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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성(公共性)’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연구세미나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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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성(公共性)’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연구세미나95]
  • 김윤미 기자
  • 승인 2024.04.08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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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회 주민이 자신을 실현하는 공간: 공공성과 주민자치

공공성(公共性)’이란 무엇일까? ‘공적그리고 사적의 의미, 국가공동체시장과 구분되는 공공성의 개념은 무엇일까? 공공성과 주민자치는 어떻게 연결되는 것일까? 민주주의, 주민자치에서 특히 중요한 개념인 공공성에 대해 매우 심도 깊게 논의하고 토론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한국주민자치학회는  일본의 정치학자 사이토 준이치가 정리한 '공공성'과 '자유'의 개념을 통해 주민자치의 방향성을 찾아보는  주민자치 연구세미나를 두 차례에 걸쳐 개최했다. 먼저 그 첫 회가 '공공성과 주민자치'를 주제로 지난 4일 서울 인사동 태화빌딩에서 열렸다.

95회 주민자치 연구세미나로 마련된 이날 논의의 장은 김동춘 전 성공회대 교수가 좌장을 맡고, 이관춘 연세대 객원교수가 발제를, 그리고 김성민 건국대 명예교수, 박정하 성균관대 교수, 신진욱 중앙대 교수가 지정토론에 참여하며 펼쳐졌다.

발제를 맡은 이관춘 교수는 사이토 준이치의 <민주적 공공성>(사이토 준이치 지음, 公共性, 윤대석 외 옮김, 이음: 2020)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공공성에 대해 주로 한나 아렌트와 위르겐 하버마스의 입장을 비교 소개하면서 주민이 자신을 실현하는 공간의 가능성을 모색했다.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타자의 존재와 복수성

발제에 따르면, 아렌트는 공공성이 사라진 삶을 사적(private)’이라고 보았는데 본래 박탈된'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사적인'이라는 용어는 공공적 영역의 이러한 다양한 의미와 관련되어 있다. 완전히 사적인 생활을 한다는 것은 우선 진정한 인간적 삶을 영위하는 데 있어서 본질적인 것이 박탈되었음을 의미한다. ’사적인 것은 곧 타자의 존재가 사라진 상태이며 이는 공공적 공간으로부터 장소를 박탈당하거나 타자로부터 응답 가능성을 상실한 삶을 사는 버려진사람들을 의미하게 된다. 이처럼 공공적 공간으로부터 추방된 사람들의 문제는 자기 존재의 의미를 의심하게 되고 잉여자라는 감각을 불러온다.

이관춘 교수는 아렌트가 관심을 집중하는 것은 자유를 위한 장소이다. 모든 권리를 가질 권리는 사람들이 자신의 행위와 의견에 기초해 타자로부터 판단을 받는 관계가 성립하는 시스템 속에서 살아갈 권리를 말한다. 공공적 공간은 자신의 행위와 의견에 대해 응답을 받는 공간으로 유용성 여부로 판단하는 공간이 아니다. 모든 공리주의적 사고는 이 공간 안에서는 효력을 상실하게 된다. 왜냐하면 개개인의 삶은 다른 것으로 환원할 수 없는 독특한(unique) 이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는 점에서는 모두 동일하면서도 어떤 누구도 지금껏 살았고 현재 살고 있으며 앞으로 살게 될 다른 누구와도 동일하지 않다. 이 때문에 복수성(plurality)’은 인간 행위의 조건이 된다고 아렌트의 개념을 빌어 설명했다.

계속해서 그는 앞서 언급했듯이 사적인 것(private)은 박탈/결핍/탈취(privative)와 연결되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사적인 것을 가정(oikia) 안에서 사는 것으로 정의했고 이는 공적 영역에서 발휘되는 인간적 능력의 박탈로 보았다. 아렌트도 이와 비슷하게 사적인 것을 진정한 삶의 본질적인 것의 박탈로 보았으며 이는 사적인 생활에서 타자의 존재가 박탈된 것을 의미한다라며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구분이 아렌트 사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데 그는 인간의 삶이 이처럼 서로 침범할 수 없는 두 존재 질서, 즉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 생물학적 삶 vs 인간적 삶, 일상의 삶 vs 주민의 삶으로 구성됐다고 보았다. 주목할 점은 이 두 영역의 대립성과 상호보완성으로, 두 영역은 철저히 분리되어야 하는 대립적 관계인 동시에 그 분리가 서로의 영역을 온전히 보존하게 해 준다는 의미에서 상호보완적이라 할 수 있다고 짚었다.

