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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향약의 미덕, 어떻게 주민자치로 승화시킬 수 있을까[연구세미나42-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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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향약의 미덕, 어떻게 주민자치로 승화시킬 수 있을까[연구세미나42-②]
  • 김윤미 기자
  • 승인 2022.10.12 15: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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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지역에서 300년 넘게 유지되고 있는 향약의 전통을 어떻게 현대 주민자치에, 그것도 파편화된 도시에서 적용할 수 있을까. 이 같은 내용은 한국주민자치학회가 지난 6일 개최한 남원 입암향약의 운영방식과 공동체연금조성 사례연구를 주제로 한 제42회 주민자치 연구세미나에서 활발히 논의됐다.

이날 발제를 맡은 이춘구 향약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이 발표를 마친 뒤 채진원 한국주민자치학회 학술부회장의 사회로 본격적인 토론이 펼쳐졌다. 먼저 박경하 향약연구원장은 오늘 발표를 들어보니 입암향약은 시대적 변화에 맞춰 적응을 해 왔고 특히 경제적 측면에서 말씀을 해준 것이 상당히 특징적이고 홍익인간의 그 이념에서부터 주민자치를 끌고 나온 것도 인상적이었다. 특히 소개해주신 마을의 경우 마을 주민이 무연고로 세상을 떠났을 때 그 재산이 마을에 귀속된다는 것이 상당히 선진적인 측면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공동체연금을 익산 지역에서 운영했다고 하는 데 이 부분을 더 보완해 주시면 좋을 것 같다고 밝혔다.

박경하 교수는 또 향약과 국가기관, 지자체와의 관계 관련한 얘기도 나왔는데, 예전 향약의 경우 고을 수령의 위임을 받긴 했다. 다만 공동체 일에는 관에서도 일체 관여를 하지 않았다. 완전히 자율적 조직이라고 봐야 한다. 그런데 관의 위임은 받았다. 예컨대 1896년에 나주에서 시행된 동계의 문서에도 관 수령의 수결이 찍혀 있다. 향약은 자율적으로 운영하도록 인정을 받은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전상직 한국주민자치학회장은 현재 주민자치회 조례는 시군구가 만들어버린 것이다. 군수가 구체적인 조항을 세세하게 만들어 다 내려보낸 격인데, 향약의 경우는 향약원들이 규약을 만들어 수령의 사인을 받았다. 수령이 만들어준 것이 아니었다. 이게 시작이다. 규약을 만들어서 보내주느냐 아니면 만든 것을 인정해 주느냐. 주민자치회 설립도 주민들이 만들면 인가해주는 절차로 가야 되는데 지금은 시군구가 조례나 시행규칙까지 만들어서 하니까 조선시대 향약보다도 훨씬 더 후퇴한, 식민지 통치에 가까운 독재를 한다고 볼 수 있다라며 참고로 일본의 경우는 주민자치회를 설립한다고 하면 주민들 동의를 받아 주민들끼리 의결해 제일 처음 규칙을 만들고 대표자를 뽑고 사무소를 정해서 신고를 하면 지방자치단체장이 거부는 못하게 되어 있다. 그러니까 관하고 관계 때문에 인가는 받아야 되지만 조항 조목조목 따져서 간섭하는 것은 못하게 돼 있다. 영국도 마찬가지다. 주민자치라 하면 설립에 관한 자유, 규칙에 관한 자유, 그 다음이 재정에 관한 자유, 인사에 관한 자유. 이런 것들이 전부 다 자치권으로 되고 입암향약, 나주향약도 다 그렇게 했다는 얘기다. 수령이 결재는 했지만 내부 간섭은 안했다. 이런 것들도 이제 체계가 확립될 필요가 있는 것 같고 오늘 아주 좋은 시사가 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전은경 교수는 지난번에 발제자와 함께 입암마을을 방문하기도 해서 더 실감나게 들었다. 일단 발제자는 이런 경제공동체적 성격이 지금 주민자치회를 활성화하는 하나의 중요한 대안이라고 보는 것 같다. 다만 너무 지나치게 이런 측면으로 변화했을 때의 문제점 같은 것도 있을 것 같다. 원래 주민자치의 굉장히 중요한 기능들이 이런 경제적 측면 때문에 좀 위축되거나 축소될 염려가 있지 않을까. 또 경제적인 측면을 사람들이 굉장히 선호하기도 하지만 그 떄문에 주민자치 고유의 성격들이 약화될 가능성이 있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좀 들었다. 또 하나는 입암마을에 가서 느낀 점은, 다른 지역은 다 사라지고 잘 안 되는데 여기는 어떻게 이렇게 수백 년간 향약이 지속됐을까 라는 점이다. 그래서 나름 생각하기에는 그 동네의 물리적 공간, 환경도 굉장히 좋은 동네여서 나름대로 일체감을 갖기에 굉장히 좋은 지리적 특성을 가졌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런 점도 이유가 됐을 것 같고, 또 한편으로는 그 마을에 굉장히 탁월한 지도자가 지금 현재도 살아계시다는 점, 또 나름대로 경제사업을 통해서 회원들에게 실질적 이익이 돌아가게 하는 점 등이 조직을 유지하게 하는 요인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언급했다.

