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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_마을에 있어 사업성 높이기] "시장 이윤과 마을 공동선 함께 추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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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_마을에 있어 사업성 높이기] "시장 이윤과 마을 공동선 함께 추구하라"
  • 김석수 경북대학교 철학과 교수·본지 편집인
  • 승인 2013.08.0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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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지역은 특수성과 경제적 자립성 확보 및 연대성 구축해야
김석수 경북대학교 철학과 교수·본지 편집인.
김석수 경북대학교 철학과 교수·본지 편집인.

마을은 본래 동고동락하는 연대의 공동체다. 이런 공동체가 무너지게 되면 그 어떤 사회도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근대적 자율성과 전통적 연대성을 새롭게 종합해야 하는, 그래서 도시와 마을을 새롭게 조화시켜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다시 말하면 도시다운 마을, 마을다운 도시를 구현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마을만들기를 위한 주민자치사업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도시를 배제하거나, 우리가 꾸려야 할 미래의 마을을 외면하는 형태로 전개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현대인의 삶을 지배하는 도시생활에 근간이 되는 시장의 역할을 무시한 채 동화 같은 마을만을 만들 수도 없고, 그렇다고 더불어 살아가야 할 마을의 역할을 외면한 채 시장에 매몰돼 삭막한 도시에서만 살아갈 수도 없다.

따라서 마을만들기를 위한 주민자치사업은 시장의 이윤추구와 마을의 공동선 추구를 함께 모색하는 방향에서 전개돼야 한다. 바로 여기에 마을만들기가 ‘사업’과 연결될 불가피성이 존재한다. 이 문제를 좀 더 깊이 살펴보기 위해서는 사업이라는 것이 지니고 있는 성격과 위치에 대해서 재조명해볼 필요가 있다.

 

주민이 자치가 될 때 행복한 마을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누구나 사업을 한다. 사업이란 원래 영어의 비즈니스에 해당하는 말로서 물건이나 용역을 고객이나 다른 사업체에 합법적으로 판매해 이윤을 남기려는 활동이다. 인간이 어떤 활동이나 일을 통해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활동을 하려고 하는 이상, 이런 사업은 자신의 삶에 불가피한 활동이다.

그러나 다분히 경제적인 이윤을 추구하는 행위와 연관돼 있는 이 사업이라는 단어가 마을과 반드시 결합돼야 할 이유가 있는가? 사업에 이런 경제적 이윤을 추구하는 활동 외에 다른 요소가 포함될 수 있는가? 사실 사업은 어떤 일을 설정된 목적과 계획에 따라 추진해 이를 성취하는 영리적인 경우와 비영리적인 경우 모두를 포괄한다.

어떤 사람이든 누구나 사업을 한다고 할 때는 단순히 이윤추구에만 목적을 두고 있지는 않다. 사람들은 자신의 사업 활동을 통해서 경제적 가치 이상의 가치를 실현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마을만들기 사업을 한다는 것도 마을의 경제적 이윤 창출에만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사람다운 삶이 가능한 공동체, 이른바 일터로서의 경제적 공간 외에 삶의 질을 윤택하게 누릴 수 있는 놀이터로서의 문화적 공간 및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생태적 공간을 만드는 데 있다.

그러나 이런 공간 만들기는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일정한 목적과 계획을 통해 추진할 때에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마을만들기는 사업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마을만들기는 통속적으로 이해되고 있는 경제적 이윤추구에만 매몰돼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마을만들기는 또 하나의 시장논리에 포섭돼 기존의 도시적 삶이 안고 있는 문제점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마을만들기 사업이 이런 경제적 목적에 경도돼 공동체 삶을 더 악화시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업이 경제적 이윤 창출을 넘어 더 높은 인간 삶의 가치를 실현해야 하듯이, 마을만들기 사업도 그러해야 한다. 마을만들기 사업은 곧 마을자치를 실현하는 데 있다. 마을자치는 마을의 구성원들이 경제적으로 자립적인 삶을 확보하는 것이자, 동시에 이를 넘어 각자가 자율적으로 문화를 향유하면서 서로의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연대적 삶을 마련하는 것이다.

