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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의 원리와 불면의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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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의 원리와 불면의 원리
  • 이혜원 이지브레인송파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 승인 2022.06.15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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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원 원장의 뇌건강과 수면이야기]
‘잠이 보약’. 수면건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충분한 수면은 규칙적인 운동, 균형 잡힌 영양섭취와 함께 건강을 위한 3요소로 꼽히기도 한다. 특히 스트레스가 많은 현대인들은 불규칙한 수면습관과 불면증으로 스트레스가 가중되는 악순환을 빠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혜원 이지브레인송파 원장 겸 이지수면센터 대표가 매월 칼럼을 통해 뇌건강과 수면에 대한 유익한 정보를 흥미롭게 풀어서 전달한다.

"더 이상 잠들지 못할 것이다! 맥베스는 잠을 죽여 버렸다! 죄 없는 잠을, 헝클어진 근심 걱정을 말끔히 정돈해 주는 잠을, 매일의 삶을 마무리시키는 잠을, 힘겨운 노동의 피로를 씻어주고 상처 입은 마음을 진정시키는 명약을, 대자연이 주는 최고의 음식이자 인생의 향연에서 제일가는 자양분인 잠을!(셰익스피어 맥베스’ 22)덩컨왕 시해 후 맥베스가 이 말을 하기 전 술이 좀 된 상태였다는 것은 차치해 두고라도 정말로 대단한 에 대한 정의입니다. 수면의 의의를 이렇게도 풍부하고 공감가게 표현하다니, 모르긴 몰라도 셰익스피어 역시 일생에 한번은 불면으로 고생한 적이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우리가 평소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호흡을 의식하지 않듯이 잠으로 고생한 적이 없는 사람은 잠을 저렇게까지 귀하게 의식하지 않거든요. 수면은 적어도 4주 이상은 교란되어 봐야 그 소중함을 느끼게 되고, 건강한 잠을 소망하는 마음이 시처럼 샘솟을 겁니다.

 

신체 원인 없는 ‘1차성 불면증’, 수면-불면상태 정확한 인지부터

 

수면무호흡이나 우울증 등 수면을 방해하는 신체적 원인으로 인한 불면증을 2차성 불면증이라고 하고, 별다른 신체 원인이 없다고 확인된 불면증을 1차성 불면증이라고 합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이 문제의 1차성 불면증에 관한 것입니다.

잠만 잘 자도 살 것 같다제가 진료실에서 정말 많이 듣게 되는 말입니다. 불면증 환자분들은 잠들려고 할수록 눈이 말똥해지고 이 생각 저 생각, 오늘 있었던 일, 내일 일어날 일들, 쓸데없는 잡생각들이 머리를 가득 채웁니다. 야속한 시곗바늘은 벌써 밤을 지나 새벽으로 가고 있고, 옆에 같이 누워있는 사람이 있어도 외롭고, 없어도 외롭고, 오늘도 잠을 못 자 멍한 머리로 하루를 살아낼 일이 끔찍합니다. 밤새도록 고생고생 하다가 어찌어찌 2~3일에 한번 씩은 그럭저럭 자는 것 같고, 이런 패턴의 반복이라 늘 머리에서 잠 걱정이 떠나지 않습니다.

이럴 때는 수면이 무엇인지, 그리고 불면은 무엇인지 먼저 정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수면 오지각(誤知覺)’이라고 해서 실제로는 수면을 취하고 있는데도 본인은 전혀 자지 못한 것처럼 느끼기도 하니까요. 수면과 각성을 나누는 가장 객관적인 지표는 뇌파입니다.

수면의 단계는 각성, 1단계 얕은 수면, 2단계 수면, 3단계 깊은 수면, 그리고 렘수면으로 나뉘고, 각 단계마다 특징적 뇌파 소견을 보이는 것으로 정의됩니다. 보통 1단계 수면에서 2단계를 거쳐 3단계 깊은 수면으로 내려갔다가 렘수면으로 이행되기까지를 한 사이클로 보는데 한 사이클은 약 60분에서 90분 정도 걸립니다. 성인의 경우 이러한 수면 사이클을 하룻밤에 4~6회 반복하면서 보통 6~8시간 정도의 수면을 취하게 됩니다.

