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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마을에서 마주한 나의 진실 ‘로스트 도터’,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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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마을에서 마주한 나의 진실 ‘로스트 도터’, ‘멘’
  • 윤성은 영화평론가
  • 승인 2022.08.29 11: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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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람들 그리고 영화_ Town in Movie

많은 영화의 배경이 마을이다. 영화 주인공들의 삶의 터전 역시 그들이 사는 마을이고 동네이기 때문이다. 스크린 속 인물들은 배경이 되는 마을, 그리고 이웃들과 때로 갈등하고 협력하며 여러 이야기들을 만들어나간다. 그 이야기의 결말은 해피엔딩이 되기도 하고 비극으로 치닫기도 한다. 앞으로 마을, 사람들 그리고 영화에서는 마을과 사람들의 케미스트리, 그들 사이의 교감과 성장, 변화를 다룬 작품들을 소개한다. 그 속에서 주민자치의 바람직한 방향, 때로 반면교사의 깨달음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자 주]

*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언제부턴가 비호감이라는 단어가 자주 사용되기 시작했다. 대단히 나쁜 사람도 아니고 특별히 잘못하는 것도 없는데 어쩐지불편하고 그냥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좋다싫다사이에서는 싫다에 가깝지만 논리적이고 명확한 이유를 대기 어려운 경우다. 그래서 이 표현은 대개 오래 봐왔던 사람보다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람에게 사용된다.

그런데 바로 그 애매하고 직관적인 특성 때문에 비호감은 쉽게 호감쪽으로 넘어오기도 하고, 그와 반대로 꽤 괜찮은 사람으로 보였던 이가 비호감으로 선회되기도 한다. 얼핏 껄끄럽게 느껴지던 그 사람과의 관계가 사소한 사건 하나로 급진전 되거나 호감이 혐오로 바뀌는 일들을 종종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내가 어떤 종류의 사람인가이다.

 

급진전되거나 바뀔 수 있는 호감비호감사이

여름 방학을 겨냥한 블록버스터들의 경쟁으로 극장가도 아스팔트만큼 뜨겁게 달아오른 요즘, 그 틈새를 비집고 당당히 개봉한 작은 규모의 영화들이 여러 편 있다. 그 중에서도 로스트 도터’(감독 매기 질렌할, 2021)’(감독 알렉스 가랜드, 2022)은 유수의 영화제 및 평단을 통해 예술성을 인정받은 작품들이다. 장르도, 표현 방식도 많이 다르지만 공히 낯선 커뮤니티로 들어간 한 여성이 겪게 되는 기묘한 경험을 다루고 있으며, 주제 상 여성주의 영화의 범주에 묶인다는 공통점도 있다.

엘레나 페란테의 잃어버린 사랑(The Lost Daughter)’을 원작으로 한 로스트 도터는 작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했을 만큼 탄탄한 시나리오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여기에 연기력은 물론이요 저마다 다른 아우라를 가진 여배우들이 대거 출연하고 있다는 점도 이 영화의 강점인데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올리비아 콜맨은 여우주연상 후보에, 제시 버클리는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중년의 교수 레다’(올리비아 콜맨)는 혼자 그리스의 휴양지 키오플리를 찾는다. 마치 서부 영화의 주인공이 길을 떠날 때처럼 도전적인 음악이 깔리면서 레다도 이 낯선 장소에 들어와 한 발짝씩 미지의 세계를 탐험한다. 그녀는 철저히 이방인의 시선으로 이 곳의 모든 사물과 인간을 바라본다. 친절한 관리인 라일’(에드 해리스), 잘 생기고 성실한 알바 청년 ’(폴 메스칼)은 키오플리에 대한 레다의 첫인상을 긍정적으로 만든 사람들이다.

반면, 바닷가에서 처음 눈에 들어온 젊은 엄마 니나’(다코타 존슨)와 어린 딸 엘레나는 어쩐지 레다를 상념에 젖게 만든다. 레다의 거실에 있던 예쁜 과일이 사실은 반쯤 썩어 있었던 것이나 새벽에 커다란 매미가 침실로 들어온 사건은 레다에게 곧 다가올 문제들, 즉 정서적 불안과 공포를 예고한다. 그것은 레다의 트라우마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낯선 휴양지 찾은 중년 여성의 눈에 비친 낯선 사람들

레다가 이 곳에 입성한 다음 날, 그녀는 배를 타고 요란스럽게 해변에 도착하는 한 무리의 일가와 맞닥뜨린다. 왕가가 군림하듯 휴양객들의 시선을 빼앗는 그들을 레다도 멀찍이서 관찰한다. 혼자 조용히 휴가를 즐기러 온 레다에게 그들은 어쩐지 비호감이다.

레다와 이들의 첫 교류는 마흔 두 살의 임산부 캘리와 충돌하며 시작된다. 캘리는 레다가 자리 좀 옮겨달라는 부탁을 거절하자 화를 내지만 얼마 안 되어 생일 케이크를 내밀며 사과를 한다. 레다는 선조들의 고향까지 캐묻는 캘리가 부담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 캘리의 솔직하고 거침없는 매력에 피하고 싶은 이야기까지 털어놓게 된다. “곧 알게 되시겠지만 자식들이란 끔찍한 부담이에요라는 레다의 말은 그녀의 과거와 영화의 주제를 집약하고 있는 중요한 대사다. 십수년전, 한창 공부 중이었던 레다는 육아가 버거워 남편과 어린 딸들을 버리고 집을 나온 경험이 있었다.

