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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약–새마을운동–주민자치의 현대적 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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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약–새마을운동–주민자치의 현대적 계승
  • 박경하 한국주민자치학회 부설 향약연구원장(중앙대학교 역사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23.08.29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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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하 교수의 향약이야기

조선시대 향촌사회의 자치규약’. ‘향약의 사전적 의미이다. 여기에 바로 이어지는 것은 덕업상권’‘과실상규’‘예속상교’‘환난상휼등 학창시절 역사시간에 달달 외웠던 향약의 4대 강목이다. 다분히 정형화되고 박제화 된 향약에 대한 인식을 바꿔준 것이 바로 조선시대 기층민들의 상부상조 자치조직 촌계이다. 오늘날 주민자치의 한 원형과 단초를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이에 조선시대 향약 연구 전문가로 사단법인 한국자치학회 부설 향약연구원장인 박경하 교수의 향약이야기를 연재한다. 전통시대 향약·촌계를 재조명함으로써 오늘날 주민자치에 주는 의미와 시사점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편집자주]

 

향촌에서의 주민자치 규약의 줄임말인 향약은 전근대 전통사회에서 자치조직으로 존재했었다. 조선시대 중종 대 신진 사림파들이 중앙정계에 진출하여 유교적 향촌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중국 송대 남전현에서 여씨 형제들이 일족에게 시행하기 위하여 제정한 <여씨향약>을 주자가 증손한 <주자증손여씨향약>을 시행하였으나 운영상의 문제점과 정치적 상황 속에서 중단되었다.

 

전통시대의 향약

지방은 기존부터 군현단위에서 사족지배의 향회(향규)와 동단위에서 상하합계 형태의 동계가 있었다. 그리고 뜻있는 수령들이 향촌 통치를 보조하기 위한 목적으로 주현향약을 시행하였다. 향촌 통치와 지배를 위한 향약이 있기 전에도 동리 및 자연촌에서 상민들 간에 상부상조하던 자생적 주민자치 조직으로 촌계가 존재하여 왔다.

기층민의 조직인 촌계는 지배층의 지배이념사상과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사족의 동계 등에 흡수되는 등 외형적 형태는 변화되고 있었지만 그 규모나 모습이 용해되거나 분해됨 없이 생활공동체로서의 자생적 필요를 바탕으로 오랜 전통을 유지하여 왔다.

고종 대 1894년 갑오개혁에서 양반만이 참여하던 향회에 상민도 참여하는 향회를 설치하였다. 1895년 을미개혁에서는 <향회조규><향약판무규정>을 반포하여 군과 면과 리에 대//소 향회를 두어 지방에 관련된 각종 사무를 회의하여 결정하고 리의 존위를 리민이 직접 선출케 한다. 면의 집강을 각 리의 존위 및 선거인으로 하여금 선출케 한다고 규정하였다. 이는 면면히 이어 온 향회의 역사성과 기층민의 주민자치 정신을 반영한 것이었다. 그러나 향회조규의 향회는 19069월 지방제도 개편 때 설치가 다시 논의되었으나 19075월 일제가 장악한 통감부에서는 향회를 폐지하고 지방위원회를 재무서의 자문기구로 설치하였다.

 

일제강점기 관제화된 향약

식민지시대에 3·1운동 이후 일제는 조선의 독립에 대한 열망을 잠재우기 위한 방안으로 지방자치제 실시를 제시하였다. 그러나 1920년과 1930년에 지방제도 개정에서 지방자치제 실시는 허울에 불과하였다. 일제는 전통적인 향약의 자치 기능을 강조하고 이를 지방자치제와 연관시켜 홍보함으로써 조선인들의 불만을 축소시키고자 하였다. 향약의 자치적 기능을 강조하지만 실제로 향약 시행에서는 전통적인 향약의 자치기능을 약화시키고 향약을 관제화하였다.

1932년에 보고된 전국의 향약 단체 수는 2570개였다. 1932년 학무국 조사는 전국적으로 통일된 기준 없이 이루어진 한계가 있지만 이 조사는 1933년 향약사업 장려 보조금 정책의 기반이 되었다. 1930년대 조선총독부는 향약이 조선의 지방 통제에 효과적이라 판단하고 향약을 각 지역에 보급하려는 정책을 시행하였다. , 각 도마다 향약 단체를 선정하고 그 단체에 보조금을 지급하여 전국적으로 향약을 장려하고 부흥시키려 하였다. 1930년대 초반 농촌진흥운동 전후로 하여 조선총독부에 의해 부흥된 향약은 산업장려, 공공봉사 등의 조목이 첨부되어 지방 개량, 사회교화 등의 목적으로 운영되었다.

기지방입암촌향약안 표지
기지방 입암촌향약안 표지

 

조선-일제강점기 거쳐 새마을운동과 연결돼 현재에 이어진 입암향약

필자는 조선시대 향약이 일제시기를 거쳐 새마을운동과 연결되어 현재까지 살아 실천하고 있는 사례를 몇 년 전에 알게 되었다. 전북 남원시 금지면 입암리의 입암촌향약이다. 이 향약은 기록상으로 1725년부터 시행하여 일제시기에도 유지되다가 해방 후 공동 전답은 토지개혁으로 소작하던 사람들에게 유상분배 되었다. 해방 후 조직의 명칭은 '리농업협동조합'으로 유지되다가 1971'새마을회'로 개칭되어 지금도 이 명칭으로 사용한다.