어떤 개인이나 어떤 집단도 타치(他治)의 상태에 놓여있게 되면 결코 행복할 수 없다. 그러므로 마을의 자치는 나나 나와 함께 살아가는 마을 주민이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지, 다른 외부의 사람들이 만들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마을자치의 주체는 바로 해당 마을의 주민 자신들이어야 한다. 주민이 자치를 하는 마을이 될 때에만 행복하고 아름다운 마을이 될 수 있다.

 

도시인의 삶을 개선할 새로운 공동체 절실

그러면 이제 마을사업 목표로서 마을의 자치 실현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추진하고, 어떤 내용으로 채워져야 하는가? 우선, 도시와 시골의 마을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도시에 거주하는 주민은 자신들의 거주공간인 동네에 그다지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도 않으며, 또한 그럴 여력도 없다. 도시 거주민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경제적 이유나 교육적 목적, 또는 근무여건 등을 고려해 거주지를 선택한다. 물론, 문화적 향유에 대한 추구가 점차 강해지면서 근자에 이르러서는 많은 거주자들이 주변의 문화·생태 조건에 중요성을 두고 거주지를 선택하기도 한다.

그러나 도시에 거주하는 자들은 일차적으로 경제적 가치나 이와 연동돼 있는 교육환경 및 교통환경에 기초해 거주지를 결정한다. 그러므로 이들은 자신들이 거주하는 지역에 대해서 수단적 가치 이상을 넘어 그 자체를 목적적 가치로 대하지 않는다. 이들은 거주지보다는 자신이 속해 있는 일터에 더 많은 관심을 집중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신들이 사는 거주지도 경제적 조건이 좋아지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정거장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도시 주민 상당수는 자신들이 거주하는 동네를 살기 좋은 마을로 만들자는 제안에 대해서 그다지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래서 주민자치위원들이나 관련 공무원들도 마을자치 사업을 함에 있어서 참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맞벌이 부부의 확산, 학생들의 입시경쟁 과열, 청년실업자의 확산 등은 이런 상황을 더욱 더 가속화시키고 있다. 정말이지 이런 상황 아래서 자율성과 연대성을 갖춘 마을을 만든다는 것은 결코 쉽지가 않다.

사실 마을만들기 사업이 성공적이기 위해서는 일터인 직장에서의 생활보다 가정에 돌아와 지내는 시간이 더욱 더 늘어나야만 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더 오래 머물게 되는 장소에 애착을 갖게 마련이다. 직장보다 가정으로 돌아와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아져야 그들이 거주하는 장소에 대한 관심도 그만큼 높아지게 된다. 하지만 한국 도시인의 삶은 선진국의 복지사회만큼 그런 여력이 없다. 따라서 한국의 도시에서 마을사업을 하는 것은 선진국 그 어느 사회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지만 한국 도시인들은 선진국 그 어느 사회의 도시인들보다 경쟁에 더 많이 지쳐 있다. 그러므로 한국 도시사회는 그 어느 사회보다 마을자치가 더 많이 절박한 상황이다. 오늘날 한국 도시인들은 과도경쟁으로 인해 정신적 공황상태로 내몰리고 있다. 우울증의 급속한 증가와 세계 자살률 1위라는 사태는 이를 단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계속 이런 상황으로 내몰리게 되면, 우리 도시인의 삶은 불행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도시인의 우울한 삶을 개선할 수 있는 새로운 공동체 구성으로서의 마을만들기를 수행하지 않을 수 없다.

