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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넓고 사람은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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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넓고 사람은 외롭다
  • 박소원 모네상스 전무이사
  • 승인 2022.07.15 1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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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있는 풍경

마을이 있는 풍경마을의 속살을 가만가만 들여다보고 소곤소곤 소통하는 코너입니다. 더 없이 가깝고 밀착돼 있지만 적지 않은 이들에겐 대체로 멀기만 한 마을의 이야기를 때론 지직거리고 둔탁한 확성기로 때론 고성능 마이크의 ASMR로 들려드립니다.<편집자 주>

 

여기선 교회를 빠지면 정말 아웃이야!”

당시의 나는 가톨릭 신자였고 주일 미사를 빠지는 건 병원에 입원하기 전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는 강박이 있던 시절이었다. 출장과 이민 모색을 위해 한 달 정도 미국에 머물기로 하고 미국 산호세(새너제이)에 살고 있던 친구네 집에서 첫 주를 시작했다.

미사를 빠질 수 없으니 미국에 오기 전부터 친구 집 근처의 한인 성당을 알아봐 두었고 주일 전날 저녁, 성당까지의 라이드를 부탁했다. 근처라고 해도 수십 킬로 거리가 있는 곳이라 차가 없이는 도저히 갈 수 없는 곳이었으니까. 물론 대중교통수단도 불가능한 곳이다. 우리나라처럼 대중교통수단이 잘 갖춰진 곳은 세계 어디를 가도 없다.

친구는 난색을 표했다. 친구가 예배드리는 교회와 너무 다른 방향에 있는 성당이라 나를 데려다줄 수 없다는 얘기였다. 친구 교회의 예배와 내가 가려는 성당의 미사는 거의 비슷한 시간에 드려진다. 나를 데려다 주고 교회로 가기엔 너무 거리가 멀다. 한국에서 동네 교회, 동네 성당을 왔다 갔다 하는 개념으로 생각하면 안 되는 거였다. 당연한 얘기지만 너무 넓은 땅이지 않은가, 미국이라는 나라가.

그로부터 한 해전, 친구는 한국을 방문했고 나 역시 그녀를 한 달 넘게 우리 집에서 머물게 했다. 나는 그녀의 교회를 데려다 준 (그래봤자 4회 정도?) 다음, 내가 미사 드리는 성당을 갔고 여러 곳을 라이드하며 모시고(?) 다녔던 터라 좀 섭섭했지만 어쩌겠는가! 내 신앙이 중요한 것만큼 그녀의 신앙도 중요하다. 그리고 그곳은 그녀의 땅 미국이지 않은가.

그냥 우리 교회에서 예배 드려.”

2~3시간 씩 운전해 매주 교회에 가는 이유는?

별 도리가 없었다. 어렸을 때 한두 번 가보긴 했지만 게다가 미국 교회이기도 해서 몹시 낯선 곳처럼 느껴지는 그녀의 교회에서 뜻하지 않게 예배를 드리게 됐다. 목사는 미국인, 그의 아내는 한국인, 그래서 교인들의 구성이 매우 독특한 3, 40명의 작은 교회다. ‘한국인과 결혼한 타국인부부, 게다가 아내가 한국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배자리도 남녀가 서로 나눠져서 가운데 통로를 두고 좌측에 여자들이, 우측에 남자들이 앉았다. 그러니 좌측에는 거의 모두가 한국여성이고 우측은 다양한 외국인(내 입장에서는)이 자리를 채웠다. 동양계로 보이는 남자는 거의 중국인이거나 일본인이었고 백인이나 흑인들도 출신국가가 다양해서 유럽인, 히스패닉 등이 섞여 있었다.

한국인 아내들은 예배 한 시간 전에 모여서 성경읽기를 한다. 그날은 전도서를 읽는 날이었다. 솔로몬의 전도서 3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돌아가면서 한절 씩 읽고 3장을 다 읽은 다음 서로 감동을 나누는 시간이 이어진다. 내가 읽은 구절은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십 수 년 전의 일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니! 그만큼 그날의 모임이 내게는 강렬했다. 그 이후 한국에 돌아와서 나는 개신교로 개종(?)하기에 이르렀으니까. 전도서를 읽고 서로 얘기를 나누는데 이민생활의 고달픔이 구구절절하다. 다 때가 있다고 말하는 솔로몬의 전도서는 모두에게 너무 위안이 되었다.

