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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로 가는 여정을 되돌아보다; 사회학적 관점에서 풀어본 주민자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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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로 가는 여정을 되돌아보다; 사회학적 관점에서 풀어본 주민자치
  • 김지영 서울시립대 교수
  • 승인 2021.10.30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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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주민자치 20년’ 다시 생각하는 주민자치

개념으로서의 자치, 실천으로서의 자치

흔히 자치라고 할 때 자치가 이루어지는 공간을 생각하면 읍면동 범위보다 좁은 마을 정도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자치를 이루어내는 주체 역시 그 읍면동 공간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주민을 자연스럽게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자치라는 말 속에는 주민이 읍면동에서 살아가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는 뉘앙스가 포함되어 있다(전상직, 2020).

이렇게 보면 자치는 삶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공간에서 일상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문제를 능동적으로 풀어간다는 의미를 가진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자치에 담긴 공간적 의미, 주체, 다루는 문제의 영역은 그 어느 것도 자치에서 누락될 수 없는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자치를 주민자치라는 말로 바꾸어도 어색하지 않은 이유는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요소가 자치 안에 긴밀히 연계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자치를 개념적인 수준에서 바라볼 때 합의되어진 요소이다. 자치가 개념의 수준을 벗어나 현실세계에서 실천될 때 위에서 언급한 세 요소는 모두 등장하지 않기도 하고 부분적으로만 등장하기도 한다.

 

한국 사회에서 자치가 정착해 온 과정

한국 사회에서 나타난 자치가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주민자치의 공백기를 거쳐 주민자치가 부활했을 때에도 한국사회의 자치는 주민이 스스로 시장, 군수, 시도지사를 선출하는 정치 제도적 측면에 머물러 있었다. 이때의 주민은 마을의 일을 해결해 나가는 주체라기보다는 투표권을 행사하는 존재였다. 그 이후 주민자치위원회 정책이 전개되었을 때에도 주민은 여가 및 취미활동을 하는 친목 공동체의 일원으로 머무른 경우가 많았고 마을의 일을 발굴하여 능동적으로 해결해나가는 존재라고 보기 어려웠다.

2010년 이후 주민자치가 실질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주민자치회가 시범실시 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도 행정안전부가 제시해준 모델의 틀 안에서 활동하는 것 자체가 주민의 자치에 어긋난다는 주장이 여러 차례 제기되었다. 현재도 주민자치회가 의사결정기구로서 역할을 담당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비판은 학자들뿐만 아니라 주민자치위원들로부터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자치의 세 가지 요소가 어긋나면서 벌어진 일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국 사회에서 주민이 마을의 문제를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간다는 의미의 자치가 부분적 또는 제한적으로나마 시도되기 시작한 것은 20년 전으로 그 역사가 길지 않다. 그러나 마을의 문제가 지난 20여 년 사이에 갑자기 발생한 것은 아니었다. 훨씬 이전부터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는 언제나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눈앞에 놓여있었다. 이러한 문제들은 마을의 공동체를 통해 해결되어 왔지만 1960년대 이후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지역의 인구가 대량으로 유출된 까닭에 마을의 상부상조하는 공동체의 성격은 크게 퇴보하게 되었다. 반면, 각 지역에서 도시로 이주한 수많은 사람들 역시 새로운 거주공간에서 이전과 같은 끈끈한 마을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았고 공동체를 통해 마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도 어려워졌다.

이재열(2006)은 실질적인 공동체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이 도시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구축해나가기 보다 점점 원자화되었다고 보았다. 그리고 마을의 주민이 공동체가 아니라 원자화되었을 때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주민끼리를 넘어 시장과 정부를 향하게 되었다는 점을 짚고 있다. 다시 말하면, 주민자치의 공백기동안 사람들은 마을에서 생겨나는 문제를 수평관계(주민끼리의 관계)가 아니라 수직관계(시장이나 정부)로 해결해 나가는 것에 익숙해졌다는 것이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한국사회는 전통적인 마을공동체를 대부분 잃어버렸고 이를 대체할만한 공동체를 만들지 못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자치는 마을의 일을 주민들이 함께해결해 나간다는 의미가 아니라 마을에 살면서 생기는 문제를 개인적인 연줄 또는 행정력에 기대어 해결하거나 마을의 문제 자체를 행정이 발견해 주는 형태로 고착화되어 갔다.

 

주민이라는 정체성은 회복될 수 있는가

한국은 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주민자치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전쟁 이후 산업화와 도시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주민자치 실천할 기회를 오랫동안 놓쳐왔다. 그 과정에서 많은 주민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수평적 유대감을 상실하고 공동체라는 뿌리를 잃어버렸다. ‘우리라고 하는 단어는 마을에서 함께 사는 사람들을 향해 사용되는 단어라기보다는 같은 직장이나 친목조직 등에서 더욱 익숙하게 사용되어 왔다.

도시중심의 개인사회가 도래하면서 주민은 개인에 낯선 정체성이 되어갔다. 나는 주민인가? 이곳은 나의 마을인가? 나는 마을의 문제를 다른 주민들과 함께 해결할 의지가 있는가? 이러한 물음에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만약 주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가진 경우라 할지라도 이동이 빈번한 사회에서 주민이 된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공동체에 적응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기고 있다.

