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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브랜드, 마을을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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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브랜드, 마을을 바꾸다
  • 박소원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3.03 0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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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있는 풍경] ‘마을이 있는 풍경’은 ‘마을’의 속살을 가만가만 들여다보고 소곤소곤 소통하는 코너입니다. 더 없이 가깝고 밀착돼 있지만 적지 않은 이들에겐 대체로 멀기만 한 마을의 이야기를 때론 지직거리고 둔탁한 확성기로 때론 고성능 마이크의 ASMR로 들려드립니다.

내가 좋아하는 어떤 브랜드의 성장과 그를 통해 변화되는 마을에 관해 이야기하려 한다. 특정 브랜드를 거론하는 것에 고민이 있었지만 브랜드는 그 자체로 생명이라 브랜드 없이는 설명되지 않는 것이 많다.

작은 광고회사를 운영하던 10여 년 전, 나는 특별히 커피를 좋아하고 커피취향이 꽤 까다로워서 좋은 원두를 구해서 직원들에게, 손님들에게 대접하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로스팅 한 커피를 이것저것 골라서 에스프레소머신으로 추출하기도 하고 핸드 드립으로 내려 마시기도 했다. ‘우리 회사는 밥값보다 커피 값이 더 많이 들어라고 말할 만큼 커피에 진심이었다.

어느 날 커피를 내렸는데 정말 맛있었다. ‘커피가 바뀌었군요?’ 물었더니 우리 직원이 새로운 브랜드를 구매했다고 했다. 그게 테라로사 커피였다. ‘테라로사라는 브랜드를 처음 알게 된 것이다. 강릉에 본사가 있고 강릉 커피 공장에서 볶은 커피를 유통하고 있었다. 그 이후로는 회사 커피를 바꾸지 않았다. 가끔 선물로 보내오는 커피가 있을 때 잠깐을 제외하고 늘 우리 회사 커피는 테라로사였다.

아이가 아직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 더 전원으로 들어가 마당 있는 집에서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많았다. 춘천고속도로가 아직 개통되지 않아 양평시 서종, 문호리 쪽의 접근성이 썩 좋지 않던 때에 마당 있는 독채가 서종리에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팔당과 양수리를 거쳐 산길로 접어드는 서종의 마을에 그 전원주택을 보러 갔다.

하얀 1층 목조건물인 주택은 아담하고 평범한 집이었다. 마당 한켠에는 텃밭도 마련할 수 있고 집 뒤엔 작은 숲이 있었다. 가격도 적당하고 꽤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집 앞에 마주보는 자리에 떡하니 거대한 모텔이 우뚝 서있다. 얼굴을 마주 대고 있는 형국이다. 그 점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 결국은 포기했다.

조용한 마을에 들어선 테라로사 커피숍

그리로 이사하는 것은 포기했지만 산길로 접어드는 그 작은 마을이 늘 마음을 끌었다. 주말이면 자주 아이와 엄마를 모시고 그 마을로 드라이브를 갔다. 마을 초입에 차를 세워두고 길어야 500미터인 산으로 오르는 마을길을 걸었다. , 여름엔 산에서 내려오는 개울물이 제법 졸졸거렸고 가을에는 단풍이 아름다운 마을이다. 눈이 많이 내린 한겨울도 마다하지 않고 우리만의 산책길처럼 걷곤 했다. 마을길을 걷다가 내려와서 문호리 팥죽집에 들러 팥죽과 칼국수로 식사를 하고 돌아오는 일은 거의 주말 드라이브의 루틴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마을 입구 넓은 땅에 터 닦기를 하고 있었다. 건물이 세워지려나 보다 했는데 그곳에 테라로사 커피숍이 생겼다. 붉은 벽돌로 육중하게 세워진 건물은 내부가 감추어진 폐쇄적인 성()과 같았다. 강가 마을에서 굳이 강을 향한 어떤 시선도 차단해버린 건물의 콘셉트가 사뭇 비장하고 도도했다.

테라로사, 우리 회사의 공식(?) 커피가 아닌가!

무조건 반가웠지만 일견 이해되지 않았다. 나야 이 동네를 워낙 좋아하는 매우 특별한 경우이지만 이곳에 커피를 마시러 얼마나 오려고? 커피도 핸드드립만 있고 빵 종류도 꽤 있었지만 가격은 비교적 비쌌다. 그런데 웬걸! 테라로사 서종점은 폭발적이었다. 주말뿐 아니라 평일에도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었다.

일단 커피 맛이 탁월했다. 그리고 다양한 원두로 내린 커피를 시음하는 시간도 있었는데 커피 맛을 잘 모르던 사람도 커피에 눈뜨게 하는 노력을 꾸준히 해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공간이 되어갔다. 인테리어는 묵직한 앤티크콘셉트였다. 낡은 철, 낡은 목가구가 인테리어 주요 소재였다. 커피숍 앞의 작은 가든도 소박하고 사랑스러웠다.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요소들로 가득했다. 강가에 있지만 강뷰에 의지하지 않는, 강릉 커피숍의 DNA를 그대로 유지한 테라로사 서종점은 점점 핫플이 돼갔다.

하나의 브랜드가 만들어낸 마을의 변화

서울 도심으로부터 꽤 먼 거리에 터를 잡은 테라로사는 그 주변의 마을을 바꿔버렸다. 강릉의 산속에 자리 잡은 커피공장이 강릉을 커피의 도시로 바꿔버린 것처럼, 북한강변도 맛집과 아름다운 카페가 즐비한 명소가 되었다. 도시에서의 생활을 떠나 하루를 맛있게 느긋하게 누리다 가는 행복한 마을이 되었다. 물론 북한강변은 오래 전부터 몇몇의 식당과 카페가 있었지만 지금 같지는 않았다. 주말과 수상스키를 즐기는 여름 성수기만으로 버텨내기엔 만만찮아서 여러 카페와 식당들이 생겨났다 없어지는 걸 반복했다

그 동안 서종IC가 생기면서 접근성이 좋아져 전원주택, 타운하우스가 많아졌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나는 하나의 매력적인 브랜드가 지금과 같은 마을을 만드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사 가는 것을 포기하게 했던 조금은 흉물스러운 거대한 모텔은 테라로사가 리뉴얼해서 직원들의 숙소가 되었고 북한강가에 주말마다 펼쳐졌던 벼룩시장 문호리 리버마켓은 테라로사 안으로 들어와 매일상회라는 이름으로 주말만이 아니라 매일 고객들을 맞이하는 매장을 열어 테라로사 타운을 만들었다,

지금 내가 사는 곳은 남양주의 다산신도시다.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만들어낸 마을이다. 가히 도시라고 불릴만한 매우 작위적이고 계획적인 곳이다. 관주도적인 도시가 계획되고 아파트가 들어서고 사람들이 몰려와 입주하면서 마을이 생겨나는 것이 오늘날의 마을 형성 수순이다. 하나의 건물이, 하나의 브랜드가, 한 명의 사람이 민들레 홀씨처럼 날려서 만들어지는 마을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드라이브 길로도 꽤 먼 거리였던 서종의 한 건물, 한 브랜드가 즐거운 마을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참 기껍고 특별하다.

이런 사례들이 대한민국 곳곳에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마을은 이렇게 자연스러운 이야기를 재료로 만들어져야 제대로인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번 주말, 북한강변으로 나들이 나와보시지요! 매우 상업적이지만 매우 생명력 넘치는 마을이 우리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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