샌프란시스코 언덕, 미국인들도 최고의 입지로 꼽는 소살리토 대저택에 사는 가장 나이든 여인(거기서도 권사님으로 불리는)이 이 모임의 수장인 듯했는데 소살리토에서 이 교회까지 오려면 아마 2시간 넘게 차를 몰았을 것이다.

내 남편이 하는 말을 속 깊이 다 아는데 평생이 걸렸어요. 이곳에서 나고 말을 배우고 이곳 문화 속에서 계속 살아온 사람의 속마음을 성인이 되어서 이민 온 나는 평생 알 수 없었지. 이제 좀 알 것도 같다 싶을 때는 이미 늙고 병들어서 먼저 떠나버렸네요.”

그녀의 대저택에 관해 내 친구도 장황한 설명을 후에 덧붙였다. 굉장한 집인 듯했다. 자녀들도 타지로 다 떠나고 미국사람과 결혼했던 그 권사님은 미국에서도 가장 아름답다는 소살리토 언덕 대 저택에 혼자 남겨졌다.

오늘 전도서 말씀이 은혜가 돼요.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다. 당연한 말 같지만 그 에 순종하고 따라야 한다는 거죠. 내 남편의 속마음을 모르고 평생을 외로웠는데, 그래서 이 교회를 만났고 신앙이 자랐지요.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셨지만 제 삶이 이제서야 미국에 소프트랜딩 했달까? 그런 때에 이른 것 같아요.”

이제서야 랜딩? 그럼 소프트랜딩은 아니지!’ 그런 생각을 혼자 했지만 그분의 감동감화에 같이 젖어 들었다. ‘, 이 모임이 이래서 필요한 거구나!’ 감탄하며……

 

공간만남이 하는 설교

나도 그날 읽은 구절에 감동해서 울먹였던 기억이 있다. ‘찢어질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다는 구절을 내 차례에 읽었는데 , 이제 나의 찢어진 나날들이 치유되고 꿰매지는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그 것에 경도되어 어깨를 들썩이며 울먹였다. 나의 울먹임이 그들을 감동케 하고 그렇게 서로의 감동이 전이되어 마음이 정화되는 시간이었다. 그날만 그런 것은 아니리라. 그래서 예배 전 그 모임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성경 읽기 시간이 끝난 여자 교인들은 가볍고 맑게 정화된 마음으로 예배에 들어갔다.

예배는 영어로 진행되었다. 나는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좀 이상한 얘기지만 설교가 그렇게 중요한 것 같지는 않았다. 이미 이 공간이, 공간에서의 만남이 설교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배가 끝나고 서로 한사람 씩 모두 돌아가며 포옹하고 점심을 나눈다. 눈물겨운 메뉴들. 각 가정이 서로 나눠 준비해온 음식인 것 같은데 미국 땅에서 먹을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던 메뉴들이 즐비했다. 잡채, 감자볶음, 깻잎장아찌, 김치, 심지어 동치미까지! 물론 미국식의 샐러드, 샌드위치 빵 등이 같이 곁들여졌지만 대부분의 어른들은 한국 메뉴에만 손길을 보냈다.

예배와 식사가 끝나도 쉽게 귀가하지 않고 한국여인들만 삼삼오오 모여 앉아 한주의 일상을 나누었다. 남편들은 좀 소외되어 주변에서 맴돌 뿐이지만 아내들에게 허락된 귀한 시간인 걸 잘 아는 것 같았다.

외롭고 외로운 이방의 삶에 샘물 같은 휴식

대부분의 교인들이 1시간 이상 차를 몰고 예배당에 왔다. 물론 미국에서 매우 흔한 일이지만 이방인들과 함께 사는 한국인들이 유일하게 숨통을 틔며 같은 생각, 같은 어려움, 같은 취향을 나누는 이 공동체는 외롭고 외로운 이방의 삶에 샘물 같은 휴식을 주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외롭다. 그러나 거대한 땅에서 긴밀하게 교감하며 위로 받아야 할 부부조차 이방인인 그들의 외로움은 더 깊고 치명적이다. 그래서 이렇게 쫀쫀한 밀도감을 누릴 수 있는 교회라는 작은 마을이 필요한 것이다. 이렇게 뭉쳐서 살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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