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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규정 없는 주민자치회의 위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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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규정 없는 주민자치회의 위험성
  • 채진원 경희대 교수
  • 승인 2021.10.30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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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주민자치 20년’ 다시 생각하는 주민자치

2021년 올해는 지방의회선거를 실시한 1991년을 기준으로 지방자치가 부활한지 30년이 된 해이면서 2010년 지방행정체제개편위원회에서 주민자치모형을 설계하여 제안했다는 점에서 주민자치를 시작한지 20년이 되는 해다. 여러모로 지방자치와 주민자치에 대해 성찰하는 계기가 되는 전환점이다.

2022년에는 제8회 동시지방선거가 있는 만큼 지방자치의 문제점을 미리 진단하고 개선방향을 찾는 논의가 필요하다. 지방자치는 주민자치의 측면과 단체(기관)자치의 측면이 있는데 단체자치에 비해 주민자치가 소홀히 다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풀뿌리민주주의 본령인 주민자치의 관점에서 주민자치회의 문제점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특히, 주민자치회를 이루는 참여하는 주민회원을 명료하게 설정하지 않고, 주민회원과 유리된 위원이거나 소수 주민이 참여하는 추첨제로 대신하고 있는 점은 주민자치회가 관변단체로 전락할 위험성이 있는 만큼, 이 문제에 대해 진단해보고 주민자치회의 실질화를 위한 개선방향을 토론해 봐야 할 것이다.

 

주민자치 20년에 대한 성찰과 평가

지난 20년간의 주민자치 실시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여러 의견이 있지만 지방자치연구의 권위자인 안성호 한국행정연구원장의 의견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그는 지난 2021826한국의 읍면동 자치제 기본안 도출을 위한 세종콘퍼런스에서 한국 읍면동 주민자치제의 한계를 발제문(국가 균형발전과 자치분권 실현을 위한 읍면동 자치제 모델)을 통해 “1949년 제정된 지방자치법은 시읍면을 기초지방자치단체로 하였고, 1952년부터 읍면 자치제를 시행했으나 자치 경험의 미숙과 중앙정부의 과도한 개입으로 표류하다가 19615·16 군사정변으로 중단되었다고 진단했다. 이어서 그 결과 현재 한국의 지방자치는 풀뿌리자치가 소멸되었고 기초자치단체인 군 단위 자치는 광역지역으로 인해 주민참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분석하였다. 아울러 행정안전부는 지난 20년간 주민자치회를 정착시키기 위해 막대한 예산과 인력만 투입하고 주민자치를 정착시키는데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주민자치에 관한 정부와 정치권의 방법론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2020109일 약 32년 만에 국회를 통과하여 개정된 지방자치법을 보면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지방자치법 개정안은 분명 지방자치의 한축인 단체자치의 측면을 한 단계 진전시키는 성과를 보였다. 하지만 주민자치의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주민자치회 근거 마련 및 활성화(안 제13조의3)”에 대한 규정은 이견이 있다는 이유로 삭제하여 큰 오점과 논쟁거리를 남겼다.

국회가 삭제한 정부안 원안에는 주민은 풀뿌리자치의 활성화를 위하여 읍면동별로 주민자치회를 구성하여 운영할 수 있다외에 7개항이 있었으나 주민자치의 역량 부재, 시기상조 등의 이유로 전부 삭제되었다. 후속 조치로 정부는 주민자치회 제도 개선안 마련 및 법률 개정2021년 주요과제로 추진하고 있으며 국회의원들도 주민자치회 관련 입법발의에 나섰다.

국회의원들이 입법발의한 관련법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그동안 주민자치운동을 선도해온 한국주민자치중앙회 전상직 대표회장의 의견에 주목해보자. 그는 이명수, 김두관 의원 발의안을 제외한 한병도, 김영배 의원 등이 발의안은 주민자치회의 가장 기본적인 사항이라 할 수 있는 회원 규정이 모호해서 주민자치회의 핵심인 주민 없고 자치 없는 주민자치회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하고 있다.

또한 그는 한병도, 김영배 안이 주민자치회는 주민으로 구성된다는 식의 애매한 조항을 담고 있으며 주민자치회 회원으로 구성되는 최고의결기관인 주민총회주민자치회와의 관계 설정 또한 모호하게 기술되어 있어 실제 주민이 배제되고 현 읍면동장들과 관계하는 이른바 위원들이 그 자리를 채울 가능성이 커서 민주적인 주민자치회와 거리가 있다고 평가한다.

