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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근린은 아직도 식민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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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근린은 아직도 식민지다
  • 전상직 한국자치학회 회장·본지 발행인
  • 승인 2017.01.02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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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직 한국자치학회 회장·본지 발행인.
전상직 한국자치학회 회장·본지 발행인.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광화문에서 시작된 첫 번째 촛불시위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구호가 빠르고 경쾌한 노래로 등장해 듣는 이들의 귀를 솔깃하게 했고,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고 묻는다면 대한민국의 근린(읍면동, 통리반)은 민주공화근린인가도 물어야 한다.

조선의 근린은 한마디로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조선의 향촌사는 향약 → 상하합계 → 주현향약 → 촌계의 네 단계를 거쳤다. 향약의 시대에는 재지사족이 향약을 통해 향촌과 주민을 지배했다. 상하합계의 시대는 임진왜란 후에 피폐해진 향촌의 복구를 위해 상계와 하계가 힘을 합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이때 처음으로 동계라는 근린자치의 맹아가 생긴다.

그러나 임진왜란이라는 외부적인 요인으로 상하가 물리적으로 합계를 한 까닭에 동계는 내부적으로 갈등을 겪게 된다. 그래서 수령들이 나서서 주현향약을 만들어서 상하의 합계를 강하게 시도하나, 수령의 관치에는 한계가 있어서 종국에는 상계가 이탈을 한다. 향촌을 신분만으로는 더 이상 지배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상계가 서원으로 향교로 떠난 후 촌민들은 촌민들만으로 촌계(村契)를 구성해서 촌제, 두레, 촌회를 소관하면서 성문화하지 않고, 불문율로 관습으로 근린을 자치했다. 조선의 말기에 조선은 쇄국으로 매우 쇠약했지만, 조선의 근린은 동시대 타국에 비교해서 앞섰다고 자랑할 수 있는 민주공화근린이었다.

일제는 조선의 근린을 파괴하고 지배했다

총독부령 제6조 ‘면에 관한 규정’(1910년)에서 두(杜)·방(坊)·부(部)를 면(面), 4322면으로 개편하도록 규정했다. 일제는 지리적 불군현등을 해소해 행정편의를 도모한다는 명분으로 행정개편을 추진했지만, 사실은 주민들을 보다 효율적으로 통제하고 관리하기 위해 자율성과 전통문화를 파괴해 지배적 통제를 위한 것이었다.

총독부령 제111호(1913년) 등에서 면(面)과 리동(里洞) 개편을 대대적으로 추진, 2518면(面), 2만 8181리(里)로 개편했다. 군 40방리 10만 명, 면 4방리 500호를 기준으로 일제히 통폐합조치를 시행해 기존의 동리에 있던 동리와 기존의 면에 있던 동리가 다른 동리와 면에 소속되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을 강점한 일제는 강제로 주권을 침탈했지만, 실질적으로 지배하기 위해서는 지방사회까지 일제의 행정력이 침투할 수 있어야 하므로, 총독부 출범과 동시에 면을 설치해 전통의 사회를 파괴하고, 동시에 농어촌사회까지 완전하게 장악했으며, 리동(里洞)까지 설치해 근린의 자치는 모두 파괴했다. 의미 있는 자치인 정치적, 행정적, 사회적 자치는 전혀 허용되지 않았으며, 오로지 일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생활자치(生活自治)만이 가능했다.

한국의 근린은 아직도 식민지다

일제가 물러가고 정부가 수립됐지만, 우리의 지방자치는 아직도 일제의 식민지체계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총독부가 정점에 서서 전국을 시·도 → 시·군·구 → 읍·면·동 → 통·리 → 반으로 수직계열화한 조직이 아직도 대한민국의 국가체계로 살아있는 것이다. 일본은 맥아더사령부가 ‘통리-반’에 해당하는 조직을 폐기한 후에 국가조직으로 다시 살려내지 않고, 주민의 자치조직으로 살려서 군국주의의 자산을 주민자치의 도구로 의미 있게 활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통장은 원칙적으로 시·군·구장이 위촉을 하고, 리장은 리의 주민들이 선출해 읍·면장이 임명을 한다. 어떤 형식이든 행정체계의 말단으로 기능을 할 따름이고, 관료들의 행정행위에 대한 보조자이지 총괄적으로 지역을 대표하는 대표자는 아니다. 행정의 말단일 따름이다.

근린을 주민에게 돌려주자

우리나라도 근린을 주민에게 완벽하게 돌려줘야 한다. 행정의 편의를 위해 만들고, 행정의 침투를 위해 운영해온 통·리를 근린의 주민들에게 돌려줘서 주민자치의 토대가 되도록 하고, 주민자치를 통해 관료가 직영하는 근린보다 더 나은 근린이 되도록 해야 한다.

한국의 근린에는 우수한 인재가 있다. 산업화를 이룬 경험과 민주화를 이룬 경험이 근린사회에도 의미가 있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경험과 성공적인 민주국가로 발전한 경험이 이제는 근린에서 발휘돼서 공동체의 혁명을 이루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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