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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Ⅰ] 주민자치회 대해부-시범실시 문제 있다, 주민자치… 고양이가 지키는 반찬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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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Ⅰ] 주민자치회 대해부-시범실시 문제 있다, 주민자치… 고양이가 지키는 반찬가게
  • 전상직 한국자치학회 회장
  • 승인 2014.09.04 16: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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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직 한국자치학회 회장.
전상직 한국자치학회 회장.

정부는 ‘풀뿌리자치 활성화와 민주적 참여의식 고양’을 위해 전국적으로 주민자치회 31개를 시범실시 중이다. 정부 안대로라면 내년에 법을 만들고,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확대 실시될 예정이다.

그러나 현재 현장에선 불만의 소리가 터져 나오고, 대부분의 학자와 전문가들의 ‘내년 본격 실시보다는 이 상태로는 내후년도 어렵다’는 지적이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오고 있다. 특히, 주민자치회 유형부터 예산과 조직구성 문제까지 전방위적인 재설계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높다.

이에 본지는 ‘주민자치회 대 해부-<제1탄> 시범실시 문제 있다’를 대주제로 1부에서는 ‘주민자치회 시범실시를 말한다’는 소주제 하에 현재 시범실시 중인 주민자치회의 회장들로부터 현장의 생생한 소리를 서면 인터뷰를 통해 담았다.

또 2부에서는 ‘주민자치회 시범실시 문제 있다’를 소주제로 ▲설립목적과 현장의 괴리 및 대안 ▲법률과 제도의 문제점과 그 대안 ▲예산에 대한 문제점과 그 대안 ▲시범실시 이후(2015년)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을 소주제로 기획특집을 마련했다. <편집자 주>

주민자치에 대해서 현재 한국의 상황을 정리해 보자. 성급하게 결론부터 말하라면 우리나라에는 주민자치住民自治가 없다. 조선에도 있었고, 마을에도 있었고, 미풍美風으로도 있었고, 양속良俗으로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없다. 주민자치라고 외치는 소리는 요란하지만 정작 주민자치는 없다. 왜 그런가? 고양이가 반찬가게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1999년, 주민자치센터 저품질 정책

‘주민자치센터 설치 및 지원에 관한 조례’는 목불인견의 저품질低品質정책이다. 차라리 ‘마을문화센터’ 정도로 이름을 붙였다면 좋았을 것이다. 자치自治를 목적으로 하지 않으면서도 ‘주민자치라’는 이름을 붙였고 주민住民이 아닌 수강생만 있는데도 굳이 ‘주민’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공무원이 주관하는 그리고 낮은 품질의 강좌를 몇 개 운영하면서 이름만 ‘주민자치센터’로 붙인 것이다. 주민을 핑계로 마음 놓고 낯간지러운 일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2014년, 동네를 부수는 주민자치센터 강좌

그 결과, 공무원들이 주관해 개설, 운영하는 강좌는 마을자치나 주민자치에 기여하지 못하는 춤추기와 노래부르기 위주로 운영되고 있다. 일부 지역의 경우, 탁구나 서예는 마을의 탁구장과 서예실을 문 닫게 만들고, 심지어는 헬스클럽을 개설해 동네의 피트니스센터를 몰락시켜가고 있다.

또 춤추기 경우는 수강생의 대다수가 수강을 장기간 독점해 공간과 강좌를 사유화하고 있다. 이런 지역에선 새로운 주민은 수강할 수 없다. 더욱이 주민 간의 화합의 장이 아니라 대립의 장이 돼 버렸다.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가? 바로 그런 지역의 읍·면·동장이다. 그렇게 만들어 놓고 민원이 발생하니 지금은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주민의 자치를 막는 것이 임무인가

일부 지역에서 주민자치의 참뜻을 깨달은 주민자치위원들이 유익한 일을 기획해서 하려고 할 때 가장 먼저 읍·면·동장이 막아선다고 한다. 하려고 하는 기획이 마을이나 주민에게 필요한 것이든 좋은 것이든 아랑곳하지 않고 대부분 본인의 임기 중에는 ‘벌이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일부 지역의 자치행정과장이다. 주민자치위원들이 자발적, 자율적으로 일을 기획하거나 실행도하지 말라는 것이다.

과연 이런 읍·면·동장과 국과局課장이 주민을 위하고, 자치를 위할 수 있을 건가? 지난 지방선거 때 시·군·구장 후보를 대상으로 ‘단체장 후보에게 듣는 주민자치 실질화 대담·토론’을 진행하려고 했을 때 대부분의 시·군·구 자치행정과장은 주민자치협의회장에게 ‘토론회 하지 말라’고 했다. 정치적인 중립도 잘 지키지 못했다. 주민자치위원들이 자발적으로 하는 행사에 시·군·구의 국과장이 감 놔라 대추 놔라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언제까지 그럴 것인가?

