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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타인의 ‘사이’‘차이’‘다원성’서 출발하는 ‘공공성’과 ‘자유’[연구세미나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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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타인의 ‘사이’‘차이’‘다원성’서 출발하는 ‘공공성’과 ‘자유’[연구세미나96]
  • 김윤미 기자
  • 승인 2024.04.14 18: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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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6회 주민자치 그 안의 보물, 참여의 자유와 공공성

공공성에 이어 이번엔 자유. ‘공공성과 함께 주민자치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인 자유의 의미를 엄밀하게 살피고 확장하며 연결하는 시도가 펼쳐졌다. 한국주민자치학회는 일본의 정치학자 사이토 준이치가 정리한 '공공성''자유'의 개념을 통해 주민자치의 방향성을 찾아보는 주민자치 연구세미나를 두 차례에 걸쳐 개최했다. 먼저 그 첫 회가 '공공성과 주민자치'를 주제로 지난 4일 열렸으며 11일에는 그 두 번째 시간으로 참여의 자유와 공공성을 주제로 한 제96회 주민자치 연구세미나가 서울 인사동 태화빌딩에서 열렸다.

첫 회에 이어 김동춘 전 성공회대 교수가 좌장을 맡은 이날 세미나에서도 이관춘 연세대 객원교수가 발제자로, 그리고 신진욱 중앙대 교수, 박정하 성균관대 교수, 김성민 건국대 명예교수가 지정토론자로 참여했다.

발제를 맡은 이관춘 교수는 이번에는 사이토 준이치의 <자유란 무엇인가>(사이토 준이치 지음, 自由, 이혜진 외 옮김, 한울: 2011)의 내용을 중점적으로 소개하며 자유와 공공성의 문제를 제기했다.

 

자유에 대한 인식 전환 필요 사적인 문제공공적 문제

 

먼저 이관춘 교수는 한나 아렌트의 공화주의적 사유는 자유공공성을 중시하는데서 출발한다. 그는 대의 정치체제를 인간 실존의 조건인 정치자유에 반한다고 봤다. 대의제는 직업 정치가를 제외한 일반인을 정치영역에서 배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적 영역과 자유의 영역이 합쳐져 있는 평의회(council)를 대안적 정치체제로 봤다. 여기서 공적 영역은 사람들이 직접 평등하게 공적 문제에 대해 토론 행위를 하는 공적 공간이며 자유의 영역은 인간의 자유가 실현되어 인간 실존이 드러나는 장소라고 서두를 꺼냈다.

이어 그는 자유는 널리 쓰이는 말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개념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서 자유는 개인의 문제라는 것에서 우리 사이에 있는 공공의 문제로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라며 자유의 기본적 정의’ ‘근대와 현대에서의 자유에 대한 위협’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 ‘자유의 재정의’ ‘자유의 규율’ ‘자유와 공공성등에 대해 발표했다.

발제에 따르면, 자유란 사람들이 자기/타자/사회의 자원을 이용하여 달성 향유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스스로 판단한 것을 달성 향유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 타자의 동일한 자유와 양립하는 한에서 그 자유는 옹호된다. 자원에는 외적자원(재화, 서비스-이전할 수 있는)뿐만 아니라 내적 자원(개인의 심신능력)도 포함되며 자원의 결여로 인해 스스로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달성할 수 없는 상태는 부자유. 자유에는 적극적 의미와 필수조건이라 할 수 있는 간섭의 부재라는 소극적 의미가 함께 포함되어 있다. 또 판단 선택이 가능한 복수의 선택지가 열려 있고 그 선택지 속에 달성 향유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의미도 있다.

그렇다면 시대에 따라 자유에 대한 위협은 무엇이었을까? 먼저 이사야 벌린은 소극적 자유(간섭의 부재)를 절대적으로 옹호했다. 근대에 자유의 위협요소는 타자, 국가, 사회. 시장, 공동체가 모두 해당됐다. 홉스는 절대권력(리바이어던)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인 잠재적 폭력상태에 종지부를 찍으며 외적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제공했다고 봤다. 로크는 자유의 최대 위협으로 타자와 국가를 꼽았으며, 몽테스키외 역시 국가를, 콩스탕도 국가 소유 권력에 대한 총량 규제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국가 권력의 남용 즉 피통치자에 대한 가부장주의가 자유의 위협이 된 것이다.

