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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자치 교착상태, 총량문제인가 조직문제인가 개인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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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자치 교착상태, 총량문제인가 조직문제인가 개인문제인가
  • 전영평 대구대학교 명예교수
  • 승인 2023.07.06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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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평 교수의 자치이야기

전영평
대구대학교 명예교수. 미국조지아대학 행정학 박사. 새마을중앙회 이사. 前 대구대학교 행정대학장·행정대학원장. 한국정부학회장. 대구경실련 공동대표. 저서 <자치의 오류와 지방정부혁신><한국지방자치의 재탐색><인권과 정책> 외 다수

 

주민자치는 통상적으로 주민이 스스로 하는 자치라는 말로 통용된다. 엄밀하게 정의하면 주민이 주민자치회를 결성하고 회원이 되고 회원총회/대표자회의를 거쳐 결정된 사항을 수행하는 체제이다. 여기서 주민은 주소지를 중심으로 한 그 지역 주민을 말한다. 그런데 주소지가 자주 바뀌는 상황에서 정주 개념상 주민의 의미는 희석될 수밖에 없다.

주민자치는 영어로 citizen autonomy(시민자치) 혹은 inhabitants autonomy(거주민자치)라고 하는데 한국의 주민자치는 inhabitants autonomy(거주민자치)와 유사하다. 시민(citizen)은 로마시대부터 참정권과 의무수행 차원의 의미로 사용된 반면, 거주민(inhabitants)은 특정 지역에 정주하여 거주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선진 서구사회에서는 직업 선택에 따라 도시를 중심으로 한 주거 이동성이 큰 편이나 소도시나 농촌에서는 역사적종교적전통적으로 그 지역을 중심으로 한 정주형 주민 활동이 지속할 수 있게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

이에 반하여 단기간에 경제적 압축성장을 시도한 한국은 도시 농촌 간 인구이동, 도시 간 인구이동이 극심하였고, 정보통신의 급속 발전으로 인하여 대면 소통 보다는 인터넷 소통이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모든 거래와 세금납부 민원 등이 전자화되어 처리되면서 정부와 국민 간의 오프라인 접점이 약해지고 주민 간 접촉도 크게 줄어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민자치의 필요성과 중요성, 역할, 실질화 방안을 모색하는 운동과 활동을 전개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한국의 주민자치 운동을 성공적으로 구현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하여 필자는 한국 사회에서 주민자치가 정치사회적 화두로 부상하여 활성화될 수 있는 조건을 크게 3가지 차원에서 제시하고 각 각의 차원에서 주민자치 운동의 활성화 가능성을 타진해 보고자 한다.

첫째는 거시적 수준(매크로 레벨)이고 둘째는 중간 수준(메조 레벨), 셋째는 미시적 수준(마이크로 레벨)이다. 거시적 수준(매크로 레벨)에서는 주민자치에 대한 전체 사회적 관심의 절대 총량이 얼마나 충만한가 하는 것을 논의하게 죌 것이다.

이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필자는 핵물리학/열역학 등에서 제기하는 임계질량(critical mass) 이론을 원용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중간 수준(메조 레벨)에서는 주민자치 운동의 정체성, 조직화, 이슈화, 정책화를 시도하는 옹호집단/조직의 활동 수준 (즉 주민자치 운동의 조직화 수준)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는 주민자치 옹호/반대 옹호 집단의 숫자와 영향력이 주민자치의 성패를 좌우할 수도 있다는 가정이다. 미시적 수준(마이크로 레벨)에서는 주민 개인이 얼마나 강력한 주체성과 자치 의식을 가지고 행동하고자 하는가를 고찰하는 것이다. 이는 각성된 주민 의식과 역량을 가진 주민이 되어야만 참다운 주민자치가 구현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될 수 있다는 가정이다.

