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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_서울시의 마을사업 제대로 작동하고 있나] “마을만들기는 선수들이 나서면 재미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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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_서울시의 마을사업 제대로 작동하고 있나] “마을만들기는 선수들이 나서면 재미 없다”
  • 박 철 기자
  • 승인 2013.11.01 14: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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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마을사업 성과와 마을의 역량, 그리고 주민자치’
중간지원조직은 민 - 관의 통역사 및 행정혁신 파트너 역할 해야
주민 등장 위해 수시공모제·포괄예산제·인큐베이팅 지원 펼쳐

600년 수도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정체성도 없고, 권력과 자본의 도시, 피로와 우울의 도시 이미지를 갖고 있는 서울. 오로지 먹고 살기 위해 몸부림치던 산업화시대의 ‘서울인’에게는 오로지 경쟁과 출세를 위해 달려가야만 하는 영원한 객지 같은 곳이었다.

심익섭·김석수 교수 등 많은 식자들의 “이제 서울은 더 이상 출세를 위해서 모이는 자리나, 경쟁에 지쳐 떠나는 자리가 아니라, 늘 머물 수 있는 고향 같은 자리가 돼야 한다”는 울림처럼, 지금 서울은 주민에게 꿈과 희망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고향 같은 마을만들기가 한창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마을 관련 전문가 및 학자들은 “마을만들기에 있어서 서울시가 자치구에 대해 직접 집행까지 관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마을사업의 지원은 시·군·구로 이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에 본지는 지난 호 ‘광역시·도 마을 지원(공모)사업 무엇이 문제인가’에 이어 마을만들기 및 마을공동체 사업에 있어 선두적 정책을 펴고 있는 서울시의 마을 공모(지원)사업이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 짚어보고자 한다. 서울시는 대한민국의 중심일뿐더러 행복한 마을과 주민이 주인 되는 마을만들기에 있어 타 시·도의 모범사례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울시의 마을사업 제대로 작동되고 있나’를 대주제로 ▲유창복 서울시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장 인터뷰 ▲서울에서 꿈이 있고 행복한 마을이란 ▲마을(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서울시의 바람직한 역할 ▲서울시의 바람직한 마을사업 공모(지원) 제도와 정책 제안 등을 소주제로 기획특집을 마련했다. <편집자 주>

Interview 유창복서울시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장에게 듣는다

박원순 시장이 이끄는 서울시는 마을사업에 있어 우리나라 최초로 조례제정 및 중간지원조직 가동 등 마을만들기 선두주자로서 타 광역 시·도의 모델이 되고 있다. 그러나 거대한 광역자치단체가 직접 마을사업에 뛰어들면서 여기저기서 잡음이 나오고 있다. 이에 본지는 서울시의 마을사업 공모정책, 중간지원조직 활동사항을 알아보기로 했다. 특히, 많은 시민은 거대 도시에서의 마을이란 무엇이며, 과연 서울의 마을공동체성은 회복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궁금해 하고 있다. 따라서 서울시로부터 마을사업을 위탁받아 민과 관을 연결하는 중간지원조직으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유창복 서울시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장을 만나 그 궁금증을 풀어봤다. <편집자 주>

지난 10월 25일, 서울시청 앞 플라자호텔 커피숍에서 유창복 서울시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장(사단법인 마을 대표)과 김필두 박사(한국지방행정연구원 연구위원)를 만났다. 유창복 센터장은 거대한 서울시의 마을사업을 총괄 지휘하며 관과 민의 통역사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번 인터뷰를 진행하게 된 김필두 박사는 서울시 자치회관평가위원 및 서울형 자치회관 만들기 지도위원을 지낸 바 있어, 두 사람 다 서울시 마을사업전문가로 불리고 있다.

이번 인터뷰는 서울시민이 궁금해 하는 내용을 김 박사가 질문하면, 유 센터장이 답변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우선 김필두 박사는 “현재 안행부에서 시범실시하고 있는 31개 읍·면·동 주민자치회에 1억 원을 준다고는 하는데,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의견들이 많다”며 “예를 들어 눈썰매 기계를 사려고 하는데 어떤 것을 사야하는지, 구입해도 소유는 누구로 해야하는지 등, 돈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궁금해 한다”고 말해 이번 인터뷰의 성격을 설명했다.