그런가하면 밀(Mill)국가의 후견적 권력보다 사회의 비공식적 권력이 더 위험하다고 봤으며 루소는 시장을 자유에 대한 위협적 존재로 인식했다.

시장에 대한 헤겔과 마르크스의 인식에는 차이가 있었다. 발표에 의하면, 헤겔에게 시장은 실현되어야 하는 동시에 극복되어야 하는 것이었다면, 마르크스에게 시장은 자유에 있어서의 양의성을 상실, 폐기의 대상이었다. 20세기 초 시장은 여전히 자유를 위협하는 존재였으며 시장이 야기한 빈곤과 생활에의 부정적 영향으로 개인의 사적 문제를 넘어선 사회문제로 인식, 불평등 분배 개선 등 국가의 역할도 제기됐다. 20세기 중반 1,2차 세계대전과 전체주의 지배를 경험을 하면서 국가가 자유의 최대 위협으로 재인식되기도 했다. 이후 선진국의 복지국가 기능 확충이 자유에 억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자유에 대한 현시대의 위협요인은 무엇일까? 이관춘 교수는 타자, 국가, 사회, 시장 모두 해당될 수 있다. 자유의 위협 인식은 개인의 관심과 가치관에 의존하며 문제인식이 분할될 수 있다. 다양한 논의가 가능하다. 그러나 현재에는 경제적인 것이 압도적 우위를 차지할 것이다. 이를 제어해야 할 정치적인 것, 사회적인 것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시야의 확장이 필요하다. 자신이 향유하는 자유의 존재방식에 대한 비판적 평가가 필요하다. 사적인 문제로 생각했던 것에서 공공적 문제로 재인식하는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해방은 자유의 필요조건이나 자유 그 자체는 아냐

 

다음으로 소극적 자유적극적 자유의 개념이 제시됐다. 특히 이사야 벌린이 옹호한 소극적 자유는 한 마디로 간섭의 부재이며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행동의 자유로운 범위'를 유지하고 그 범위를 축소하는 외부의 간섭, 특히 공적권력으로부터의 간섭을 배제하는 것이다. 강제의 부재 상태이며 타인에 의해 방해받지 않고 여러 선택지 가운데 자신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상태이다. 여기서 중요시 되는 것은 우리 삶이 간섭 받지 않는 사적인 영역, 이는 사회 참여로부터 생기는 것이 아니다. 간섭과 예속의 부재 속에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는 무엇을 하고자 하는 자유가 아닌 그 자체로서 자유로운 행위라는 것이다.

소극적 자유에 대한 비판으로는 1)자유의 문제를 선택지의 범위라는 양의 문제로 환원했다는 것, 즉 선택지를 질적으로 구별해 그 가치를 비교하는 시점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 2)자유를 열려 있는 형식적인 선택지기회의 범위로 파악, 선택지가 현실적으로 접근 가능한 것인지 여부를 무시했다는 점, 3)사람들이 실제로 누리는 자유 그 자체의 불평등 문제 확장(토대역량(capability) 접근), 실제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평가 한계, 4)행위자 자신의 내적 제약으로 인해 선택지가 봉쇄될 수 있다는 것을 문제 삼지 않는다는 점, 5)욕구와 바람을 스스로 후퇴시킴으로써 부자유의 경험을 회피하는 것, 6)의도적 간섭 아닌 구조적 요인으로 인한 부자유, 부작위에 의해 방치된 부자유를 자유의 박탈로 파악 않는 점, 7) ‘법적 책임과 구분되는 정치적 책임이 명백하다는 점, 8)간섭 없어도 지배가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적절히 비판하지 않는다는 점, 9)타자와의 관계'에서만 향유될 수 있는 정치적 자유를 그 개념에서 부터 축소하고 있는 점 등이다.