향약鄕約, 성공한 조선의 주민자치 기획

조선은 행정체계(도道, 부목군현府牧郡縣, 면리面里)중에서 현縣까지만 공무원이 담당하고, 면리面里는 주민이 자발적, 자율적으로 운영했다. 지역의 뜻있는 이 사족士族들이 나서서 주민의 교화 약임約任을 담당하고, 지역의 힘 있는 이 향족鄕族들이 나서서 마을의 사업鄕任을 담당했다. 주현州縣의 수령은 이런 향약이 잘 성립되고 경영될 수 있도독 지원했다. 국가의 행정력으로는 역부족인 지역사회의 경영을 이사약민以士約民의 형식으로 하고자 했던 것이다. 1999~2014년 현재의 주민자치 정책보다 훨씬 더 수준 높은 기획을 하고, 실제로 상당한 성공을 거뒀다.

읍면邑面, 일제의 식민지 점령 도구

일제는 조선을 속국, 나아가서 완전하게 말살하기 위해 일본에도 없는 제도인 읍면을 만들어서 읍장과 면장을 앞세워 향약을 악용하거나 파괴하고, 마을의 계契와 두레를 파괴했다. 국가(일본)는 곧 공公이요 옳고, 민간(조선)은 곧 사私요 그른 것이라고 하면서 읍장과 면장은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톡톡히 했다.

그 결과로 조선의 미풍양속은 처절하게 파괴되고 말았다. 그 읍면邑面제가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 일본에도 없고, 세계 어느 곳에도 없는 읍면의 잔재가 버젓이 한국에 존재하고 있으며, 읍·면·동장에게 아직도 일제의 악습이 상당부분 남아 있다. 참으로 슬프다.

안으로 굽는 팔로는 주민자치를 안을 수 없다

행정구역개편위원회에서 제안한 협력형, 통합형, 주민조직형 모델의 시범실시를 안행부가 담당했다. 시범실시는 당연하게 제안된 모델 모두를 실시한 후 장단점을 비교분석해 주민자치를 실질화하기 위해 필요한 전략을 유효하게 도출하는 것이다. 그러나 안행부는 ‘세가지 모델 중에서 어떤 것이 적합한가’를 시·군·구 공무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했다. 그리고 절대다수 공무원의 찬성이라면서 ‘협력형’으로 선정하고, 시범실시에 돌입했다. 여기서 두 가지 오류를 범했다. 하나는 제안된 세 가지 모델을 시범실시해야 하는데, 굳이 하나를 선택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델의 선택을 공무원에게 맡겼다는 것이다. 안으로 굽는 팔로는 결코 주민자치를 안을 수 없다.

바늘허리에 실 매듯 잘못 수립된 계획

시범실시계획수립과정에서 주민자치 전문가 자문회의와 공청회도 없이 경험도 미비한 사무관이 사적인 자문을 받아서 계획을 수립했다. 주민자치와 협동조합, 주민자치와 마을기업도 구분하지 못하는 지식으로 대한민국의 주민자치를 위한 계획을 수립한다고 한 것이다. 조례안을 보면 더 가관이다. 1999년의 조례보다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우리에게는 주민자치로 15년의 축적한 경험과 현장을 경영한 전문가들이 있건만, 안행부는 그런 경험과 풍부한 지식을 살리지 못하고 사무관의 단견으로 1999년의 실패를 그대로 되풀이했다. 일부는 후퇴하기까지 했다.

바늘허리에 실을 매듯이 잘못 수립된 계획에 의해 현장에서는 처음에는 기대, 나중에는 불만, 다음에는 욕설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정부 경영과 지역사회 경영은 다르다

그래서,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급조한 것이 ‘시범실시 컨설팅단’이라는 패착敗着이다. 행정학과 대학교수 위주로 위원회에 시범실시를 위한 컨설턴트로 배치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주민자치위원을 대상으로 주민자치 현장을 잘 모르는 대학교수가 현장에 필요한 것을 구체적으로 컨설팅하는 풍경이 연출된 것이다.

시범실시 현장에는 별 도움도 되지 않으면서 컨설팅 교수와 주민자치위원들의 분노를 동시에 사는 어리석은 일을 아주 쉽게 저지르고 말았다. 탁상행정이 초래한 비극적 결과다. 이는 먼저, 정부를 경영하는 행정학은 지역사회를 경영하는 자치학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다음으로 이론을 전공하는 교수에게 현장의 실무를 맡긴 것이다. 그리고 잘못된 시범실시계획을 현실에 맞도록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밀어 붙였다는 것이다.

주민이 더 잘하는 자치사무, 재기획 하자

지방자치발전위원회에서 주민자치를 담당하는 분과위원들 중에서 주민자치를 주제로 논문을 쓴 사람이 몇 명이나 있는가? 아마추어가 주민자치를 담당해 저지르는 실수를 1999~2014년 동안 우리는 충분히 경험했다. 이제 그 경험을 살리고 지혜를 반영하면 된다. 앞으로 관료들이 주민자치까지 독점해 왜곡시키지 않는다면 자치는 절로 흘러가게 된다.

관료들이 일제의 잔재를 그대로 답습해 아직도 ‘행정사무’로 선점하고 있는 일들 중에서 주민이 더 잘 할 수 있는 ‘자치사무’를 분리해 주민에게 돌려줘야 한다. 이 자치사무에 예산과 조직을 붙여서 주민의 ‘자치사업’으로 재기획 하자. 그렇게 한다면 우리가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룬 것처럼 압축적으로 자치의 성장을 이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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