탑다운으로 버텀업 내자는 설정은 모순

김필두 박사 지방에서는 마을공동체를 제일 먼저 추진한 서울시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보고 싶어 한다. 특히, 공모사업 과정과 재원 활용에 관심이 많다. 서울시에서 하고 있는 마을사업공모를 시작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유창복 센터장 처음 박원순 변호사가 서울시장이 되면서 마을을 강조했을 때 시민사회는 ‘서울시장이 어떻게 마을 이야기를 할까?’ ‘너무 신기하고 휼륭하다’ ‘토건적 흐름에서의 새로운 전환이다’ 등의 의견처럼 기대가 컸다. 반면, 자타가 공인하는 박 시장의 추진력이 서울시의 관료조직과 결합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걱정도 컸다. 서울시 공무원들은 정책과 현장을 함께 갖고있기 때문에 자긍심이 대단하고 실제로 능력도 뛰어나다. 이 관료조직과 박 시장의 추진력이 결합된다면 기대보다 관 주도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 것이다.

첫째, 서울시의 해당 부서는 모두 각기 마을 마스터 플랜을 갖고 각개약진 할 것이다. 소위 칸막이다. 이럴 때 공무원이 열심히 하면 할수록 마을은 번거로워진다. 둘째, 거버넌스 하자고 하면서 공무원들이 계획을 잔뜩 세워놓고, 주민에게는 참여하라고 독려할 것이다. 마을에 사는 사람도 마을을 모르고 사는데, 하물며 살지도 않는 공무원이? 불가능한 이야기다. 실질적인 거버넌스가 되려면 주민이 직접 계획에 참여해야 한다. 즉, 계획단계에서 부터 주민이 권한을 갖고 성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권한과 권력이 배분될 때 협치(協治)다. 셋째, 정부는 1년 단위로 성과를 요구할 텐데, 마을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경험적으로 5년, 10년은 흘러야 성과가 보인다. 이 호흡의 차이를 어떻게 양립시킬 것인가이다.

이 세 가지 논제에 대한 처방이 있지 않는 한, 안하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 즉, 관 주도가 문제됐다. 그럼 주민 주도로 하면 될 것 아닌가? 그래서 서울시 마을만들기는 주민 주도로 됐다. 여기엔 의문이 있다. 즉, 주민 주도가 원칙이면 정부는 가만히 있으면 될 것이다. 그런데 왜, 정부가 나서서 주민주도하자고 하는지 모르겠다. 바로 여기에 서울시 마을공동체 사업의 맥락이 있었다. 즉, 자원은 ‘탑다운(top down)’으로 하되, 성과는 ‘버텀업(bottom up)’으로 내자는 것이다.

성미산마을은 대표적인 버텀업 사례다. 본인들이 아쉬워 십시일반해서 일궈온 역사이기 때문에 탑다운이라는 맥락에서 보면 적합한 모델이 아니다. 관이주도 했거나, 관으로부터 자원을 탑다운해서 일군 마을도 아니다. 그렇게 보면 탑다운 방식으로 버텀업의 성과를 내자는 서울시의 마을공동체 정책은 설정 그 자체가 모순적이고 분열적인 과제다. 그래서 힘들다.

그럼 수단과 목표가 상반되는데, 어떻게 할 거냐? 여기서 실행전략이 도출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탑다운 방식을 개선하기 전에는 버텀업 성과는 절대 안 나온다 ▲버텀업의 실체를 명확히 규명하자는 두 가지 전략을 세웠다. 우선, 탑다운 방식을 개선하자는 것이 ‘행정혁신’이다.

행정혁신의 목표는 ‘마을지향의 행정’이라고 했다. 성인지(性認知) 예산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서울시의 마을사업은 특정 부서의 사업이 아니다. 서울시 전체 행정의 과제이지, 개별 부서의 사업으로 설정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서울시는 마을공동체사업을 시의 전체 부서에 고루 분산시켜 놓았다. 그리고 그 각 부서의 마을사업을 전체적으로 지원하고 코디하는 조직으로 마을담당관을 신설하였다. 그리고 탑다운 방식을 개선하려는 첫 시도가 ‘공모제’였다.