 

시골의 전통마을도 무너지고 있는 상황

이와 같은 상황은 시골 마을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한국의 시골 마을은 도시에 빨려들어 폐허가 되고, 그 속에 머물고 있는 주민의 삶은 노인정 신세가 돼가고 있다. 게다가 남아 있는 젊은이들의 삶도 낙오자의 삶으로 전락하고 있다. 그들 역시 이제 과거처럼 마을에 대해 자긍심을 갖지 못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골 마을에 거주하는 자들 중 고령층은 도시로 떠난 자식들로부터 소외를 겪고 있으며, 젊은층은 하루빨리 도시로 나가려는 뜻을 두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골 마을의 주민은 자신들의 마을에 대해서 자긍심을 갖고 살기 좋은 마을로 만드는 데 의욕을 갖지 않는다. 이로 인해 그나마 공동선을 중시했던 시골의 전통마을도 점점 무너지고 있는 상황이며, 모두가 시장이 지배하는 도시에 포섭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지방자치가 어려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압축근대화를 위해 중앙권력 중심의 명령체제가 만들어 놓은 서울공화국의 신화는 지방의 삶을 여전히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는 도시 외부의 마을이든, 도시 내부의 마을이든 모두 시장 논리가 지배하는 도시에 포섭되고 있는 실정이다. 도시 내부에서는 주민이 시장의 일터에 너무 많이 포섭돼 마을만들기의 주체를 모색하기 어렵고, 도시 외부에서는 주민이 시장 일터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의 상실 및 부재로 마을만들기 주체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도시 내부의 마을도 살려야 하고, 도시 외부의 마을도 살려야 한다. 전자의 마을이 몰락할 경우, 우리 모두는 시장의 무한경쟁 속에서 서로를 상품화하고, 도구화하면서 고립돼 갈 것이다. 후자의 마을이 몰락할 경우, 우리 모두는 중심주의 논리에 흡수돼 균형과 다양을 모색하는 지방의 삶을 마련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마을만들기를 위한 주민자치사업은 당연히 진행돼야 한다. 이런 열악한 상황 속에서 그나마 이 사업이 성공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이 사업이 그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혜택이 마을 구성원들 중 특정 부류에게만 돌아가게 하는 형태가 돼서는 안 된다. 그것은 마을구성원들 일반이 누릴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마을사업의 주체도 다양한 연령계층과 직업계층들로 구성돼야 한다. 마을사업 목표 역시 이들 각 계층이 절박하게 요구하는 방향에서 설정돼야 한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이들 대부분은 마을만들기에 대해 그동안 관심을 갖지 못했으며, 마을만들기에 대한 전문성도 지니고 있지 못하다. 그러므로 이들이  마을만들기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이 분야에 관한 전문적인 교육을 받아야 하며, 나아가 자신들이 속해 있는 마을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와 관련해 깊이 있게 함께 연구하고 논의할 수 있는 지도자 양성교육 시스템도 마련해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마을만들기 사업이 소수 엘리트가 주도하는 방식이 돼서는 안될 것이다. 당연히 마을만들기 사업은 마을 주민의 요청사항이 아래로부터 위로 수렴되는 방식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런 상황을 제대로 전개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마을만들기의 중요성을 인지하게 하고, 나아가 이를 추진할 수 있는 기반조성을 하기 위해서는 이를 가능하게 할 지도자를 양성하는 과정이 먼저 필요하다. 특히, 시골 마을의 경우 이 과정이 더욱 더 필요하다. 대부분의 시골 주민은 이상적인 마을 모습에 대한 전망을 가지고 있지 못하며, 오늘날의 세계적 흐름 속에서 자신들의 마을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고, 지금 안고 있는 마을의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해서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한다.

이런 면에서 군 단위 이하의 마을에서는 마을만들기 지도자 양성교육 시스템이 더 잘 갖춰져야 할 필요가 있다. 도시 지역의 주민은 바쁜 일상으로 인해 마을만들기에 대해 불평하거나 관심 없음을 표명하는 경우가 많다면, 시골 지역 주민은 “마을이 이미 다 죽었는데 무슨 마을만들기냐”고 의구심을 표명하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이런 분위기 아래서는 마을만들기 교육을 받은 지도자들도 마을사업을 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인문학의 생활화, 생활의 인문학화

위와 같은 문제를 조금이라도 개선하기 위해서는 마을만들기 지도자 양성교육에서부터 지역 주민의 관심 고취 방법에 이르기까지 좀 더 섬세한 접근이 요구된다. 우리나라 교육 일반이 그러하듯 마을만들기 교육도 주로 전문가의 강의를 통한 이론 전달식 교육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런 교육은 일방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마을자치가 갖춰야 할 기본 취지에 어긋난다. 앞서 언급했듯이 마을자치는 마을주민의 자율성과 연대성의 조화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 교육 역시 서로가 주체가 되는 관점에서 접근돼야 한다.

