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5-03 11:52 (금)
[기획특집] 시민사회와 주민자치 - 주민자치는 지방정부의 민주주의 원리
상태바
[기획특집] 시민사회와 주민자치 - 주민자치는 지방정부의 민주주의 원리
  • 곽현근 대전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 승인 2016.07.07 17: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회적 자본과 주민자치회의 제도화 방향
주민자치회는 철저하게 주민자치 철학 기반위에서 제도화돼야
곽현근 대전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곽현근 대전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민주주의 작동을 위한 시민사회 역량으로서의 사회적 자본
‘자본’(capital)'의 사전적 의미는 ‘사업의 밑천이 되는 돈’이다. 사업의 밑천이 되는 돈을 시설, 건물 등에 투자하면 ‘물리적 자본’, 사람에게 투자하면 ‘인적 자본’이 만들어진다. 결과적으로 물리적 자본이 건물 또는 기계와 같은 생산자원을 의미한다면, 인적 자본은 개별 사회구성원이 가진 지식, 기술, 건강과 같은 생산자원을 의미한다. 물리적 자본 또는 인적 자본과 차별화되는 개념으로서,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은 신뢰, 규범, 네트워크와 같이 사람들 사이의 ‘관계’(relationship)의 특징들이 생산적 목적을 위한 중요한 자원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사회적 자본은 ‘사회간접자본’(SOC)과 차별화된다. 사회간접자본은 ‘국민경제발전의 기초가 되는 도로, 항만, 철도, 통신, 전력, 수도 따위의 공공시설’을 의미한다. 사회간접자본이 물리적 사회기반시설을 의미한다면, 사회적 자본은 사회구성원 사이의 비가시적·비물질적 관계가 사회발전을 위한 ‘소프트한’ 인프라기능을 수행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시민사회 역량 또는 민주주의와 관련해 사회적 자본에 주목하게 된 것은 하버드대학의 정치학자 Robert Putnam(로버트 퍼트남) 교수의 공이 크다. Putnam은 1993년 Making Democracy Work(민주주의를 작동시키는 것)이라는 저서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사회적 자본의 중요성을 알리고 큰 반향을 일으킨다. 이 책에서 Putnam은 사회적 자본을 ‘조정된 행위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사회의 효율성을 증가시킬 수 있는 신뢰, 규범 및 네트워크와 같은 사회조직의 특징들’로 정의(定義)내린다. Putnam의 정의는 동네, 도시, 국가와 같은 사회조직(집합체) 단위 구성원들이 신뢰, 호혜의 규범, 네트워크와 같은 사회적 자본을 형성하고 있다면, 행위의 조정 또는 협력이 쉬워짐으로써 상대적으로 적은 거래비용으로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고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Putnam은 이 같은 논리를 뒷받침할 사회적 자본의 중요성을 20여 년간의 이탈리아 북부와 남부의 비교 연구결과에서 찾는다. 구체적으로 Putnam은 사회적 자본과 지방정부가 달성한 성과간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시민들의 수평적 결사체가 활성화된 북부지역이 사회정치적 관계가 수직적으로 구조화된 남부지역보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우월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음을 확인한다. 자발적 결사체로 대표되는 시민들의 수평적 네트워크가 어떻게 좋은 정부의 버팀목이 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Putnam은 다음과 같은 논리를 제시한다.

“사람들은 결사체 참여와 면대면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 신뢰하는 법을 배운다. 신뢰와 호혜의 규범은 촘촘하고 중첩된 네트워크를 통해 전체 사회로 확산된다. 신뢰와 호혜의 규범 속에서 상호작용하는 시민들은 협력과 갈등조정이 쉬워지고, 언제든지 공동의 목적을 위한 집합적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집합적 행동역량을 키운 시민들은 자신들의 요구에 적절히 대응하는 역량있는 정부를 기대하고 목소리를 내게 되며, 정치인들은 그런 기대에 부응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사회적 자본이 축적된 시민사회는 적극적인 시민참여와 ‘좋은 정부’ (good government)의 선순환궤도를 형성하게 된다.”

이처럼 Putnam 전통의 학자들은 사회적 자본을 동네, 도시, 또는 국가의 구성원들이 갖는 ‘적극적 시민성’(civicness)과 동일시한다. 또 어떤 지역의 사회적·정치적 삶이 사회적 자본에 기초한 시민공동체(civic community)에 가까워질수록 훌륭한 민주적 정부가 만들어진다고 본다.