수시공모·포괄예산·인큐베이팅으로 혁신

김필두 박사 그런데 공모제가 도마에 오른 것 아닌가.

유창복 센터장 공모제라는 것이 그렇다. 1년에 한 번하다 보니 준비가 안 돼 있어도 다 덤벼든다. 이때를 놓치면 1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 나마도 선수들이나 할 수 있는 것이고, 일반 주민은 어림도 없다. 게다가 지원금을 받았다 해도, 준비가 안 된 채 1년 안에 성과를 내야 한다. 그야말로 허겁지겁한다.

말이 1년이지, 2~3월에 방침 세우고, 3~4월에 공모, 4~5월에 보조금 내리면, 10월에 성과 증명하라고 한다. 실제 사업을 할 수 있는 기간은 6개월인 셈이다. 이 6개월 동안에 마을성과가 나올 수 있겠는가? 안 나온다. 오히려 나오는 것이 이상하다.

이런 공모제 자체를 대체할 방법이 그 당시엔 없었다. 공무원은 물론 우리에게도 다른 대안이 없었다. 그래서 서울시에 ‘수시공모제’로 하자고 제안했다. 1년에 한 번하던 공모를 주민이 언제든 신청해 자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던 것이다. 그러면 최소한 부실 신청서는 안 들어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주민은 “하반기되면 돈이 다 없어질 것 아닌가?”라는 반응을 보였다. 일부러 안 쓰고, 예산을 남겨 놓았다. 이는 ‘아! 하반기가 되어도 돈이 남아있구나’라는 메시지를 보내고자한 것이다. 그랬더니 올해는 늦게 신청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이것이 신뢰다.

두 번째 개선이 ‘포괄예산제’다. 일을 하다보면 사업비를 자유롭고 유연하게 쓰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리고 세상에 계획대로 되는 일이 어디 있는가? 더구나 마을일은 계획대로 잘 안 된다. 문제는미리 정해 놓은 예산을 어떻게 쓰느냐다. 서울시에 “유연하게 쓰면 안 되겠느냐?”했더니 펄쩍 뛰더라. 그래서 예산항목을 유연하게 쓰는 것은 좀 무리한 것 같아 ‘무제(無題)노트 예산’이라도 만들자 했다. 즉, 제목없는 예산을 만들자는 것이다.

공모제란 기본적으로 공무원이 정하는 것으로, 아무리 창의적인 주민 의견이 있어도 공모사업에 없으면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주민이 하고 싶은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하자고 했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예산유연성이 아니라 제목유연성, 즉 포괄예산제를 시행하기로 했다. 소위 ‘꼬리표 예산’에서 ‘바구니 예산’으로 바꾼 것이다. 그럼에도 서울시가 반대해 시범적으로 전체 예산의 10%정도부터 시작했다. 그래서 지난해 20억 원 정도했다. 그런데 이것이 재미를 봤다.

세 번째는 ‘인큐베이팅식 지원’이다. 보통 공모사업은 보조금을 주기 전에는 엄격하지만, 주고나서는 나 몰라라 한다. 그리고 6개월 후에 성과를 요구한다. 돈 주고 성과를 요청하는 것은 ‘하청업체’를 대하는 방식이다. ‘갑’이 ‘을’에게 돈을 주면서 돈 잘썼는지 감시하고, 과업지시서대로 성과를 냈는지 추궁한다. 이것은 갑을관계다.

그래서 서울시에 “왜 시민에게 갑을 관계를 들이대느냐. 시민이 을이냐? 시민은 주인이고, 시정참여자다. 공무원이 하는 일을 대신 해주는데 하청업체 다루듯 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시민이 그 보조금을 받아서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인큐베이팅식 지원을 했다.