특히 이관춘 교수는 소극적 자유에 대한 아렌트의 비판에 주목했다. 그에 따르면, 아렌트의 자유개념은 자신의 행위와 언어로 타자와 만나는 것이며, 해방과 자유는 구별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해방은 자유 향유의 필요조건이나 자유그 자체와는 다른 것이다. 독재체제 하에서도 소극적 자유의 향유는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렌트의 관심은 억압으로부터의 해방 그 자체가 아니라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 자유의 구성을 가능하게 하느냐 여부이다. 즉 자유의 구성은 해방의 자동적 귀결이 아니라 행위의 공간확대로 다양한 의견의 자유가 보장되는 관계성에서 가능한 것이다.

 

공약적 차원에서의 자유 향유는 비공약적 차원에서의 다원적 가치 추구에 긍정적으로 작용

 

계속해서 자유=주권성에 대한 비판적 내용도 제시됐다. 이관춘 교수는 아렌트는 인간의 복수성을 옹호하며 자유=주권이라고 동일시하는 것을 비판했다. 그는 배타적 자기지배의 환상을 불식시켰다. 사람들이 타자 사이에 존재하는 한 자신은 타자에게 열려 있다는 것이고 이는 곧 자기 내부에도 자기가 지배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기에 관한 일의적 동일성 관념을 거부하는 것이고 자기의 정신적 삶=복수성으로 특징지었다라며 자기=복수성은 자유롭기 위한 조건으로, 아렌트는 타자와의 교섭으로 자신에게 변화가 생긴다고 보았다. 이는 자유에 대한 부정이 아닌 스스로 자유롭기 위한 조건이다. 자유롭기 위해 피해야 할 것은 타자가 나를 대신해 판단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타자와의 교섭으로 내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며 자기에 대한 자유'를 내포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주권성을 포기해야 한다고 아렌트는 인식했다고 밝혔다.

끝으로 자유의 두 가지 차원, ‘공약적 차원비공약적 자원에 대한 설명도 있었다. 발제에 따르면 자유의 공약적 차원공통적으로 인정하는 가치즉 센(Sen)의 토대역량(capability) 같은 것이며, ‘비공약적 차원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서로 공약 불가능하다는 점을 전제하는 것이다. 예컨대 사상-종교적 자유 등 다수의 사회가 긍정 수용한 가치에서 벗어난 가치를 추구하는 개인의 자유인 것이다.

공약적 차원에서의 자유의 옹호는 누구나 향유해야 할 자유를 정의하고 그에 대한 제약을 부정의로 판단하는 규준을 마련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공통악’, 최소한의 자유, 각 사회의 공론에 의존한다는 세 가지 접근이 가능하다. 반면, ‘비공약적 차원에서의 자유의 옹호는 특정인이 자신의 가치(좋은 삶의 구상)로 타자의 자유를 제약, 공권력 이용해 타자에게 강제하는 것을 저지하는 것이며, 가장 옹호되는 자유는 사회의 다수와 다른 가치를 갖고 또 그것을 추구하는 소수나 개인의 자유이다. 이와 관련해 이관춘 교수는 공약적 차원에서의 자유 향유는 비공약적 차원에서의 다원적 가치 추구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사람은 기본적 자유의 향유가 안정적일 때 자기의 자원을 자신의 가치를 추구하는 자유에 쏟아 부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 뒷받침했다.

아울러 이 교수는 공공성은 사람들 사이'에 있는 공통의 문제나 사건에 대한 관심을 매개로 한 관계성이다. 타자와의 공간'을 상실한 사람들은 타자의 자유가 제약을 당해도 제약으로 인식 못한다. 타자의 삶에 생긴 사태에 대한 관심의 실종은 타자의 문제가 자신과 무관한 그들의문제로 도외시하게 한다. 20세기 역사의 경험은 타자의 자유 상실이 결코 타자만의 자유의 상실로 완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지적하며 발제를 마무리했다.