사회적 자본 형성의 전략적 초점으로서의 지역공동체
‘민주주의를 작동시키는’ (making democracy work) 원리로서 사회적 자본의 중요성에 동의하더라도, 어떻게 사회적 자본을 생성할 것인가는 별개의 문제다. 이와관련해 Putnam뿐만 아니라 2009년 노벨경제학자 수상자 Elinor Ostrom(엘리너 오스트롬) 같은 석학들의 처방은 의외로 분명하다. 국가규모의 거대담론이 아니라, 동네와 같은 상대적으로 작은 지역단위 주민들 사이의 관계에 초점을 두는 것이 사회적 자본 형성을 위한 첫걸음임을 강조한다. 이런 차원에서 사회적 자본 형성의 전략적 초점이 되는 것이 바로 ‘지역공동체’ (local community)다.

지역공동체란 ‘일정한 지역에 살면서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과 이웃 주민들에 대해 사회적·심리적 유대를 가진 사람들’을 의미한다. 지역공동체 개념에 내포된 주민들 사이의 ‘사회적·심리적 유대’가 지역주민의 관계자원을 의미한다고 볼 때, 지역공동체 개념은 이미 ‘사회적 자본’의 의미를 내포한다고 볼 수 있다. 실제 Putnam은 지역공동체를 사회적 자본의 ‘개념적인 사촌’으로 꼽기도 했다.

지역공동체 또는 사회적 자본과 관련된 현상이 어떤 공간적 규모에서 발생하는지를 규정하는 것은 해당 현상을 인식하고 해석하는 방식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따라서 공동체의 기반이 되는 ‘지역’(local)의 의미와 ‘규모’(scale)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지역은 주민들이 ‘생생한 경험(lived experience)을 하는 규모의 장소’를 의미한다. 개인에 따라 생생한 경험을 하는 지역의 규모는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지역공동체 개념에 내포된 주민들 사이의 사회적·심리적 유대는 도시 또는 국가규모보다는 작은 지리적 단위에서 형성되기 쉽다는 점에서 지역공동체 논의는 일반적으로 동네 또는 마을규모에 집중된다.

"사회적 자본이 축적된 시민사회는 적극적인 시민참여와 좋은 정부의 선순환 궤도를 형성한다"

동네 규모의 수직적 차원
지역공동체 단위로서 동네를 바라볼 때, 단순히 자신이 사는 동네의 경계를 정한 후, 다른 동네와는 상호배타적으로 차별화되는 수평적 공간차원에만 주목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하나의 동네는 더 큰 단위의 사회적 구조에 뿌리내리거나 연계돼 있으면서 해당 동네의 사회과정과 더 큰 규모에서의 사회과정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따라서 수직적으로 연계된 서로 다른 규모의 공간에서 발생하는 사건, 과정, 관계의 특징들을 파악하는 것뿐만 아니라, 공간계층들 사이의 상호작용 측면에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선진국의 경우, 500명 미만의 블록단위 동네규모, 지위·계급·인종에 기반을 두고 500~3000명 정도가 모여 사는 동네규모, 최하위행정계층의 관할구역에 해당하면서 3000~2만명 정도가 거주하는 동네규모에서의 사회적 상호작용과 정체성, 그리고 주민조직화 또는 제도화의 가능성은 매우 다르게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동네규모의 수직적 차원은 단 하나의 지역공동체가 아니라, 계층적으로 연계된 다양한 수준의 지역공동체가 존재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즉, 평균인구 2만명 안팎의 우리나라 읍과 행정동 규모에서 구축할 수 있는 지역공동체와 그보다 작은 단위의 동네에서 형성할 수 있는 지역공동체의 성격과 형성전략은 다를 수 있다.

참여민주적 관점의 주민자치 재해석
‘단체자치’와 ‘주민자치’는 지방자치의 두 가지 원리다. 단체자치는 법인격을 가진 지방자치단체가 중앙정부로부터 일정한 권한과 책임을 위임받아 독립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리고 사무를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반면, 주민자치는 지방자치단체가 주민의사에 따라 민주적으로 운영되고 통제되는 원리를 의미한다. 이 두 원리는 상호배타적인 지방자치 유형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지방자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 동시에 만족시켜야할 조건들이다. 이런 조건에 비춰볼 때, 현재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는 단체자치 성격을 띨 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의 대표를 주민이 직접 선출하면서 ‘대의민주적’ 주민자치의 성격을 갖는다.

주민자치에 관한 많은 오해는 주민자치를 지방정부의 민주주의 원리로 해석하지 않고, 단순히 지자체와는 별개의 생활공간에서 주민들의 자기결정 또는 자원봉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으로만 해석하는 데서 발생한다. 결과적으로 주민자치를 정부의 기능 또는 서비스가 다루지 못한 잔여영역에서의 주민자원봉사를 통한 보완정도의 의미로 치부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 경우 ‘주민의 의사와 통제에 의해 지방자치단체가 운영된다’는 주민자치의 의미는 사라지게 되면서 자칫 민주적 지방정부를 부정하는 결과를 낳거나 주민자치라는 이름으로 행정의 직무유기 또는 책임전가의 가능성도 커진다.