로스트 도터는 레다를 통해 여성들에게 당연시되는 모성애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몇 년 후 레다는 결국 아이들에게 돌아갔지만 육아의 고달픔을 견디지 못했던 시절의 죄책감과 그 땐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자기합리화가 그녀의 내면에서 늘 충돌을 일으킨다.

키오플리와 캘리, 니나, 엘레나 등은 레다에게 그녀의 어두운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캘리는 자식들에 대해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떠나는 레다를 미심쩍은 눈초리로 응시한다. 이 장면에서 레다는 처음으로 주체가 아닌 대상이 된다. 캘리에게 레다가 호감과 비호감, 그 어느 사이에 존재하는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레다에게는 모든 게 명확해져간다. 선조들이 300년 전부터 이 곳에 터를 잡았다는 캘리의 가족들, 30년째 펜션을 관리하고 있다는 라일 등 지역 토박이들은 레다에게 키오플리를 더욱 낯설게 만드는 인물들이다. 자신에게 위협적으로 구는 동네 남자들, 영화관 안에서 소란을 일으키는 십대들은 모두 레다의 휴가를 방해하는 요소들로 작용한다.

엘레나가 갑자기 사라져 온 마을이 뒤집어졌을 때 레다가 엘레나를 찾아주면서 잠시 이 커뮤니티 안의 영웅이 되는 듯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다. 엘레나는 찾았지만 갖고 놀던 인형은 보이지 않아 엘레나는 밤낮 없이 보채게 되고, 마을 사람들은 인형을 찾는데 혈안이 된다. 놀랍게도 엘레나의 인형을 훔친 범인은 레다다.

레다는 마을을 떠나기로 마음먹고, 니나에게 엘레나의 인형을 내놓는다.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장난으로 그런 거예요. 나는 비뚤어진 엄마거든요라는 레다의 말에 니나는 아연실색해서 당신은 미쳤다며 나가 버린다. 여기서 반전이 일어난다. 레다가 주민들에 대해 느끼는 불편함만큼이나 키오플리 사람들에게 레다 또한 충분히 비호감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전형적인 인텔리 부르주아 여성으로 자리 비켜주는 작은 일 하나에도 깐깐하게 굴고, 동네 주민을 이유 없이 위협적으로 느끼기도 하며, 십대들의 장난도 여유롭게 넘기지 못하는 융통성 없는 사람이다. 그들은 빛이 오목렌즈를 관통하듯 평행하게 나아가다가 더 멀어져 버리고 만다. 한 여행객과 주민들의 관계를 이렇게 만든 것이 캘리나 니나 모녀 혹은 마을 분위기 그 자체는 아닐 것이다. 문제는 아직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레다의 과거에 있다.

 

남성중심적 세계관에 사로잡힌 커뮤니티에 균열 낸 낯선 여성

(Men)’에서는 방금 남편의 상을 치른 여성 하퍼’(제시 버클리)가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도시 근교의 작은 시골 마을을 방문하면서 시작된다. 정원과 숲으로 둘러싸인 커다란 저택은 하퍼의 마음에 쏙 들만큼 아름답다. 그러나 하퍼는 산책을 하다가 숲에서 길을 잃기도 하고, 아무 것도 입지 않은 남자가 자신을 스토킹 하는 것을 보면서 불안감에 빠져든다. 또한, 어린 소년이 이유 없이 욕을 하는 것도 불쾌한데, 성당 신부는 하퍼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척 하면서 여성에 대한 편협한 가치관을 드러낸다.

하퍼의 남편은 죽기 직전, 하퍼가 이혼을 요구하자 무척 흥분해 하퍼에게 폭력을 가한다. 분노한 하퍼가 그를 집에서 쫓아내자 남편은 윗집으로 올라가 발코니 쪽으로 내려오려다가 떨어져 죽고 만다. 자살을 예고한 적도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자살이었는지 사고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하퍼는 큰 충격을 받았고 기본적으로 슬픔과 후회, 안타까움 등의 감정은 갖고 있지만, 남편의 죽음이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퍼를 살인마로 몰아세우는 것은 이 마을의 남자들이다. 주인공은 여성이지만 영화의 제목처럼 이 영화는 남성들에 관한 영화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하퍼가 만나게 되는 저택 관리인, 소년, 신부, 경찰, 바텐더, 농부 등은 끊임없이 하퍼를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비하하고 폭력적으로 대한다. 이 커뮤니티를 사로잡고 있는 남성중심적인 세계관은 단 한 명의 여성 하퍼에 의해 균열이 가고 결국 파국을 맞이한다.

영화는 음산한 분위기로 공포심을 자극하다가 후반부로 가면 극도로 그로테스크해진다. 절정부에서 하퍼가 만난 여러 남성들이 한 몸에서 아이를 낳듯 계속 분화되어 태어나는 신은 기괴하고 파격적이다. 알렉스 가랜드 감독은 남성 중심의 역사 속에서 철저히 배제된 여성의 존재를 이렇게 잊지 못할 이미지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은 남성과 여성을 갈라놓는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 사회를 작동시키는 세계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작품으로 이해해볼 수 있다. 하퍼와 남자가 나란히 앉아 있는 마지막 장면은 여성과 남성이 분리되어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준다.

낯선 마을에서 레다는 자신의 문제를 발견하고, 하퍼는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번 여름, 휴식과 치유를 위해 떠난 여행지에서 독자들은 무엇을 느꼈는지 궁금하다.

 

사진=영화특별시SMC/판씨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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