이어서 전 회장은 김영배 의원안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주민자치회 사무국 직원을 공무원으로 배치하는 관련 조항에 있다고 지적한다. 한마디로 관치를 존속시키려는 조항이라는 것이다. 또한, 주민자치위원을 추첨제로 규정한 김영배 의원안은 주민자치회를 무력화 하는 대표적인 예라고 문제점을 비판하고 있다.

 

주민자치회가 마주한 문제점들, 그 원인은?

주민자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영국, 미국, 스위스 등의 선진국처럼 정부는 아래로부터 참여하는 읍면동 주민들에 의해 자생적으로 주민자치회가 설립되고 실제적인 주민들에 의해 민주적으로 운영하도록 보충성의 원리에 따라 보조하고 지원하게는 자연스러운 접근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지난 20년 동안 정부와 정치권이 보여준 주민자치에 대한 접근은 풀뿌리민주주의가 이상으로 내거는 실질적인 주민자치회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 단적인 예는 주민자치회주민자치센터주민자치위원회로 대신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2013년부터 시범사업을 통해 주민자치회를 모색하였으나 이것 역시 가장 중요한 사항인 참여하는 회원개념을 빠뜨려서 주민 없는 주민자치회자치 없는 주민자치회로 대신하려 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주민자치회에 대한 개념 설정이 제대로 안되었다는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92월에 읍면동 사무소를 즉각 폐지하고 주민자치회로 대체하라라 지시했지만 공무원들의 무지와 반발로 인해 읍면동은 존치된 상태로 그 이름만을 주민자치센터로 바꾸고, 주민자치회를 주민자치위원회로 바꿨다. 이에 따라 지난 20년이란 적지 않은 시간, 그리고 그동안 투자한 막대한 비용에도 불구하고,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탓에 해당 지역주민들이 진성회원으로 참여하는 실질적인 주민자치회에 도달할 수 없었다.

현행 주민자치회의 문제점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관제화되고 관치화된 주민자치회의 성격이 강하다는 점이다. 마을이나 동네 주민들이 자유롭게 참여하면서 주민 다수의 의사를 대표할 수 있는 주민자치회가 구성되지 못한 채 구청장과 읍면동장의 영향력을 받는 관변화된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 읍면동과 통리 단위의 해당 주민들이 진성회원으로 참여하는 주민자치회가 설립되어 마을계획을 수립하고, 마을총회를 거쳐 사업을 수행하고, 위탁사무를 수행하는 실질적인 주민자치회가 되지 못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점은 국회에서 입법발의된 주민자치회 관련 법안이 그동안 문제점으로 지적된 다수 회원의 참여부재 문제를 시정하지 않고 그대로 반복한다는 것이다. 법안들은 주민들이 해당 주민자치회의 회원이라고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고 주민으로 구성되는 주민자치회라고 모호하게 규정하여 관치와 관제가 끼어들어 혼란의 빌미를 충분히 제공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점이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지만 핵심적으로 두 가지를 짚으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제도적으로 볼 때 1991년 지방자치제를 부활시켰지만 1988년 지방자치법을 개정하면서 종전에 풀뿌리자치였던 읍면자치제의 전통을 부활시키지 않고, 박정희 군사정부가 만든 군자치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점이다. 이것은 한국에서 자라난 풀뿌리 자치의 전통을 되살리는데 치명적인 약점을 드러내고 있다. 1952년 우여곡절을 겪어 어렵게 도입한 지방자치제도는 19615·16 군사쿠데타로 중단되고, 풀뿌리자치인 읍면자치제는 폐지되었다. 박정희 정권은 그 대신 군자치제를 도입했다. 그 후 1989년 지방자치법 개정안은 ·면자치제의 부활 없이 군사정부가 도입한 군자치제를 그대로 답습했다. 이에 따라 지방자치가 부활된 이후에도 주민은 선거를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중앙집권적 생활양식은 달라진 게 없다. 주민이 스스로의 삶을 결정하고 실천하고 책임을 지는 주체로서 지위를 찾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실종된 우리 풀뿌리 자치의 전통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우선 학술적인 차원에서 지방자치는 크게 주민자치단체자치가 있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보통 지방자치는 주민들의 자발적 의사결정체 전통을 지니고 있었던 영국의 앵글로 색슨(Anglo-Saxon)으로부터 연유한 영미 보통법계통의 주민자치와 중앙집권적 전통이 강했던 프랑스와 독일로부터 연유한 대륙법계통의 단체자치로 구분된다.

