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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주민자치의 먹줄과 숫돌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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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주민자치의 먹줄과 숫돌을 만들자
  • 전상직 한국자치학회 회장
  • 승인 2016.06.01 0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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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직 한국자치학회 회장.
전상직 한국자치학회 회장.

주민자치는 주민들이 하는 것이지만 국가가 나서서 지원하지 않는 나라가 없고, 주민자치를 국가가 지원하지만 주민자치에 직접 개입하는 나라도 없다. 말하자면, 주민자치의 실행주체는 주민이지만, 그래서 간섭도 할 수 없지만, 국가가 간섭을 넘어서서 성공하도록 지원해야만 하는 것이 주민자치 정책의 특성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주소는 어떠한가?

주민자치의 국가 측 당사자인 행정자치부는 주민자치에 대해서 책임이 있는 자세를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저 실무자의 실무 중의 하나로 처리하고 말 따름이다. 그래서 우리는 주민자치에 있어서만은 행정자치부를 믿고 있을 수만은 없다. 또 다른 당사자인 지방자치발전위원회도 주민자치를 역점 사업의 하나로 상정은 하고 있지만 성공가능 한 주민자치를 설계하는데 여러모로 인색했다.

필요한 연구를 진행한다고 했으나 충분한 연구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어서 역시 지방자치발전위원회를 믿고 있을 수만은 없다. 주민자치의 직접당사자인 시·군·구는 주민자치의 구조면에서는 일제의 행정체계를 답습해 지역사회를 통제하고 있으며, 주민자치센터 조차도 반주민자치적으로 운영해 주민자치를 질식시켜가고 있다.

누군가가 나서서 불씨를 지피고 희생적으로 견인하지 않는다면, 주민자치는 행정의 동굴 속에서 암울하고 초라하게 은혜로운 처분을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둘 수는 없다. 그것은 역사 앞에서 죄를 짓는 일이다. 국가와 시장이 주도해온 대한민국이 한계에 부딪혀서 수습하기 어려운 문제를 수없이 반복적으로 야기하고 있는 지금, 사회가 나서서 국가와 시장이 저지른 무모함의 결과를 바람직하게 수습해야 한다. 문제를 야기한 국가와 시장이 아니라 사회가 나서야 한다.

체계적인 주민자치법 입법을 연구하자

“吾嘗終日而思矣 나는 일찍이 하루 종일 생각만 해 본 일이 있었으나, 不如須臾之所學也 잠깐동안 공부한 것만 못했다. 吾嘗 望矣 나는 일찍이 발돋움을 하고 바라본 일이 있었으나, 不如登高之博見也 높은 곳에 올라가 널리 바라보는 것만 못했다.”(순자, 荀子)

순자는 생각思만 하지 말고 공부學를 하고 발돋움에 그치지 말고 높은 곳에 올라가자고 제안했다.

주민자치에 대해서 지금까지 실시했던 단편적인 연구나 단순한 토론만으로 주민자치의 도약을 기대하기는 매우 어렵다. 종합적으로 체계적으로 주민자치법 입법을 위한 연구를 해야만 한다. 주민자치라는 거보를 제대로 내 디딜 수 있도록 하는 주민자법 입법연구 포럼을 시작하기로 하자. 지방자치가 빠져서도 안 되겠지만 지방재정, 복지행정, 자치법학, 지역정치, 지역사회, 지역복지, 평생교육 등 지역의 사회를 바람직하게 형성하는데 연관이 있는 모든 분과학문들의 학제 간의 연구를 진행하기로 하자.

우리 전통 속에서 주민자치를 살펴보자

“假興馬者 수레나 말을 힘을 빌리면, 非利足也 발이 빨라진 것이 아니지만, 而致千里 천리를 갈 수 있다. 假舟楫者 배나 노의 힘을 빌리면, 非能水也 헤엄을 잘 치게 된 것이 아닌데도, 而絶江河 강하를 건널 수가 있다.”(순자, 荀子)

학제 간의 연구와 토론에서 심화되는 것들이 바로 주민자치 발전의 새로운 자산이 돼서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가르쳐준다.

지금까지 해보지 못한 우리나라의 전통 속에서 주민자치를 살펴보자.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 답게 어떻게 마을을 경영해왔으며, 일제가 야욕을 앞세워 미풍양속을 어떻게 폄하하고 파괴했는지도 살펴보자.

그리고 일제의 잔재가 지금 어떤 형태로 남아서 주민자치를 파괴하고 저해하고 있는가도 살펴보자. 주민자치에서 앞선 나라들의 구체적인 합의들을 법령과 현장을 통해 살피고 우리의 주민자치를 설계하자. 주민자치센터라는 이름으로 저지른 오류도 반성해보기로 하자. ‘靑取之於藍 푸른 물감은 쪽에서 나오지만, 而靑於藍 쪽보다 더 파랗다’고 한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으면, 그 바로잡음이 바로 위대성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주민자치법 입법연구 포럼을 시작하자

주민자치의 올바른 연구가 없어서, 행정자치부는 실무자의 실무수준으로 주민자치정책을 전개하는가 하면, 서울시는 시민운동가들로 마을자치를 하겠다고 나서고 있으며, 일부 앞섰다고 하는 단체장까지도 주민자치를 조직하려고 하는 차원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故木受繩則直 나무는 먹줄을 따르면 곧아지고, 金就礪則利 쇠는 숫돌에 갈면 날카로워진다.”(순자, 荀子)

주민자치 당사자들이 마음 놓고 쓸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는 주민자치법을 입법하기 위해 바람직한 연구를 진행하기로 하자. 주민자치의 먹줄繩과 숫돌礪을 만드는 주민자치법 입법연구 포럼을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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