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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자치와 사회자본 : 기대와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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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자치와 사회자본 : 기대와 함정
  • 전영평 대구대학교 명예교수
  • 승인 2024.05.10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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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평 교수의 자치이야기

사회자본론자들은 사회자본의 형성 수준이 지역의 경제, 정치, 사회 발전 수준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주요 변수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들은 사회자본의 모태는 지역에 산재하고 있는 다양한 주민 활동 조직이라고도 한다. 사회자본은 주민의 자발적 조직 활동(: 각종 이슈를 중심으로 한 주민모임 활동, 스포츠동호회 등)을 통해서 생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논리를 따라 가면 주민자치회는 사회자본의 생성에 이바지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기초단위 조직이 된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항은 주민자치 조직 존재 여부만으로는 바람직한 사회자본이 육성될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회자본론은 그 이론적 위상 자체로서도 가설적 지위를 갖는 주장일 뿐 아니라 그것이 실제로 사회 발전에 어떻게 이바지하게 되는가에 대한 자세하고 논리적인 과정을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다.

우리는 주민자치 옹호 집단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기에 주민자치와 사회자본을 긍정적으로 연결해 보려고 시도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선진화를 위해 풀뿌리주민조직의 존재 당위성과 주민조직 활동을 통한 사회자본 창출이 가능하다는 점을 거듭 역설하는 처지에 서게 된다. 여기서 잠시, 주민자치와 사회자본 그리고 사회자본과 선진사회 구축과의 관계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전에, 사회자본의 의미와 함의를 잠시 살펴보는 것이 맞을 듯하다.

 

"신뢰-질서-참여-네트워크사회자본의 차이가 지역 간 발전의 수준 차 만든다"

사회자본(social capital)의 핵심은 인간 공동체의 협동 수준을 의미한다.. 사회자본의 분석 단위(unit of analysis)사회 하위 공동체’(개인단위의 자본이나 사회간접자본이나 국가단위의 자본이 아닌) 수준이다. 사회자본은 신뢰, 질서, 참여, 네트워크를 구성요소로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1990년대 퍼트남이 사회자본(social capital)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한 이후 일부 서구 사회학자들은 본질적으로 기능주의적(functionalism) 관점에서 그것이 사회, 경제, 문화, 정치 발전을 위해 설명할 수 있는 핵심개념으로 강조하였다.

사회자본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 퍼트남의 저서 _나홀로 볼링(Bowling Alone)_ 표지
사회자본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 퍼트남의 저서 _나홀로 볼링(Bowling Alone)_ 표지

 

퍼트남(Putnam)이 사회자본 개념을 제시한 이유는 매우 우연한 것이었다. 그는 애당초 헌법적 제도의 변화가 지방정부의 발전에 얼마나 이바지하는가?’는 가설을 들고 이탈리아를, 지방분권사례를 연구하였다. 당시 이탈리아는 전면적인 지방분권 자치제도를 헌법상에 도입하였기에 학자들은 이러한 획기적 법제도 변경이 과연 지방정부(사회)에 얼마나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가에 대한 관심을 가질 만하였다. 그러나 퍼트넘과 하버드 연구진은 헌법상 분권 제도의 도입 및 전면 실시는 지방 발전 수준을 설명할 수 있는 변수가 되지 못한다는 실망스러운 결과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에 대한 궁금증은 또 다른 변수 추적을 자극하였으며 이들은 지방의 차이(경제, 사회 전반의 차이)는 제도적 분권의 도입 여부가 아니라 그 지방의 사회적 여건 및 관행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하였고 이런 차이 발생을 지역의 사회적 자본의 차이로 개념화하여 소개하였다. 즉 지역의 사회적 자본의 차이가 지역 간 발전의 수준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 이들 주장의 핵심이 되었으며 이후 수많은 사회학자는 사회자본을 주제로 하는 수많은 조사연구를 수행하게 되었다.

이는 헌법상 분권제도 확립을 지역 발전의 만병통치약으로 여기는 한국의 지방분권 주창자들이 깊이 새겨들어야 할 교훈이 됨과 동시에 기초 자본이 부실한 지역의 주민과 위정자들이 무엇-제도변화인가 관습변화인가-을 먼저 선행시켜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하는 교훈이 된다.