발표에 의하면, 공적 영역은 평등하고 자유로운 개인들이 모여 말과 행위를 수행하는 공간으로 고대 그리스로 보면 폴리스의 영역정치적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적 삶은 행위(praxis)와 언어(lexis)로 구성되며 말을 통한 설득 행위만이 공적영역 즉 정치적이라는 것이며 이는 폴리스의 생활이 힘과 폭력이 아닌 말과 설득을 통해 결정된다는 것을 뜻한다. 어떤 필요에도 매여 있지 않을 때만이 말과 행위 그 자체의 의미가 드러난다. 이런 무목적적 드러남의 공간이 공적 영역이다. 나의 주관을 벗어나 말, 행위가 여러 사람에게 드러날 때에만 나와 세계의 실재성(wirklichkeit)이 확보되는 것이다.

이어 이관춘 교수는 아렌트에게 실재성은 다양한 관점 속에서 획득되는 객관성과 유사한 것이다. 주관 속에 머물러 있다면 실재성획득은 불가능하다. 현실성 혹은 실재성은 항상 타인의 현존에 의존한다. 타인과 함께 하지 않아 공적 영역에 속해 있지 않은 인간은 세계와 인간, 나 자신조차 실재한다는 확신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 행위를 통해 타인과 구별되는 정체성을 갖게 되고 인격적 존재가 된다고 덧붙였다.

다음으로 사적 영역자연이 부과한 삶의 필연성을 해결하는 공간으로 소개되었다. 이 교수는 고대 그리스의 가정(oikia)은 생물학적 삶을 위한 공간으로 노동이 이루어지는 영역이기도 했다. 인간 삶의 절박한 필연성 충족을 목적으로 한 활동 공간이자 개체 유지, 종족보존의 목적이라는 공동의 이익을 위한 공간이기도 해 자유, 평등의 공간은 아니었다. 가장에게는 강제와 폭력이 허용되었는데 이같은 절대적 지배는 공적 영역 즉 정치적 영역과는 상반되는 조직형태를 띄었다고 설명했다.

 

공공성공동체국가’‘시장과의 차이점과 공통점

이 같은 논의를 통해 공공성의 세 가지 의미로 국가에 관계된 공적인(official) , 즉 국가가법, 정책을 통해 국민 대상으로 실시하는 활동’ ‘모든 사람들과 관계된 공통적인(common) , 즉 공통의 이익, 재산, 공통적인 규범, 관심사 등’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open)는 의미로 누구의 접근도 거부하지 않는 공간이나 정보 등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되기도 했다.

다음으로 공동성과 공동체의 특성이 비교되어 소개됐다(아래표 참조).

 

공공성과 공동체

 

, 공공성과 시장의 차이, 공공성과 국가도 언급됐다. 공공성과 시장의 공통점은 자유의 공간이라는 것이며 다른 점은 시장이 공공성의 공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공공성과 국가에 대해 이 관춘 교수는 국가를 국민 공동체로 이해하면 차이는 명백하다. 민주적 법치국가의 경우 국가가 강제력을 갖고 실현해야 할 가치 해석에 있어서 정의는 국가 아닌 공공성의 영역이라고 언급했다.

 

공공성과 시장

 

계속해서 공공성과 배제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이관춘 교수는 공공성의 담론 공간은 열려 있으나 언제나 배제와 주변화의 힘도 작용한다. 정치적 의사형성,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제도적 배제는 여전히 지속됐다. 근대 시민사회에서 정치적 공공성에 입장할 자격은 교양과 재산을 가진 남성에 한정됐다. 사회계약은 여성을 공공성으로부터 배제하는 성적 계약'의 논리를 수반했으나 최근 100년 동안 대부분 제거됐으며 남아있는 최후의 제약은 국적에 의한 배제라고 소개했다.

