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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의 도서관과 미술관을 꿈꾸며, '뉴욕 라이브러리에서' '내셔널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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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의 도서관과 미술관을 꿈꾸며, '뉴욕 라이브러리에서' '내셔널 갤러리'
  • 윤성은 영화평론가
  • 승인 2023.02.27 1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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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람들 그리고 영화
Town in Movie

많은 영화의 배경이 마을이다. 영화 주인공들의 삶의 터전 역시 그들이 사는 마을이고 동네이기 때문이다. 스크린 속 인물들은 배경이 되는 마을, 그리고 이웃들과 때로 갈등하고 협력하며 여러 이야기들을 만들어나간다. 그 이야기의 결말은 해피엔딩이 되기도 하고 비극으로 치닫기도 한다. 앞으로 마을, 사람들 그리고 영화에서는 마을과 사람들의 케미스트리, 그들 사이의 교감과 성장, 변화를 다룬 작품들을 소개한다. 그 속에서 주민자치의 바람직한 방향, 때로 반면교사의 깨달음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자 주]

 

*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프레더릭 와이즈먼 감독의 다큐멘터리를 처음 접한다면, 관람 전에 꼭 말해주고 싶은 것이 몇 가지 있다.

우선, 요즘처럼 바쁜 세상에 넘쳐나는 콘텐츠를 두고 세 시간이 넘는 영화를 선택한 당신의 지적 호기심과 모험심, 그리고 용기에 대한 칭찬. 그리고 처음에는 롱테이크로 보여주는 대화나 회의, 강연 등이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예고. 다시 말해 영화관에서 관람하는 게 아니라면 당신은 5분에 한 번씩 스마트폰의 강한 유혹을 받을 것이고, 몇 번이나 정지 버튼을 누르게 될 지도 모른다는 것. 그러나 러닝타임을 우직하게 견디고 나면 당신은 세 시간 동안 독학한 것보다 열 배 이상은 유식해져 있을 것이고, 세상에 대한 통찰력은 그 이상으로 좋아져 있을 것이라는 격려 등이 그것이다. 프레더릭 와이즈먼의 다큐는 시간을 할애할 가치가 충분하다.

 

다이렉트 시네마라 불리는 다큐멘터리의 가감 없는 스타일

예외 없이, 프레더릭 와이즈먼의 작품은 하나의 공간, 하나의 커뮤니티를 상당한 시간에 걸쳐 집요하게 촬영한 후 그 중 정수(精髓)가 되는 영상들을 추출하고 배치함으로써 완성된다. 세계 5대 도서관 중 하나로 꼽히는 뉴욕 공공도서관(New York Public Library)의 일상을 보여줄 때도(‘뉴욕 라이브러리에서’(2017), 23백여점의 명화를 보유한 런던 내셔널 갤러리의 내부를 탐험할 때도(‘내셔널 갤러리’(2014)) 그는 자신의 제작 스타일을 벗어나는 법이 없다.

다큐를 위해 따로 인터뷰를 하거나 특별한 상황을 만들지 않기 때문에 감독 자신이 그 공간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갖고 있는지는 오직 카메라의 위치 및 그 안에서 펼쳐지는 회의나 대화, 강연 등을 통해서만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흔히 다이렉트 시네마라고 불리는 이러한 스타일은 다큐멘터리가 진실을 보여주는데 유용한 장르이며 한 치도 조작되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에 근거하고 있다. 프레더릭 와이즈먼 감독의 영화에 공간에 대한 가치판단이 최대한 배제되고 미추(美醜)가 두루 담기는 이유다.

그러나 뉴욕 라이브러리에서(Ex Libris-The New York Public Library)’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에는 놀랍게도, 이 기관들의 위상이나 명성에 흠이 될 만한 지점들이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뉴욕 공공도서관과 런던 내셔널 갤러리는 그 역사만큼이나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이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더 나은 방향성을 위해 고민하고 있다. 두 작품 공히 지성과 감성의 보고(寶庫)가 활용되는 다양한 방식을 보여주는 동시에 뛰어난 전문가들을 통해 책 혹은 그림에 대한 양질의 지식도 전달해 준다.

 

지성과 감성의 보고(寶庫)가 활용되는 다양한 방식

뉴욕 라이브러리에서에서는 리처드 도킨스의 강연, 엘비스 코스텔로와의 대화를 비롯해 패티 스미스 등 반가운 명사들의 모습도 볼 수 있고, ‘내셔널 갤러리는 베르메르, 다빈치, 렘브란트, 터너 등 위대한 작가들의 작품이 쉴 새 없이 눈을 황홀하게 한다. 도서관에서는 사서가 이용자들이 찾는 책을 추천해주고, 미술관에서는 큐레이터가 작품의 배경과 해설을 들려준다. 우리네 도서관과 미술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규모가 큰 만큼 세부적인 주제에 대한 전문 인력이 있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특히, 뉴욕 공공도서관의 한 사서는 이용자가 알고 싶은 정보가 들어있는 도서들을 줄줄이 추천하고 볼 수 있는 방법까지 알려주는데, 책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것은 물론 사무적인 태도가 아니라 이용자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두 작품에는 기관을 이끌어나가는 사람들의 회의 장면이 종종 삽입되는데, ‘뉴욕 라이브러리에서가 이 부분에 더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뉴욕 공공도서관은 19세기 뉴욕에 있던 두 개의 도서관을 통합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1911년에 개관한 이후 지금까지 뉴욕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고 있다.