 

사회자본 생성 및 확산과 주민자치

주민자치가 왜 필요한가를 역설할 때 이를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논거 중 하나는 주민자치가 사회자본을 육성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를 전 사회적으로 파급 확산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가설적 기대 때문이다. 주민자치가 사회자본을 생성할 수 있는 주형(mold, cast)이 된다는 주장은 틀린 말이 아니다. 선진형 사회치고 사회자본 수준이 낮은 곳은 없다는 현실을 볼 때 주민자치의 순기능과 역할은 확실히 주목받아야 할 중요한 요인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사회자본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형성되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당연히 사회자본은 주민자치를 통해서 생성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자본은 반드시 주민자치 관행을 통해서만 형성될 수 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개인의 성숙한 인격, 교양, 도덕심, 협동에의 의지, 자발성, 근면, 솔선수범, 헌신과 이타적 성격, 성취욕구 등도 사회자본의 모태가 될 수 있는 귀중한 인격 자산(개인적 미덕)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사회적 차원에서 볼 때 주도적 사회이념(예컨대 자유민주주의, 유교, 불교, 기독교 등)과 그에 따른 생활 방식, 집단적 신앙 활동, 민관 협동형 사회개혁 운동(: 새마을 운동, 기초질서 지키기 운동, 재활용 운동), 경제적 상호의존 관습(예컨대 두레, 촌계), 민간주도 사회개발 운동(: 환경보존 운동, 가나안 농군 운동), 학교에서의 민주시민교육, 언론주도의 사회 밸류업(value-up) 캠페인(: 기부문화조성, 선진사회 캠페인), 비정부기구, 비영리기구의 각종 분야에 걸친 이슈별 시민 협동 캠페인과 행동, 민간기업의 사회기여 활동(예컨대 ESG 경영:환경, 사회적 책임, 거버넌스) 등 수많은 사회구성체가 사회적 자본 형성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여기서 필자는 사회자본과 주민자치와 관련성을 더욱 논리적으로 검토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방법론적 질문들을 해보고자 한다. 사회자본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주민자치는 사회자본의 거푸집이 될 수 있는가? 만약에 주형이 될 수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 사회자본을 만들 수 있을까?’, ‘혹시 개인자본(개인의 미덕/ 역량 등)뿐 아니라 마을자본, 지역자본, 국가자본도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사회자본론으로 지역 발전의 차이를 설명하는 것은 한계에 봉착할 것이며 주민자치-사회자본-지역 발전-국가 발전으로 이어지는 논리구조는 매우 위약한 가설이 될 것이다‘.

 

사회자본 만능론의 함정?

사회자본론자들이 지적하듯이 최근 수십 년간 사회자본이 급격히 감소하였다면 사회자본이 줄어드는 상황임에도 상호 존중과 협력, 질서의 존중, 신용 사회적 특성, 참여의 성장, 연대와 네트워크의 성장이 가능한 사회가 어떻게 지구적으로 확대될 수 있었는가?’를 설명하기 어렵게 된다. 필자는 이러한 현상을 사회자본론이 가지도 있는 약점이자 사회자본 만능론의 함정이라고 파악한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사회자본론은 지역 발전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많은 독립 변수 중의 하나일 뿐이지 지역 사회 변화와 격차를 구분할 수 있는 결정적인 변수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를 집중적으로 검토하기 위해 필자는 사회자본 이외의 변수를 제시하고자 한다. 개인자본, 근린자본, 지역자본, 국가자본, 지구적 자본의 분류가 바로 그것인데 이를 이해하기 쉽게 도표로 표시하면 다음(아래 표 참조)과 같다.

이 도표의 구성을 설명하자면 인간사회의 자본은 크게 개인자본과 사회적 공유자본으로 나뉜다. 개인자본(personal capital)은 그야말로 개인에 속하는 고유한 육체적 정신적 자본이며, 공유자본(common capital)2차 집단사회에서 공유하게 되는 자본을 의미한다. 이 두 가지 자본(개인 자본과 공유자본)의 성격은 크게 두 가지, 즉 가시적 자본(하드파워 자본)과 비가시적 자본(소프트파워 자본)으로 분류할 수 있다.