그래서 ▶사전상담 ▶사업신청 시 현장조사 ▶선정 ▶선정 후 컨설팅 ▶사업 종료 이후 A/S를 한다. 우린 이것을 ‘사전지원-실행지원-사후지원’이라고 표현한다. 이 마을공동체 사업은 아주 디테일하게, 엄마가 아이들 돌보듯이 하지 않으면 쉽지 않다. 따라서 우리는 ▲수시공모제 ▲포괄예산제 ▲인큐베이팅지원 시스템 등 세 가지를 ‘마을지향 행정1.0’이라고 명명했다. 내년에는 2.0이 됐으면 좋겠다.

실천 활동할 수 있는 판을 깔아줘야

김필두 박사 지방을 다니다 보면 주민자치회 시범사업을 하는 주민자치위원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정부의 지원금은 주민 중심으로 주민이 원하는 바대로 쓰도록 하자’는 말이다. 문제는 안행부에서 지원하는 것은 특별교부세라서 인건비에 쓰면 안된다는 규정이 있다.

그런데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이하 ‘지원센터’)의 경우 인건비로 써도 된다고 돼 있다. 서울시 지원예산은 특별교부세하고는 성격이 좀 다른가? 일반적으로 지방자치단체에서 활용되고 있는 예산과는 어떻게 다른가?

유창복 센터장 규정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예를 들면 주택정책실에서 하는 사업은 인건비는 안되지만 자치구경상보조 내지는 민간경상보조금 형식의 예산이 많다. 특별회계라고 해야 하나?

그러나 마을사업은 사람이 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아무리 자원을 기본으로 한다고는 하지만 나름 올인하는 것이다. 그럼 돈 있는 사람만 마을사업할 수 있나? 그렇다고 돈 벌자고 하는 것도 아니고, 급여라기보다 활동비 수준의 인건비가 보조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을사업 자체가 활성화되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도 인건비 지출에 대한 가능성을 많이 주장한다.

또 공무원은 교육을 무척 강조한다. 사람 성장을 교육을 통해서 해결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교육으로 사람이 바뀌는 것 봤냐”고 했다. 사람은 교육만으로 안 바뀐다. 자신이 실천 활동을 하는 과정에 교육이 적절하게 들어올 때 탄력을 받고, 성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실천 활동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줘야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인건비 지출에 대한 주장을 많이하고, 공무원들도 제도와 관행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하려고 하지만 쉽지않은 모양이다.

사업이 몰릴 경우 심사·컨설팅서 안배

김필두 박사 말씀하신 수시공모제는 정부에서 할 수없는 혁신적인 것이다. 또 지원센터에 공모를 했다 안 돼도 다시 보완해서 공모하는 것은 좋은 제도다. 반면, 수시공모는 1월, 혹은 10월에 몇 건이 들어올지 예측이 잘 안 될 것이다. 혹시 서울시에서 공모사업에 대해 포괄예산을 주고 전체적으로 이 예산 내에서 1년 동안 알아서 쓰라고 하나?

유창복 센터장 부서별로 예산이 확정돼 있고, 돈을 못쓰면 불용하게 돼 있는 것이 원칙이다. 무리하게 쓰려하지 말라 한다. 그것은 예산낭비고, 사업 성과주의적인 것으로 공무원이나 민간이나 망치는 길이기 때문에 절대 불용한다고 불이익을 주지않는 것이 서울시장의 방침이다. 그것도 처음에는 “그러다 나중에 뭐라고 할 것 아니냐?”며 공무원은 믿지 않았다. 그 방침이 안착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지금은 1년 반쯤 해보니까 정착 가능하다고 판단된다.

김필두 박사 지원센터의 경우 여러 사업 중 주민이 선호하는 사업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북카페 예산이 연초에 많이 지원돼 예산을 다 사용했다면 어떻게 하는가?

유창복 센터장 그런 경우는 없고, 기본적으로 그렇게 몰리거나 하지 않는다. 그것은 수시공모제가 갖는 장점이다. 무조건 다 달려들지 않는다. 혹시 그럴 염려가 있다면 안배를 한다. 지금 해봐야 안 되니 나중에 하라고 권한다. 또 사전컨설팅을 통해, 그리고 심사 과정에서 안배하고 거른다. 처음에는 “진짜 저럴까?”하고 의심했지만 이제 믿는다. 그것은 중요한 진전이자 혁신이다.