이에 이춘구 연구위원은 경제와 복지는 문화, 교육과 관계가 있는 것 같다. 입암마을의 사례가 참 절묘한 게 그 옛날 향약을 해방 이후에도 그대로 하시다가 마을공동재산을 중심으로 농업협동조합을 설립해 마을사업을 이어오신 걸 보면 비즈니스 마인드도 있고 공유재산의 중요성에 대한 이해도 있으셨다. 물론 공간적인 여건도 중요한 역할을 했고 리더의 역할도 컸다. 그리고 집단지도체제가 잘 유지되고 각 단계마다에 있어서 지도자가 잘 양성되고 그런 과정에서 충분히 숙의가 되는 등의 요인이 있었던 것 같다. 어르신들의 뜻을 받아서 하는 그런 과정들, 민주적인 절차와 체험 형성. 이 모든 것의 전제조건은 단결이다 유대감, 연대감을 깨뜨리면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경제사업을 하는 것 자체가 나에게 이익이 돌아온다는 것인데 이런 입암마을의 경우 연금 설계를 잘 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고 답했다.

전상직 회장은 예전 향약의 전통이 유지가 되는 배경과 관련해서는 공동으로 할 수 있는 힘이 있다. 문제는 공동으로 하는 것과 이익간의 관계다. 내가 이탈하면 내게 돌아오는 손해가 있을 때 사람들은 공동체에서 이탈을 안 한다. 이익은 내가 참여했을 때 덕을 보는 것이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향약에 있는 것이 향약에서 나가는 것보다 훨씬 좋은 게 있었을 것 같고 이런 요인들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을 것 같은데 그 구체적인 내용들은 좀 더 연구하고 찾아봐야 할 것 같다. 또 하나는 그렇게 잘 되는 공동체에는 상당히 유능한 사람이 이타적으로 활동을 한 경우가 많다. 또 적대적인 배타성은 아닌데 이웃 마을과 내 마을 간의 경쟁적 배타성은 충분히 있다. 적대적 배타성이 부정적인 것이지 이 경쟁적 배타성은 긍정적인 것이다. 이런 것들을 잘 공부해 보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박경하 교수는 입암마을은 300년 동안 유지해온 역사성을 갖고 있다. 지금도 이 마을에서 촌계는 의무다. 누가 가입하고 안하고가 없다. 의무적으로 다 가입돼 있고 거기 가입 안하면 손해보고, 공유재산이 있기 때문에 유지가 된다. 이 공유재산은 일제시대에도 일제가 향교를 공유재산으로 인정해준 것처럼 마지막 하위단위의 기층조직인 향약의 공유재산을 인정해 준 것이다. 그래서 1943년까지 계속 이 향약이 유지되었다. 해방 후에도 공유재산이 있으니까 협동조합으로 구성되고, 또 새마을 시대가 되니까 시대에 따라 이걸 바꿔가면서 적응을 해 왔다. 당연히 공유재산은 N분의 1로 갈 수밖에 없는 구조이고 이게 계속 유지가 됐던 건 지금 봐도 사람의 리더십이 중요한데 지금 아흔이 넘은 한 어르신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이일을 해온 거다. 지금도 그 마을 입구에 가면 마을 사람들이 세워준 이분의 공덕비가 있을 정도다. 그 다음에 거기 주도성씨 대표 열여덟 분이 집행위원이 하는 것은 아마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가문의 대표들이 나오지 않았겠는가 생각된다. 역사성도 가지고 있고 중요한 재정도 가지고 있고 공유재산도 있고, 그 사업 그 동네에 대한 애향을 바탕으로 한 리더십을 갖춘 인물들이 있고, 이 삼박자가 다 맞아떨어진 지역이다. 이런 요소들이 향약이 지금까지 유지된 요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춘구 연구위원 또 “20208월엔가 미국의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서 뉴 스테이트먼트를 발표했다. 미국의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은 우리나라의 전경련과 같은 것이다. 미국의 200개 대기업의 오너들이 사인을 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우리 기업은 제일 먼저 고객의 이익을 추구하겠다. 두 번째 근로자의 이익을 추구하겠다. 세 번째 하청업체의 이익을 추구하겠다. 네 번째 지역 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하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주의 이익을 추구하겠다, 이게 미국의 전경련이 발표한 새로운 기업의 목표이자 사명이다. 주주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던 미국의 기업이 바뀐 것이다. 고객이 존재해야 기업이 존재한다. 이에 앞서서 빌 게이츠는 창조적 자본주의, 크리에이티브 캐피털리즘을 이야기하는데 이는 지금의 ESG 개념에 대한 강조이고 이익추구 우선이 아닌 소비자, 고객 우위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부분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상직 회장은 조선시대엔 관의 방치 속에서 자치를 했다, 가능한 얘기다. 주민들이 자치를 해도 관료들이 개입을 안 했다. 그 시대에도 자치할 수 있는 공간이 뭔가 수평적으로 형성이 되었었는데, 지금은 기획 속에서 자치를 해야 된다. 방치 속에서는 공간이 있는데 기획적으로 자치를 해야 한다면, 법적으로나 제도적으로 예산이나 재정 등 모든 것들을 확보해야 비로소 자치 공간이 마련되는데 이게 가장 큰 문제이다. 1999년도에 주민자치센터를 만들 때 읍면동장이 주민자치위원을 뽑으라고 하니까 읍면동장이 자기가 필요한 사람을 뽑았지, 주민자치 할 사람을 전혀 안 뽑았다. 이렇게 20년이 지나고 보니 주민자치가 우스운 일이 되어 버렸다. 첫출발을 이상하게 해서 망치니까 여기서 출발하기가 더 힘들게 됐다. 차라리 아예 한 게 없었으면 새 그림을 그리면 되는데 이상하게 칠해져 있으니까 지우지는 못하겠고 그걸 고치기가 더 어려워졌다. 이게 참 큰 어려움이다. 오늘 전통 향약이 어떻게 유지돼 왔는지 공부를 잘 했다. 그래서 향약을 주민자치로 현대화시키는 문제도 사업이나 동기, 이런 것들을 반영하면 훨씬 더 잘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고 제안했다.

사진=이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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