자유로운 존재인간은 타자와의 소통 통해 다양성과 공통성이 공존하는 세계 구성해 나가야

 

발제 후 지정토론에서 먼저 신진욱 중앙대 교수는 오늘 발제에서는 자유개념을 재검토하면서 소극적 자유 개념의 한계를 비판한 뒤에 기본적 역량으로서의 실질적 자유, 공화주의적 비지배의 의미로서의 자유, 아렌트가 이해한 정치적 자유의 개념을 제시했다. 그러한 토대 위에서 재정의된 자유는 개인의 배타적 주권성의 한계를 넘어서 타자와 관계 속에서 정의되고 구현되는 것으로서 이해된다. 그것은 모든 사람의 공약적 자유를 옹호하면서 동시에 다원적 가치를 추구하는 비공약적 자유 존중을 포함한다. 우리는 이러한 관점에서 자유와 공공성의 관계를 고찰해볼 수 있다라며 현대사회에서 개인은 타인과의 관계를 회피하며 자기 격리의 자유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자유의 본질적 의미를 훼손한다. 자유란 공공성을 바탕으로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상호의존적으로 실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유의 공약적 차원에서 타자의 기본적 자유 실현에 기여할 책임이 있으며, 비공약적 차원에서는 가치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타자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고 부당한 자유 억압에 저항할 책임이 있다. 자유로운 존재로서 인간은 타자와의 소통을 통해 다양성과 공통성이 공존하는 세계를 구성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이와 같은 방향으로 자유를 재정의하고 자유와 공공성의 관계를 조명하는 접근에 크게 공감한다. 개인들의 자유의 구현이 오직 그러한 자유에 상응하는 사회와 국가의 구현을 통해서만 가능해진다라며 간섭받지 않을 자유, 예속되지 않는 자유, 공적 참여로서의 자유, 사회경제적 기회로서의 자유, 이 네 가지를 제시했다.

신진욱 교수는 결론적으로 불간섭으로서의 자유’, ‘비지배로서의 자유’, ‘공적 참여로서의 자유’, ‘사회경제적 기회로서의 자유가 모두 오직 그 같은 자유 개념에 상응하는 국가와 사회를 구현하는 것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개인의 자유와 사회의 자유는 동일한 현실의 양 측면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다양한 자유의 개념들은 제각각의 중요성과 한계 또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최대한 입체적인 자유의 개념을 사회의 거시적, 미시적 영역에서 구현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들 간의 화해하기 힘든 긴장과 갈등을 풀어가는 것이 현대사회가 언제나 직면하는 진정으로 중요하고도 난해한 과제라고 생각한다고 짚었다.

다음으로 박정하 성균관대 교수는 “‘왜 주민자치인가?’에 대한 아렌트의 답은 무엇일까? 아렌트의 기본적 전제는 정치는 인간의 복수성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정치는 갈등을 전제한다. 그런데 인간 사이의 갈등은 동물처럼 이익 문제에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자존심과 명예, 우월감과 열등감, 정의 등에서도 생긴다. 이는 사람들이 서로 다르며 이 다른 모습을 존중받고자 하는 데에서 갈등이 생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양한 인간이 존재하며 모두가 자신을 드러내서 인정받고자 하므로 여기서 생기는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정치가 필요하다. 따라서 인간의 복수성이 아닌 보편성에만 주목하는 철학은 이러한 문제에 접근하기에는 무력하다고 지적했다.

 

주민자치, 정치적 공간 회복하고 확보하는 길새로운 선택지 만드는 구조로 변화시켜

계속해서 박 교수는 아렌트에 따르면 주민자치는 바로 정치적 공간을 회복하고 확보해 내는 길이다. 사회적인 것이 정복한 공적 영역을 회복시키는 길이다. 소통과 참여를 통해 정치 공간을 확보할 때 시민은 사회적인 것과 이를 토대로 성립한 지배에서 벗어나 자기 삶의 주인이 되고 자치를 이룰 수 있다. 선택지를 경제적인 것 중에 정해놓고 선택의 폭을 제한하려는 지배에서 벗어나 선택지 자체를 새롭게 만들어 내는 구조로 변화시키는 것이 자치의 힘이다. 따라서 주민자치가 다룰 문제는 공동의 삶이고 공공선의 문제이다. 당위와 가치의 문제가 중심에 와야 한다. 자기 이익에만 몰두하고 오직 효율성과 이익 추구에만 가치를 둔다면 진정한 자치는 이루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아렌트의 관점이라고 제시했다.

