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5-17 15:29 (금)
그 사람에 대해, 지금 알고 있는 걸 그 때도 알았더라면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러빙 빈센트’
상태바
그 사람에 대해, 지금 알고 있는 걸 그 때도 알았더라면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러빙 빈센트’
  • 윤성은 영화평론가
  • 승인 2022.09.15 09: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을, 사람들 그리고 영화 Town in Movie

많은 영화의 배경이 마을이다. 영화 주인공들의 삶의 터전 역시 그들이 사는 마을이고 동네이기 때문이다. 스크린 속 인물들은 배경이 되는 마을, 그리고 이웃들과 때로 갈등하고 협력하며 여러 이야기들을 만들어나간다. 그 이야기의 결말은 해피엔딩이 되기도 하고 비극으로 치닫기도 한다. 앞으로 마을, 사람들 그리고 영화에서는 마을과 사람들의 케미스트리, 그들 사이의 교감과 성장, 변화를 다룬 작품들을 소개한다. 그 속에서 주민자치의 바람직한 방향, 때로 반면교사의 깨달음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자 주]

 

*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가 생전에 빛을 보지 못한 19세기의 대표적인 예술가였다면, 20세기에 그 수식어는 비비안 마이어에게 돌아가야 할 것이다. 비비안 마이어는 평생 카메라를 목에 걸고 다니면서 30만 장에 이르는 사진을 찍었지만 살아있을 때는 누구에게도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지 않았던 사진작가다.

말년에 거의 노숙자와 다름없는 생활을 했던 그녀는 생을 마감하기 2년 전에야 그녀의 필름들을 경매에 내놓았고 시카고의 한 경매 시장에서 몇몇 낙찰자들에게 무심히 팔려나갔다. 그 중 부동산 중개업자이자 거리 사진가였던 존 말루프는 그 사진들의 가치를 알아보고 비비안 마이어를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Finding Vivian Maier, 존 말루프. 2015)라는 다큐멘터리에는 그 지난한 과정과 함께 비비안 마이어의 작품 및 생애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들이 겹겹이 담겨 있다.

 

죽음 직전까지 꽁꽁 숨겨진 30만장의 사진 그리고 작가의 놀라운 이야기

존 말루프는 비비안이 왜 그토록 사진을 찍는데 집착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 사진들을 세상에 내놓지 않았는지에 집중하면서 비밀스러운 그녀의 캐릭터를 파헤쳐 나간다. 1926년생인 비비안 마이어는 뉴욕 브롱크스에서 프랑스인 어머니와 오스트리아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4살 때부터 어머니와 함께 프랑스에서 살게 되었으며, 1951년에야 다시 뉴욕으로 돌아온다. 뉴욕 출신임에도 프랑스식 액센트가 섞여 있었던 그녀의 영어발음에는 이러한 사연이 있다.

타고난 사진가였던 그녀의 실제 직업은 놀랍게도 유모, 간병인, 가사도우미 등이었다. 비비안은 상류층의 집안에 입주해 살면서 아이들이나 환자들을 돌보며 생계를 꾸렸고, 일하는 틈틈이 사진을 찍었다.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에는 비비안을 기억하는 이들, 즉 그녀를 고용했거나 어렸을 때 그녀의 돌봄을 받았던 사람들의 인터뷰가 다수 실려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녀에 대한 증언에 다양한 감정과 시선이 섞여 있다는 것이다.

영화 초반에 인터뷰이들은 그녀가 옷차림이나 걸음걸이부터 독특하기는 했지만 아이들을 사랑했고 아이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고 말한다. 비비안이 정이 많고 좋은 사람이었으며 자신 또한 그녀의 친구였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후반부에서는 점차 비비안의 폭력적 성향에 대한 증언이 이어지고 그녀가 남성혐오증, 신경과민, 분노조절장애와 같은 정신적 문제를 겪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인터뷰에 따르면, 그녀는 누군가 자신의 방에 들어오거나 자신의 물건에 손을 대면 이성을 잃을 정도로 화를 냈고, 때로 아이들을 폭력적으로 대하기도 했다. 어떤 이는 그녀가 자기에게 남긴 식사를 억지로 먹이려고 목을 조른 적이 있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그녀에게 정신질환이 있었다고 단언한다. 오래된 기억들이므로 전부 정확한 것은 아닐지 몰라도 비비안의 천재적 감수성 이면에 어두운 부분이 있었음은 짐작해 볼 수 있다. 온기와 유머를 머금은 그녀의 작품들만으로는 예측하기 어려운 측면이다.

 

그 수많은 명작들은 왜 당대에 공개되지 못했을까

비비안의 실제 삶과 작품 경향을 연결 짓는 것이 비평가들의 몫이라면, 존 말루프가 던졌던 화두와 연결해 볼 때 일반 관객들은 더더욱 왜 그녀의 작품이 진작 대중들에게 공개되지 않았는가에 대해서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비비안 마이어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고, 그들은 모두 그녀가 집착적으로 사진을 찍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본인이 작품을 숨겨왔다 하더라도 몇 년씩 한 집에서 생활하면서 그녀의 사진이나 예술관에 대해 한 번도 이야기 나눈 적이 없다면 비비안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사실상 그들은 갑의 위치에서 비비안 마이어에 대해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 이외에 정작 그녀의 진심이나 작품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것이 아닐까.