마을에서 일상생활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주민이라는 정체성을 친근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수평적 유대감도 만들어질 수 있고 이러한 유대감이 강화되어야 마을의 문제에 대해서도 열린 마음으로 의견을 교환할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은 정부나 행정기관이 주입해 줄 수 없다. 일상을 공유할 수 있는 장()이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에서라도 풍성하게 구축되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경험이 축적되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자연스러움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데 현대사회에서 거주공간을 바꾸어가는 속도를 감안해보면 많은 사람들에게 이와 같은 시간을 확보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제한된 환경에서 자치로 가는 여정

주민자치가 이루어지기 어려운 이유는 개인적 차원과 제도적 차원에서 살펴볼 수 있다. 먼저 개인적 차원에서 주민자치가 이루어지기 어려운 이유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주민자치 공백기 동안 개개인에게 주민이라는 정체성이 상당부분 사라졌다는데 있다. 개인이 가진 주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아래로부터의 경험이 축적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그럼 제도적 차원은 어떨까? 2010년 이후 주민자치회가 도입되면서 주민자치회의 제한적인 기능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김찬동(2014)은 주민자치회 시범실시 이후 불거진 문제로 주민자치회에 주민자치위원만 있고 주민이라는 회원이 없는 점, 주민자치회가 마을공동체에 뿌리를 두지 않은 점을 들었다. 또한 주민자치를 위한 회비가 존재하지 않고 주민자치를 행정관료제가 지도하는 형태를 띠고 있었다는 점 역시 문제로 꼽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민자치회라는 제도의 출범은 일상생활의 무대가 되는 마을에서 자치를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심익섭, 2015). 주민자치회에서 활동하는 주민자치위원은 무보수의 명예직이지만 그동안 월간 주민자치에 소개된 주민자치위원들의 경험담에는 점점 더 마을에 대한 애착이 생겼다는 의견과 마을을 위해 더 열심히 일하고 싶다는 의견이 다수를 차지한다(김종완 외, 2014).

이와 같은 경험담은 제한적인 제도라도 일단 제도가 마련되면 제도라는 틀 안에서 주민이라는 정체성을 새롭게 발견하거나 강화시키는 개인이 생겨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다시 말하면 제도를 통해 주민으로서 활동하는 경험이 축적되면서 개인적 차원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질 수 없었던 주민 정체성이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체성의 회복 그 이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러나 제도적 차원이 주민자치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라고 봐야 한다. 제도의 변화나 도입을 통해 자치를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제한적으로나마 얻게 된 주민들은 자치활동을 통해 주민자치의 필요성을 실감하고 주민자치에 열심을 내게 된다. 하지만 김찬동(2014)이 언급한 것처럼 주민자치회라는 제도는 풀뿌리의 주민 개개인과는 거리가 있는 주민자치위원의 활동무대이기 때문에 주민이라는 정체성이 마을에서 살아가는 전체 주민에게 확대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주민자치회 활동에 대한 연구에서 주민자치회의 대표성이나 마을의 다양한 집단과의 협력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만 보아도 주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한 이후 주민자치를 지속적으로 이루어내기 위한 과제가 다수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민자치가 주민자치회 만의 활동에서 벗어나 본래의 개념적 차원에서 강조하는 주민, 마을, 마을의 문제라는 세 가지 요소가 어우러지는 활동으로 회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주민자치회안에 주민들이 포섭될 수 있는 통로가 더 많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와 함께 그동안 마을에서 겪는 문제를 주민끼리수평적 수준에서 해결하지 않고 수직적 차원에서 행정적으로 해결하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들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이들이 볼 때 주민자치회가 내놓는 의견과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타당하고 투명하다면 주민자치회를 주민으로부터 격리된 집단으로 오인하는 문제가 줄어들게 될 것이다. 또한 이들이 생각한 마을의 문제를 행정기관이 아닌 주민자치회를 통해 해결해 나가고자 하는 의지도 생길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개념 그대로 실천하지 못한 주민자치가 개념을 충분히 살리는 형태로 실천되기 위해서는 주민으로서의 정체성 회복과 제도적 차원의 노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주민자치의 공백기가 길었던 만큼 앞으로 주민자치를 되돌리는 기간도 짧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이 시간동안 최대한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경험을 축적해가는 것이 앞으로 한국사회에 개념에 맞는 자치가 실천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한다.

 

<참고문헌>

김종완, 이보락, 맹영준, 조병진, 강갑석, 홍사문, 김남제, 홍성택, 한종태, 이형열, 이태규, 김홍장(2014). [솔직토크1 주민자치회 시범실시에 대해 토로하다] “어려움 속에도 우린 이렇게 하고 있다”. 월간 주민자치, 35, 62-67.

김찬동(2014). 주민자치회 제도의 향후방향. 지방행정연구 28(3): 61-85.

이재열(2006). 지역사회 공동체와 사회적 자본. 지역사회학 8(1): 33-67.

심익섭 (2015). [지방자치철학과 자치이념에 토대를 둔 주민자치 제도화와 활성화 제언] 주민자치회, 근본으로 돌아가라. 월간 주민자치, 48, 23-27

전상직 (2020). 주민자치 형성 원리에 대한 소고 - 한국에서 성공할 수 있는 주민자치를 기획하기 위한 원리적 접근 한국행정학회 학술발표논문집, 429-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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