김필두 박사 그것은 공무원보다 시민의식 문제 아닌가? 시민이 마인드를 갖고 적절하게 내가 필요할 때, 그리고 능력이 갖춰졌을 때 신청해야지 돈 준다니까 일단하고 보자는 것 아닌가?

유창복 센터장 그렇긴 하지만, 시민이 의식을 바르게 갖출 수 있도록 공무원이 정확하게 사인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새내기 주민에게 선배 주민·활동가 매칭

김필두 박사 그런 의미로 지원센터에서 그 역할을 해야 할 것 같다. 그것과 관련해서 어떤 역할들을 하고 있나?

유창복 센터장 첫째는 서울시의 공무원들과 싸우는 일이다. 해왔던 관행이 있어 처음에는 “저래서 공무원이구나”하고 화가 많이 났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입장 바꿔 생각해보니 “그들도 나를 보고 화를 많이 내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민과 관은 통역이 필요한 사이임을 느꼈다. 그러나 현실은 유능한 통역사가 별로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그래서 “우리라도 이중 언어를 익혀야 겠다”는 생각으로 2년 동안 해왔다. 공무원도 우리의 언어를 익혀왔고, 우리도 공무원의 언어를 익혀가는 중이다.

예를 들자면, 정부가 내리는 돈이 잘못 가면 안 간만 못하다. 어차피 돈을 내리자고 한 것인데, 내리는 방식이 혁신되지 않으면 다 뱃살로 가고, 근육으로 안간다. 그러기 위해서 돈을 내리는 방식의 혁신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런 주제로 많이 싸운다. 그렇다고 공무원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엉뚱한 제안도 많고, 결국 나중에 책임은 공무원이 지는데….

둘째는 인큐베이팅 시스템을 가동시키는 역할이다. 특히, 마을사업은 손이 많이 가고, 인큐베이팅 시스템이라는 것은 공무원이 하기 어려운 일이다. 특히, 광역 수준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따라서 지원센터는 마을활동을 앞서 시작한 선배 주민과 마을활동가를 모집해 새내기 주민에게 밀착 멘토링을 하도록 연결한다. 그러기 위해선 일종의 교육을 하고, 상담원이라는 가벼운 명칭을 부여해 새내기 주민이 신청하면 매칭하는 역할을 한다. 우린 이것을 우스갯소리로 ‘용역회사’ 역할이라고 부른다.

간혹, 우리나라에서 전문가가 누굴까 생각해본다. 학자경로를 통해 들어오는 전문가도 있고, 현장활동가 출신의 전문가도 있다. 그동안은 학자 출신의 사람들이 많은 역할을 해왔다. 앞으로는 활동가로부터 성장한 사람들이 전문가 역할을 하고, 이분들이 지식정보에 정통한 학자들을 초대하는 방식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학자들도 그렇고, 그분들도 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아직은 포지션 정립이 안돼 있는 초기단계다. 그런 맥락에서 주민 출신 활동가, 전문가, 학자 출신 등이 풀이 돼서 ‘주민의 나서기’를 세세하게 멘토링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우린 그 시스템을 관리하고, 업그레이드 시키는 것이 일이다.

셋째는 이 전 과정을 모니터링 하는 일이다. 공무원들이 평가하는 태도가 있다. 용역회사 평가하듯이 “돈 잘 썼어?”하는 태도는 곤란하다. 공모를 통해 지원을 받은 시민을 소위 행정용어로 ‘보조사업자’라고 표현한다. 보조사업자는 용역사가 아니라 ‘시정참여자’다. ‘참여해 보니 재미있더라’ ‘하다 보니 행정이 너무 불편해’라는 주민의 뜻을 경청하고 발견해야 한다. 감시와 추궁이 아니라 ‘발견과 경청’, 평가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여야 한다.