단체자치는 지방자치를 실현하기 위한 형식적, 법제적 요소에 속하고, ‘주민자치가 지방자치의 본령이라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주민자치보다 단체자치적 요소가 강하다. 당연히 지금의 군자치제읍면동 자치제보다 더 단체자치에 가깝다.

둘째, 첫째와 연관된 것으로 주민자치의 핵심인 보충성의 원리’(the subsidiary principle)가 무시되고 있는 점이다. ‘보충성의 원리는 사회구성의 기본원칙으로서 자조의무를 핵심으로 하는 청교도들의 직업윤리에 기반해 자유를 추구하는 개인주의적 생활습속을 말한다. 시민의 자조노력과 창의에 의해 달성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전면적으로 개인에게 맡기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원리는 자조노력에 의해 개인의 생존이 가능하지 않은 경우에 비로소 사회집단이나 상위의 자치단체(자치체나 주정부) 혹은 국가가 관여하고 개입할 수 있다는 원칙을 말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충성의 원리는 전통적인 서구 그리스도교 사회에 있어서 개인주의(individualism)’ 혹은 인격주의(personalism)’의 사상에 입각한 관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자유와 책임이라고 하는 인격주체로서의 개인을 존중하는 사회에서 보충성의 원리는 자연스럽게 발현된다. ‘보충성의 원리가 작동하고 있는 주민자치의 본 고장인 영국의 정치가 브라이스가 설파한 것처럼 주민자치는 민주주의 학교이며, 민주주의의 성공을 보장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장치일 수밖에 없다. 시민들은 보충성의 원리에 따라 자유롭게 참여해서 마을의제를 발굴하고 주민총회에서 토론과 소통을 하면서 대화와 타협을 익히게 된다.

문재인 정부도 보충성의 원리를 언급하기는 했지만 그 원리를 일관되게 관철시키지는 못했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헌법 개정안에 보충성의 원리를 담은 바 있다. 헌법개정안 제9장 제121조는 지방정부의 자치권은 주민으로부터 나온다. 주민은 지방정부를 조직하고 운영하는 데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ˮ고 명시하였다. 특히, 9장 제1214항에는 ʻʻ국가와 지방정부 간, 지방정부 상호 간 사무의 배분은 주민에게 가까운 지방정부가 우선한다ˮ보충성의 원리를 명시적으로 제시하였다. 하지만 이런 보충성의 원리는 제21대 국회가 지방자치법에서 주민자치회 규정을 삭제하는 오류를 범하면서 실현되지 못했다.

 

읍면동 주민자치회의 새로운 부활 필요

우리나라는 1991326일 기초지방의원 선거와 1995627일 자치단체장 선거를 통해 지방자치제를 부활시켰다. 하지만 1958년 폐지된 읍면동 선거는 부활하지 못해 지방자치는 부활하였으나 주민자치는 부활하지 못하고, 단체자치만 있을 뿐 주민자치가 없는 현실이 되었다. 그 결과 읍면동사무소는 주민자치의 공간이 아닌 행정의 말단기관으로 전락하였다.

이제라도 바른 길로 가야 한다. 주민자치 선진국들이 하는 것처럼 주민도 없고 자치도 없는 관변화된 성격이 강한 주민자치회를 타파하고 보충성의 원리가 지켜지도록 읍면동 단위의 주민 전체를 구성원으로 하는 읍면동 주민자치회를 새롭게 부활시켜야 한다. 주민자치 선진국들은 오랜 기간 동안 풀뿌리 주민자치를 통해 마을자치에 대한 사랑을 애국심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선진국들은 국가가 생활문제를 해결해 줄 것을 요구하는 대신 주민이 스스로 해결하는 능동적 자치의식을 키워왔다. 주민이 직접 참여해 공공의 문제를 토론하고 해결하고 있는 것이다.

풀뿌리 주민자치는 주민의 자유를 실천하고 책임지는 훈련장이다. 읍면동 단위의 풀뿌리 주민자치회를 통해 작은 생활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자유롭고 덕성 있는 공화시민을 육성함으로써 광역단위와 국가의 민주주의도 지키고 감당할 역량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다가오는 202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주민자치회의 실질화 어젠다외에 읍면동장 및 읍면동의회 의원 직선제 부활’ ‘전국정당과 구분되는 로컬정당 허용’ ‘기초선거 단위 중앙당 공천제 폐지와 지역주민 공천제 제도화’ ‘마을(주민자치)만들기에서 마을(주민자치)가꾸기로의 인식전환에 대해서도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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