공공성으로부터의 비공식적 배제에 대해서는 물질적-시간적 자원이라는 전통적 요인을 언급하며 물질적 자산도 중요해졌으며 경제적 격차 교육 기회, 정보의 수집 분석 발신 능력의 격차 그리고 자유 시간이란 자원도 정치적 삶의 조건이 됐다라며 공공성으로부터의 비공식적 배제로는 담론자원(discursive)이 실질적 접근을 근본적으로 좌우하는 것으로 보았다. 공공성에서 의사소통이 언어 매체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담론 자원을 가진 이들이 헤게모니를 쥐게 됐다. 문화의 지배적 코드의 습득 여부가 담론 자원의 우열을 규정하기도 했다. 이 문화적 코드는 담론에 외재적인 것이 아니라 담론의 실천을 통해 구성되는 것으로 공공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짚었다.

 

담론자원의 힘 공공의 토의는 모든 테마에 열려 있다

담론자원의 힘에 관해 이관춘 교수는 어떤 어휘를 구사하는가, 자신의 관심사를 설명하고 타인을 설득할 때 맥락에 적합한 말을 자유롭게 사용할 줄 아는가 여부다. 담론자원의 격차는 일상적 지식 사이의 비대칭성, 즉 전문적 지식과 일상적 지식의 비대칭성 형태를 띤다. 말을 어떻게 하는가라는 담론의 톤(tone)도 중요하고, 공사 구별과 공공의 장에 맞는 테마를 말해야 하는 암묵적 규범이 매우 중요하다라며 공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경계는 고정된 것이 아닌 담론에 따라 달라진다. 특히 하버마스는 가치평가적 담론이 공공의 토의에서 배제되었던 것을 공공의 토의는 모든 테마에 열려 있다고 전환했다고 설명했다.

다음으로 대항적 공공권과 고독에 대한 발표가 진행됐다. 이에 의하면 대항적 공공권주의(attention)의 배분배치의 재편이다. 다수에 의해 무시되고 묵살되어온 담론 공간의 창출은 담론자원의 열세에 있는 소수자를 이끌어냈고 이를 통해 지배적인 공공권과는 상대적으로 다른 담론자원이 형성됐다. ‘사적인 것공공적인 것으로의 재정의가 이뤄졌고 자기 삶의 존재방식의 긍정적 재파악이 진행됐다. 즉 남이 귀 기울여주고 자신의 존재가 무시되지 않는다는 경험, , 생명 배려의 친밀권이 발동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고독’ ‘버림받음의 문제가 나오는데 이는 공공성 배제의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분리는 어떤 사람을 고독한 상황으로 몰아넣으면서 그가 의식되지 않는 것이다. 존재에 대한 부정, 존재의 현실성에 대한 의심 즉 존중, 승인 받지 못하는 분노로 슬픔보다 통절한 것으로 인식됐다.

계속해서 이관춘 교수는 발표를 통해 공공성 논의에 있어서 자장의 변화를 일으킨 아렌트와 하버마스, 이중 하버마스는 공공성의 현실에 대해 긍정적 시각이 아니었다. 조작적인 공개성을 지적하며 대중매체가 특권적 이해를 위한 기회를 제공, 대중이 조작적인 힘에 노출됐다고 보았다. 대중은 문화산업이 생산하는 상징을 고분고분 수용, 비평 공간이 사라지며 의논과 비판의 공동화가 나타난다고 했다. 이로 인해 공공성은 사람들 사이에서 형성되지 않고 사람들 앞에서 펼쳐지는 것으로 변용됐다고 보았다고 소개했다.