그래서 본인은 보조사업자가 아니라 ‘시정참여자’라고 표현한다. 시정참여자들의 자기주도적 평가가핵심이다. 또 공무원은 주민이 지원금 100만원 받고 얼마나 철저히 일을 하는지 배워야 한다. 우리는 그분들에 대한 발견과 경청의 데이터를 잘 모니터링 한다. 모니터링된 데이터를 정책개선에 반영한다. 이렇게 정책을 변화시키는 것이 지원센터 역할이다.

회계를 쉽게 하는 방법 정부가 개발해야

김필두 박사 안행부에서 비영리민간단체 지원사업에 대한 평가를 한다. 거기서 항상 부딪히는 것이 “국민의 혈세를 쓰는데 철저하게 사후 정산하고, 감사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안행부 측과 “우리가 을이냐? 건설회사도 아니고 돈을 줬으면 사업을 하도록 내버려둬라. 우리는 비영리사회단체다”라는 민간단체 측의 주장이 팽팽히 맞선다.

유창복 센터장 회계 자체를 부실하게 하자는 것이 아니다. 소액이라도 엄중하고, 투명하게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시정 참여자들은 회계에 대한 교육도 받아야 한다. 다만 이를 간편하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다.

예를 들면, 마을사업이라고 해놓고, 캐쉬카드를 사용하라고 한다. 그런데 마을의 중요 파트너가 시장이다. 시장에 가면 캐쉬카드를 못 쓴다. 대형마트에서 사와야 한다. 이런 모순적인 상황이 코미디 아닌가? 이런 것을 좀 개선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정부가 개발해 줬으면 좋겠다. 회계를 애매하게 하자는 것이 아니라 쉽고 정확하게 할 수 있는 방법, 이런 것에 정부가 돈을 들이면 되지 않나?

매칭·코디네이터 역할 하는 지원센터

김필두 박사 지원센터에는 센터장을 포함 30여 명의 전문가가 있다. 마을사업 사전·사후지원 시스템 관리만 해도 엄청난 일인데, 현장도 가봐야 하고, 면담도 해야하고, 모니터링도 해야할텐데, 아무리 기라성 같은 전문가라 해도 30여 명이 다 할 수 있나?

유창복 센터장 그러니까 매일 밤을 샌다. 그렇다고 30여 명이 사전·실행·사후 모니터링을 다 하는 것이아니라 시스템을 관리하는 것이다. 각 지역에서 3~5년간 현장 활동을 한 분들을 추천받아 심사 후 교육을 해서 풀을 만든다. 예를 들어, 본인이 중랑구에서 추천을 받아 상담원이 되면, 중랑구 주민이 사업을 신청했을 때, 본인이 달려간다. 동네라서 밤에도 갈수 있고, 심지어 술이나 차도 한 잔하면서 상담할 수있다. 그 과정에서 상담원도 성장한다. 원래 가르치면서 배우고, 자기성장도 일어나는 것이다. 또 자기활동을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더 나아가 선·후배 만남의 자리도 된다. 이것이 마을이다.

지원센터는 그렇게 매칭시키는 시스템을 관리하고, 상담원들을 교육시킨다. 단순히 기능적인 정보전달만하는 시스템이 아니고, 이렇게 이뤄지는 것을 관리하는 것이다. 즉, 지원센터는 각 구청별로 선배주민과 활동가들을 교육시키고, 역량을 키워서 그들이 마을로 연결되도록 한다. 이렇게 지원센터에서는 매칭,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는 것이다.

광역시·도 지원센터는 정책 기능만

김필두 박사 지방자치법 시행령 제8조의 별표에 보면 주민자치를 지원하는 것은 시·도의 사무, 운영하는 것은 시·군·구 사무로 돼 있다. 그러나 현재 주민자치센터를 운영하는 것은 읍·면·동이다. 법에는 시·도가 지원하는 입장이지만 서울시, 충남도, 경기도 등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광역시·도는 하는 일이 별로 없다.

또 광역시·도 5~6군데가 서울시의 마을공동체 지원조례를 본떠서 마을만들기 지원조례를 만들었다. 지방자치법에 따르면, 광역은 전체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정책을 만들며, 중앙에서 주민자치문제를 이끌어내는 것이 주된 역할이다.

