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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기르는 것이 두렵지 않은 세상을 소망하며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 '다음 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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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기르는 것이 두렵지 않은 세상을 소망하며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 '다음 소희'
  • 윤성은 영화평론가
  • 승인 2023.03.21 1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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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람들 그리고 영화 Town in Movie

많은 영화의 배경이 마을이다. 영화 주인공들의 삶의 터전 역시 그들이 사는 마을이고 동네이기 때문이다. 스크린 속 인물들은 배경이 되는 마을, 그리고 이웃들과 때로 갈등하고 협력하며 여러 이야기들을 만들어나간다. 그 이야기의 결말은 해피엔딩이 되기도 하고 비극으로 치닫기도 한다. 앞으로 마을, 사람들 그리고 영화에서는 마을과 사람들의 케미스트리, 그들 사이의 교감과 성장, 변화를 다룬 작품들을 소개한다. 그 속에서 주민자치의 바람직한 방향, 때로 반면교사의 깨달음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자 주]

 

* 영화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국은 지구에서 사라지는 최초의 국가가 될 것이다.”

영국 옥스퍼드대 인구문제연구소의 데이비드 콜먼 교수의 말이다. 외신들은 한국에 대해 세계사에 유례없는 인구소멸 수준의 감소라는 진단까지 내놓았다. 섬뜩하게 들리지만, 출산율과 인구 예상 수치를 보면 결코 과장이 아니다. 한국은 지난해에만 12만 명의 인구가 감소한데다 이는 직전 해 감소한 인구의 두 배가 넘는 수치이기 때문이다.

고령화사회를 넘어 고령사회에 진입한지 6년 만에 지난 해 출생아는 정부 수립 이후 처음으로 25만 명 아래로 떨어졌다. 한국의 여성 1인당 예상 출산율은 0.78명으로 한 명이 채 되지 않는데 수도인 서울은 0.59명으로 그 보다도 낮다. 이러한 출생율 감소는 당장 잠재성장률을 끌어내리고 있으며 1년 후에는 한국을 초고령사회로 만들 것이고 30년 후에는 국민연금 기금을 고갈시킬 것이다.

16년 동안 280조의 정부 예산을 투입하고도 막지 못한 출생아수 감소의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가장 먼저 한국의 교육환경을 꼽는다. 한국 공교육의 현실은 점점 참담해지고 있다. 광진구의 한 초등학교가 학생수 감소로 폐교되었다는 소식에 이어 최근에는 올해 서울 초등교사 합격자 114명이 전원 임용을 대기하고 있다는 뉴스도 전해졌다.

 

출생율 감소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한국의 교육환경

출생률 감소로 인한 현상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사교육계의 열기는 식을 줄 모른다. ‘스카이캐슬’(JTBC)이나 펜트하우스’(채널A) 등의 인기드라마는 자녀를 일류대학에 보내기 위한 부모들 사이의 전쟁을 비롯해 한국 사교육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어 화제가 되었으며, 입시 매니저 및 일타강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외신들까지도 ‘hagwon’(학원)이 낮은 출생율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라고 보도한 바 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부인하기는 어렵다.

도저히 풀리지 않는 한국의 고질적 교육 문제에 유의미한 질문을 던지는 다큐멘터리가 나왔다. 지난 1월 개봉한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감독 박홍열·황다은, 2022, 이하 방과후 교사’)는 성미산마을 협동조합인 도토리 방과후의 일상을 담은 영화다. 성미산은 서울 마포구 내에 성산 1, 성산 2, 망원동, 연남동 방향으로 뻗어 있는 산이다. 해발 66미터밖에 되지 않지만 마포구에서 유일한 자연산으로, 성미산마을은 이 산을 중심으로 연결된 크고 작은 70여 개의 커뮤니티 네트워크를 일컫는다.

영화에 나오지는 않지만 성미산마을의 역사는 도토리 방과후의 기조 및 맥락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1994년에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협동조합형 어린이집, ‘신촌공동육아협동조합 우리어린이집을 성미산마을 형성의 씨앗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2001년도에 성미산 배수지 개발 계획에 반대하고 투쟁하면서 커뮤니티로서 성미산마을이라는 개념이 더 구체화 되었고 이후 주민들은 끈끈한 연대의식을 통해 다양한 활동을 계속해오고 있다. 2008년에는 자연산을 훼손해 명품 학교를 짓겠다는 홍익재단에 맞서 싸우기도 했는데 이는 전국적인 호응과 지지를 받으며 마을 공동체의 가치 및 역할을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성미산마을은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도 근대가 버렸던 마을의 모습과 순기능을 되찾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좋은 사례다.

성미산마을에는 7개의 관계망이 있다. 애초에 공동육아운동으로 싹텄던 마을이니만큼 첫 번째 관계망은 단연 교육으로, 다양한 공동육아기관들이 마련되어 있다. 현재는 5개의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운영되고 있으며, 어린이집을 졸업한 초등학생들을 위한 방과후 교실들도 설립되었다. 2004년에는 초중고 장애-비장애 통합 12년제 학교인 성미산학교가 개교되었다.

