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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금악마을 향약 개정을 통해 보는 주민자치와 성평등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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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금악마을 향약 개정을 통해 보는 주민자치와 성평등의 가치
  • 김상애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 연구원(제주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 승인 2024.04.02 10: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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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마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관심에는 현대 사회에선 찾아볼 수 없는 전통적 공동체이자 자치 단위로서 마을이 사라진다는 위기의식이 자리한다. 그런가 하면 마을에서 영위하는 삶의 공동체적 의미와 가치가 신자유주의 개인화 시대에서 국가와 시장의 대안으로 다시 부상하고 있기도 하다. 위기의식에 기반 하든 대안으로 여겨지든 어쨌거나 마을은 지역의 생태와 공동체적 문화를 담지한 중요한 정치적 공간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마을과 향약, 전통의 계승과 도전

제주도에서는 지난 몇 십 년간 거대 자본의 유치를 명분으로 땅을 변형하는 개발 사업들이 급속도로 전개되어 왔는데 이는 역설적으로 지역 주민들의 실존적이고 물질적인 토대를 기반으로 하는 생활공동체로서 마을을 재조명했다. 제주도 마을은 한편으로 개발로 인해 사라질 위기에 처한 공간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공동자원의 보존과 활용을 중심으로 공동체적 삶의 원형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마을 그 자체를 개발의 대안으로 볼 수 있을까? 마을 내에서 주로 누가, 어떻게 마을의 주민으로서의 자격으로 권한을 행사하는지를 질문한다면 마을 역시 권력의 위계질서가 작동하는 공간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즉 마을은 언제나 협력적이며 민주적인 공간이 아니라 바로 그렇게 구성되어야 하는 투쟁의 장일 수도 있다.

제주도에서 5년 여간 진행된 성평등 마을 규약 만들기 사업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시작되었다. 향약은 마을공동체 운영에 필요한 실질적 절차를 담고 있는 자치 규약으로, 풀뿌리민주주의와 주민자치의 역사적 기원으로 여겨지곤 한다. 이 글에서는 제주도 성평등 마을 규약 만들기 사업이 추진된 마을 중 하나인 금악마을의 향약 개정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향약이 지닌 주민자치와 공동체적 가치를 계승하되 이를 성평등 관점으로 재구성하는 것이 민주적 마을 자치에 어떤 시사점을 던져 주는지 이해해보려 한다.

금오름 자락에서 본 금악마을의 모습(필자 제공)
금오름 자락에서 본 금악마을의 모습(필자 제공)

 

금악마을은

제주시 북서부 중산간 지역에 위치한 금악마을은 대부분의 마을 주민이 관광 산업보다는 농축산업에 종사하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금악마을은 제주도 다른 마을들에 비해 개발 광풍 및 귀농·귀촌 이주 열풍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지는 않아 인구 구성 및 공동체 조직 변동의 폭이 크지 않은 편이다. 따라서 마을 공동체의 범주가 비교적 명확하며, 기존 공동체 구성원을 중심으로 마을이 운영되고 있다.

제주도 중산간 지역에는 제주4·3 당시 불에 타 추후 재건된 마을이 많은데 금악마을 역시 3 이후 재건된 마을이다. 그 전에는 넓은 면적에 걸쳐 곳곳에 자연부락이 존재했으나 소개령으로 마을 사람들 모두가 본래 살던 거주지를 잃었고 추후 마을 중앙에 있는 연못을 중심으로 마을이 재건되면서 현재와 같은 마을이 되었다. 법정리인 금악리는 한림읍에서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지만 현재 금악마을 공동체 구성원들은 연못을 중심으로 1km 반경 내에 주로 거주한다.

 

두 차례의 향약 개정

현재 시행되고 있는 금악마을의 향약은 7차 개정안이다. 최근 두 차례의 향약 개정은 무엇이 마을 공동체의 현안과 쟁점으로 여겨지는지를 잘 보여준다.

