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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를 보장해주는 보조성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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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를 보장해주는 보조성 원리
  • 박문수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운영연구위원
  • 승인 2021.10.31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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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주민자치 20년’ 다시 생각하는 주민자치

수도()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가 사는 수도권이 나라 전체라 생각하는 것 같다. 그들한테는 지방 소재 광역시조차 안중에 없어 보인다.”

수도권 소재 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하는 어느 선배의 말이다. 참고로 이 선배는 남쪽의 한 광역시 출신이다.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이런 말로 수도권 사람들의 무신경한 중심(中心) 의식을 비판해왔다.

지방이라는 말 자체가 중심의 대립쌍이다. 그러나 둘 사이의 위상에는 큰 차이가 있다. ‘중심(centro): 서울주변(pheri­pheri) : 지방이라는 위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서울에 올라간다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는 서울이 대한민국의 중심이라는 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어떤 이들에게는 자신이 사는 곳을 지방이라 부르는 것이 경멸적으로 느껴질 수 있겠다.

 

민주주의 성숙 수준 가늠하는 보조성 원리

중심-주변의 이분법적 위계구도를 기준으로 지방자치를 이야기하면 자치는 먼 미래의 일이 될 것이다. 그래서 언어에서부터 이 구도를 극복하려는 의지가 드러나야 한다. 모든 지역이 중심이기에 국가는 이 여러 중심의 네트워크라는 의미가 살아나는 단어로 지방을 대체하면 좋겠다. 여전히 지방을 중앙을 지탱해주는 하위 단위로 보는 의식으로 자치를 실현할 수 있겠는가?

중심과 주변의 위계적 이분법 구도의 존속은 분단체제와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대립되는 두 체제가 중앙집권적 구조를 강화하며 이를 정권안보 목적으로 이용해왔기 때문이다. 적어도 안보만은 중앙집권적인 국가가 담당해야 한다는 국민들의 의식이 이를 뒷받침해왔던 것이다. 따라서 분단체제의 극복이야말로 위계적 이분법 구도를 수평적인 네트워크 구조로 만들 수 있는 길 가운데 하나다. 향후 이질적인 두 체제가 하나로 통합되는 과정에서도 자치 경험은 필수적이다. 다문화, 다원사회로 이행해가는 우리의 현실을 보더라도 다양성이 보장되고 존중되는 사회 건설을 목표로 하는 자치는 필수적이다.

대부분의 종교들이 사회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이를 교리로 정해 판단 기준으로 사용하는 종교는 가톨릭이 유일하다. 가톨릭교회는 사회교리라는 이름으로 신자들이 사회 문제를 신앙의 관점에서 판단할 수 있는 판단 기준을 제공하고 있다. 가톨릭사회교리에서는 지방자치를 뒷받침하는 철학적 원리로 보조성(subsidiarity)’을 강조한다. 이 보조성 원리는 인간존엄성 원리(principle of human dignity)’, ‘공동선 원리(principle of common­good)’를 양 날개로 하고 있다. 이에 이 세 원리를 기반으로 현재 지방자치의 방향을 제시해보려 한다.

우선 보조성 원리는 해당 사회에서 상위기구(중앙정부)는 중간(지방정부), 개인이 자립할 수 있도록 상위기구가 자신의 권한을 제한하고 반대로 중간, 개인에게 자율권을 보장해줄 것을 요구한다. 다만 보조성 원리는 이 요구를 강제하는 방법을 갖고 있지 않기에 소극적 의미만을 갖는다. 상위기구인 중앙정부는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듯이 중간, 개인을 자기통제 하에 두고 싶어 해 분권(分權)을 꺼린다. 그래서 밑에서 요구하고 싸우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 이때 상위 기구는 중간, 개인들에게 경제적 제도적 사법적 지원을 통해 자율권을 확대해 나갈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한다.

가톨릭교회가 정치 생활에서 이 보조성 원리를 강조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이러한 조건을 먼저 갖춰야 인간 존엄성을 보장하기가 쉬워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그 사회에서 최약자의 인권이 어느 정도 존중되는가를 보고 해당 국가 민주주의의 성숙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고 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실제로 국가 권력이 중간, 하위 기구들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보장할 때 개인의 인권이 신장될 수 있고 자치 범위도 넓어진다. 개인의 인권을 광범위하게 보장하는 사회가 공동선을 실현할 가능성도 더 높아진다. 그리고 공동선을 실현하는 사회는 당연히 인간 존엄성을 존중하고, 정치 생활에서는 중간, 하위기구의 자율성을 폭넓게 허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셋은 하나와 같다. 그럼에도 보조성 원리를 세 가지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다른 두 개의 선언적 원리를 실현하는 방법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보조성 원리 담보하는 분권과 참여, 가톨릭사회교리에서도 강조

보조성 원리를 기준으로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방향을 제시해본다.