이렇듯 3가지 수준에서 주민자치 활성화 가능성을 고찰하는 것은 1)기존의 주민자치 활성화실질화 운동이 한국주민자치중앙회/한국주민자치학회라는 거의 유일한 주민자치 옹호단체에 의해 주도되는 과정에서 주민자치 활성화실질화 사안은 중앙회와 정치, 행정 간의 이슈에 매몰되는 경향이 있었는바 이런 시각에서 벗어나 좀 더 다원적 차원에서 관조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인식, 2)이와 더불어 주민이 강해져야 주민자치가 가능하게 된다라는 당연한 명제 아래 이를 토대로 주민자치의 활성화실질화를 시도해 볼 가치가 인다는 인식 때문이다.

필자가 판단컨대 한국의 주민자치 운동은 메조 레벨에 해당하는 주민자치 운동(옹호)조직-한국주민자치중앙회/한국주민자치학회-의 노력으로 잘못된 제도를 바꾸고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며 이를 정치와 행정이 수용하도록 요구하는 활동에 전적으로 의존한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메타 수준에서의 주민자치 역량에 관한 관심과 마이크로 수준의 주민 개개인의 정체성과 주체성 확장에 대한 고민은 다소 소홀히 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이 글에서는 한국 주민자치의 지체 현상을 세 가지 차원에서 고찰한 후 주민자치 지체를 실효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주민자치 운동의 방향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먼저 첫째 차원에 해당하는 거시적 수준을 검토해 보자.

 

1. 거시적 수준(메타 레벨): 임계질량(Critical Mass) 이론

임계질량(臨界質量, critical mass)은 핵물리학 이론에서 발견된 이론이다. 이는 핵분열성 물질이 연쇄반응을 지속하는 데 필요한 최소 질량을 뜻한다. 임계질량에 해당하는 핵분열성 물질이 모여야 연쇄반응이 지속된다고 한다.

이 이론을 거시적 관점에서 주민자치 운동에 적용해 보면 매우 흥미로운 가설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주민자치 운동, 주민자치 참여가 이제까지 부진한 이유는 주민자치의 격발(triggering)을 위한 임계질량-즉 주민의 자치 요구 질량-이 아직 축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는 가설을 세워볼 수 있다.

한국의 주민자치 역사를 보면 수천 년 전의 원시공동체적 부족자치 관행이나 부여 옥저의 제천의식 참여에서부터 신라, 고려, 조선시대의 향계, 촌계 관행에서 그 원형을 찾아볼 수 있겠다. 그러나 당시의 두레, 향계, 촌계의 위상은 왕조시대, 계급사회 시대에서 생존부조형 협동행위로 유지되어온 것이기 때문에-물론 촌계의 상부상조 협동행위는 자치적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근대 주민자치의 정신과 상통하는 측면이 농후하지만 자유민주주의 선진 문명사회에서 추구하는 보편적 지배 형태로서의 주민자치 체제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따라서 한국과 같은 자유민주주의국가, 주민주권국가, 세계화된 시장경제사회에서 요구되는 주민자치는 민주적이며 전면적인 주민자치가 되어야 하는데, 문제는 한국 사회의 주민자치 내적 역량과 요구가 임계 폭발에 이르도록 축적되지 못하다는 것이다. 즉 주민자치 전면 시행을 위한 욕구의 임계질량이 매우 실망스러울 정도로 작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한국의 주민자치 이슈가 정치적 사회적 붐(boom)을 조성하지 못하고 있으며, 유력한 주도자-대통령, 국회리더, 사회운동리더, 종교리더, 언론리더, 사상가 등-에 의한 주민자치 캠페인을 찾아보기 힘든가를 잘 설명해 주는 것이라 하겠다.

 

2. 중간 수준(메조 레벨): 조직적 주민자치 옹호 운동

주민자치가 현실적 정치사회적 이슈가 되기 위해서는 주민자치 필요성, 중요성을 알려내는 주민자치 운동 리더와 조직이 필요하다. 이는 사회안전 이슈, 환경보전 이슈, 인권 이슈, 여성 이슈, 장애인이슈와 같은 사회적 이슈의 국제적 보편이슈화의 진화과정에서도 명백히 나타난다.