그러므로 마을만들기 교육은 각 마을이 처해 있는 현안을 두고 함께 토론하는 대화방식에 입각해야지, 전문가가 많이 알고 있다는 전제 아래 선진국의 마을만들기 모형을 전하고, 이에 따르도록 계몽하는 형태가 돼서는 안될 것이다. 또 마을만들기 교육을 받은 지도자들이 마을 주민을 대상으로 마을만들기 사업을 추진하려고 할 때에도 마을 주민을 계몽해 이끌려고 하기보다는 마을 주민에게 봉사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애로사항에 참여하는 방식이 돼야 할 것이다.

그래서 마을만들기 지도자들은 마을 주민에게 다가가 공감하는 방식을 통해 그들과 친밀감을 확보하는데 우선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공감대 형성을 통한 친밀감 확보 없이는 아무리 취지가 좋은 사업도 성공할 수 없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 주민이 거주하는 일정한 장소와 시간에 마을 현안을 함께 논의하고 풀어갈 수 있는 이야기 마당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 이야기 마당을 만드는 데 비교적 효율적인 방식이 바로 ‘인문학의 생활화, 생활의 인문학화’다. 아무리 좋은 마을을 만들려고 해도 마을 주민 속에 인문적 가치가 마련돼 있지 않으면, 마을만들기 역시 마을 주민의 이해관계에 포섭돼 이윤추구에 매몰되고 말 것이다.

경제 전쟁과 문화 차별 속에서 점점 더 많이 피로해지는 현대인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간 삶의 근원적 가치와 자유 실현을 고뇌하는 인문학적 사유하기와 대화하기가 요구된다. 우리는 그동안 국가의 상실과 전쟁으로 인해 겪게 됐던 슬픔과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경제력과 국방력에 치중해왔다. 이로 인해 우리의 내면은 상대적으로 빈곤해져왔으며, 이와 더불어 마음의 아픔도 급격하게 증대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의 마을만들기 사업은 이 부분을 개선하는 데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다. 물론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 우리는 공동체들 사이의 격차 및 공동체 내부 구성원들 사이의 고립 현상을 극복해야 한다. 이는 소공동체에 해당하는 마을들이 각기 자율성과 연대성을 확보하는 길이어야 한다.

 

각 연령층이 조화를 이루는 사업 수행해야
 

각 마을들과 이들 마을의 구성원들이 자율성을 갖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경제적 자립성을 확보해야 한다. 나아가 이들 마을들과 구성원들이 자립성을 넘어 연대성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전략적 말하기를 넘어 서로의 처지를 공감하는 인문학적 사유와 이에 기초한 이야기 문화도 마련해야 한다. 우리는 전자를 위해서는 마을의 특수성을 보편화하는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지금은 누가 뭐래도 글로벌 시대이자, 문화산업의 시대다. 이런 시대일수록 각 지역들은 자신들이 간직하고 있는 특수성을 세계적 차원으로 발전시키는 수밖에 없다. 각 지역들의 특수성은 그 지역의 전통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으로 인해 전통을 상실했으며, 그나마 잔존해있던 전통도 우리의 자긍심 부족으로 스스로 지워버리고 말았다. 이처럼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마련할 수 있는 유형적, 무형적 전통자산 모두를 상실함으로써 각 지역들의 정체성도 동시에 잃어버리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각 공동체들의 자존감의 상실이자, 동시에 함께할 수 있는 연대감의 상실이다.

이제 우리는 타의적이든 자의적이든 잃어버린 지역의 전통을 복원해 정체성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기억이 담겨 있는 장소를 살려내야 할 것이며, 이를 통해 ‘이야기가 있는 마을’을 건설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우리는 이렇게 형성된 지역의 자산을 세계화하는 작업을 해야 할 것이며, 아울러 이를 통해 자신이 소속된 공동체에 대한 자긍심도 길러내야 할 것이다.