현재 뉴욕 곳곳에 92개의 크고 작은 지점이 마련되어 있으며, 지점마다 특화된 기능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암스테르담로에 있는 브루노 월터 오디터리움은 링컨센터 안에 있는 뉴욕 공공도서관의 한 지점으로, 최고의 예술가가 연주하는 공연장이자 예술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이며 누구나 무료로 교육받을 수 있는 열린 강당이다. , 책을 열람하는 곳이 아니라 여러 분야의 예술을 경험하는 공간으로서의 의미가 크다.

영화는 각 지점들에서 열리고 있는 강좌들의 일부도 조금씩 보여주는데 그 범위는 모든 학문과 교육 분야를 가로지른다. 도서관이 이처럼 여러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랍고 배울 점이 많을 정도다. 특히, 장애인이나 노인 등 사회적 약자 및 소외 계층을 위한 교육이 인상적인데 내셔널 갤러리에서도 비슷한 프로그램들을 볼 수 있다.

 

공공도서관이 예산 확보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방법

그러나 이처럼 도시를 대표하는 도서관도 작은 도서관들과 똑같은 고민을 안고 있으니, 바로 예산 수급과 분배의 문제다.

뉴욕 공공도서관 이사회는 시 예산을 최대한 많이 받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먼저 도서관의 장기적인 방향성과의 접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시의 예산편성은 해마다 유동적이므로 계속 여기에 맞춰 전체적인 도서관 운영 모델을 바꾸는 것은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시 예산 대신 민간 기금을 찾고 이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언급되는데, 여기에도 기부자들이 아닌 도서관이 주체가 되어야 하며, 어떤 사업에 기금을 쓸지 강요받아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 있다.

사실, 뉴욕 공공도서관은 2008년에 시 예산이 삭감된 이후 민간 기금을 통해 도서관을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노하우를 쌓아왔다. 그 결과 지금은 예전과 반대로 민간 기금을 종자돈으로 삼아 시 예산을 따오고 있는데, 고무적인 것은 시 예산도 회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운영진들은 회의에서 시와 협력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아이디어들도 내놓는다.

이를 테면, 뉴욕에 아직도 인터넷 접근성이 떨어지는 인구가 많다(3명 중 1명꼴)는 충격적인 통계를 바탕으로 더 많은 이들이 인터넷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인프라를 만들고 동시에 온라인 교육 서비스 및 공간을 제공하자는 의견이 제시된다. 종이책의 디지털화, 전자책 도입을 비롯해 인터넷 통합 시스템을 광범위하게 활용하고 있는 공공도서관으로서 이것은 시의 지원을 받으며 도서관에도 성과를 낼 수 있는 좋은 프로젝트다.

 

내셔널 갤러리, 운영 이면의 치열함과 흥미로움

내셔널 갤러리의 회의장면에서는 효과적인 홍보에 대해 치열하게 논쟁하는 운영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미술관을 지나가는 자선 마라톤 대회와 제휴를 맺을 것인가 하는 이슈에 대해 홍보 효과를 강조하는 의견과 미술관의 정체성 및 행사의 질을 강조하는 의견이 맞선다. 미디어에 많이 노출 되는 것보다는 잠재적 관람객에게 미술관의 이미지가 어떻게 전달될지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사뭇 날카롭다.

예산에 대한 논의도 있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 또한 2024년이면 200주년을 맞는 런던의 중요한 기관으로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음에도 매년 삭감되는 예산 때문에 꽤 골치가 아프다. 그러나 시민들이 무료로 전시를 관람하고 교육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기본 원칙에 충실하기 위해 이들은 계속 고민하며 방법을 찾는 중이다.

한편,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도 전시 뿐 아니라 각계각층을 위한 교육과 연구, 이벤트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미술품 복원 작업은 무척 흥미롭다. 일반인들은 접하기 어려운 풍경이므로 은밀한 작업실을 들여다보는 재미도 있고, 전문가들의 대화를 통해 복원 과정에서의 쟁점들도 짐작해볼 수 있다. 또한, 과학자, 미술사가, 아티스트의 협업으로 완성된다는 점에서 미술품 복원은 통섭의 영역에 속하며 그것은 뉴욕 공공도서관과 내셔널 갤러리의 융복합 프로그램들과도 맞닿아 있다.

 

두 기관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모습

내셔널 갤러리의 마지막 부분에서 감독은 시낭독과 발레 장면을 삽입한다. 카메라는 피사체와 거리를 두고 있지만 그림과 문학, 무용이 만나 관객들에게 불러일으키는 정서적 효과는 상당하다. ‘뉴욕 라이브러리에서의 마지막 장면에는 과정을 경시하지 말라. 만드는 방식이 우릴 정의한다는 프리모 레비의 말이 언급된다.

오랜 시간 후, 뉴욕 공공도서관과 런던 내셔널 갤러리는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일지 모른다. 그러나 프레더릭 와이즈먼의 다큐멘터리들에 담긴 그 과정, 즉 이 기관들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성실하고 합리적이며 아름답다. 이 다큐멘터리들 또한 그렇다.

 

사진=영화사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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