결국은 공모는 기초지자체가 해야 된다. 그러나 현 시스템을 보니 ▶서울시에서 지원센터에 의뢰하고 ▶지원센터는 심사해서 적격여부를 판단해 올리면 ▶서울시는 다시 각 자치구에 넘기고 ▶각 자치구는 지원센터와 MOU를 체결하는 시스템이다. 이것은 광역자치단체가 기초자치단체의 할일을 빼앗는 것이다.

유창복 센터장 2년 전, 서울시장과 처음 논의하는 과정에서 결론은 중간지원조직으로 가야 한다고 합의했다. 또 중간지원조직인 지원센터는 구수준에 있어야 하고, 바라건대 더 밑으로 내려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거버넌스라는 환경에서는 동이 별로 존재감이 없으니 구 수준 정도에 두는 것이 합리적이라 결론 내렸다. 하지만 서울시 25개 자치구에 다 만드는 것에는 모두 반대했다.  즉 “지금 25개 자치구에 만들고자 마음만 먹으면 6개월 안에 다 만들어질 것이다. 그러나 민도 관도 준비가 안돼 있다. 더욱 이 둘간의 스킨십 경험도 축적된 것이 없다. 이 상태에서 만들면 서울시가 짠 모범조례안이 천편일률적으로 순식간에 다 만들어 질 것이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광역자치단체 우선 수준에서 만들자고 했던 것이다. 거기에서 광역센터의 미션이 당연히 도출되어 나왔다. 다양한 경로와 속도를 고려해 자치구 지원센터에 형성과정을 지원하는 역할이다. 예를 들어 준비도 안 된 채 만들겠다고 나서는 자치구에게는 ‘먼저 공무원들하고 MT부터 가라’고 권하는 등의 속도조절을 했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기초자치단체에 다 만들어지면 ‘광역이 필요할까?’라는 의견이 나온다. 그때 광역자치단체지원센터는 정책기능만 하면 될 것 같다. 현재 성북구와 금천구가 만들어졌고, 내년이나 후년을 목표로 준비하는 자치구도 있고, 대체적으로 4~5년후면 25개 자치구에 지원센터가 다 만들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중간지원조직은 민과 관의 통역사

김필두 박사 만들어진 자치구의 조례를 봤더니 서울시 조례와 똑같다. 자치구 나름대로의 특징을 살려 지역의 것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것이 문제다. 또 중간지원조직과 관련하여 많은 말씀을 하셨는데, 지방은 물론이고 서울에서도 아직 많은 주민과 공무원은 중간지원조직에 대하여 잘 모른다. 중간지원조직의 역할은 무엇인가.

유창복 센터장 관과 민의 통역사다. 또 행정혁신의 한 파트너 역할을 해야 한다. 본인은 우리 사회가 시장을 통한 부의 재분배 가능성은 점차 희박해지고, 양극화 현상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고 본다. 오죽하면 잘 사는 집 아이들이 공부 더 잘하고, 더 잘 생기고 성격도 좋다는 것을 인정하는 단계가 됐을까!

상당히 계급적인 사회로 들어선 징후들이 너무 많다. 그런 면에서 공공의 역할이 있다. 정부가 재분배 기능을 잘해야 하고, 그렇게 하려면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정부의 곳간에는 관료가 독점적인 창고지기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시민이 범접하기가 쉽지 않다. 거버넌스에 대한 안좋은 시선도 있지만 어쩔 수 없다.

우리 사회에서 거버넌스 경험치가 어디까지 와 있을까 생각해보면, 대단히 위계적인 거버넌스의 경험이 강하다. 1980년대 이후 수평적으로 발전했다고 볼 수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갑을 관계다. 진정한 의미의 협력적 거버넌스 경험이 일천한 것이다. 공무원도 시민도 내면화돼 있다. 이것을 깨는 게 대단히 중요하다.