첫째, 국내 여행을 하다보면 지역마다 나름의 색깔을 내기 위해 지자체에서 수고를 많이 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수많은 지역 축제들이 이러한 예들 가운데 하나다. 주민복지도 과거에 비해 훨씬 더 현실에 밀착돼있음을 보게 된다. 적어도 겉으로 드러나는 이러한 모습들이 지방자치의 장점과 성과이다. 그런데 여기에 자치권까지 폭넓게 부여되면 이러한 장점이 훨씬 더 커질 수 있을 것이다.

가톨릭사회교리는 이러한 분권의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뒷받침한다. “개인의 창의와 노력으로 완수될 수 있는 것을 개인에게서 빼앗아 사회에 맡길 수 없는 것처럼 한층 더 작은 하위의 조직체가 수행할 수 있는 기능과 역할을 더 큰 상위의 집단으로 옮기는 것은 불의이고 중대한 해악이며, 올바른 질서를 교란시키는 것이다. 모든 사회 활동은 본질적으로 사회 구성체의 성원을 돕는 것이므로 그 성원들을 파괴하거나 흡수해서는 안 된다.”(백주년 49) 이 주장에 따르면 지자체도 주민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을 지지하고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 지역 차원에서는 지방정부가 그 지역에 사는 개인, 시민사회와의 관계에서 상위기구이기 때문이다.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에 분권을 요구하는 만큼, 지역민들에게도 분권을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 보조성 원리의 핵심이다.

둘째, 우리나라 시민운동(NGO, NPO)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지적되는 것이 시민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시민들의 참여부족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는 중앙 정치나 지역 정치에서나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렇게 시민들의 참여가 부족한 데도 공공 서비스의 질이 향상된 것은 아이러니다. 그러다보니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고질적 병폐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발전도 더디다.

이는 부분적으로 시민들이 자치를 원하면서도 자치에 합당한 책임을 지지 않는데 기인한다. 지방정부가 주민들의 자치를 부르짖는 만큼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데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 않은 데서도 기인한다. 이렇게 우리나라 지방자치는 시민의 참여 부족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이 점에 대하여 가톨릭사회교리는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보조성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참여이다. 민주정부란 무엇보다 국민들이 국민의 이름으로 국민과 관련하여 국민을 위하여 행사되는 권한과 역할을 얼마나 부여받는지에 따라 규정된다. 따라서 모든 민주주의가 참여 민주주의여야 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이는 시민 공동체의 여러 주체들이 자신들이 수행하는 역할에 관한 정보를 제공받아야 하고 이에 귀 기울여야 하며 이에 참여해야 한다는 뜻이다.”(간추린 사회교리, 189~190) 이 말을 참여 없이 민주주의와 자치가 실현될 수 없다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보조성 원리의 궁극적 목적은 공동선 실현 지향에 있어야

셋째, 보조성은 자치를 보장하는 원리로서는 최선이나 이것이 궁극적인 목적은 아니다. 가톨릭사회교리에서 강조하는 것처럼 보조성 원리는 공동선 실현을 지향할 때 의미를 갖는다. “올바른 의미의 공동선은 언제나 보조성의 원리를 적용하는 결정적 기준이 되어야 하며, 인간의 탁월성에 대한 수호와 증진, 그리고 사회적 표출 방식은 공동선에 대한 요구에 추호도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간추린 사회교리, 187)

시민들의 참여가 활발하고 지방정부가 시민들의 참여를 보장하고 협치에 적극적이라 하더라도 이것이 공리주의적 원리를 실현하는 데만 머문다면 참다운 자치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방자치가 다수의 이익이 아니라 모두의 이익을 보장하는 수단이라 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지방자치를 시작한 일, 지금도 성숙 발전해가는 점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토호(土豪) 세력과 소수 이익집단에 휘둘리는 측면은 자치의 어두운 그늘이다. 지방자치가 소수의 독과점적 이익 실현을 위한 볼모가 되어야 하겠는가? 다수가 아니라 소외되는 이 없이 지역민 모두가 이익을 향유할 수 있는 지방자치가 되어야 할 것이다.

지방자치는 통합된 한반도, 다문화·다원사회로 가는 첩경이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중심-주변이라는 이분법적 위계구도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공고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중심이 더 강화되는 중이고, 4차 산업혁명도 포스트 코로나 사회도 이 중심성을 더 강화할 전망이다. 지방자치가 시급하고 중요한 이유다. 부디 관계자들과 시민들 모두가 이러한 조언들을 참조하여 성숙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데 기여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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