토의는 합의가 형성되는 과정이자 불합의가 새롭게 창출되는 과정

이어 하버마스는 공공권의 이상적 모습으로 합의를 형성해가기 위한 토의의 공간을 언급했다. 하버마스 토의 개념은 합의 산출이란 목적 외에 합의 형성 이면을 주목했으며 이는 기존 합의의 비판적 해체라 할 수 있다. 기존에 통용되어온 규범의 자명성을 확인하고 토의를 기존 권력관계를 반성하는 공동의 학습과정으로 보았다. 또 토의는 합의가 형성되는 과정임과 동시에 불합의가 새롭게 창출되는 과정이며 열린 토의가 의미 있는 이유는 합의되지 않는 곳에 공공의 주목이 향해지기 때문이다. 하버마스는 의사결정의 오류 가능성(fallibility)을 중시했다고 짚었다.

이관춘 교수는 아렌트와 하버마스의 공공성 이론은 서로 겹치는 부분이 많다. 하버마스는 의사소통 행위도구적 행위를 비교했으며, 아렌트는 행위(action), 노동(labor), 제작(work)을 구별했다. 둘의 공통점은 똑같이 공공성을 말 이외의 힘을 배제한 담론의 공간으로서 규범적으로 묘사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발표에 따르면, 아렌트의 공공성은 두 가지 차원 즉 현상의 공간세계가 있는데 먼저 현상의 공간으로서 공공성은 사람들이 행위와 논의에 의해 서로 관계하는 지점에서 창출되는 공간이다. ‘현상의 공간은 공공적 공간으로 자신이 누구인가를 교환 불가능한 방법으로 보여주는 유일한 장소다. ‘누구라는 정체성은 개인의 행위나 말과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 말을 거는 타자의 응답으로 비로소 생성되는 것으로 정체성은 타자의 존재를 요구한다. 현상의 공간은 타자를 하나의 시작’(행위, )으로 여기는 공간으로 타자를 유용성 여부로 판단하지 않고 자유로운 존재자로 처우하는 공간이다.

아렌트 공공성의 또 하나의 차원은 공통세계에 대한 관심으로 성립되는 공공성이다. 이관춘 교수는 우리 사이’(in-between)에 있는 세계에 대한 관심은 공공적 공간의 매체가 된다. ‘세계개념의 이중성은 1)’제작에 의해 만들어진 인위적 세계 2)’행위에 의해 형성되는 인간적 세계라는 것이다. 공통세계의 공공성이 성립하기 위한 조건은 1)세계에 대한 다양한 관점 유지 2)사람들이 그 사이에 존재하는 것(inter-esse)에 대한 관심 유지다. 공통세계를 둘러싼 담론 공간의 공공성은 진리의 공간이 아닌 의견(doxa ‘내게는 이렇게 보인다’)들의 공간이다. 공공적 공간에서 담론의 의미는 다름을 서로 분명하게 하는 것으로 하나의 합의를 향해 수렴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의견은 판단을 타당하게 하는 것으로 자신과는 다른 타자의 관점을 고려하는 것이다. 타자의 입장에 서면 다르게 보일지도 모른다는 가설적인 사고의 폭'이 우리 판단에 타당성을 부여하게 된다고 밝히며 1부 발제를 마무리했다.

이어진 지정토론에서 김성민 건국대 교수는 공적 영역에 기반을 둔 공공성에 대한 현실성 관련 질문을 드리고 싶다. 의견교환, 의사소통을 통한 공통세계의 구축은 현실 문제와 마주했을 때 그 효과가 극단적일 수 있다. 의사교환에 기반을 둔 민주주의를 숙의민주주의라 흔히 부르는데 숙의민주주의 같은 경우 기후, 원자력 발전, 생태 등 가치 중립적이거나 개인의 영역과 다소 거리가 있는 사항에 경우 논의의 진척을 보인다. 그러나 복지, 교육, 경제 등 사적 영역과 밀접하게 영향을 맺고 있는 주제의 경우 첨예한 의견 대립만을 확인할 뿐 공통세계를 구성하는데 난항을 겪게 마련이다. 또한 이런 공공성의 문제는 지배와 피지배, 자본과 노동과 같은 계급적 또는 권력적 관계가 불식되고 똑같은 의견 교환의 장으로 나서게 될 수 있기 때문에 공공성 내부에서의 권력관계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공공성, 차이를 조건으로 하는 담론의 공간

