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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글] 주민자치법 입법에 부쳐서 제20대 국회의원 후보들에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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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글] 주민자치법 입법에 부쳐서 제20대 국회의원 후보들에게 바란다
  • 전상직 한국자치학회 회장·본지 발행인
  • 승인 2016.03.02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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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직 한국자치학회 회장·본지 발행인.
전상직 한국자치학회 회장·본지 발행인.

우리나라에는 ‘주민자치법’이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조선중기를 넘어서면서 향약鄕約이라는 ‘마을자치법’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을자치 조직이 구성돼 대체로 잘 운영됐습니다. 그러나 일제가 강점하면서 조선사회 장악을 위해 읍면邑面을 설치해 주민들이 경영하던 마을을 행정적으로 강력하게 장악했습니다. 따라서 일종의 주민자치법규였던 향약은 유명무실해 사라져갔습니다. 그때로부터 100여 년이 지났지만 우리에게는 아직도 주민자치법이 없습니다.

1998년에 만든 ‘주민자치센터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준칙)는 주민자치에 관한 법규로 보기에는 요건을 전혀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읍·면·동에 설치하는 주민자치센터’를 ‘읍면동장이 운영’하고 ‘주민자치위원회는 프로그램 심의’하라는 제도입니다. 읍·면·동장이 주민들의 취미·여가를 위해 강좌를 개설하는 센터가 어찌하여 주민자치센터고, 그 취미·여가 강좌를 심의하는 위원회가 어찌하여 주민자치위원회입니까? 1998년 주민자치센터는 주민자치제도가 아니고, 조례는 주민자치법규가 아닙니다.

2013년 시범실시 주민자치회는 명목상으로는 주민자치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범실시를 위해 행정자치부가 축조한 조례는 주민자치를 위한 조례가 아니라, 주민자치회라는 이름으로 행정사무하청기구를 운영하기 위한 것에 불과합니다. 먼저, 주민자치위원을 주민자치회 위원으로 대치해 주민자치회를 위원회로 만들었습니다. 자율적인 결사조직인 주민자치회를 행정보조기관이 위원회로 만든 것입니다.

주민자치는 주민들만의 문제인가, 아니면 관료들의 문제인가요? 지금은 주민을 제쳐놓고 관료들이 주민자치라는 용어를 조자룡 헌 칼 쓰듯이 휘두르고 있습니다. 위원회 구성도 관료가 하고, 위원회 활동도 관료가 장악하고, 관료 없이는 주민자치 활동이 있을 수 없게 돼 있습니다. 주민자치는 주민의 자치인가, 관료의 관치인가요? 성급하게 답하자면 주민의 문제지만, 주민만의 문제는 아니요, 관료들의 문제지만, 관료들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주민자치의 주체는 당연히 주민이지만, 당사자는 ‘주민’과 ‘관료’와 ‘의원’들인 것입니다.

주민자치법은 이렇게 입법돼야 한다
주민자치법은 주민자치의 주체인 주민들이(100여 년 전 일제가 빼앗아가서 좌절시켰던) 마을을 위한 이타적인 의지를 함양할 수 있도록 입법돼야 합니다. 주민들의 소극적인 자발의지에만 의존하지 말고, 주민들의 자발성이 적극적으로 형성되고, 마을단위로 성숙될 수 있도록 하는 기획을 입법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주민들이 갖고 있는 역량이 마을을 위해서 결집되고, 마을로 결집된 역량이 마을과 주민에게 바람직하게 발현될 수 있도록 하는 기획을 입법해야 합니다. 이웃과 마을을 위해 능력을 발현하는 과정이 주민과 마을의 균형을 형성하고, 그 균형이 바람직한 가치곡선으로 상승하는 과정도 입법해야 합니다.

주민자치법은 관료들에게 주민자치의 성공적인 실현에 대한 의무를 부여해야 합니다. 현재, 선언적으로는 주민이 주인라고 하지만, 법적으로 관료는 주민들의 우위에 서 있습니다. 관료와 주민이 대등하다고 하더라도 대립 시에 관료는 조직, 예산, 정보로 주민들보다 자치사무까지 선점할 수 있는 우위에 서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민자치법은 주민자치사무에 있어서 주민들이 우위에 서서 관료들의 협력을 받을 수 있어야 하고, 관료들은 주민자치사무에 있어서 주민들이 자치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기여하는 것을 기본적인 임무로 입법해야 합니다.

주민자치법은 지방의회에 위임하는 법이 아니라 주민들에게 위임하는 법이어야 합니다. 주민자치센터 조례를 기초의회에 위임한 결과, 주민자치의 근본적인 발전을 위한 입법은 거의 없었고, 주민자치위원의 임기를 제한하는 등의 주민자치위원 견제입법만 다소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민자치법은 주민자치를 지방의회의 처분에 맡겨서는 안 되며 주민자치회에 직접 위임하도록 입법돼야 합니다.

주민자치법 없이는 일제가 빼앗아가서 관료들에게 맡겨버린 주민자치권을 관료들 스스로 내놓을 리가 없습니다. 법으로 규정해 관료들이 잘할 수 있는 일은 관료들이 하고, 주민들이 잘할 수 있는 일은 주민들이 하도록 해서 관료와 주민이 나눠서 잘하기도 하지만, 협력해서 잘하도록 하는 체계를 입법해야 합니다. 또 주민들이 공동체를 위해 이타성을 마음 놓고 발휘하도록 보장해야 합니다. 자발적이고 이타적인 노력들이 정치권력에 흡수되거나 정치인들의 압력를 받도록 해서는 안 되며, 주민들의 자발적이고 공동체적인 노력이 정치를 올바르게 정초할 수 있도록 입법돼야합니다.

주민자치법은 마을에서 직접민주를 구현하도록 입법돼야 합니다. 일제가 완성한 행정의 수직계열화를 보조하는 주민자치여서는 안 되며, 적어도 마을에서는 하향식(top-down)이 아니라 상향식(bottom-up)의 구조가 성립돼야 합니다. 따라서 주민자치회 단위를 읍·면·동 등과 같이 일방적으로 일률적으로 규정할 일이 아니며, 상향의 동력을 형성시킬 수 있는 합의도출이 가능한 단위로 주민자치회를 입법해야 합니다.

사람을 인격자로 만들어 주고 마을을 공동체로 만들어 주는 자치를 주민자치법은 성공적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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