특히 공유자본은 마을단위 근린자본(neighborhood capital), 더욱 넓은 범위의 지역자본(regional capital), 국가단위 자본(national capital), 더 나아가 지구적 자본(global capital)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런 식의 유형화를 통해 필자는 개인 수준에서의 가시적 자본과 비가시적 자본, 공유단위 수준의 가시적 자본과 비가시적 자본이라는 4가지 자본 유형을 도출하였다.

 

 

필자가 굳이 이런 식으로 개인/공유자본을 분류한 이유는 사회자본론자들이 강조하는 사회자본(social capital)의 위상이 어느 위치에 해당하는 자본이며 그것의 위력이 과연 어느 정도 인가를 추정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이런 식의 자본분류는 (근린 사회자본 이외에도) 무수히 많은 가시적/비가시적 자본이 상호 작용하면서 인간사회의 삶의 질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 때문이다. 이는 주민자치운동이 과연 어떤 자본과 연결되어야 더욱 효과적인 목표(예컨대 주민자치의 전방위적 확장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관점에서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주는 것이다.

주민자치를 통해서 사회자본을 생산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으나 주민자치가 단지 사회자본을 창출하기 위한 목표만을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주민자치운동의 주체적 효과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사회자본 이외의 다양한 형태의 (개인자본 및 공유자본/가시적 자본, 비가시적자본)과의 역동성 있는 상호작용이 중요하다는 점을 이 표의 자본분류 체계는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사회자본과 주민자치 적확한 상호관계는?

이 표를 통해서 보면 사회자본은 근린단위/마을단위/지역단위 정도에 속하는 비가시적 자본에 해당되는 정도의 위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위력에서도 사회자본은 여타 비가시적/소프트파워 자본 목록에 비해 그 위력이 막대하다고 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예컨대 근린사회자본(신뢰, 질서, 참여, 규범 준수)이 근린사회 지도자나 리더의 특성보다 더 크다고 단정할 수 없게 된다. 어느 단위 사회나 (조직의 경우에도) 리더/리더십은 인간사회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최상위단계의 공유자본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논의를 사회자본과 주민자치: 기대와 함정이라는 제목에 집중해 다양한 명제 혹은 가설을 검토하고자 한다. 첫째 주민자치와 사회자본과의 관계는 주민자치는 사회자본을 생성할 수 있는 주형이 될 수 있다.’, ‘사회자본은 주민자치를 조성할 수 있는 변수다라는 두 가지 가설 도출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 가설보다는 주민자치와 사회자본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변수이다라는 가설이 더 설득력이 있다.

통계학적으로 말하며 양자 사이의 관계는 상호관계 분석(mutual correction analysis) 대상이 된다. 이론적으로나 경험상으로 상당히 타당한 가설이 된다. 이것이 바로 주민자치와 사회자본 관계에 대한 우리의 기대이다. 그러나 주민자치가 안 되면 사회자본이 생성될 기반이 없을 것이라고 가정하거나 사회자본이 약한 곳에서는 주민자치가 안 될 것이라고 단언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바로 주민자치 사회자본 논의에서 반드시 알아야 할 주민자치와 사회자본간 논의의 함정이다. 주민자치가 안 되는 사회에서도 질서, 참여, 신용, 준법, 정직, 배려, 공정등과 같은 사회적 가치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대부분의 선진국-일부 후진 사회에서조차-에서 열성적 주민자치 관행이 없음에도 사회적 미덕이라고 불릴 수 있는 가치를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사회적 미덕은 반드시 주민자치를 경유한 산물은 아닐 것이다. 능동적인 개인자본, 가정교육, 학교교육, 시민교육은 사회자본과 유사한 사회적 미덕을 얼마든지 생산할 수 있는 역할을 한다.

필자가 표에 제시한 다양한 유형의 자본(개인자본, 공유자본, 가시적 자본, 비가시적 자본)의 목록은 내용을 달리하는 수많은 유무형의 자본이 서로 상호 영향을 미치면서 진화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아이템들이다. 우리는 주민자치운동을 전개하면서 주민자치 만능 사상이나 주민자치 철학의 도그마에 도취하는 실수를 가끔 범할 수 있으므로 항상 주민자치의 한계와 더 넓은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자원의 상호작용 효과를 겸손하게 인정해야 한다. 기대 속에는 항상 함정이 놓여 있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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