그는 또 사이토 준이치의 저서 원제목은 <公共性>이다. 옮긴이들이 <민주적 공공성>이라고 번역한 것은 아마도 공공성의 양면을 보여 주고 공공성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하는 강조라고 보여진다라며 공공성은 어떤 동일성(identity)을 제패하는 공간이 아니라 차이를 조건으로 하는 담론의 공간이다. 공동체는 구성원들이 본질적인 가치를 공유할 것을 요구하고, 큰 타자(Big Other)’(라캉, 지젝)에 편입되거나 종속됨을 암암리에 훈련시킨다(국가 이데올로기 등). 반면에 공공성은 복수의 가치, 의견 사이에서 생성되는 공간이라고 의미를 강조했다.

계속해서 김성민 교수는 아렌트는 외로움(loneliness)와 고독(solitude) 개념을 비교하면서 내 안에서의 사유를 강조한다. 외로움은 고독과 다르다. 고독은 혼자 있기를 요구하는 것이지만, 외로움은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오히려 예민하게 나타난다. 외로운 사람은 타인과 관계 맺지 않은 사람이며 때로 타인을 향해 적개심을 노출하기도 한다. 그러나 고독한 사람은 혼자 있을 때 자신과 관계를 맺는다. 외로움 속에서 나는 다른 모든 사람으로부터 버림받고 홀로 있게 된다. 고독 속에서 나는 내 자신과 함께 있으며 하나인 내 안에서 둘(two-in-one)을 이룬다. 하나 안에서 둘이 되는 것은 스스로 대화를 하는 관계를 갖는다는 것이다. 모든 사유는 나와 나 자신의 대화이며 이것은 고독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 대화 안에서 나는 다른 사람과의 접점을 잃지 않는다. 사유 가운데 나의 동료 인간들이 이미 나 자신 속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다음으로 박정하 성균관대 교수는 먼저 지적할 점은 공리주의에 대한 저자의 이해가 부정확한 것 같다는 점이다. 공리주의에 대한 아렌트의 주장과도 일치하는지 의문이다. 저자는 인간을 유용함으로 판단하는 방식을 공리주의적 척도라고 규정하고 이러한 접근은 공공적 공간을 파괴한다고 본다. 공리주의의 공간에서는 쓸모의 유무에 따른 유용성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쓸모없는 자를 즉시 잘라버려 배제한다는 것이다. 정말 아렌트가 그렇게 규정했는지 아니면 저자의 해석인지 모르지만 이런 주장은 공리주의에 대한 정확한 이해라고 보기 어렵다라며 공리주의자 밀은 <자유론>에서 다수의 횡포를 문제 삼으면서 소수의 자유에 주목하고 있으며 소수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 사회가 개인에게 간섭할 수 있는 한계를 규정하는 원리로서 이른바 해악의 원리를 근본원리로 제시한다. 그리고 이 원리에 의해 소수를 보호하는 것이 공리주의적으로 정당화된다고 주장한다. 소수파를 억압하거나 배제하지 않는 것이 장기적으로 사회 전체의 행복을 따지는 공리주의 입장에서 볼 때 적절하고 타당하다는 것이 밀의 주장이다. 따라서 공리주의가 쓸모를 기준으로 소수자를 즉각 배제한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공리주의, ‘쓸모기준으로 소수자 즉각 배제하지 않아단 공공선보다 공동선 추구

그러면서도 박 교수는 공적 문제에 대한 공리주의의 접근은 저자가 지적한 내용과는 다른 방식으로 한계를 갖는다. 한 마디로 공동선(共同善, the common good)을 추구한다고는 볼 수 있지만 공공선(公共善)을 추구한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공동선은 사적 개인들이 추구하는 이익 중에서 공통된 부분, 교집합에 대항한다. 이러한 공통의 이익은 사적 이익을 초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적 이익에 기반한다는 점에서 사적 이익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공동선이 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 유익한 것을 말한다면 공공선은 구성원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넘어서 모두가 마땅히 추구할 만한 가치를 가진, 그래서 추구해야만 할 좋음을 말한다라며 민주주의의 대중은 일반적으로 공익 또는 공동선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이를 위해 연합하고 함께 실천한다. 공리주의는 이러한 공동선까지는 옹호할 수 있는 이론이다. 그러나 공공선의 근거로는 기능할 수 없다. 함께 삶을 유지하는 공동의 삶에서 공리주의적 판단은 중요하다. 그러나 가치의 문제는 공공선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아렌트적 의미에서 정치와 사회를 구분할 때, 공리주의는 사회적 문제의 해결까지는 가능하지만 공공선을 추구하는 정치의 영역에서는 무력한 셈이라고 주장했다.