우리 뇌에는 신체의 항상성을 조절하는 뇌간이라는 부위가 있습니다. 이 뇌간에 있는 시신경상부교차핵, 시상하부, 그물 망상체 등의 부위에서 우리의 내부환경과 외부환경의 변화에 맞추어 아세틸콜린과 노르아드레날린, 세로토닌, 히스타민 등의 신경전달물질의 농도가 변화함으로써 수면과 각성을 조절합니다.

 

수면각성 조절에 영향 큰 외부요인...‘불안은 내적 불면요인

 

외부환경의 변화로 가장 대표적인 것은 빛입니다. 대개의 동물은 섭식행동의 패턴에 따라 환한 빛이 있고 주된 먹이활동을 하는 주간에 각성이 일어나고, 빛이 소거되는 야간에 수면이 일어나도록 진화했습니다. 자연적인 빛인 태양빛 외에 전기라고 하는 인공 빛이 발명되면서 인간의 수면주기에 심대한 영향을 주게 된 이야기는 지난 호에서 잠깐 했습니다. 빛 공해에 의한 수면교란 요인만 컨트롤 해주어도 수면의 질은 매우 올라갈 수가 있습니다.

한편 뇌의 내부환경으로 인한 불면요인 중 주요한 하나가 바로 불안으로 인한 뇌의 과각성입니다. 동물은 보통 수면 전에 혹은 수면 도중에라도 큰 소리나 포식자의 냄새 등 일정 수준의 감각자극이 입력되면 위험을 감지하고 각성 단계가 높아지면서 수면으로의 이행이 보류됩니다. 이처럼 동물의 뇌에서 위험을 감지하는 반응이 바로 불안입니다.

우리 인간도 물론 선사시대처럼 포식자와 정글에서 사는 환경은 아니지만 동물은 동물입니다. 도시생활에서도 나의 안녕과 지속에 해가 되는 상황을 예측해야 하기 때문에 인간에게도 불안 반응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눈치라고 하는 이름으로요.

내부환경으로서 무의식적 불안을 느끼면 수면은 억제되고 각성이 지속됩니다. 위험상황에 대비해야 하니까 교감신경도 흥분하게 됩니다. 이 상태가 며칠을 지나 몇 주까지 가게 되면 이제는 불면 자체가 불안을 조성하는 스트레스가 되어 버립니다. ‘오늘도 잠잘 생각만 하면 걱정이 되고 침대만 보면 잠이 깬다라고 하는 만성 불면증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한 숨도 못잔 것 같지만잠 못 자 죽은 사람은 없다

 

조금 어려운 단어가 나오기도 했지만 쉽게 말해 핵심은 잠 못 자 죽은 사람은 없다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수면은 우리 생존에 필수적인 호흡과 같은 존재로서 뇌간이 그 항상성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숨을 억지로 참으면 혈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올라다가다 어느 순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큰 숨을 몰아쉬게 되는 것처럼, 잠도 너무 부족하면 자기도 모르게 수면스위치가 작동되게 되어 있습니다.

1단계 수면으로 이행되는 순간 의식이 없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잠이 든 순간을 기억하지 못하고 잠을 깬 순간만 기억합니다. 수면의 각 단계가 이렇듯 뇌파의 특징으로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기 때문에, 주관적으로는 한숨도 못 잤다고 느껴지더라도 최소한의 수면을 취한 것은 사실이기에 우리는 오늘도 살아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불면증은 수면의 총량보다는 수면패턴과 수면의 질의 문제로, 나의 라이프스타일과 수면패턴에 괴리가 생긴 상태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수면을 방해하는 요인을 정확히 파악해 제거하고 좋은 수면습관을 계속 연습하면 1차성 불면증은 결국 좋아질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불면증의 치료 원칙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오늘도 좋은 밤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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