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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주민자치법 입법연구 포럼 ①조선의 주민자치-“향촌 사족들의 특권·정치적 이익 문제, 오늘날과 겹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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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주민자치법 입법연구 포럼 ①조선의 주민자치-“향촌 사족들의 특권·정치적 이익 문제, 오늘날과 겹쳐”
  • 정진영 안동대학교 사학과 교수
  • 승인 2016.07.05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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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ㅣ조선시대 재지사족층의 향촌자치에 대한 몇 가지 소견
정진영 안동대학교 사학과 교수.
정진영 안동대학교 사학과 교수.

조선시대 향촌자치란 향촌의 사족층(재지사족, 혹은 지방 양반으로 이해해도 무방함)에 의한 향촌사회에서의 다양한 사회적 활동 그 자체를 말한다. 재지사족층은 향촌자치에 적극적이었다. 그것은 그들의 학문적 경향이나, 사회경제적 존재형태, 그리고 정치적 이해관계와 깊이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조선의 유자들은 기본적으로 유교적 이상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다. 조선의 건국 주체들의 입장에서는 중앙집권을 통한 국가의 제도적 시스템의 정비를 통해 이룩하고자 했다면, 기본적으로 향촌사회에 재지적 기반을 두고 있었던 재지사족 혹은 사림파 세력은 민의 교화에 보다 큰 관심을 가졌다. 따라서 이에 대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자 했고, 그것이 다름 아닌 향촌사회에서의 다양한 형태와 형식의 규약과 조직으로 나타났다. 이를 통해 향촌의 사족들은 자신의 신분적·경제적 특권과 나아가서는 정치적 이익을 확보하고 지키고자 했다. 이를 이름하여 ‘향촌지배’ 혹은 ‘향촌자치’라 할 수 있다.

향촌자치, 국가와 하층민 저항에 부딪혀
사족들이 향촌사회에서 그들 자신들의 특권과 이익을 관철하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향촌자치는 다양한 조직과 규약 등으로 전개됐다. 그것은 유향소(뒤의 향청)의 설립과 그것의 운영규약(향규), 참여인물들의 확보(향안의 작성), 향약의 실시 등으로 전개됐다. 그러나 이런 사족의 향촌자치는 순조롭게 진행되거나 정착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우선 중앙집권화를 추구했던 국가적 입장과 크게 배치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를 둘러싼 정치세력 상호간의 갈등과 대립을 피할 수 없었다. 결국 향촌자치는 사림파의 정치적 부침과 함께 할 수밖에 없었다. 사족의 향촌자치를 저지하거나 방해하는 또 다른 요인으로는 사족과는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향촌 제 세력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치’의 주체가 될 수 없었던 하층민들의 저항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18세기를 거쳐 19세기에 이르러서의 향촌자치제는 사족의 공동체적 이해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집단의 사적 이해를 추구하는 도구로 이용되기도 했고, 수령의 수취구조의 하부구조로 재편돼 활용되기도 했다. 이향수탈체제 하의 향회가 그러했다. 반면에 농민들은 이들 향회를 이용해 여기에 저항하는 조직으로 활용했고, 이것은 농민전쟁기 집강소라는 형태로 계승됐다. 농민전쟁을 통해 실험됐던 농민적 자치제는 갑오개혁을 거쳐 1896년 신관제(新官制)의 일부로 수용됐다. 이 신관제에 따르면, 부·군에 향장(鄕長)을 뒀는데, 향장은 부서기(副書記)·순교(巡校)·통인(通引)·사령(使令) 등을 지휘 감독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향장의 임명방식이다. 즉, 향장을 대소민인이 회의하고 투표해 다수결로 정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물론, 이 같은 자치제가 순조롭게 진행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자체로서 획기적인 변화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족의 자치조직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촌락사회 농민들의 다양한 자치조직도 있었다. 향도(香徒), 향도계(香徒契), 혹은 촌계(村契), 하계(下契), 또는 동린계(洞隣契 등으로 불리어지던 농민조직이 그것이다. 이들 조직에는 대부분 규약이나 위계질서가 없다. 오랜 공동체적 관습과 전통에 의해 운영된다.

조선시대와 오늘날 지방자치의 한계
이상과 같이 향촌자치를 제약하거나 부정하고 있었던 중요한 요인들은 대략 ①중앙정부의 간섭 ②토착세력의 토호화 ③민의 참여제한 혹은 배제, 그리고 무관심 ④주체집단의 정치적 혹은 이념적 갈등 등으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조선시대의 한계와 문제는 고스란히 오늘날 지방자치의 한계와 문제로 겹쳐진다. 중앙정부의 간섭과 통제가 그러하다. 이에 못지 않게 지방자치가 많은 경우 토호들의 잔치로 전락했다는 사실이다. 참 역설적이게도 민주화와 지방자치로 가장 큰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이 다름 아닌 반민주 토호세력이라는 것이다. 대중은 여전히 소외되고 있다. 이들의 무관심은 상당 부분 토호와 여기에 결탁된 일부세력들의 전횡에서 말미암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지방자치제에서 경계하고 유념해야 할 사항은 크고 작은 지역갈등이 조장되고 격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방이 ‘식민지’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맞서야 할 상대는 중앙정부고, 그 내용은 ‘지방분권화’의 획득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지방은 다양한 지역갈등과 이웃 간의 경쟁에 내몰리고 여기에 매몰돼 있다. 이를 유도하고 획책하는 것은 상당부분 중앙정부이고, 정치권이다. 그리고 늘 토호들이 지역이익이라는 이름으로 앞장선다.

오늘날 지방자치가 추구해야 할 현실적 목표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돼야 할 것이다. 그것은 큰 범위에서는 제도와 법적 장치들을 제정하고 완비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관료들과 정치권의 사적 이해를 관철하기 위한 정치와 이념의 각축이 아닌 서민들의 삶의 문제로부터 시작돼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시·군의 자치정부와 함께 마을 혹은 다양하고 작은 사회조직들이 소통하고 상호협력 하는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아울러 다양한 시민사회와 조직이 지방정부와 그 종사자들의 관료화를 견제하고 통제할 수도 있어야 할 것이다.

참가자들이 경청을 하고 있다.
참가자들이 경청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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