 

방과후 교사전국 최초 마을 방과후의 사계 및 다양한 활동과 시스템 문제 담아

영화에 등장하는 도토리 방과후25년 된 전국 최초의 마을 방과후로,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60명의 학생이 5명의 교사들과 학교 방과후부터 (방학 중에는 오전 8시부터) 저녁때까지 함께 생활한다. 조합원의 출자금과 조합비를 모아서 운영하는 사회적부모협동조합이 이 공동육아의 운영 주체다. 교육의 3주체 중, 교육은 교사가, 운영은 몇 개의 소위에 소속된 부모들이 번갈아 하고 있다. ‘방과후 교사에는 도토리 방과후의 사계 및 아이들의 다양한 활동 뿐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들이 그대로 담겨 있다.

제목처럼 이 다큐멘터리는 아이들이 아닌, 교사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것도 교사들이 방과후에 근무하면서 느끼는 보람보다는 처음부터 정체성이나 진로에 대한 고민 등 어려움들이 많이 부각된다. 방과후는 아이들에게 영어나 수학 대신 노는 법을 가르쳐준다. 놀이를 통해 아이들은 협상하고 협동 하는 법을 배우며 관계를 형성해나간다.

퇴원할 때까지 휴대폰 사용금지라는 규칙 말고 방과후가 달리 강제하는 것은 없다. 교사들은 아이들을 위해 밥을 짓고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주며 산을 오른다. 교사들은 선생님이라는 호칭 대신 각자 지은 별명으로 불린다. 이렇게 활동하는 곳이다 보니 교사들은 어느 학교 교사세요?’, ‘무슨 과목을 가르쳐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 정체성에 회의가 들곤 한단다. 다른 교육기관에서 방과후의 경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정부 지원 없이 운영되는 곳이라 월급도 적은데, 조합원들의 출자금을 높이는 건 방과후의 취지와 맞지 않아 예산회의 때마다 교사와 부모들은 서로 미안한 처지가 된다.

 

교사의 고충 속 아이들의 즐거운 활동과 성장

교사들이 당면한 어려움, 곧 방과후의 어려움은 다큐에서 아이들이 즐겁게 활동하며 성장하는 모습과 대비된다. 아이들은 여기서 놀 권리, 일상 속에서 스스로 배울 권리, 나이를 무론하고 더불어 자랄 권리를 누린다. 매일 실컷 놀다 보면 아이들에게도 어느 순간, 책도 읽고 싶고 공부도 하고 싶은 순간이 찾아와 부모나 교사에게 건의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학부모 내에서 해당 전공자가 자원해 줌 강의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자기주도적 학습도 이만큼 효과적인 게 없어 보인다.

저녁때까지 아이들을 맡아 주니, 맞벌이 부부의 부담을 덜어주는 기관임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미취학 아동일 때부터 학원으로 아이들을 내몰며 입시경쟁에 뛰어드는 세태가 아니라 마을 공동체를 통해 공동육아에 동참할 각오만 되어 있다면 출산도 그렇게 두려워할 일만은 아닐 것이다.

 

고교생 현장실습의 이면-교육계의 어두운 실태

한편, 지난 28일에 개봉한 또 한 편의 한국 독립영화, ‘다음 소희’(감독 정주리, 2022)는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는 십대의 삶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가게 된 고등학생 소희를 따라간다. 사무실 직원이 되었다고 기뻐하던 모습도 잠시, 콜센터에서 직원들에게 종용하는 실적과 진상 고객들의 행패 때문에 소희는 웃음을 잃어버린다. 그나마 자신을 잘 챙겨주었던 상사가 극단적 선택을 하고, 인턴 사원에 대한 회사의 차별까지 알게 된 소희는 회사를 그만두려 하지만 그것조차 쉽지 않다. 담임교사가 취업률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그만두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도 공감 받지 못하는 소희는 혼자서 망연자실 호수를 바라본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다음 소희는 현장실습이라는 명목 하에 십대 취업자들의 노동력을 갈취하는 기업과, 취업률을 모든 것의 기준으로 삼는 교육계의 실태를 낱낱이 파헤친다. 여기서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더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대신 회사, 학교, 이웃의 그 누구도 소희의 고통에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는 점은 곱씹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무기력한 부모, 학생들을 윽박지르는 교사, 직원을 기계처럼 대하는 상사, 자기 일에 바빠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는 친구... ‘공동체라는 유대감이 없다면 우리는 쉽게 그 어떤 그룹에도 편승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마을 공동체가 아이를 함께 돌보는 문화 정착이

방과후 교사를 연출한 이들은 아이 둘을 모두 도토리 방과후에 보낸 감독 부부다. 이들은 내 아이를 데리러 가서 다른 아이들의 이름을 먼저 불러주는 전통이 끊임없이 다른 집에도 관심을 갖게 만들고 공동육아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고 말한다. 현재, 전국에는 19곳의 공동육아 마을 방과후가 있고 44명의 교사가 마을과 함께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방과후 교사가 보여준 몇몇 문제점들을 해결하고 마을 공동체가 아이를 함께 돌보는 문화를 정착하는 것이 한국의 낮은 출산율 문제에도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사진=스튜디오그레인풀/트윈플러스파트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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