영화 안에서 비비안의 기이한 행동이 드러날수록 그녀가 사회적 하층계급으로서 고용주와 이웃들로부터 이미 감정적으로 소외당해 있었고, 그녀의 예술적 활동 또한 무시당하고 있었다는 의혹 또한 떨쳐버릴 수 없다. 그녀는 자신의 작품이 가사도우미들이 하는 일만큼이나 평가절하 될 것이 두려워서 선뜻 세상에 내놓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녀의 이웃들은 천재를 알아보지 못할 만큼 오만하고 무지했을 것이다.

비비안 마이어가 남긴 작품들에 예술적 가치가 전혀 없었다 해도 그들의 모든 혐의가 벗겨지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비비안의 정신적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도와주려 노력했어야 하지 않을까. 그녀의 이상한 행동을 보고 뒤에서 낄낄대거나 해고하는 대신 말이다. 영화의 후반부에는 비비안이 무척 외로워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자신의 사진을 세상에 내놓으려 했다는 사실도 드러난다. 그녀에 대한 이야기 중 가장 가슴 아픈 대목이다.

 

비운의 예술가 고흐를 향한 위대한 오마주

여기서 역사상 가장 유명한 화가 중 한 명인 빈센트 반 고흐의 말년을 반추해 보자. 스스로 귀를 자르고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가 결국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 그 또한 800여 점의 그림을 그렸지만 살아있는 동안 단 한 점 밖에는 팔지 못했던 비운의 예술가다. 고흐에 관한 영화는 많이 만들어졌지만, 10년의 제작기간을 거쳐 비로소 빛을 본 애니메이션, ‘러빙 빈센트’(Loving Vincent, 도로타 코비엘라휴 웰치맨. 2017)는 그 자체로 고흐를 향한 위대한 오마주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100여 명의 화가들이 고흐의 화법을 따라 한 장, 한 장 수작업해 만들어낸 세계 최초의 유화 애니메이션으로, 스크린 위에 살아 움직이는 고흐의 그림을 보는 것 같은 감동을 선사한다. 내용적으로도 일반적인 전기 영화의 형식을 따르지 않았다는 점이 신선하다.

고흐의 사망 1년 후,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를 갖고 있던 우체부의 아들, 아르망은 테오에게 그 편지를 전해줄 결심을 한다. 그러나 그는 파리의 화구상에게 테오 또한 6개월 전에 죽었고, 고흐와 가깝게 지냈던 가셰 박사가 테오의 미망인과 연락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는 고흐가 말년을 보냈던 오베르쉬르우아즈로 가서 가셰 박사를 찾아 편지를 전하려 한다. 그런데 그가 조우한 이 마을 사람들은 고흐의 죽음에 대해 각기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것은 곧 고흐 생전에 그를 바라보던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이기도 하다. 아르망은 고흐의 죽음이 타살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며 더 많은 이들을 만나 그 날의 미스터리를 풀어보려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고흐는 미치광이, 정신병자로 기억된다. 그는 부유하고 철없는 청년들의 노리개 같은 존재였고, 어린아이들조차 그를 괴롭히기 일쑤였다. 매일 아침 8시부터 저녁 5시까지 그림을 그리는 데도 그의 그림이 얼마나 놀라운지 알아보는 사람은 가셰 박사 부녀 밖에 없었으며 다른 사람들은 이 이방인의 작업에 철저히 무관심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수백 장의 편지에서 알 수 있듯이 고흐는 주변과 소통하고 싶어 했고 자신의 작품들이 인정받기를 원했다. 영화가 인용한 고흐의 편지에는 그의 이러한 심정이 절절히 드러난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눈에 나는 무엇일까? 아무도 아니다. 별 볼일 없고 유쾌하지 않은 사람, 전에도 그렇고 앞으로도 절대 사회적인 지위를 가질 수 없는, 짧게 말해 바닥 중의 바닥. 이 모든 얘기가 틀림없는 진실이라도 언젠가는 내 작품을 선보이고 싶다. 이 보잘 것 없고 별 볼일 없는 내가 마음에 품은 것들을.”

 

비록 그 때는 몰랐지만 지금 알게 된 것을 계속 기억하는 수밖에

20세기 미국에 살았던 비비안 마이어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에서 유명 사진작가인 조엘 메이어로윗츠는 비비안 마이어의 작품에 진실된 시선과 인간 본성 및 사진과 거리에 대한 이해가 있다고 극찬한다. 또 다른 사진작가, 메리 엘런 마크 역시 비비안이 좋은 눈을 가졌고, 프레이밍에 대해 이해하고 있으며 비극을 볼 줄 안다고 평가한다.

뭔가 잘못됐겠죠. 이유가 있을 거예요. 이렇게 근사한데.” 잘못된 것은 그녀의 정신적 문제와 외로움을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돌보지 않았던 주변 사람들과 한 평생 일을 했던 그녀가 생활고 때문에 그토록 아끼던 필름들을 헐값에 경매 처분하도록 만들었던 지역 사회일 것이다. 내 주변에는, 우리 마을에는 도움이 필요한 예술가들이 없었을까. 그 사람에 대해 지금 알고 있는 걸 그 때도 알았더라면, 후회는 소용없다. 지금 알게 된 것을 나중에도 기억하기를 바라는 수밖에.

 

사진=오드/판씨네마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하지 않던 일 하고, 가지 않던 길 가는 것이 주민자치”
  • 주민자치위원, 마을과 주민 위한 소통의 리더십 발휘해야
  • ‘정책’문해 그중에서도 ‘주민자치’문해력 높이려면?[연구세미나98]
  • 주민자치위원, 주민에게 존중받는 품위와 역량 가져야
  • "주민자치, 주민이 이웃되어 가까이 자세히 오래 보는 것"
  • “주민참여예산제, 관주도, 취약한 대표성과 전문성, 형식적 운영 심각”[연구세미나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