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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이퀄스’ ‘더 랍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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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이퀄스’ ‘더 랍스터’
  • 윤성은 영화평론가
  • 승인 2021.12.21 17: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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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람들 그리고 영화 Town in Movie

많은 영화의 배경이 마을이다. 영화 주인공들의 삶의 터전 역시 그들이 사는 마을이고 동네이기 때문이다. 스크린 속 인물들은 배경이 되는 마을, 그리고 이웃들과 때로 갈등하고 협력하며 여러 이야기들을 만들어나간다. 그 이야기의 결말은 해피엔딩이 되기도 하고 비극으로 치닫기도 한다. 앞으로 마을, 사람들 그리고 영화에서는 마을과 사람들의 케미스트리, 그들 사이의 교감과 성장, 변화를 다룬 작품들을 소개한다. 그 속에서 주민자치의 바람직한 방향, 때로 반면교사의 깨달음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자 주]

 

*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전환이 그랬던 것처럼 동시대 청년들의 연애관 및 결혼관도 한 세대 전에 비하면 코페르니쿠스적이라 할 만큼 큰 변화를 보여준다. 최근 개봉한 영화 연애 빠진 로맨스’(감독 정가영, 2021)에는 연애는 부담스럽지만 성적인 욕구는 채워야 하기에 데이팅 어플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우리 부모님 세대에는 용납될 수 없었던 말과 행동과 관계들이 이 트렌디한 영화에서는 솔직하고 유쾌하게 그려진다. 지고지순한 사랑에 대한 로망은 유행가 속 가사나 클래식 영화에 묶어 놓고 현실에서는 오직 자유를 추구하는 청춘들, 그들은 외로움을 부끄러워하고 타인에게 감정을 쏟는 것을 낭비라 생각하는 듯 보인다.

다른 분야와 달리 이러한 가치관에 있어서만큼은 그들이 역으로 40,50대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 또한 흥미롭다. 그것이 연애, 결혼, 출산부터 포기해야 했던 N포세대의 자기 합리화로부터 시작되었다거나 인구절벽을 가속화시킨다고 주장해도 소용없다. 그 언젠가 이러한 세태에 대한 자발적 반동이 생길 때까지 순애보란 낡은 감정으로 치부될 것이다.

 

인간다움을 짓밟는 근미래의 디스토피아

 

이퀄스’(Equals, 드레이크 도리머스. 2015)는 인간의 감정, 그 중에서도 사랑을 철저히 통제하는 근미래의 한 커뮤니티를 상정하고 있다. 소위 선진국으로 불리는 이 감정통제구역에서 사랑은 생산능력을 저하시키고 불화와 갈등을 조장하는 성가신 감정일 뿐이며 구성원들에게 연애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선택할 수 있는 자유 따위는 없다. 노동력 생산을 위해 여성들은 남성과 관계를 맺는 대신 인공적인 임신과 출산에 따라야 할 의무를 가진다. 만약 누군가에게서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생체 반응이 감지되면, 그는 감정통제 오류진단을 받고 1기부터 4기까지 단계에 따른 처분을 받게 된다. 4기가 되면 노동력을 제공할 수 없기 때문에 감호소로 이송되어 안락사에 처해진다.

이퀄스에 묘사된 것은 생산성 향상이라는 기조 하에 인간다움을 짓밟는 근미래의 디스토피아라고 할 수 있다. 고도로 발달되어 있기는 하지만 차가운 느낌의 구조물들, 생기가 사라진 사람들의 얼굴이 말 그대로 비인간적인 선진국의 분위기를 잘 대변한다.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가던 사일러스’(니콜라스 홀트)는 어느 날, 직장 동료 니아’(크리스틴 스튜어트)에게서 전에 없던 묘한 감정을 느끼고 병원을 찾아간다. 감정통제 오류 1기 판정을 받은 그는 동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치료를 받기 시작하지만 감정은 더 격해지기만 한다. 니아도 자신과 같은 감정보균자라는 것을 알게 된 사일러스는 그녀와 사랑을 나누며 완전히 다른 삶을 경험한다.

사일러스와 니아가 연애를 하게 되면서 에너지가 충만해지고, 그에 따라 일의 능률도 높아지는 것을 보여주는 신들은 인간의 감정이 소모적인 것일 뿐이라는 선진국의 제도적 전제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한다. 오히려 그들은 더 이상 함께 있지 않으면 일에 집중할 수 없고, 우울한 감정의 극단으로 떨어지게 된다. 두 사람이 인간의 감정이 허용되는 이웃 나라, 일명 미개국으로 사랑의 도피를 계획하던 중 니아는 의무임신제에 호출 당해 건강검진을 받는다. 놀랍게도 그녀가 이미 임신 중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두 사람의 사랑은 위기의 절정을 맞게 된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극단적으로 통제하는 커뮤니티

 

이처럼 사랑이라는 감정을 극단적으로 통제하는 커뮤니티는 더 랍스터’(The Lobster,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 2015)에도 등장한다. 천생연분을 찾지 못한 사람은 동물이 된다는 판타지적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퀄스보다 동화적인 면도 있지만, 디테일들은 훨씬 냉소적이고 잔혹하다.