박정하 교수는 또 사이토 준이치는 공공성이 추구할 공공적 가치로 아마티아 센이 제시하는 기본적인 잠재능력’(basic capabilities)을 언급하는데 이는 주민자치가 추구해야 할 공적 가치, 공공선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지적이라며 저자가 잠재능력이라고 번역한 ‘capabilities’라는 개념은 역량이라 번역되며 이는 직업교육에서 역량으로 번역되는 ‘competence’와는 전혀 다른 개념으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가능성과 능력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되는 개념이다. 달리 표현하면 역량은 개인이 스스로 가치를 부여하여 목표로 삼은 것을 추구하고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센은 역량을 실질적 자유이자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는 기회의 집합이라고 정의한다고 덧붙였다.

마지막 지정토론자인 김성민 건국대 교수는 지난주 다뤘던 <민주적 공공성>의 핵심내용과 문제의식이 오늘 다룬 <자유란 무엇인가>자유공공성의 주제로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사이토 준이치의 공공성 철학은 한마디로 ‘‘사이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라며 우선 사이라는 단어는 명사가 아닌 동사형으로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사이는 둘의 (타자)존재를 전제하는 것이고 그 둘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소통과 교섭을 통해 형성되어 간다. 따라서 사이는 정적이거나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변화와 발전의 과정을 나타내는 유동적인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자유는 항상 다르게라는 비결정성의 계기가 포함되어 있다고 할 때 나(우리)는 역시 그 때마다 어떤 존재이면서 또 항상 다르게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 존재라고 준이치는 말한다. 즉 그러한 가능성이 촉발되고 환기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서로의 사이에 존재함으로써 무조건 타자와 교섭할 수밖에 없는 존재자이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타자로서 노출되어 있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각자인 내가 그 무엇(자기동일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운동의 자유를 갖기 때문이라며 자유에 대해서는 준이치가 근대 리버럴리즘의 자유관을 아렌트를 통해 비판하면서 밝혔듯이 타자와의 관계에서 성립한다. 아렌트는 인간의 복수성을 옹호하면서 자유와 주권성은 동일시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양립불가능한 것으로 단정한다. 아렌트가 강조하는 복수성이라는 조건이 지시하는 것은 자신과 근본적으로 다른 타자가 이 세계에 존재한다는 것, 따라서 이 세계는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라고 설명했다.

 

자유는 타자성존중하는 것타자와의 소통 매개하는 사이서 생성

 

다음으로 김 교수는 자유는 타자성을 존중하는 것이고 타자와의 소통을 매개하는 사이에서 생성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타자와의 교섭을 회피한다면 자신과 타자가 공생하는 사회의 존재방식을 자기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공공적 감성을 약화시키게 될 것이다. 자신과 타자와의 사이가 제거되었을 때, 사이를 기존의 고정관념(stereotype)이 채우거나 사회적으로 형성된 큰 타자’(Big other, 라캉/지젝)가 지배하게 된다. ‘사이에서의 소통은 커뮤니케이션의 자유이고 이것은 자기에게 운동의 자유를 불러일으키지만 타자와의 대화적 이성과 공공성 이성이 상실된 사이에서는 타자의 자유를 제대로 음미할 수 없거나 타자의 자유는 박탈되고 만다라며 소통이란 타자의 타자성’(otherness of other)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내 안의 타자처럼 자기가 이미 알고 있는 문법과 언어 규칙들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 밖에 있으며 나와 문법이나 언어 규칙을 공유하지 않고 있다. 우리가 소통을 한다는 것은 서로의 문화적 가치와 삶의 방식 전체를 이해하고 그 속에서 서로의 삶(자유)을 나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내 방식으로만 타자를 이해하고 대화하려고 할 때 그것은 자기 안에서 대화하는 것에 불과하다. 가라타니 고진(Karatani Kojin)에 따르면 자기 대화이자 독백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진=문효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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