필자는 작년 1월 정기총회에 참석하였다. 현재는 150여 가구가 살고 있으며 마을 공동토지를 임대하여 연 1500만의 수입을 올려 한 가구당 3만원의 배당을 하기로 총회에서 결정했다. 금액은 얼마 안 되나 다른 부분의 복지를 자율, 자급자족으로 하고 있었다.

이 회의 유동자산은 결산서에 따르면 약 25000여 만원이 있고 부동산이 상당수 있어 사제 맥주 공장, 카페, 공동 정미소 등에 임대하고 있다. 전 가구가 가입되어 있고 회비는 걷지 않는다. 이 회 산하에 노인회, 청년회, 장학회, 포도작목반 등이 있다. 장학금 1백만원이 지급되어 있다. 그리고 작목반에서 포도 등 작물을 생산한다. 외부의 도움 없이도 살아가는 자생적 조직이었다. 현 새마을회를 주민자치회로 바꾸면 자율적 자치 복지의 이상적인 주민자치회의 사례가 될 것이다. 입암향약에서는 향약 조항을 다음과 같이 게시판으로 만들어 공유하고 있었다.

입암향약 조목
입암향약 조목

 

[입암향약 4대덕목 실천강령]

1. 덕을 세우는 일은 서로 권장하는 일: 덕업상권(德業相勸)

마음과 몸을 바르게 하기 부모에게 효도하기

부부간에 서로 화합하기 형제간에 우애하기

애향활동을 전개하기 동족간에 돈목하기

공공시설을 애호하기 스승을 존경하자

교통도덕을 지키기 자녀를 착하고 바르게 교육하기

자연을 경외하고 생활환경을 정화하기

 

2. 잘못을 서로 바로 잡는 일: 과실상규(過失相規)

의리에 반하는 허물 일곱 가지를 범하지 않기

- 부모에 불효 - 형제간에 불목

- 부부간에 불화 - 윗사람에게 불경

- 권선을 어기는 일 - 친척과 이웃에 소원

- 국가에 불충

 

3. 예의와 미풍양속으로 서로 교제한다: 예속상교(禮俗相交)

어른을 공경하기 남녀 간에 서로 예의를 지키기

경사를 축하하기 친구 간에 신의를 지키기

이웃과 친목하기 상고에는 조문하기

청소년을 사랑으로 선도하기 집회와 회합 때는 질서와 의전을 지키기

 

4. 어려운 일을 서로 도와주는 일: 환난상휼(患難相恤)

외롭고 약한 자를 돕기 억울한 사람을 돕기

가난한 사람을 구제 질병을 구조하기

천재지변 등 재난을 구조하기

 

여씨향약의 4대 강목을 활용하였지만 각론은 현대 공동체 생활에 맞게 새롭게 규정하였다. 특히 도덕성과 자조 자립정신으로 이상향을 건설하자!”는 전문이 감동적이다. 지금은 정치가, 공무원, 교육자, 사업가 누구도 도덕성과 자조정신을 언급하지 않는 세태이다. 세금을 공짜로 나누자는 것과 달라는 데에 온 정신이 빠져 있다. 지방자치나 주민자치도 이렇게 재정 자립 없이는 공염불이다. 정부 세금을 가지고 하는 자치는 자치가 아니고 정치인들에게 이용당하는 타치(他治)이다. 돈 없으면 못하는 자치는, 자치나 자율이 아닌 것이다.

예의, 배려, 소통, 경제적 자립, 복지 등의 협동정신과 규정을 바탕으로 한 전통시대의 상부상조하던 향약공동체의 운영원리는 현대의 마을과 도시 공동체에서의 주민자치에서 재조명하여 정책적 시사점으로 적극 활용 필요가 있다.

입암마을 당산목의 모습
입암마을 당산목의 모습

 

향약새마을운동의 공동체정신, 현 주민자치에 어떻게 접목할 수 있을까

조선시대의 향약은 대부분 각 군현의 향교에서 주도적으로 시행하였다. 현재 한 달에 두 번씩 공자와 동국 18현에 대한 제향 기능은 유지하고 있으나 유교적 전통을 현대에 적극적으로 보급하여 일상화 하는데에는 부족함이 있다. 향교, 유도회에서 현 각 지역의 주민자치회와 협력하여 주민자치의 정신적 지주가 될 필요가 있다.

2006년 성균관유도회총본부(회장 변온섭)향약의 현대적 구현이라는 주제로 국회 헌정회관에서 정책세미나를 개최했었다. 필자는 이 세미나에서 조선시대와 일제시대, 계급을 이용해 향촌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향약이 악용된 사례도 있었다는 점을 명심하고 신향약 운동은 사회지도층의 솔선수범이 우선적으로 규율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아울러 당시 전영평 대구경실련 대표는 “‘신향약 운동후진적 국가발전 협조자 모형의 형태로 발전해서는 안 되고 유교적 권위에 기초한 사회계몽 운동, 지역사회 봉사운동, 사회복지 활동으로 특화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결론적으로 조선시대 유학과 향약 정신을 보급하던 향교와 유도회, 그리고 향약의 자립과 협동정신을 계승하였으나 현재 그 정체성 확보에 부심하고 있는 새마을회가 현 주민자치회와 지역에서 협력하여 현대 주민자치의 정신적, 공동체 가치를 재생산하는데 합력할 필요가 있다.

 

사진=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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