즉 안전, 환경보호, 차별방지 등과 같은 세계적 보편이슈의 전개 진화과정을 보면 이런 문제의 시정을 촉구하고 행동하는 옹호단체, 실천조직의 활동이 필수적이었다. 한국의 경우에도 지방분권, 지역 균형발전 이슈에는 각종 운동단체와 지방자치단체까지 협력하여 소기의 성과를 이루어냈다.

사회문제의 정책화제도화는 그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조직화된 정책 옹호집단이 있어야 하며 그 숫자도 상당히 많아야 하고, 조직간 연대와 리더십이 잘 발달해야 가능해진다. 그런데 한국의 주민자치 이슈의 경우에는 주민자치 운동을 주도하는 단체가 거의 없다는 것이 매우 특이하다.

지방분권 이슈에 대해서는 각종 단체가 만들어지고 연대하고 전국적 단위의 협의회도 만들어지는 등 외관상으로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처럼 보인다. 지방자치에 대한 무관심이 수십 년간 이어 내려오는 과정에서 교착상태에 빠진 지방자치 이슈가 급부상한 것은 지방자치를 정치공학화 하여 전술적으로 지역개발 이슈, 지방분권 이슈, 지역균형개발 이슈로 전개한 것이 가장 주효했다고 할 수 있다. 정치가 불을 붙이고 지방사회-자치단체, 언론, 지방 정치(시민)단체-가 기름을 부은 것이다. 지방분권, 지역균형개발을 요구하는 지방의 옹호단체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것도 사실은 정치기획가들이 그 이슈를 정치선거 이슈로 만들어 낸 이후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렇다면, 지방자치의 가장 핵심이자 실체인 주민자치의 경우에는 왜 이 사안을 정치/선거에 활용하고자 하는 정치기획자도 변변치 않고, 주민자치 구현을 목적으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단체도 발견하기 어려운 것인가.

이는 정치기획자 처지에서 주민자치 이슈는 여타 이슈에 비하여 정치적 흥행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징표이다. 다른 한편으로 주민자치 옹호집단이 더 이상 생겨나지 않는 이유는 주민자치 옹호집단 활동으로부터 얻어낼 인센티브나 신념적 동기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정치 기회 부족과 조직화 동기 부족-로 인하여 주민자치획득을 위한 중간 수준(메조 레벨)의 단체화, 조직화, 연대화가 부실하게 되었다.

만일 주민자치가 먹고 사는 이슈, 자존감 이슈, 가족 안전 이슈와 관련이 있다고 인식된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교통비, 가스비, 전기요금 등 공공요금 인상에는 사회적, 개인적 관심이 엄청난 것으로 치부되는 현상과 주민자치의 방치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을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분명해질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한국주민자치중앙회는 국내 유일의 주민자치 옹호 행동 조직으로서 존재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중앙회의 노력만으로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메조 레벨 조직/단체로서 중앙회가 결성되어 십여 년 동안 활동해 온 것은 전적으로 전상직 대표회장의 리더십과 각성, 투자로 이루어진 매우 신기할 정도로 특이한 경우이다. 그의 노력으로 중앙회에서는 이미 다양한 전략으로 주민자치 운동의 효과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과 노력-중앙회 결성, 한국주민자치학회, 학회지, 세미나, 강의 설치, 강연, 포상, 위헌 소송-을 구사하였으며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러나 주민자치 이슈에 공감하고 조직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주민자치 성취를 위해 이슈 확산과 연대체를 구성할 수 있는 여타 주민자치 옹호 조직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앞으로도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중앙회의 노력은 외로운 깃발 들기수준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3. 미시적 수준(마이크로 레벨): 주민의 자치 주체성과 행동