지방자치의 원리로서 주민자치의 본래 취지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단순히 주민의 ‘자원봉사에 기반을 둔 생활자치’의 프레임을 벗어나서 ‘지방민주주의의 혁신’이라는 좀 더 강력한 정치적 프레임을 필요로 한다. 지방민주주의 혁신은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자기들의 게임에만 몰두해왔던 정치·행정엘리트 중심의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실질적 민주주의의 강화를 위해서는 시민의 투표행위 이상의 참여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시민참여과정은 사회적 자본의 토대위에서 강화될 수 있다. 결국, 지방민주주의 혁신의 초점은 ‘대의민주적 주민자치’를 넘어서서 ‘사회적 자본(지역공동체) 기반의 참여민주적 주민자치’를 구현하는데 있다. 이 때 주민자치의 의미는 주민의 자발적 참여와 조직화를 통해 지역의제를 발굴하고 해결해나가는 과정 속에서 사회적 자본으로 대표되는 공동체적 역량을 키우는데 그치지 않고, 그런 역량을 기반으로 지역공동체 조직 또는 대표가 정부의 공식제도에 참여하면서 정부 또는 다른 지역공동체와 함께 지역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의사결정과 생산행위에 관여하는 것까지를 포함한다. 이런 주민자치의 재해석은 주민의 생활공간에만 한정시켜 마치 주민자치가 지방정부와는 무관한 별개의 자치 유형인 것처럼 취급하는 편향된 관점의 극복을 가능하게 해준다.

지방민주주의 혁신을 위한 주민자치회의 역할
‘주민자치회’에 대한 관심은 2010년 10월 ‘지방행정체제개편에 관한 특별법’ (이하 ‘특별법’)에 의해 촉발됐다. 특별법 제3장 제4절 제20조는 “풀뿌리 자치의 활성화와 민주적 참여의식 고양을 위해 읍·면·동에 해당 행정구역의 주민으로 구성되는 주민자치회를 둘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특별법 통과 이후 6년이 가까워오는 현 시점까지도 주민자치회에 관한 논의는 협력형, 통합형, 주민조직형으로 분류된 시범사업모형에 집착하면서 마치 행정체제상의 구조적 위상이 주민자치회 제도의 성공을 가름할 것 같은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또 정부가 읍·면·동에 주민자치회를 설치하고, 일부 영향력 있는 주민들에게 정부를 보조하는 기능을 부여하면, 어떤 방식이든 최소한의 순기능을 수행하면서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행정중심의 편의주의 또는 기능주의 관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풀뿌리 자치의 활성화와 민주적 참여의식 고양’이라는 주민자치회 설치목적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논의는 실종된상태다.

주민자치회가 단순한 자원봉사조직이 아니라, 풀뿌리 자치의 활성화와 민주적 참여의식 고양을 위한 제도라고 한다면, 주민자치회는 철저하게 지방자치의 민주적 원리인 ‘주민자치’ 철학의 기반위에서 제도화돼야 한다. 현대 민주주의의 재해석을 통해 도출된 성숙한 의미의 주민자치는 ‘시민의 통제’(popular control) 기제로서 한계를 드러낸 대의민주적 지방자치를 넘어서서 참여민주적 지방자치로의 제도적 혁신을 요구한다. 그리고 ‘좋은 이론만큼 실용적인 것은 없다’라는 격언을 받아들인다면, 현 시점에서 참여민주적 주민자치 제도화의 가이드로서 사회적 자본 이론만큼 좋은 이론은 찾아볼 수 없다.

최근 진화된 사회적 자본 이론은 동네 내부 구성원 사이의 결속과 유대를 강조하는 결속적(bonding) 사회적 자본, 서로 다른 지역공동체 사이의 교류와 연대를 강조하는 가교적(bridging) 사회적 자본, 지역공동체와 지방정부의 거버넌스를 통한 신뢰형성을 강조하는 연계적(linking) 사회적 자본을 동시에 강조한다. 지방민주주의 혁신을 위한 주민자치회의 사명과 역할은 정부서비스 보조차원의 자원봉사가 아니라, 작은 동네 단위의 결속적 사회적 자본, 읍·면·동 단위의 가교적 사회적 자본, 읍·면·동 단위 행정과의 거버넌스 참여를 통한 연계적 사회적 자본 형성의 관점에서 재검토돼야 한다.

"주민자치는 대의민주적 넘어 참여민주적 지방자치로의 제도적 혁신을 요구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공공성(公共性)’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연구세미나95]
  • 문산면 주민자치회, 주민 지혜와 협의로 마을 발전 이끈다
  • 주민자치위원, 마을과 주민 위한 소통의 리더십 발휘해야
  • 별내면 주민자치위원회, 청소년들의 자율적 자치참여 유도
  • 사동 주민자치회, '행복한 끼'로 복지사각지대 해소 나서
  • 시흥시 주민자치, 주민이 마을의제 해결하는 ‘마을회담’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