또 우리의 마을사업은 전통을 복원하는 과거 회귀적인 기억의 공동체 차원을 넘어, 미래를 새롭게 창조하는 상상의 공동체로까지 이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각 지역에 있었던 기억을 복원하는 것만으로는 우리의 삶이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우리는 그 기억을 지금 속에서 새롭게 구현하고, 이를 미래로 재창조해가는 작업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 따라서 마을사업은 우리의 공동체가 과거의 기억을 살려내되 현재의 지각과 미래의 상상을 반영해 세계적인 흐름 속에서 늘 역동적인 정체성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며, 아울러 이를 통해 마을이 정통성을 가지면서도 개방성도 지닐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런 마을을 만들기 위해서는 마을 구성원들의 각 연령층이 조화를 이루는 사업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미성년층에게는 상상력이 작동할 수 있는 살아있는 마을이, 중년층에게는 지금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마을이, 노년층에게는 기억할 수 있는 마을이 돼야 할 것이다. 지금의 마을사업은 주로 주부층이나 노령층에 집중돼 있다. 마을사업이 좀 더 총체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활동 계층, 연령층의 관심과 요구를 수렴할 수 있는 형태로 재구성돼야 할 것이다.

 

주민이 세계인으로 살아가도록 해야

이런 구성의 토대 위에서 각 마을은 자신만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마을의 과거, 현재, 미래를 잇는 특성화를 모색해야 할 것이며, 이를 자산으로 마을 주민의 자긍심과 자립심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마을사업은 시장의 과도한 지배로 초래된 가정·학교·공동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마을사업은 가사 부담에 심각한 부분이 되고 있는 보육비와 교육비를 줄일 수 있는 보육 및 교육사업, 노령층 인구의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경로사업 등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또 마을사업은 공교육이 붕괴되고 사교육이 확장됨으로써 발생하고 있는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학교 교육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사업과 마을공동체를 위협하는 다양한 환경 요소들을 개선할 수 있는 사업도 함께 모색해야 할 것이다. 특히, 마을사업은 과도한 경쟁으로 지쳐있는 계층이나 더 이상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무의미의 나락으로 추락하고 있는 주민에 대해서 이들이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희망심기사업(인문과 예체능을 통한 삶의 활력 찾기 사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이런 사업 모두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우리는 이들 사업에 대한 외부 전문가들의 강의와 자문을 들을 필요도 있지만, 자신의 지역문제를 몸소 경험하면서, 동시에 이들 사업에 관심과 능력을 가지고 있는 지역 주민을 설득해 이들이 사업에 주체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마을사업은 가능하면 마을문제를 주민 스스로 풀어갈 수 있는 형태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마을 주민이 스스로 주체가 돼 마을만들기 사업을 한다 하더라도 마을이 속해 있는 큰 단위의 공동체, 이른바 도나 시, 나아가 국가가 이런 부분에 대해서 외면하거나, 심지어 간섭해 지배하려고 하면, 이 사업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마을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부도 ‘마을이 살아야 도시가 살고, 도시가 살아야 국가가 산다’는 관점에서 마을만들기 사업에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정부가 이런 지원 조건으로 마을사업에 계속 개입해 간섭하거나 지배하려고 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과거 근대화 프로그램에서 노출된 중앙지배의 확대재생산으로 자치의 몰락을 더 강화시키게 될 것이다. 정부는 어디까지나 마을사업과 관련해 보조적으로 도와주는 차원에 머물러야 할 것이다. 정부 역시 이런 시대적 흐름을 직시하고 로컬리티를 최대한 살리는 정책, 거대 이념 추구의 정치가 아니라 미시생활의 정치를 구현하는 데 최대한의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 시대 마을사업은 지치고 고독한 개인이 자신 삶의 활력을 찾고, 무너지고 분열된 공동체들이 다시 일어나 화합하는 형태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개인과 국가가 조화를 이뤄 마을 주민이 세계인으로 살아가도록 해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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