제대로 된 주민자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주민이 강해져야 한다. 서구의 주민자치가 강해진 근본 원인은 자치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행동하는 주민의 각성 때문이다. 지역 주민 각자가 자신과 가족의 자유와 자존을 지키기 위해서는 공동체 안위에 대한 책임과 참여 의무를 기꺼이 수행하겠다는 의식적 각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주민 스스로가 지역발전의 기본 구성원이라는 정체성 만들기(identity making), 주민자치를 방해하거나 왜곡하는 세력에 대하여 조직적으로 저항하기 (protesting), 주민자치 이슈의 사회적 확산 노력(issue fighting)-정치권 및 언론 대상-을 시도해야 한다. 이러한 일련의 활동을 통해 주민은 정치로부터 제대로 된 주민자치제도를 도입하도록 요구하여 참다운 주민자치의 틀과 관행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현실은 이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자유와 권리, 개인의 풍요와 안정 추구에 익숙한 한국인에게 동네 안위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공동체 참여 독려는 사실상 어렵다. 특히 우리에게는 나의 일이 공동체 일이며, 공동체의 일이 나의 일이다’ ‘공동체가 강해져야 내가 강해지고, 내가 강해져야 공동체가 강해진다라는 명제가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하는 것이고, 공동체의 일은 정부에서 다 알아서 해주는 것이다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대부분의 주민은 이런 식으로 살아도 별 불편이나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가끔 다소의 불편한 문제가 생기기도 하지만 그에 대해서는 집단적 시정을 요구하거나 단체활동을 하기 보다는 모른척하거나 불편을 감수하고 지낸다. 그런 일에 나서는 것이 귀찮고 시간과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나와 가족에 직접 관계있는 일이 아니면 나서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이런 기회주의적, 개인주의적 행동은 결국은 동네의 침체와 경쟁력 저하를 초래하고 정치와 행정에 종속되는 관청의존적 관계를 형성하게 만든다. 이는 개인이 잘되기 위해서는 동네가 강해야 하고 동네가 잘되기 위해서는 자치 의식이 강한 개인이 존재해야 한다라는 자명한 명제를 거스르는 것이다.

문명 선진국이 강한 이유는 자립, 자발, 자존이 강한 개인이 공동체 사안에 대해서도 의무와 책임을 저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개인만 강한 사회, 공동체만 강한 사회는 존재할 수가 없다. 개인만 강한 사회는 사상누각의 허상사회이며, 공동체만 강한 사회는 독재사회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주민자치중앙회/한국주민자치학회에서도 이 문제에 천착하여 여러 차례에 걸쳐 주민자치 참여에 대한 주민 동기화 문제에 대한 세미나를 하였다. 필자 또한 수차례에 걸친 발표와 토론을 통하여 주민자치 참여 부실 문제를 지적하였고 이를 주민 실패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주민자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주민의 욕구 수준의 내용과 동기화 과정에 대한 논의도 전개하였다. 삶의 질 수준이 높아지고 개인주의적 성향이 농후해진 주민은 자존 욕구와 대상에 대한 매력과 보상이 만족스럽다고 느끼지 못하면 주민자치 활동에 참여할 동기유발이 잘 안될 것이다. 아래의 표는 필자가 생각하는 한국 주민자치의 수준을 평가한 표이다.

그렇다면 이런 교착 상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현재로서는 이렇다 할 뾰족한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가능한 해답은 메조 레벨에 위치한 주민자치 옹호조직에 있을 것이다.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정치와 정부를 채근하고 개인의 자치 의지의 중요성을 계몽하는 일은 주민자치 운동을 조직화하고 전략적으로 수행해 온 옹호단체의 몫이라 할 것이다.

주민자치옹호조직이 주민자치 운동의 방아쇠를 당기는(triggering) 일을 계속하지 않는다면 한국의 주민자치는 관주도에 머물거나 아예 사라질 수도 있다. 아래의 표는 주민자치옹호조직을 중심으로 거시, 미시 요소와의 상호작용이 어떠해야 할 것인가를 제시한 것이다. 이 표에서의 제안을 토대로 한국의 주민자치 역량 강화 방안에 대한 실질적 논의가 활성화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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