강해지는 것 같다.

주어진 예산 범위에서, 정해진 시간 내에, ‘행사’를 잘치러 내려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을 수는 있다. 또 전문지식이 부족한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려면, 일종의 교양 강의처럼 진행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콘텐츠에 대한 요청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근본적으로 말해서 자치분권은 내용이 아니라 ‘관점’의 문제다. 중앙집권 체제이건, 자치분권 체제이건, 일상적으로 다뤄지기 마련인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문제들은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집단적 삶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의 ‘내용’은 근본적으로 같다는 것이다.

자치분권체제의 핵심은 그 문제들을 ‘문제화’하는 방식을 탑-다운이 아니라, 바텀-업으로 정반대로 바꾸는 관점의 전환이다. 같은 문제라도, 그것을 문제로 놓고 풀어내는 방식이 정반대가 되면 전혀 다른 결과와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지역정치, 치안과 사법, 보건과 위생, 에너지와 환경, 교육·주택·상하수도·교통, 재난구호, 지역경제·조세·재정·사회보장·실업대책 등 각각에 대해 자치분권은 지금까지 탑-다운으로 문제를 풀어오던 관성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자 바텀-업으로 문제를 더 잘 풀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안이어야 한다.

이와 같은 관점의 전환만 전제된다면 자치분권대학의 교육내용은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한다. 논리적으로 그동안 탑-다운으로 풀어오던 모든 문제들을 교육의 주제들로 삼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먼저 자치분권을 내용 중심으로 생각해 새로운 ‘콘텐츠’를 요구하는 지금까지의 관성부터 문제 삼아야 할 것이다. 어쩌면 바로 그것이야 말로 중앙집권주의의 반영일 수도 있다.


자치분권대학에서 가르치는 방법 제안

이처럼 관점 중심으로 생각한다면, 자치분권대학에서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는 비교적 명확하다.

첫째, 중앙집권체제의 병폐를 고발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결코 그 차원에서 끝나서는 안될 것이다. 현실의 병폐와 함께 같은 문제를 탑-다운이 아니라, 바텀-업방식으로 풀 수 있는 기회를 우리가 벌써 70년째 날려버리고 있다는 기회비용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야 한다.

둘째, 같은 문제를 바텀-업으로 풀 수 있는 더욱 효과적인 방안을 아주 구체적으로 발굴해 탑-다운의 기존 시스템과 적극적으로 비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사실 이 대목은 자치분권의 관점에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온 일선지방공무원들과 본인같은 학자, 그리고 자치분권운동가들의 협업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지점이다. 성공사례도 좋지만, 실패사례도 좋고, 아직까지 결실을 맺지 못한채 애쓰고 있는 사례도 아주 좋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구체적인 사례를 놓고 함께 더 좋은 대안을 생각해 보는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이 좋을 것 같다. 스위스, 독일, 미국, 일본 등의 자치분권에 관한 지식들도 바로 이런 과정에서 현실적인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셋째, 기존 사례를 분석하는 차원을 넘어 아예 자치분권의 관점에서 새로운 사업을 기획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도 바람직하다. 본인이 아는 한 이에관해 가장 효과적인 방식은 자치분권에 관련된 각종 정책기획 안들을 5~6인의 전문가 패널들이 3박 4일 정도의 기간을 갖고 집중적으로 컨설팅하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지방정부 공무원들은 거의 모두 수많은 기획안들을 계획서로 만들어 중앙정부가 구성한 전문가 패널들 앞에서 발표하고 심사를 받아본 경험을 갖고 있다. 이와 같은 노하우를 자치분권의 관점에서 교육적으로 활용하면 비교적 단기간에 좋은 기획안들을 다수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앞서 말한 내용은 지금껏 일반시민대상 교양강의처럼 진행해온 자치분권교육을 그만 두자는 뜻이 결코 아니다. 아주 기본적인 지식을 전달하는데는 강의처럼 효과적인 것도 없으니까. 다만, 현재처럼 동일한 강의를 여러군데서 거듭하기 보다는 예산을 많이 들여서라도 프로페셔널한 동영상 강의를 분기에 하나 정도 찍어서 계속 축적해 가면서, 이를 실제 강의와 연동시켜 활용하는 방식이 여러 측면에서 나을 것 같다. 아울러 앞서 언급한 컨설팅방식도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참가자들과 전문가 패널, 그리고 프로그램 제작자의 창의성이 함께 발현될 수 있는 아이템이 될 수도 있다. 케이블 TV에 넘쳐나는 오디션 프로그램들의 포맷을 자치분권의 관점에서 역이용 할수도 있겠다.

 

자치분권대학 세미나
자치분권대학 세미나

 

자치분권 교육에서 학자들의 역할

이상과 같은 아이디어를 떠올리면서, 동시에 본인같은 학자가 자치분권교육에서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할지를 고민해 본다. 식민지시대부터 따져보면, 백년이 훨씬 넘어 중앙집권주의 체제에서는 위에서 제안한 자치분권 사례분석이나 정책기획안 컨설팅 방식이 아무리 성공적으로 이뤄지더라도 현실의 엄중한 벽에 부딪힐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바로 그 지점에 본인과 같은 학자의 역할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 벽앞에서 주저앉아 버릴것이 아니라, 자치분권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이유를 밝히고 설명하는 작업을 계속해야 한다.

그동안 본인의 전공이기도 한 헌법철학과 헌법정치학의 맥락에서 나름대로 그런 역할을 수행하려고 해왔다. 하나는 자치분권이 왜 자유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요청인지를 헌법철학적으로 정당화하려는 노력이다. 또 하나는 대한민국 헌정사의 맥락에서 왜 지금 이 시점에 지방분권형 헌법 개정이 이뤄져야 하는지를 ‘질서 자유주의’라는 국가적 비전과 한반도의 재통일을 연결시키는 방식으로 주장해온 노력이다.

위에서 제안한 자치분권 사례분석이나 정책기획안 컨설팅 방식은 잘 진행될 경우, 결국 자치분권이냐 중앙집권이냐의 선택과 궁극적인 정당화의 문제에 부딪힐 수 밖에 없다. 바로 그 때 본인과 같은 학자들이 고민하며 만들어온 헌법철학적 논변들이 최종적인 설득을 위해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자치분권대학의 교재는 이런 맥락에서 자치분권에 대한 ▶필수적인 지식 ▶현실의 비판 ▶사례분석 자료 및 실습 ▶자치분권 정책기획 및 실습 ▶전문가 컨설팅 ▶자치분권의 세계관적 정당화 등을 골간으로 삼아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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