민도 ‘우리가 주인’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관도 ‘이렇게 해서는 행정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이구나’하고 스스로 내부적으로 깨닫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협력적인 거버넌스 경험을 쌓아가야 한다. 이런 면에서 지원센터는 협력적 거버넌스 경험을 체계적이고 알뜰하게 만들어 민과 관이 함께 공유해 나가는 역할을 해야한다.

마을만들기 선수들 판 되면 재미없어

김필두 박사 일본의 경우 중간지원조직을 관설관영형, 관설민영형, 민설민영형 등 세 가지 형태로 구분해놓았다. 이 글을 쓴 일본사람의 주관이기는 하겠지만, 가장 바람직한 것은 ‘민설민영형’으로 민간의 여러 조직을 묶어주기도 하고, 힘을 합쳐주는 것이 중간지원조직이다. 서울시의 경우 3인 이상 모여 신청하면 가능하다 했는데, 해보니까 어떤가? 3명으로 조직이 가능한가? 이런 식의 조직에 문제는 없는지.

유창복 센터장 기준이 3명으로 법인이나 비영리단체라는 조건은 달지 않았다. 공무원의 입장에서 보면 법적주체가 아니라서 정산도 골치 아프고 귀찮을 것이다. 그러나 서울의 마을공동체 정책이 선수들의 판이 되면 너무 재미없다. 주민이 등장해야 한다. 마을이 뭔가? 주민이 자신들의 생활 필요를 시민단체에 맡기지 않고, 정치인에 위임하지 않고, 스스로 나서서 해결하겠다는 것 아닌가?

그럼 누구와 나설 것이냐? 이웃과 함께 나서서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본시 마을은 평소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나서서 서로 생활에 필요한 것을 이웃과 함께 궁리하고, 하소연하고,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관계망이다. 따라서 비록 3명으로 출발하지만 5명 되고, 10명이 되는 것이다. 성미산 마을은 20년의 세월이 일군 성과이다.

서울 전체로 보면 마을공동체는 아직 초보수준이다. 엄마들이 수다 떨다 ‘우리 한번해보자’하고 나서야지 선수들이 나서면 재미없다. 해보니까 마을사람들이 실제 재미있다 한다. 우리 마을 프로젝트는 50만 원, 100만 원, 150만 원을지원한다. 왜 이렇게 지원하는가 하면 첫째, 우리 엄마들끼리 모였는데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둘째, 모였는데 품앗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린 이런 걸 지원한다. 100만 원 준다니까 “아! 그것 밖에 안 주냐 만만해서 좋다”한다. 단체들은 안 들어온다. 지금하고 있는 자기 일도 바빠서다. 작년과 올해 일반 주민이 기대이상으로 참여했다. 그 3명, 5명으로 시작한 엄마들이 10~15명이 되면서 “카페를 해볼까?” “우리 집에서 도서관 해볼래?” 등 해볼거리를 찾게 되더라.

사실 정부는 주체의 관점에 충실한 일이 익숙하지 않다. 모델링에 익숙하다. 가령, 전문가를 시켜 프로그램 짜고, 공간 만들어 놓으면 시민이 올 줄 알았는데 안 들어오니 그것을 유지하려 고생한다. 주체가 움직이고, 아쉬워하는 것을 도와줘야 생색이 나는 법이다. 나랏돈은 생색나게 써야 한다. 그것이 ‘보충성의 원리’다. 주민이 먼저 스스로 조달해야 자기 것이 된다.

바로 주민의 나서기에 문턱을 없애고, 가장 손쉽게 나설 수 있는 장치가 바로 ‘주민 3명’이다. 현재로는 오히려 그런 일반주민의 등장이 서울시 마을공동체 정책의 가장 큰 힘이 된다고들 한다.

김필두 박사 마지막으로 (사)마을은 어떤 활동을 하며 지원센터와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

유창복 센터장 지원센터를 서울시로부터 위탁받은 모기관이다. 지원센터는 아까 말한 관설민영이다. 조례로 만들어 졌고, 서울시 예산으로 운영되는데, 지원센터 운영을 기관위탁 받은 것이다. 공모를 통해서 3년을 기한으로 위탁받았고, (사)마을은 공모사업을 하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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