아내에게 이별을 통보받은 후, ‘데이비드’(콜린 파렐)는 한 호텔로 옮겨진다. 그는 이 아름다운 곳에서 45일 안에 완벽한 짝을 찾아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동물이 된다. 이 곳에서 완벽한 짝의 기준이란 둘 다 다리가 불편하다든가 근시라든가 목소리가 좋다든가 코피를 자주 흘린다든가 하는 신체적 공통점이거나 자타가 인정할 만큼 도드라지는 성격상의 공통점이다. 이성애나 동성애는 허용되지만 양성애는 허용되지 않고, 신발도 4455는 있지만 44반 사이즈는 제공되지 않는 더 랍스터속 사회는 다양성이나 취향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공간이다.

호텔에 온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관리자가 데이비드에게 만약 미션에 실패하면 무슨 동물이 되고 싶냐고 묻자 그는 랍스터라고 대답하며 ‘100년 넘게 살고 귀족들처럼 푸른 피를 지녔고 평생 번식을 하며 내가 바다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덧붙인다. 데이비드의 대답은 그가 꽤 낭만적이고 섬세한 사람임을 내포하고 있다. 그런 그가 호텔 안의 한정된 사람들 안에서 자연스럽게 완벽한 짝을 만나는데 45일은 너무 짧아 보인다. 호텔 밖에서 야생 생활을 하는 외톨이들을 사냥하는데 성공하면 유예기간이 더 늘어나지만 데이비드에게 인간 사냥 같은 것이 가능할 리 없다.

데이비드는 오로지 동물이 되지 않기 위해 냉혹하고 까칠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외톨이 사냥 퀸에게 접근한다. 냉혈한 연기로 그녀와 커플이 되는 데는 겨우 성공하지만 시범 동거 기간 동안 풍부한 감성을 숨길 수 없었던 그는 곡절 끝에 호텔을 탈출하고 만다. 사일러스와 니아처럼 그 곳을 빠져나오는 것만이 데이비드의 유일한 선택지다. 영화는 히치콕 감독의 스릴러 영화들처럼 종종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사운드를 삽입시키며 한 사회의 억압적 규범이 조장하는 공포심을 극대화시킨다.

 

사회가 인간의 가장 사적인 부분을 완벽하게 조종제어하려 할 때 생기는 일

 

두 작품은 공히 사회가 인간의 가장 사적인 부분, 그 중에서도 연애 감정까지 완벽하게 조종하고 제어하려 할 때 벌어질 수 있는 일들을 상상하고 있다. 이 커뮤니티들의 야만성은 자체적 이상향이 언급되고 있는 이퀄스에서 보다 직설적으로 대비된다. 기술적으로는 고도로 발달되어 있으나 인간을 그 사회의 발전을 위한 부속물 정도로 취급하는 선진국은 사실 인간에게 감정적 자유가 허락된 미개국보다 야만적이다.

 

영화 후반부,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을 답습하던 두 사람은 결국 다시 조우하지만 사일러스는 이미 새로 개발된 감정통제 주사를 맞은 후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니아는 자신과의 사랑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일러스를 설득해 원래 계획대로 함께 미개국으로 향한다. 두 사람이 맞잡은 손을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은 모든 것을 열어놓은 이 영화에서 희망의 불씨와도 같다.

호텔을 도망쳐 나온 데이비드는 이제 정반대의 통제가 있는 커뮤니티, 외톨이들의 사회에 합류한다. 이 곳에는 호텔과 정반대의, 흡사 이퀄스처럼 연애 감정을 드러내면 안 된다는 규범이 존재한다. 이 곳에서야 자신처럼 근시를 가진 완벽한 짝을 찾은 데이비드는 또 다른 갈등을 겪게 되지만 이번에도 자신의 본능을 억누르는 데는 완전히 실패한다. 근시 여인과의 사랑이 첫 번째 실패라면, 두 번째 실패는 그 사랑을 타인들에게 들켜버린 것이다. 근시 여인이 사랑에 대한 벌로 시력을 잃게 되자 데이비드는 그녀를 데리고 숲 속을 탈출한다. 공인된 커플들의 공간인 도시로 와서 데이비드는 이제 자신의 눈을 찌르고 장님이 된 근시 여인과 완벽한 짝으로 인정받고자 한다.

 

카메라는 데이비드가 레스토랑 화장실에서 입에 휴지를 물고 자신의 눈을 찌르려 하는 장면까지 보여준 뒤 테이블에 덩그라니 남아 데이비드를 기다리고 있는 여인을 비춰준다. 데이비드가 있었던, 있어야 할 여인 앞의 자리는 비어 있고 적막 속에 시간은 흐르고 있다. 과연, 데이비드는 그녀 앞에 장님이 된 채로 다시 나타날 것인가?

이퀄스처럼 열려 있는 결말임에도 두 영화의 여운은 사뭇 다른 색깔의 파장을 남긴다. 시종일관 냉소적이었던 더 랍스터는 마지막에 와서 아예 인간의 사랑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취한다. 어느 한 쪽에서는 강제하고, 어느 한 쪽에서는 금지하는 그 감정이 한 순간에 변질될 수 있는 것이라면 뭐 그렇게 심각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비단 연애 감정만은 아닐 것이다. 한 사회가 엄격히 금기해왔던 것들, 위협적으로 여겨져 왔던 물건이나 사상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별 것 아닌 것으로 드러날 때가 많다. ‘더 랍스터에서처럼 오히려 억압은 또 다른 극단을 낳고 불필요한 전쟁을 불러온다. 유연성을 잃지 않는 것이야말로 건강한 사회를 만들고 유지해 나가는데 가장 필요한 미덕이 아닐까.

 

사진=씨네그루키다리이엔티 팝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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