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5-03 13:43 (금)
조선의 향촌자치가 주는 교훈 ‘주민자치’라야 한다
상태바
조선의 향촌자치가 주는 교훈 ‘주민자치’라야 한다
  • 전상직 한국자치학회 회장·본지 발행인
  • 승인 2016.07.01 1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상직 한국자치학회 회장·본지 발행인.
전상직 한국자치학회 회장·본지 발행인.

조선의 향촌자치는 주민자치가 아니었다. 양반인 재지사족의 자치였다. 주민들은 복종만 하는 구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동안 재지사족의 향촌자치가 이어져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는 조선의 향촌자치는 지방수령과 재지사족들 간의 수평적인 분권이 잘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유교라는 동일한 바탕을 공유하는 까닭에 이념적으로 수령과 사족 간에는 갈등이 없었으며, 신분적으로도 같은 양반이기 때문에 수평적 분권이 비교적 용이했다. 둘째, 재지사족은 향촌을 교화하기 위해 통치자 집단인 향안을 작성하는데 매우 엄격했으며, 향안의 유지에도 매우 엄격해 도덕적으로도 자율적으로도 신분제적 질서 속에서 신뢰를 받았다.

조선의 향규는 지방에서 관권과 향권을 수평적으로 분리하는데 성공했으며, 관치의 질서와 향치의 질서를 각별하게 했다는데 그 의미를 둘 수 있다. 지금의 한국은 아직도 관치의 체계만이 있고, 향치의 체계는 없다. 일제의 식민지 체계인 관치만의 체계를 개혁해 향치의 영역을 새로이 만들어야 한다.

조선의 재지사족은, 비록 신분제로 옹호를 받기는 했지만, 향촌의 질서를 책임질 수 있는 학식과 자격과 능력을 갖춘 집단이었다. 따라서 국가에서도 향촌의 질서와 교화를 맡길 수 있었으며, 수령도 재지사족들의 향치에 신뢰를 가질 수 있었다. 말하자면, 국가-사회 간에 분권할 수 있는 토양과 그리고 수권할 수 있는 여건이 구비돼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조선의 향치는 향규로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주민들의 자치력도 중요하지만, 향촌 지도자들의 지도력이 향촌자치 성공의 중요한 요인임을 확인할 수 있다.

향촌자치와 향민자치 그리고 주민자치
향규는 사족들 간의 규약이어서 향민은 질서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양란 이후에는 파괴된 향촌의 복구라는 시급한 과제가 대두돼서 유교적인 질서보다는 마을의 사업들이 중요하게 직면하게 된다. 그 사업의 수행을 위해 사족들의 상계와 향민들의 하계가 합해지지만 사족들은 주도권을 계속 고집하면서 상하합계는 실질적인 합계를 이루지 못했다. 급기야는 하계가 이탈하는 사례까지 발생했다. 유교적 질서에는 사족들이 의미가 있지만, 마을의 사업에는 사족들이 기여하지 못한 것이다.

향촌 내에서 민주적이어야 비로소 향촌자치는 성공할 수 있다. 재지사족중심의 과두제적 향촌자치는 필연적으로 저항을 받을 수밖에 없었지만, 사족들은 신분제를 앞세워 향촌의 민주화를 저해했다.

주민자치회는 임원을 구성하는 것으로 완료되지 아니하며, 주민들이 동의하고 참여하고 대동하는 절차가 있어야 한다. 주민자치위원회에도 시범실시 주민자치회에도 주민은 없다. 다만, 자치의 대상일 따름이다.

수령향약이라고 부르는 주현향약이 대두했다. 향촌자치를 하던 것이 잘 되지 않으니 향촌관치를 하자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재지사족은 향촌자치에서 통치불능의 사태에 빠졌던 것이다. 근본원인은 향촌자치가 양반자치로 향민자치가 아니었다는데 원인이 있으며, 재지사족들이 극복하지 못한 향촌자치와 향민자치 간의 차이를 수령들이 나서서 극복하려고 했다. 주민자치는 당사자 원칙이 매우 중요하다. 향촌의 문제는 향촌내부에서 해결책이 찾아질 때 해결된다. 조선의 수령향약은 향촌자치의 원칙을 훼손한 관치의 한계와 부작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조선 향촌자치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
조선의 주민자치는 결국은 촌계로서 제자리를 잡게 된다. 마을에서의 모듬살이에 필요한 일들을 마을 차원에서 진행하는 것에 주민들의 동의를 하면서 조선의 향촌자치는 주민자치 본연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마을의 행사에 마을 사람들이 뜻을 모으고 힘을 모았으며 마을의 농사에 뜻을 모으고 힘을 합했다. 동제와 두레였다.

조선의 향촌자치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다음과 같다. 향촌자치는 향민의 자치여야하만 한다. 시·군·구 의회가 주민자치 세부사항을 일일이 조례로 규정하는 것도 주민자치의 원칙에 어긋나며, 공무원들이 주민자치예산을 공무원식으로 집행하는 것도 주민자치의 원칙에 어긋난다.

조선의 촌계처럼 피부로 느낄 수 있도 마음으로 동의하는 그런 구조를 만들고 일들을 구상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주민자치를 기획하는 일이다. 범령도 기획하고, 조직도 기획하고, 지도자도 기획하고, 사업도 기획하는, 그리고 참여도 기획하는 것이 바로 주민자치를 기획하는 것이요 동시에 국가의 백년대계를 기획하는 것이기도 하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주민자치를 국가가 예산으로, 제도로 지원하지 않는 나라도 없지만, 세계 어느 나라도 주민자치를 직접 나서서 간섭하는 나라도 없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공공성(公共性)’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연구세미나95]
  • 문산면 주민자치회, 주민 지혜와 협의로 마을 발전 이끈다
  • 주민자치위원, 마을과 주민 위한 소통의 리더십 발휘해야
  • 별내면 주민자치위원회, 청소년들의 자율적 자치참여 유도
  • 사동 주민자치회, '행복한 끼'로 복지사각지대 해소 나서
  • 시흥시 주민자치, 주민이 마을의제 해결하는 ‘마을회담’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