세 번째 지정토론 패널인 신진욱 중앙대 교수는 발표에서 공공성의 세 가지 의미가 언급됐다. “국가에 관계된 공적인(official) ”, “모든 사람들과 관계된 공통적인(common) ”,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open) 의미이다. 이 중 특히 두 번째 의미, 즉 무엇인가가 공공적이라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관련되는 공통된 것이라는 명제의 의미를 조금 더 심화시켜 보고자 한다. 그것은 다수 인간의 관심’, ‘결과’, ‘필요’, ‘전승이라는 키워드로 요약된다고 제시했다.

이어 신 교수는 첫째 어떤 것이 많은 사람에게 관계된다또는 공통된다는 말의 하나의 의미는 그것이 사람들에게 공동의 관심사가 된다는 것이다. 아렌트가 공공성의 이 같은 성격을 탁자에 비유해 설명했듯이 공공적인 사안이 있다는 것은 탁자를 가운데 두고 사람들이 그 둘레에 앉아 있는 상황과 같다. 하지만 그처럼 공통된 것을 중심에 두고 있는 공공적 세계는 또한 근본적으로 다원적인세계이다. 왜냐하면 탁자를 둘러앉은 사람들은 모두 다른 각도에서 탁자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같은 공통성과 다원성의 통일, 같은 관심사와 다른 관점의 공존으로부터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역동성이 생겨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양성만 갖고서는 개개인의 삶만 있을 뿐 공동체를 만들 수 없고 반대로 동일성만 갖고서는 공동체가 있다 해서 생기 있는 공동체를 만들 수 없다고 짚었다.

그는 또 둘째 무엇인가가 공공적 성격을 갖는다는 것은 다수의 사회구성원에게 어떤 결과를 낳는다,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 있다. 우리는 개념적으로는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다양한 공공성의 정도’(degree of publicness)가 있다. 그렇다면 구체적 상황에서는 무엇이 공적이고 무엇이 사적인지가 만인에게 명확하게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공공적 중요성을 가진 사안인가?”를 놓고 사회적 논쟁과 합의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했다.

공공성, 공통성+다원성공공성 척도는 논쟁-합의 과정 거쳐야

계속해서 신진욱 교수는 셋째 공공적이라는 것은 인간 존재의 목적을 달성하고 필요를 충족시키는 협력적 방식을 뜻하기도 한다. 인간은 협력하지 않고서는 생존할 수 없으며 종의 재생산이 불가능한 존재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공의 공간은 어떤 형태로는 필연적으로 존재하며 완전히 폐지될 수 없다. 현대 복지국가들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착취적이고 경쟁적인 폐해를 완화하기 위해 협력적 제도를 확대했다. 이러한 호혜적 협력의 제도는 네이션이라는 틀에서 국가에 의해 수행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며 그보다 작은 로컬, 그보다 넓은 글로벌 범위에서도 가능하고 필요하다라며 끝으로 공공적인 것은 단지 지금 현재 이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 뿐 아니라 앞으로 이 세계에 오게 될 사람들에게 관련되는 일을 포함한다. 동시대 뿐 아니라 세대를 넘어서는 영속성, 즉 개별자의 생물학적 유한성을 넘어서는 역사적 영속성을 갖는 사안들은 공공적 성격을 띠고 있다. 마지막으로 위와 같은 여러 의미의 공공성을 현실에서 어떤 제도와 실천에 의해 구현하고 확장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본다라며 토론을 마무리했다.

사진=문효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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