2013년 향약 개정을 통해 이장 투표권을 제한하는 항목이 생겨났다. 그 전까지는 금악리 거주라는 조건만이 마을의 성원권을 규정하는 항목이었지만 2013년 향약이 개정되면서 마을의 포제를 위해 수금하는 포제비를 납부하지 않는 가구에 속한 사람은 향원이 될 수 없다는 조건이 추가되었다. 단지 거주한다는 사실만으로는 마을 공동체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대신에 포제비 납부라는 조건을 통해 금악마을에서는 마을의 풍농을 기원하는 공동체적 의례에 기여하고 참여한다는 공동체성을 바탕으로 성원권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이로부터 10년 뒤인 2023, 성평등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진 부녀회원들의 노력에 힘입어 금악마을은 향약을 전면 개정하게 된다. 개정안은 주로 성평등에 관한 내용을 담으면서도 1970년대 새마을운동 시기 만들어진 내용을 현실에 맞게 전면 수정하고 자치단위로서 마을의 성격을 명시함으로써 그 구성원을 보다 합리적으로 규정한다. 아래 표는 개정 전(2013)과 개정 후(2023) 향약의 내용을 비교 및 대조한 것이다.

개정안에서는 미풍양속검소한 생활’, ‘건전 가정의례등 마을주민의 사생활을 규율하는 조항을 삭제하고 향약의 목적으로 평등과 공동체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향원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함에 있어서 남성과 여성의 동등한 발언권 및 의사결정권, 차별과 인권 문제에 대한 인식을 담은 것이 특징적이다. 마지막으로 2023년의 개정안에서는 임원 및 직원의 구성에 남녀동수제를 도입하여 남성과 여성의 평등한 참여의 조건을 제도적으로 마련했다. 2024년 총회를 거쳐 금악마을에서는 남녀동수의 운영위원회, 그리고 남녀 각 1인으로 구성된 감사와 재무 담당자가 임명되면서 성평등한 향약을 토대로 하는 마을 운영 체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마을 중앙에 있는 금오릉과 벵듸못(병두못). 필자 제공
마을 중앙에 있는 금오릉과 벵듸못(병두못). 필자 제공

 

성평등이라는 도전과 과제

땅을 그저 이익 창출의 물리적 수단으로 간주하는 개발과 효율 중심의 사고방식의 반대편에서 주민들의 일상과 생활, 문화와 정체성이 근거하는 토대로서 마을, 그리고 마을공동체를 유지하는 일은 분명 가치가 있다. 하지만 마을과 공동체를 어떻게유지하고 지켜나갈지에 대한 고민 역시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이는 주민이 스스로 마을이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고 운영하는 주민자치를 실질화하기 위해 필요한 고민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개발에 맞서 주민자치의 민주적 가능성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마을과 공동체를 그저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에 앞서 주민자치에 왜 모든주민이 참여할 수 없는지, 그렇다면 누가 주민으로서 자격과 권한을 가지고 있는지를 반드시 질문해야 한다.

더군다나 실제로 마을의 고령화 및 인구 감소로 인해 마을 리더십이 특정 세대의 마을 출신 남성만을 중심으로 재생산되기 어려운 것이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 비추어 그간 부분적으로만 주민으로 간주되어 온 여성들에게 주민으로서의 자격과 권한을 부여하고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성평등 향약으로 마을 규약을 개정한 금악마을의 사례는 마을의 주민자치와 공동체적 가치를 강조하면서도 바로 그 공동체성을 민주화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로서 의미가 있다. 앞으로는 단지 여성의 참여 자격만을 명시하는 향약 개정을 넘어서서 여성이 마을 주민으로서 마을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실질적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금악마을에서도 현재까지는 기혼 여성들로 구성된 부녀회를 중심으로 마을 여성들의 참여가 조직되고 있는데 미/비혼 여성들과 이주민 등 기존의 부녀회원들과 출신 배경이 다른 여성들을 어떻게 마을 운영 주체로 거듭나게 할 것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2023년 새해와 함께 시작된 제주대학교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의 시리즈기획 공동자원과 주민자치2024년에도 계속 이어집니다. 상부상조하는 공동체의 원형과 전통이 잘 계승되어 유지, 발전되는 특별한 지역 제주그리고 공동자원과 주민자치에 대한 이야기가 한층 업그레이드된 내용으로 찾아옵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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